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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일베하시나요?

  • 입력 2015.09.09 16:22
  • 기자명 309동12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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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실에서 처음 학생들과 마주했을 때, 나는 무척 두려웠다. 내가 무엇을 가르칠 수 있을지,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무엇을 가르치면 안 될지,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곧 내가 얼마나 오만했는가를 깨달았다. 약간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만으로도 학생들은 정말이지 훌륭한 인문학을 만들어 냈다. 평범한 집단 지성의 힘은 놀라운 것이었다. 그래서 학생들은 나의 지도교수가 되었고, 구원자가 되었다. ‘교학상장’, 가르침과 배움은 서로 성장한다, 라는 말을 항상 기억하며 강단에 선다. 이 글에서는 평범한 지방대 시간강사의 시선으로, 학생들에게 배운 인문학을 나누려 한다.


‘세월호’가 침몰했다
. 2014 1학기, 학생들이 한창 중간시험에 바쁠 무렵이었다. 누구나 그랬겠으나, 나 역시 뉴스 속보를 통해 뱃머리가 서서히 바다 속으로 자취를 감추는 것을 그저 먹먹하게 지켜보았다. 배가 가라앉을 수도, 백화점이나 다리가 무너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처럼 현재진행형의 재난이 생중계 된 바는 없다. 국가가 급파했다는 헬기도, 선박도, 그저 주위를 빙빙 돌기만 할 뿐 그 무엇도 하지 못했다. 우리는 국가의 무기력함을 목도했다.
4.16 이후 캠퍼스 곳곳에 노란색 리본이 나부꼈다. 애도와 추모의 행위가 될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분노와 저항의 의미가 더해졌다. 국가가 무기력했을 뿐만 아니라, 불성실하며 뻔뻔하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4.16에서 우리 모두 확인하고자 한 바는국가가 최선을 다해 국민을 구조하는 것이었다. 혹은자국민 구조에 실패한 국가가 진심을 다해 사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그 무엇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나는 국가의 행태에 깊이 실망하고, 분노했다.



캠퍼스의 노란색 물결과는 별개로
, 강의실에서 세월호와 관련한 발화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정해진 커리큘럼을 따라가다 보니 곧 종강이었다. 그것이 강의실 안에서 의미화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2014 2학기에 이르러서였다. 노란색 리본을 가방에 붙인 몇몇 학생들과 마주할 수 있었던 학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세월호에 대한 발화는 무척이나 제한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그것이정치성을 가진 기표로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세월호에 대한 대중적 관심은특별법 제정으로 수렴되어, 보수와 진보 흑백논쟁으로 치닫고 있었다.
나는 강의실에서정치적인 것을 다루는 데 무척이나 조심스럽다. 나는 평범한 정치적 인간이고, 그에 따라 내가 기대고 있는주의가 있다. 하지만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진영의 논리를 학생들에게 내비친 바는 아직 없다. 내 주변의 대학원생이나 젊은 강사들은 대부분 진보적 성향을 지니고 있다. 그 안에서도 많은 분파가 있어서 간단히 분류해 낼 수가 없다. 투표권을 가진 이래 녹색당만 지지해 왔다는 선배도 있고, 노동당의 당원 신분을 유지해 오다가 정의당으로 옮겨 간 후배도 있고, 어떤 가치 판단 없이 그저 노무현에 대한 향수만 가득한 이들도 있다.
물론 새누리를 지지하거나, 무상급식에 반대하며 보수 성향의 교육감에게 자신의 표를 행사한 주변인도 있다. 이처럼 각 개별 주체의 정치성은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옳고 그름이 아니라 너와 나의 다양성으로 존중받아야 한다. 교수-학생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학생들 역시 자신이 추구하는 정치적 이상이 있다. 어떤주의를 이끌어 와 포장해 내지 않더라도, 모두의 일상은 언제나 정치적이다. 어떤 현상을 보고 누군가는 편안함을, 다른 누군가는 불편함을 느낀다. 그러한 즉각적 반응 역시 모두 저마다에게 내재된 정치성에 따른 바다.


