상단영역

본문영역

스마트폰 세상에서 종이수첩이 살아남는 방법

  • 입력 2015.09.17 11:19
  • 기자명 두루마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출근과 퇴근이 매일같이 반복되는
36살 직장인의 삶. 그 지루한 연속에서 소소하니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것이 하나 있으니 바로 아들의 그림 일기 입니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그림일기가 설레게 한다기 보다는 그림일기 한 귀퉁이에 적힌 유치원 선생님의 예쁜 손글씨가 저를 설레게 합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이 소소한 설렘 마저 사라진다고 합니다. 아들이 다니는 유치원은 이제부터 손글씨가 아닌 스마트폰 어플로 공지사항을 전달한다고 합니다.
일상 속 많은 것들이 디지털화 되었습니다. 꾹꾹 눌러쓰던 편지도 이젠 이메일로 대체된 지 오래고, LP판은 이제 골동품 가게에나 가야 겨우 볼 수 있지요. 대학 동아리방 한 켠에 놓여있던 날적이는 이제 SNS 게시판으로 바뀌었겠지요? 이렇게 순식간에 디지털화 되어버린 세상에 우리는 자연스레 적응해 왔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세상이 그리고 소비자들이 디지털화 되어갈수록, 기존의 아날로그 제품을 판매하던 기업들도 디지털 세상에 살아남기 위해 많은 고민들을 하고 있습니다.


아날로그 시대를 풍미하던 많은 기업들 중에 상당수는 이미 디지털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쇠락하기도 했습니다
. 즉석사진의 대표기업인 폴라로이드(Polaroid)도 카메라 필름의 대표기업인 코닥(Kodaq)도 예전 아날로그 시대의 전성기를 뒤로하고 쇠락하고 말았죠. 마치 공룡이 기후 변화에 적응 못하고 멸종한 것처럼요.
하지만 모든 아날로그 기업들이 쇠락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디지털 시대에 적응하고 발전해 나가는 기업들도 있습니다. 몰스킨(Moleskine)이 그 대표 기업 중 하나 입니다. 검은 가죽커버에 고정밴드로 상징되는 몰스킨은 수십년 동안 인기 있던 수첩입니다. 지금도 교보문고 문구코너에 가면 가판대 한 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몰스킨 수첩을 뒤적여 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피카소, 헤밍웨이 등 유명한 예술가들로부터 사랑 받아왔을 뿐 아니라 몽블랑 만년필과 가장 잘 어울리는 세련된 수첩으로 기업인들 사이에서도 널리 사용되어 왔죠.


하지만 몰스킨도 디지털화 되는 세상과 사람들의 취향을 거스를 수는 없었습니다
. 이제 많은 사람들이 수첩보다는 스마트폰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타자로 입력하기도 하고 타블렛 펜으로 직접 손글씨 쓰듯 메모하는 모습을 쉽게 주변에서 발견할 수 있죠. 어쩌면 디지털화 되는 세상에 가장 먼저 설 곳을 잃었어야 마땅할 아날로그의 대명사, 몰스킨은 어떻게 디지털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요?


생존전략 하나
. 디지털과의 공생을 통한 포지셔닝 확대
스마트폰과 수첩. 한쪽이 늘어나면 한쪽은 쇠락할 경쟁관계처럼 보이지만, 몰스킨은 이 경쟁관계를 협력 관계로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습니다. 몰스킨은 사실 스마트폰이 보편화되기 시작한 초기단계부터 적극적으로 디지털 기기와의 공생하는 방법을 찾아왔습니다. 잘 이해하기 어렵죠?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공생하는 법이라니. 하지만 우리 스스로를 잘 돌아보면 생각보다 많은 곳에서 이 공생관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eBook 입니다. 책을 종이가 아닌 스마트폰으로 보는 eBook이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은 3년안에 출판업계가 모두 망할 것이라 예측했습니다. 아마존(Amazon)에서 휴대용 eBook 단말기인 킨들(Kindle)이 나왔을 때 사람들은 더 이상 무거운 책을 들고 다닐 필요 없이 이 작은 노트 크기의 기계에 수 천 권의 책을 담아 다닐 수 있다는 사실에 열광했었죠. 하지만 eBook이 나온 지 10년이 지난 지금, 출판업계는 여전히 번성하고 있고 사람들은 무거운 종이 책을 들고 다닙니다. 작년 전체 미국서적 시장에서 eBook이 차지하는 비중은 27%에 지나지 않았고 성장율도 2.4%로 오히려 종이책에 밀리는 상황입니다.


