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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 교과서는 독재국가에서나 쓴다'했던 사람들이..

  • 입력 2015.09.13 19:05
  • 수정 2015.09.13 19:28
  • 기자명 오주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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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홍 · 박홍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 장관은 교과서 국정화를 어떻게 하겠다는 보고가 왜 없습니까?
황우여 교육부장관 : ......
설훈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 김재춘 차관은 학자 시절에 국정 교과서를 반대하지 않았습니까?
김재춘 교육부차관: 일부에서 국정 전환하자는 주장이 있기 때문에...이 문제를 검토 중...
유인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국사편찬위원장은 유신 시절에도 국정화에 반대하지 않았습니까?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 그 당시로서는 그랬지만...

- 국회 교육부 국정감사 발언


국감장에서 벌어진 말 바꾸기 쇼
지난 1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교육부 국정감사장에서 벌어진 진풍경이다. 피감 기관 대표로 나온 정부 측 3인은 약속한 듯이 자신들의 기존 주장을 뒤집었다. 불과 며칠 전 언론에 나와 공개적으로 했던 발언까지 시치미를 뗐다.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추진’을 ‘검토’로 바꿔치기했다. '국정교과서를 추진할 것이냐?'는 야당의원들의 질문에 '미리 말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즉답을 피했다. 장관 취임 직후부터 ‘교과서 국정화’를 입버릇처럼 외쳐온 그가 갑자기 말을 바꾼 것이다. 단지, 지금 국정화에 대해 말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이유였다.



지난 8월, 황 장관은 KBS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검·인정을 하다 보니 7가지 교과서로 가르치는데 이것이 혼란스럽다"며 "9월까지 (국정교과서 추진을) 매듭짓겠다"고 확언한 바 있다. 그런데 국회 국감장에서는 교묘하게 말을 바꿨다. 추진 사실을 인정하는 시점을 최대한 늦춤으로써 야당이 적극 공세로 돌아서는 걸 일단 막아보자는 꼼수다. 유기홍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황우여 장관의 답변을 듣고 "황 장관은 (교과서 국정화의)몸통이 아닌 것 같다"고 꼬집었다.


학자 땐 반대, 감투 쓰더니 찬성

김정배 국편위원장이 쓴, '교과서 국정화는 소수저자의 독단'이라는 내용의 글(1973)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은 본디 국정교과서 반대론자였다. 1973년 박정희가 국정교과서를 추진하자 “다양성을 말살하고 획일성만 찾으려는 것은 위험하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 바 있다. “소수 저자에 의한 (국정)교과서는 독단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던 그가 고위공무원이 되더니 “현재는 독재체제가 아니기 때문에 국정제를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황당한 주장을 폈다.
김 위원장은 1993년 국사편찬위원 자격으로 김영삼 대통령을 만났을 때, “유신 때 국사책을 국정교과서로 획일화해 역사인식의 경직성 또는 국수주의적 사고 등 문제점을 일으키고 있다”며 “국사교과서는 (국정이 아닌) 검정으로 해줬으면 합니다”라고 건의하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이제 와서 다시 교과서를 국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과 마찬가지로 과거 국정교과서 반대론자였던 김재춘 교육부 차관 역시, 국감장에서는 태도를 바꿨다. 자신이 발표한 논문(2005,2009)에서 '국정교과서는 독재국가에서만 주로 사용되는 제도'라며 '국정제는 정치적·이데올로기적인 통제 목적에서 유지되어 왔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랬던 김 차관은 국감장에서 "우리 사회는 지난 10년 동안 역사를 놓고 엄청난 사회적 갈등이 있었고 때문에 일부에서 국정 전환 요구가 있었기 때문에 검토 중이다"고 기존 주장을 뒤집었다.



정부가 주장하는 '국정교과서 필요 이유'는 엉터리




정부와 여당은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면서 몇 가지를 명분으로 내세운다. ▲교과서 다양성에 의한 혼란 방지 ▲현 교과서의 좌편향 문제 방지 ▲교과서 단일화로 인한 수능 준비 수월화 ▲사교육비 감소 ▲균형 잡힌 역사교육 ▲많은 국민과 지식인들의 요구 등이 그 이유다.
과연 그 주장은 타당할까? 그 타당성을 검증해볼 수 있는 자료가 나왔다. 새정치민주연합 유기홍 의원실에서 현직 역사교사 101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가 그것이다. 이 조사 중 ‘국정화 사유(통일된 교과서 필요, 좌편향 교과서 수정 등)에 동의하느냐'는 질문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답변이 98.6%에 달한 반면, ’동의한다‘는 답변은 1%에 그쳤다.

‘단일 교과서가 수능 준비에 도움이 되느냐’는 질문에는 ‘차이가 없다’는 의견이 절반(49.7%)을 차지했고, 도움은커녕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답한 비율이 45.9%에 달했다. ‘수월해진다’고 답한 경우는 4.4%에 불과했다.


국정교과서와 사교육비의 관련성을 묻는 질문에는 ‘사교육비가 (대폭 혹은 소폭) 증가할 것’이라고 대답한 교사의 비율이 60%로 가장 높았고, 그 다음으로는 ‘영향 주지 않을 것’이라고 답한 경우가 39.8%로 두 번째를 차지했다. ‘사교육비가 감소할 것’이라고 답한 경우는 0.2%에 그쳤다.


98.6%가 반대, 그럼에도 여론 무시하려는 정부

이쯤 되면 정부와 여당이 주장하는 국정교과서의 당위는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점이 입증된 셈이다. 그런데 이들은 절대 다수가 반대하는 국정 교과서제를 왜 강행하려는 걸까? 학자로서의 신념도 무너뜨리고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으며 자기 모순에 빠지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한 답은 위에서 언급한 역사 교사 대상의 여론조사 결과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 '국정화 추진은 누구의 의지가 가장 크게 반영되었다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에 ‘박근혜’라고 답한 교사의 수는 69.1%로 압도적이었다. 다음으로 뉴라이트계열 학자(26.2%), 황우여 장관(2.2%) 등의 답변이 나왔다. 뉴라이트도 박 대통령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타당성과 현실성도 떨어질 뿐 아니라 명분도 부족하고 국민여론도 부정적이다. 그 어느 누구도 교과서의 국정화를 반기지 않는다. 국가에 의해 획일화된 역사 교과서로 이득을 보는 집단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도, 정부는 모든 경고를 무시하고 폭주하려 한다. 극소수의 구성원만 위한 일을 전체에 강요하는 사회를, 과연 민주 사회라고 부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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