최근의 학생들이 재편해 낸
정치성이라는 것은 이전과는 달리 더욱합리성에 기초해 있다. 어느 학생은 내게김관진 국방장관 같은 진보적 인물이 참 좋아요라고 말했다. 잘못 들었나 싶어 잠시 고민하다가왜 그를 진보적 인물로 생각하니?”하고 묻자, 그는군가산점 제도에 대해 찬성하잖아요하고 답했다. 그러니까 그는, 군가산점 제도에 찬성하는 행위를진보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많은 학생들이 더 이상 진영의 논리나 그간의주의의 틀에 구애받지 않는다. 자신이 상식과 합리라 믿는 것들을 모두 수용해 내는 태도를 보인다. 그래서 김관진과 안철수는진보주의자가 된다. 많은 학생들이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정치성으로 스스로를 무장하고 있다. 이것은 물론 그들이 사상사적 학습에 노출될 일이 적었던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치성이 세대에 따라 부분적으로나마 재편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염두에 두어야 한다.
나는 강의실의 학생들이스스로 사유하는 주체가 되기를 소망한다. 강단 위에 선 교수자가 자신의 정치성을 드러내는 것은 옳은 방법론이 아니라고 믿는다. 그것은 학생들을 사유의 주체로 두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주체로 두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교수자를 존경하고 신뢰하는 만큼, 학생들은 어떠한 고민이나 성찰 없이 그에 이끌리게 된다. 그것은 건강한 토론이나 교육이 아니라 그저강요가 될 확률이 높다.


교수자는 자신의 말을 줄이고
, 학생들이 올바른 방식으로 사유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2014-2학기에는 결국 어떤 학생이 세월호를 화두로 제시했다. 나는 굳이 먼저 토론의 주제로 삼지는 않았지만, 학생에게서 나온 세월호 발화를 반갑게 맞아 들였다. 그리고 모두에게 자신의 세월호는 어디에 있는가를 물었다. 세월호는 자신의 가장 가까운 주변에 있고, 모든 인간은 이미 세월호의 선장임을 학생들이 스스로 인식할 수 있길 바랐다.
우리 모두는 지켜야 할 소중한 존재가 있다. 가족, 연인, 친구 그리고 학생, 선후배, 관계 맺고 있는 그 누군가를 위해, 서로는 선장이자 승무원으로서 자신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 배에 물이 들어찬다고 해서 구명조끼를 입고 홀로 헤엄쳐 도망갈 가장은 없다. 연인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나, 강의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교수는, 승객들을 버려 두고 홀로 탈출한 세월호 선장과 다를 것이 없다. 세월호를 통해 나는 그동안 얼마나 부끄러운 선장이었는가 아프게 깨달았다. 세월호의 선장을 비난하는 것으로 1차적 사유가 끝나서는 안 되고, 나는 한 사람의 선장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내고 있는가를 성찰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2014 2학기에는 가방에 노란 리본을 붙이고 다니는 학생이 두 명 있었다. 쉬는 시간에 우연히 보고는, 리본이 참 예쁘네, 하고 말해 주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누군가에겐 정치적 행위로 보일 것이고, 그에게 편향적 인물로 비추어질 것이 두려웠다. (나는 참으로 나약한 인간이다.) 이처럼 강박에 가까운 자기 검열을 거치는 것 역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강단에 선 한 인간이 짊어져야 할 무게일 것이다. 종강하는 날 따로 불러 리본이 참 예뻤다, 고맙다, 하고 말해주고 싶었는데, 결국 생각에 그치고 말았다.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6개월을 더 기다려 2015 4 16, 세월호 1주기에야 비로소 근황을 물으며 그때의 감정을 전했다.
언젠가 학생이 내게교수님 일베하세요?”하고 추궁하듯 물었다. ‘일베오유를 주제로 조별발표를 하겠다기에제가 혹시 일베나 오유 유저라도 괜찮겠어요?”하고 농담 삼아 한 마디 했더니 그는 그렇게 반응했다. 민감한 주제가 될 것임을 조언해 주려고 가볍게 꺼낸 말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아도 명백한 나의 실수다. 내가 어느 쪽의 유저이든 그런 것이 가치판단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되는데, 내가 앞장 서서 그들의 가능성을 박탈해 버렸다. 그들은 결국 발표 주제를 바꾸었다. 일베의 객관화는 그에 대한 옹호로 비추어질 수 있고, ‘일베하는 사람으로 낙인찍힐 것이 두렵다고 했다. 나의 발언과는 관계 없는 변덕이었겠으나, 나는 그리 달갑지 않았다.


나는
일베세월호도 그 무엇도, 수업의 주제로 반갑게 다루고 싶다. 나는 학생들이 그를 통해 스스로 사유하는 주체가 될 수 있길 바란다. 모두의 정치적 좌표는 다를 수밖에 없고,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정치성을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어떤 진영의 논리를 펴더라도, 그것이 자신의 사유와 성찰을 통한 것이라면, 그 자체로 무한한 존경을 보낼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부터, 주체적으로 사유하는 인간으로 언제나 존재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어디에서든 작은 배의 '선장'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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