이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인간은 아날로그다" 라는 표현으로 설명합니다. 우리는 책을 단순히 정보를 뽑아내기 위해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문장에 밑줄을 치고, 귀퉁이에 생각을 끄적이고, 책장에 꽂아 소유함으로써 책을 읽는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종이에서 나는 쿱쿱한 냄새마저도 '책을 본다'는 행위에 빠질 수 없는 요소입니다. eBook은 많은 정보의 저장이 가능하고 검색이 가능하기 때문에 보다 효율적일 수 있겠지만, 여전히 인간은 촉감, 후각을 통해 책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eBook으로 가장 많이 판매되는 책의 장르가 잡지, 카툰 이고 반면 종이책으로 판매되는 장르는 논픽션, 전문서적 등이라는 최근 결과를 보면, 종이책과 eBook이 독자의 필요에 따라 적절한 공생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 나아가 eBook과 종이책을 필요에 따라 선택적으로 사용하면서 소비자들은 이제 더 효율적인 독서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Evernote Smart Notebook by Moleskine


몰스킨은 이런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공생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습니다
. 그 첫 번째 시도가 바로 노트 어플의 대표기업 에버노트(Evernote)와의 파트너쉽 이었습니다. 스마트폰에서 메모 어플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에버노트와 종이수첩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몰스킨의 협력 소식은 당시 많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었습니다. Evernote Smart Notebook by Moleskine이란 이름으로 출시된 이 제품은 몰스킨 종이 수첩에 적힌 글씨와 이미지를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으면 그 이미지를 디지털 노트파일로 변환에서 에버노트상에 저장하는 기능을 제공하였습니다. 종이에 직접 글씨 쓰는 느낌은 유지하면서 노트 내용을 디지털화하여 효과적으로 저장할 수 있는 기능. 바로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공생의 대표적인 모습을 선보였습니다.

Smartpen livescribe Moleskine


뒤이어 몰스킨은 디지털 펜 업체인
Livescribe와 파트너쉽을 통해 종이노트에 글씨를 쓰면 바로 디지털 파일로 인식되는 제품을 출시합니다. 이 스마트펜은 사용자의 필압과 글씨를 그대로 인식해서 몰스킨 종이수첩 글씨를 쓰면 마치 스마트폰에 직접 쓴 것 처럼 글씨체 그대로 디지털 파일로 전환이 되었죠. 노트 하단에는 녹음 버튼도 있어서 음성녹음도 가능했습니다. 당시 이 제품은 "종이 아이패드"라는 별명까지 얻으며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The Moleskine Smart Notebook, Creative Cloud connected.


작년에는 그래픽 전문가들을 위해 그래픽 소프트웨어 업체인
Adobe와 협력하여 Creative Cloud라는 제품을 출시합니다. 몰스킨 종이수첩에 그린 이미지를 스마트폰으로 찍어 전송하면,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레이터 프로그램 상에서 그대로 받아 추가 작업을 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여전히 종이에 직접 손으로 초안을 그리고 이를 프로그램에 옮겨 채색과 수정하고 있는 현실을 아주 잘 반영한 제품으로 큰 호평을 받았죠.
이와 같이 몰스킨은 종이에 직접 손으로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소비자의 아날로그적인 경험을 그대로 지켜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디지털 기술을 통해 보다 효율적으로 저장하고 공유할 수 있게 디지털 기업과 협력하였습니다. 인간의 아날로그 본성은 그대로 지키면서 디지털적인 효율성을 제공하는 몰스킨의 전략. 이 전략을 통해 몰스킨은 "종이수첩"이라는 기존의 브랜드 포지셔닝을 "Creative work를 도와주는 모든 툴"로 확대시킬 수 있었습니다.


