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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면에 죄송하지만, 우리 같이 밥 먹을래요?

  • 입력 2015.08.28 10:30
  • 수정 2015.09.03 14:50
  • 기자명 두루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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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같이 밥 먹을래요?

요즘 들어, 이 말이 세상에서 가장 설레고 의미 있는 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렸을 때는 같이 밥을 먹는다는 것에 대해 별 의미를 두지 않았습니다. "우리 언제 밥 한번 먹자" 는 말을 인사치레로 하고서 무책임하게 넘겼던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겁니다.

그런데 나이를 먹을수록, 같이 밥을 먹는 것에 대해 점점 의미를 부여하고 신중해지는 저를 발견하게 됩니다. 사람이 80세까지 산다고 했을 때, 9만끼의 식사를 하게 된다고 합니다. 9만번의 식사를 누구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인생은 얼마든지 더 풍요로워질 수 있습니다.
특히 여행을 갔을 때면, 특별한 식사를 하고자 하는 마음은 더욱 강해집니다. 그런데 혼자 간 여행이라면, 새로운 메뉴를 경험하고픈 마음은 굴뚝 같아도 괜찮은 식사를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혼자 밥을 먹는 것이 어려운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어떤 식당이 좋은지 잘 몰라 아무 곳이나 들어가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런 고민을 하는 사람이 한두 명은 아니었는지, 최근에는 Meal sharing app이라 불리는 어플리케이션들이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낯선 여행지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하도록 연결해주는 것이죠. 사실 이름만 들어서는 크게 와 닿지 않을 겁니다. 처음 만난 여행자들끼리 식당에 몰려가 함께 밥을 먹고 돈을 나눠 내는 정도라면 굳이 앱을 쓰지 않아도 게스트하우스에서 충분히 할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런 Meal sharing app이 갖는 특이점은, 식당이 아닌 현지인의 가정집에 초대를 받아 다른 사람들과 식사를 나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앱은 여러
Meal sharing app 중 가장 대표적인, FEASTLY라는 어플입니다. 자신이 있는 도시와 식사를 원하는 날짜를 검색하면, 여러분들을 초대하고자 하는 쉐프와 음식 리스트가 나옵니다. 메뉴들을 쭉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이 곳에서 여행객들을 초대하는 쉐프는 전문 요리사가 아니라, 자기 집에서 손님을 받아 요리하는 아마추어 쉐프들입니다. 자신의 식당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요리솜씨를 전세계의 다양한 방문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어하는 요리사들이죠.


위 사진은 일리노이 주의 디케이터에 살고 있는 세린(Serene)의 초대장입니다. 자신의 고향인 싱가폴의 길거리 음식을 소개하고 싶다는 말이 적혀 있습니다. 미국식 동남아 요리가 아닌, 전통 동남아 요리를 선보이겠다는 말도 쓰여 있습니다. 세린의 초대를 승낙한 사람은, 5 21일 목요일 저녁 6시에 세린의 집에서 정통 싱가폴 길거리 음식 코스를 맛볼 수 있습니다. 가격은 40불로, 초대에 응한 다른 5명의 손님들과 함께 식사를 할 수 있을 겁니다.


현지 가정집에 초대된 것처럼
, 세린이 주방에서 요리하는 모습을 보면서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3시간의 싱가폴 요리 파티를 즐기는 겁니다. 메뉴에는 그녀가 준비할 총 9가지의 싱가폴 요리들에 대한 자세한 설명까지 곁들여져 있습니다. 저녁식사 후에는 세린의 음식에 대해 평을 남길 수도 있어서 다른 사람들과 경험을 공유할 수도 있고, 아마추어 요리사로서 세린의 평판도 달라지게 됩니다.
FEASTLY에는 이 같은 수천명의 아마추어 요리사들이 전세계 곳곳에서 올린 초대장들이 있습니다. 관광객들을 상대로 비싼 값에 겉보기만 그럴듯한 요리를 파는 현지 식당을 생각하면, 현지인의 집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인연을 맺으며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점은 매력적입니다. 식당에서 팔고 있는 같은 메뉴에 비해 가격도 대개 20~30%가량 저렴할 뿐만 아니라, 손님들이 잘 먹을 경우 종종 무료로 추가 음식을 대접하는 이들도 있다고 전해집니다.



FEASTLY
의 창업자인 노아(Noah)는 자신의 어플을 통해 세상 사람들이 단순히 음식을 나누는 것을 넘어 인생을 나누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노아는 자신이 처음 FEASTLY의 아이디어를 떠올린 것도 여행지에서였다고 회상합니다.

