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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 선거 개입의 통로 노릇을 하는 행정자치부

  • 입력 2015.08.30 11:06
  • 수정 2015.09.03 14:49
  • 기자명 오주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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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섭 행정자치부장관이 공식 사과를 표명했다. 그는 지난 25일 새누리당 의원 연찬회에서 ‘총선필승’을 외친 일을 두고 “진심으로 송구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도 “저의 말(총선필승 건배사)은 어떤 정치적 의도나 특별한 의미가 없는 단순한 덕담이었다”고 주장했다.

'새누리당 총선필승'이 덕담이었다고?
선거와 관련해 행정자치부(이하 행자부)가 갖는 권한과 영향력은 막강하다. 선거지원사무를 총괄하고, 공무원 선거개입을 감독하는 권한을 갖고 있다. 게다가 선거사범을 수사하는 경찰청을 사실상의 산하 기관으로 두고 있다. 헌법기관인 중앙선관위도 행자부의 눈치를 볼 정도다. 이런 부서의 수반이 총선 승리를 다짐하는 새누리당 행사에 참석해 ‘총선필승’을 외친 것이다.
덕담이라고? 말은 맞는 말이다. 새누리당에게는 물론 덕담이 된다. 그러나, 야당에게는 악담이 되는 말이다. 일반 유권자에게는 편향적 발언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다. 어느 당의 행사에 참가했는지와는 상관없이, 공직자가 특정 당을 상대로 이런 발언을 했다는 것은 공직자 선거중립의무 위반에 해당한다.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정 장관뿐이 아니다.
최경환도 공직자 선거중립의무 위반

최경환 기재부장관도 비슷한 맥락의 발언을 했다. 최 장관은 새누리당 연찬에 참석한 여당 의원들을 향해 “내년에 경제성장률을 3% 중반까지 끌어올려 당의 총선일정에 도움을 주겠다”고 말했다. 이는 국가정책을 특정 정당의 선거에 도움이 되도록 운용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공직선거법 제9조(공무원의 중립의무)와 제85조(공무원 선거관여 금지)에 저촉되
는 사항이다.공직자 선거개입을 감독하고 위반 사실을 감찰·고발해야 하는 행자부장관이 앞장서서 편향적인 발언을 했고, 최경환 장관도 중립을 지키지 않았다. 정권의 핵심들이 이런 상황이다. 공직 사회에 이런 풍토가 만연해 있다는 걸 방증해주는 대목이다.
왜 그럴까? 이유는 간단하다. 정부가 선거업무에 개입하도록 여지를 허용하는 현행 제도 때문이다. 선거업무 관장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와 행자부 두 곳으로 이원화돼 있다. 선관위는 각종 선거와 국민투표를 실시·관리하고 행자부는 선거인명부 작성, 선거공보물 발송 등 선거지원사무와 공직자 선개개입 감시 등의 선거감독권을 행사한다.



선거 업무가 선관위와 행자부로 이원화되다 보니 두 기관 사이에 마찰도 잦다. 지난 6.4지방선거 때는 사전투표를 독려하는 현수막을 놓고 신경전을 벌였다. 선관위는 현수막 설치가 적법하다고 판단한 반면, 행자부는 불법으로 규정하고 전국 지자체에 철거를 지시했다.

업무 범위를 놓고 티격태격 힘겨루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는 17대 총선 때다. 당시 행자부가 불법 선거 단속을 위해 시·도별 선거상황실을 설치·운영하겠다고 하자, 선관위가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행정기관이 선거에 개입한다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면, (행자부가) 선거관리를 맡지 않는 게 당연하다”는 주장이었다. 그러자 행자부는 “주민등록 업무를 바탕으로 선거인명부 작성 등 실질적 선거업무는 우리가 다 하고 있다”며 “국가 조직상으로도 선거관련 업무는 행자부 소관”이라고 맞섰다.

행정기관인 행자부에 밀리는 헌법기관 선관위
그런데 이런 힘겨루기에서는 행자부가 우위를 보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난해 실시된 전국 조합장 선거 때, 선관위는 행자부에 선거 관련 협조와 시설·장비 사용을 요구했다. 선관위의 요구는 적법한 것이었다. 선거와 관련해 선관위로부터 협조요구가 있을 때 국가기관과 지자체는 이 요구에 따라야 한다는 ‘공공단체 등 위탁선거에 관한 법률’에 의거한 조치였다.하지만 행자부는 선관위의 요구를 거부했다. 조합장 선거는 공직선거가 아닌 위탁선거이며, 특정 이해관계자에 한정된 선거라는 이유에서다. 행자부는 ‘불가입장’을 전국 지자체에 하달함으로써 선관위의 요구를 원천 봉쇄했다.

법을 무시한 행자부에 적법 행위를 한 선관위가 밀린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선거업무와 관련된 힘겨루기에서도 헌법기관인 선관위가 일개 정부부처인 행자부에게 밀리기 일쑤다. 그만큼 선거관리에서 행자부의 영향력이 대단하다는 얘기다. 이외에도 행자부는 정부조직과 공무원 인사, 지자체 통제 권한 등을 행사한다. 게다가 산하기관인 경찰위원회를 통해 경찰청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다.




이렇다보니 행자부의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
또한 방대하다. 65만 명에 달하는 공직사회는 물론 지자체와 통장, 반장까지 그 범위 안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경찰조직까지 움직일 수 있으니, 이런 행자부가 선거 중립의무를 소홀히 할 경우 선거에 미치는 영향은 상상 이상일 수 있다.

모든 업무를 선관위로, 선관위는 국민이 감시해야
새정치민주연합은 선관위에 정종섭-최경환 장관의 발언에 관한 조사를 의뢰했다. 어떤 결과가 나올까? 여성 후보자의 장점을 열거하며, 지방의회에 여성이 많이 진출해야 한다고 주장한 여성가족부장관의 발언을 공직선거법 제9조 위반으로 해석했던 선관위다. 그를 참작하면, 이보다 더한 수위의 발언을 한 정종섭-최경환 장관은 공직선거법위반으로 엄한 처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번 문제만 해결하고 넘어가서는 같은 일이 또 반복될 것이다. 현행 제도만으로는 공직자 선거중립을 기대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행자부가 지금처럼 공직자 선거개입의 창구 역할을 하고 있는 한 앞으로 문제는 더 심각해질 수도 있다. 이승만과 박정희 전 대통령이 부정 선거를 저지를 때, 행자부의 전신인 내무부를 총책으로 내세웠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공직자의 선거개입을 어떻게 봉쇄할 수 있을까? 선거관련 모든 업무를 헌법기관인 선관위가 맡도록 하는 게 방법일 수 있다. 선거인명부작성, 공보물 발송, 선거감독·감시 등 행자부가 하고 있는 업무를 선관위로 이관하고, 국민들이 선관위를 감시할 수 있는 기능을 보강하면 상당부분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공직자의 선거 중립 의무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먼저 공무원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치는 행자부의 역할을 선거에서 제한하는 일이 시급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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