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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하라는 말, 그만 좀 해라

  • 입력 2015.08.26 14:01
  • 수정 2015.09.03 14:52
  • 기자명 누블롱 라베리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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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잊으실 건가요?

지난 8월22일 오후 6시경 <스브스뉴스>의 페이스북에 한 편의 카드뉴스가 게재됐다. 게시물은 즉각 삭제됐다. 3회에 걸쳐 게재와 삭제가 반복됐다.

게시물을 게재한 사람은 <스브스뉴스>팀의 영상구성작가다. 그는 부팀장격인 하 모 기자의 강업적 언행에 고통 받았다고 주장했다. 견디다 못해 퇴사를 결정한 그는 팀장에게 문제제기를 했지만, 팀장이 소극적 태도를 보였다고 했다. 하 기자를 암묵적으로 두둔했다는 것이다. 작가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내부고발인 셈이다.
누리꾼들의 분노는 상상 이상으로 뜨거웠다. 관련한 언론 보도도 나왔다. 사회적 약자의 권익 보호를 보도하는 방송사가, 정작 그 내부에서는 비정규직인 프리랜서 작가를 차별했다는 폭로. 대중의 실망과 분노는 어쩌면 당연하리라. 이른바 ‘스브스뉴스 갑질 논란’의 시작이었다.
마지막 게시물 삭제 후 2시간여가 지난 오후 8시50분경 뉴미디어부 부장인 심모 기자가 입장을 정리한 글을 올렸다. <스브스뉴스>는 보도국 뉴미디어부가 운영하는 별도의 뉴스팀이다.
심 기자는 사실관계를 파악하겠다면서 해당 작가와의 대화를 통해 사태를 해결하겠다고 해명했다. 누리꾼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이어 논란 당사자로 지목된 하 기자의 글이 게재되자, 누리꾼들은 ‘변명 대신 사과를 하라’며 비판의 강도를 한층 높였다. 결국 이틀 후인 24일 권모 팀장의 사과문이 올라오자 사태는 한결 누그러졌다. 사과문은 변명 일색이라는 비판을 받은, 앞서의 글들을 의식한 듯 한껏 몸을 낮춘 모양새였다. 다음날부터 콘텐츠 게재가 재개됐다.
아직까지는 스브스뉴스를 비판하는 댓글이 적지 않지만, 분위기는 바뀐 듯 보인다. 할 만큼 했으니 그만하라는 주장도 고개를 들었다. 이를 둘러싸고 누리꾼들 간의 감정싸움도 벌어지기 시작했다.

사흘
공분의 유효기간은 사흘을 넘지 못했다. 사과는 있었지만, 작가는 여전히 실직 상태다. 당분간 방송사 취직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논란은 진정됐지만, 정작 해결된 것은 없다.


세계는 정반합의 메커니즘으로 발전해왔다. '반'은 말 뿐인 타협이나 갈등을 외면하는 일로 누그러지지 않는다. '합'이라는 발전은 '정'과 '반'의 승화에 의해서만 일어날 수 있다. 이는 갈등의 적극적 해결을 통해서만 가능하고, 이번 <스브스뉴스> 갑질 논란의 경우, 재발 방지와 해당 작가에 대한 적절한 보상 혹은 복직 정도가 이에 해당될 것이다. 그러나 2015년의 한국사회에선 이 메커니즘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듯하다. 이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말 하나가 있다.

그만 좀 해라.

‘반’을 인정하지 않는, 적당히 넘어가자는 의식이다. 사용자가 아닌 대다수 피고용자들에게 강요되거나 학습화된 무기력은 내부고발자나 적극적으로 문제 제기하는 일을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게끔 만든다. ‘나는 을이 아니’고픈 대다수 피고용자의 소망은 ‘그만하라’는 잔인한 무공감의 말로 표출된다. 세월호 유가족에게, 고공농성자들을 향한 차가운 시선의 상당수는 이를 야기한 정부와 기업이 아닌, 일반 대중의 눈과 입과 손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한국사회에서 이른바 ‘갑질’이라는 차별의 문제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그만 좀 하라는 매서운 강요 때문은 아닐까. 그런데 그만하라는 말은 도대체 누구 좋으라는 스톱일까. 그만하라는 말, 이제 그만 좀 하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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