생존전략 둘
. 디지털을 통한 공유와 협력의 플랫폼으로 활용
몰스킨은 디지털로의 변화를 새로운 기회로 바라보았습니다. 디지털이 아날로그 종이수첩을 쇠락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종이수첩 사업을 번성시킬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한 것이죠. 어떻게 그게 가능한걸 까요? 비밀은 바로 "디지털을 통한 공유와 협력" 에 있었습니다.



몰스킨은 예전부터 매우 열성적인 팬
(fan) 소비자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블로그나 인터넷 게시판에 자신의 몰스킨 수첩에 그린 그림을 올리며 실력을 뽐내곤 했죠. 자생적으로 생겨난 인터넷상의 몰스킨 커뮤니티에서는 몰스킨 수첩에 볼펜꽂이를 만드는 방법 등 몰스킨 수첩을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이나 자신의 경험담을 공유하는 글들이 많이 올라왔습니다. 디지털 시대 이전에 몰스킨은 이러한 커뮤니티를 적극 활용하기 위해서 커뮤니티에 올라온 소비자들의 예쁘게 꾸며진 몰스킨 수첩 가운데 예술성이 높은 것들을 선발하는 경연대회를 하고 박물관에 전시하기도 하였습니다.
몰스킨은 디지털이 소비자들의 공유와 협력의 갈망을 만족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몰스킨은 자사의 홈페이지를 통해 몰스킨 수첩의 기본 틀이 되는 프레임 파일을 전격 공개했습니다. 소비자들은 이 프레임을 다운받으면 자유롭게 자신만의 몰스킨 수첩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소비자들은 몰스킨 수첩에 붙여 쓸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수첩 내지를 개발하여 홈페이지에 공유하기 시작했고, 수 천 개의 새로운 몰스킨 수첩 내지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소비자들은 수첩 내지를 출력해서 자신의 몰스킨 수첩에 끼워 넣으며 자신만의 몰스킨 수첩을 제작했습니다. 몰스킨은 나아가 이 프레임을 웹 상에서 손쉽게 편집할 수 있는 프로그램까지 공개하며 소비자들의 공유와 협력을 부추겼습니다.


몰스킨은 더 나아가 소비자들에게 자신의 몰스킨 수첩을 판매할 수 있는 장터를 개설합니다
. 2011년에 개설된 Artist Marketplace라는 몰스킨의 웹페이지에서는 누구나 자신만의 몰스킨 수첩을 만들어 다른 소비자들에게 판매 할 수 있었습니다. 위 그림에서 보듯 정말 다양하고 수준높은 몰스킨 수첩들이 소비자들에 의해 직접 만들어지고 이 온라인 장터를 통해 팔려나갔습니다. 귀여운 캐릭터 몰스킨에서 부터 아래 영상에서 소개되는 몰스킨 처럼 예술작품으로 불릴만한 제품에 이르기까지 "공유와 협력"의 플랫폼에서 수 만 가지의 몰스킨 수첩이 탄생되었습니다.

Moleskine Artist Marketplace: Giorgio's notebook


몰스킨은 이렇게 디지털 공간을 소비자들간의
"공유와 협력"을 일으키는 플랫폼으로 활용해서 종이수첩의 르네상스를 가져왔습니다. 몰스킨은 작년 한 해 총 1,700만 권의 종이수첩을 판매했는데 이 판매수치는 이는 5년전에 비해 두 배 이상 증가한 수치입니다. 종이수첩의 매출 증가로 힘입어 몰스킨은 매년 5%씩 꾸준히 성장했고 작년에는 백억 달러라는 기록적인 매출을 달성했습니다. 몰스킨이 디지털 제품을 적극적으로 출시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종이수첩의 매출은 여전히 전체 매출의 92%를 차지하며 몰스킨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습니다.