여자친구와 과테말라를 여행하고 있을 때였어요. 우린 전통 과테말라 음식을 먹을 수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길거리 식당에는 온통 햄버거와 피자만을 팔고 있었죠. 과테말라 식당이란 곳에서도 온통 미국식 입맛에 맞춘 가짜 과테말라 음식뿐이었어요. 그때 생각했죠. 가정집의 전통 음식을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보자.

2011년 워싱턴 DC로 돌아온 노아는 리비아 출신 친구의 어머니를 미국으로 초청해, FEASTLY의 서비스를 시험 제공했습니다. 25명의 첫 손님들을 대상으로 전통 리비아 음식을 제공한 것입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초대된 사람들은 평소 식당에서는 맛볼 수 없는 전통 리비야 음식에 만족했고, 함께 식사를 하게 된 다른 사람들과 자신들의 인생에 대해 이야기 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후 자신의 사업 모델에 확신을 갖게 된 노아는 공식적으로 미국 주요 도시에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FEASTLY를 비롯한 Meal sharing 어플은, 혼자 밥을 먹어야 하는 외로운 여행객들에게 현지의 음식을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도록 해 줍니다. 하지만 사실은 자신의 요리를 뽐내고 싶어하는 아마추어 요리사들에게 더 큰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트레이시
(Tracy) 또한 Meal sharing 어플을 통해 요리사로서의 꿈을 실현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말레이시아에서 태어나 자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살게 되면서, 본토 말레이시아 음식을 만들며 향수병을 달래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음식 사진을 본 사람들이 그녀에게 말레이시아 음식을 직접 맛보게 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트레이시는 처음으로 FEASTLY를 통해 가족 아닌 사람들에게 말레이시아 요리를 대접했습니다.

이곳 사람들에게 덜 알려진 말레이시아 음식을 소개할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게 큰 기쁨을 준답니다. 그리고 나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는 많은 사람들을 항상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즐거워요.

트레이시는 자신의 주방을 찾는 사람들을 손님이라고 부릅니다. 단순히 음식을 먹는 사람들이 아니라 끊임없이 음식에 대해 물어보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경험을 공유하려는 이 호기심 많은 사람들을 고객이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다고 합니다. 그래서, 트레이시는 스스로를 요리사보다 호스트라고 불러주기를 원합니다. 그녀는 이 경험을 기반삼아 앞으로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Meal sharing 서비스를 제공할 꿈을 갖고 있습니다.
자신의 음식솜씨를 나누고, 인연을 나누는 Meal sharing 어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실 이러한 나눔의 비즈니스는 음식 뿐 아니라 이미 우리의 일상에서 다양하게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Meal sharing이 있기 이전에 이미 UBER, AirBnB와 같이 교통과 숙박을 나누는 서비스가 확산되어 가고 있었죠. 공유경제(Sharing Economy)의 컨셉은 개인별 모바일 디바이스가 보편화 되기 시작한 2010년부터 시작되어 이제 음식, 육아, 재능을 나누는 비즈니스에 이르기 까지 점점 확대되어 가고 있습니다. 자신이 필요한 만큼만 가지고, 남는 부분은 서로서로 나누는 것이 공유경제의 핵심입니다. 공유경제는 과생산과 과소비로 인해 환경이 파괴되고 경제에 거품이 끼는 현대 자본주의의 폭주를 막아줄 대안으로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공유경제가 더욱 보편화되기 위해서는 아직 많은 과제가 남아있습니다
. 바로 선의의 나눔을 비즈니스의 영역으로 끌어들였을 때 생길 수 있는 문제에 대해 누가 책임질 것이냐 하는 의문이죠. 예를 들어 트레이시가 대접한 말레이시아 음식을 먹은 사람들이 그 다음날 식중독을 앓았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음식을 만든 트레이시일까요? 아니면 트레이시와 손님들을 중개한 FEASTLY일까요?
식당은 정부로부터 정기적인 위생점검을 받고 충분한 자격이 있을때 사업자로서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자격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FEASTLY의 쉐프들은 그러한 점검을 받지 않은 채 돈을 받고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우버 택시가 야심차게 서울에 진출했지만 서울시에 의해 불법으로 간주되어 철수하게 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운수사업자로서의 자격요건들을 충분히 검증 받지 못한 운전자들이 고객을 태우다가 사고가 났을 때, 누가 책임지고 이에 대한 보상을 할 것이냐에 대한 부분이 아직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혼자 쓸쓸히 밥을 먹어야 하는 여행객들에게 현지의 따뜻한 밥과 소중한 인연을 주는 공유경제. 식당을 차릴 돈이 없어도 요리사로서의 꿈을 이루게 해주는 공유경제. 이런 공유경제가 세상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아직 많은 장애물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가진 것을 나눔으로써 실질적 이득과 행복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이 '따뜻한 경제'는 우리 사회가 발전할 수 있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원문보기 : 세상을 풀어보는 두루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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