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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야, 문제는 정치야

  • 입력 2015.08.27 12:09
  • 기자명 뉴스페퍼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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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 경제강국(emerging economies)에 낀 거품이 빠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한동안 세계 경제를 거뜬히 이끌어갈 것처럼 보였던 나라들이 일제히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건 왜일까요? 여러 가지 원인이 꼽힙니다. 원자재 값이 떨어졌다, 셰일가스 붐 때문이다, 미국의 기준 금리 때문이다, 엘 니뇨 탓이다, 중국이 문제다 늘어놓자면 끝도 없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제가 볼 때 원인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문제는 정치입니다.
각 나라별로 상황을 좀 살펴볼까요? 먼저 브라질을 봅시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분명 브라질은 이보다 잘 나갈 수 없을 것 같은 호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2년간 사실상 성장이 정체된 것도, 그리고 결국 마이너스 성장에 접어든 현재 상황도 매우 실망스러울 겁니다. 원자재 값의 폭락은 당연히 악재이긴 했습니다만, 브라질 경제가 농산품과 천연자원에 기대던 시절을 졸업한 지 꽤 됐습니다. 인도네시아는 어떻습니까? 성장을 멈춘 건 아니지만, 지난 2/4분기 성장률은 4.7%로 기대에 못미쳤습니다. 높은 인구 성장률을 감안하면 더욱 아쉬운 수치였죠. 2.3%에 그친 터키의 성장률도 2010, 2011년에 9%씩 성장하던 시절에 비하면 금새 차갑게 식어버린 것 같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경제는 항상 빈곤율을 제대로 줄이기에는 모자란 만큼만 성장합니다.


중국을 빼놓을 수 없겠죠
. 사실 수많은 신흥 경제강국의 경제가 침체될 때마다 가장 먼저 꼽히는 요인이 중국의 부진입니다. 중국 경제 상황이 안 좋을 때마다 정부가 발표하는 경제지표가 신뢰를 얻지 못하는데 지금이 딱 그렇습니다. 중국 정부는 7% 성장률을 유지하고 있다는 발표를 반복하지만, 시장의 평가는 성장률이 4~6%로 둔화됐다는 데 이견이 없는 것 같습니다.
신흥 경제강국은 가히 신화 취급을 받았습니다. 세계 경제가 침체에 빠져도, 원자재값이 폭락해도, 금융 질서가 흔들려도신흥 경제강국들은 타격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굳건했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기업 이사회와 투자자들은 신흥 경제강국들이 첨단 기술과 경영전략을 도입하고 값싼 노동력과 높아진 생산성을 토대로 만들어낸 제품, 원자재를 효율적으로 팔아 고속 성장을 거듭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아니, 믿었습니다.


하지만 전 세계 곳곳에 지리적으로 퍼져 있는 신흥 경제강국들을 한데 묶기 어려운 점 말고도 이 나라들의 경제 상황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과 신화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 만약 신흥 경제강국들은 타격을 받지 않는다는 믿음에 타당하고 논리적인 근거가 있다면 이 나라들이 본격적으로 경제 발전을 하기 전부터 이미 그런 특징이 발견되어야 했을 겁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죠. 사실 지금 수준까지 경제를 끌고 온 원동력이었지만 지금 그리고 앞으로의 성장에 발목을 잡는 불안 요소는 바로 정치입니다.
여기서 정치는 다양한 층위의 정부, 정치단체가 내놓는 정책을 의미합니다. 신흥 경제강국들은 정치가 온전히 기능을 하지 못하는 여건에서도 원자재를 비롯한 제품을 수출하고 경제를 성장시켜 왔습니다. 그런데 한 단계 더 성장하려면 대외적인 리스크를 비롯해 시련을 견뎌내고 전략을 세우는 데 중요한 정치가 제 역할을 해야만 합니다. 이제부터 진짜 시험대에 오르는 셈입니다.


최근에 신흥 경제강국들이 휘청이는 이유도 정치가 제 역할을 못하기 때문입니다
. 먼저 치솟는 물가를 도저히 어떻게 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브라질이 그렇습니다. 운이 나쁘거나 민간 부문이 부진한 것보다 정치 과정에서의 실패가 뼈아팠습니다. 지나치게 비대해진 공적 영역을 축소해 효율성을 제고하는 데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정부는 오히려 광범위한 부패 스캔들에 휘말렸습니다. 그런데도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은 여전히 국가가 주도하는 자본주의 모델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브라질, 인도네시아, 터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민주주의는 (민주주의 정도를 떠나) 정치 체제의 기본 역할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다양한 이익 단체와 사회 권력 간의 갈등을 관리하고 통제하며 더 많은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도록 제도를 세워 운영해야 합니다. 그래야 경제가 위기 상황이 와도 쉽사리 무너지지 않고 유연하게 발전할 수 있고, 한정된 자원을 공동체의 관점에서 가장 필요한 곳에 효과적으로 집중시킬 수 있습니다. 꽉 막힌 경제 체제는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성장 동력을 계속 유지하지 못합니다.
어쩌면 이건 민주주의, 특히 충분히 공고화되지 않은 민주주의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법에 의한 지배(rule of law)가 확립되지 않고 표현의 자유도 제한돼 있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는 오히려 권위주의 정권보다도 결정을 제대로 내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이 나라들이 통제된 민주주의(managed democracy) 체제를 고수하며 적어도 지난 50년 동안 이익 단체들의 갈등에 온 나라가 포섭되는 일은 막아온 싱가포르에서 교훈을 얻었어야 할까요? (서구) 민주주의자들은 중국도 통치 체제는 싱가포르와 비슷하지만 문제를 피해가지 못했다는 사실에서 안도할지도 모릅니다. 현재 중국의 가장 큰 문제는 공산당이 국유기업의 독점 체제에 오히려 종속돼 민간 부문 경제를 제대로 키워내는 데 실패했다는 데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정부가 다양한 이익집단의 갈등을 조율하고 관리하는 데 실패한 것입니다.
결국 제가 말하고픈 건 민주주의냐 권위주의냐가 아닙니다. 어떤 체제를 택하든 신흥 경제강국이 유연하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을 갖추지 못하면 도태될 것입니다. 이런 유연성과 적응력은 정부, 정치 기관, 공적 영역에서 각 이익 집단 사이의 사회적 갈등을 관리하고 법에 의한 지배를 확립할 때만 길러질 수 있습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정치입니다.

원문 :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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