생존전략 셋
. 브랜드 파워를 이용하여 고수익 제품으로의 확장
디지털이냐 아날로그냐에 대한 고민에 앞서, 기업으로서 가장 우선되는 고민은 바로 수익성 입니다. 디지털이라는 변화가 몰스킨에게 큰 고민이었지만, 이보다 더 큰 고민은 어떻게 하면 한 권에 15불 하는 수첩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까였죠. 디지털 시대에 대한 고민과 병행하여 몰스킨은 보다 고수익의 제품으로의 사업확장을 해왔습니다.



몰스킨이 가지고 있는 가장 강력한 자산은 바로
MOLESKINE이라는 브랜드 자체였습니다. 창의성, 세련됨, 예술성 등으로 연상되는 몰스킨의 오랜 브랜드 가치는 디지털이던 아날로그던 시대에 상관없이 유효한 강력한 자산이었습니다. 몰스킨은 이러한 브랜드 파워를 활용하여 수첩과 관련한 고수익 제품으로 제품 라인을 확대하는 전략을 펼쳤습니다.
처음에는 종이수첩과 아주 밀접한 관련제품부터 출시했습니다. , 노트커버, 지갑 등의 제품 출시는 몰스킨의 수익성을 개선시키는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그러다 디지털 제품출시에 발맞추어 몰스킨은 아이폰/아이패드 커버 등 보다 고수익의 디지털 관련 제품을 출시하며 수익성 개선에 큰 효과를 보게 됩니다. 디지털 기기에 아날로그 감성을 입히고 싶어하는 소비자들의 니즈에 몰스킨의 브랜드 이미지는 아주 적격이었던 것 같습니다.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은 고수익 제품으로 사업확장을 노리던 몰스킨에게 큰 기회였습니다
. 디지털 기기 악세서리 제품은 수익성도 높을 뿐 아니라 몰스킨의 아날로그 감성에 대한 소비자의 충성도도 높았던 덕분에 몰스킨의 디지털 기기 악세서리 부분 매출을 계속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몰스킨은 내년 2016년까지 종이수첩 외 제품의 매출 비중을 현재 8%에서 15%까지 증가시킬 것이라고 합니다.
디지털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몰스킨의 생존전략. 여러분들은 이 전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전 사실 몰스킨의 전략이 디지털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 이라는 느낌보다는, 오히려 반대로 여전히 중요한 소비자들의 아날로그 감성에 소구하기 위한 노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디지털이 우리를 보다 효율적으로 만들어 준 것은 사실입니다. 보다 많이 기억하고 빠르게 검색할 수 있게 만들어줬죠. 하지만 디지털은 우리의 아날로그 감성을 전달하기에는 여전히 한계가 많아 보입니다. 메신저로 전달되는 문장 말미에 '' 가 몇개 붙었느냐에 따라 숨은 의미가 달라진다고 하지만, 손글씨로 전해오는 글쓴이의 다양하고 미묘한 감정의 폭에 비하면 아직 디지털은 우리의 감성을 담기에 미미하죠.


디지털은 어쩌면 아날로그에 반대되는 개념이라기 보다는 인간의 아날로그 감성을 보다 많은 사람들과 나눌 수 있게 해주는 수단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 몰스킨이 품고 있는 아날로그 감성이 디지털을 만나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질 수 있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디지털 시대의 생존전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날로그 본연의 따뜻함을 지키면서 디지털을 통해 그 따뜻함을 공유하는 것. 아날로그 기업에게 디지털 시대는 살아남아야 하는 빙하기가 아니라 더 많은 소비자들과 공유하고 협력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라 생각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아들의 그림일기에 선생님의 예쁜 글씨가 되돌아올 날이 언젠가는 오겠죠?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