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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브 하트>가 역사를 왜곡했다고?

  • 입력 2015.08.25 12:13
  • 수정 2015.09.03 14:52
  • 기자명 김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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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브레이브 하트>를 기억하시나요? 스코틀랜드를 상징하는 성 안드레아 기의 하늘색과 흰색을 얼굴에 칠한 거친 사내들과 매끈한 갑옷을 차려입은 잉글랜드 군대가 격돌하는, 잔인할 정도로 생생한 전투신을 떠올리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또, 죽음 앞에서도 ‘자유!’를 부르짖던 불굴의 사나이, 윌리엄 월레스의 마지막 신을 떠올리시는 분들은 더 많을 겁니다.

잉글랜드와 그닥 사이가 좋지 않은 스코틀랜드 인들에게 이 영화는 눈물겹게 감동적인 작품이었습니다. <브레이브 하트>는 아카데미상을 수상할 정도로 세계적인 호평을 받았고, 한국에서도 기대 이상의 흥행을 했습니다. 그러나 잉글랜드의 분위기는 달랐습니다. 잉글랜드에서는 <브레이브 하트>를 상영 금지하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이 영화를 보는 시선이 험악했습니다. 이 영화가 역사를 왜곡했기 때문이라는 이유였습니다. 정말일까요?


몇 가지를 짚어 보겠습니다. 먼저, 영화 속에서 탐욕에 가득하고 비열한 술수에 능한 악당으로 나오는 ‘롱생크’ 에드워드는 우리가 에드워드 1세로 알고 있는 인물입니다. 에드워드 1세는 영국의 유스티니아누스로 불릴 만큼 법령 정비에 공을 들이고, 내치와 외교 모두에서 탁월한 성과를 낸 왕이었습니다. 이런 인물을 악당으로 등장시키니, 영화에 쏟아지는 잉글랜드인의 시선이 곱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역사를 왜곡했다고 단정짓기 어렵습니다. 그가 왕위 계승 쟁탈전이 벌어진 스코틀랜드에 중재자로 와서 통치권을 가져가려 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에드워드 1세가 잉글랜드에서는 성군으로 꼽힌다지만, 스코틀랜드 인의 시각에서는 충분히 악당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초야권, 즉 소작인들이 영주에게 처녀를 바치는 이야기는 당시와는 거리가 먼 내용이 맞습니다. 또, 윌리엄 월레스가 대승을 거둔 스털링브릿지 전투는 평원에서 벌어진 대회전이 아니라 좁은 다리를 사이에 두고 벌어진 전투였습니다. 좁은 다리 위에 잉글랜드 기병이 들어서자 스코틀랜드 군이 다리에 오르지 않은 잉글랜드 군의 배후를 쳤고 아우성을 치며 다투어 다리 위에 올라선 순간 다리가 무너져 내리는 가운데 잉글랜드 군이 참패하게 된 겁니다.

전투의 형식은 역사적 기록과 다르지만, 스코틀랜드 군이 대승을 거뒀다는 자체는 사실입니다. 당시 잉글랜드군 지휘관은 그 책임을 물어 가죽이 벗겨졌습니다. 이후 윌리엄 월레스는 스코틀랜드의 수호자로 불리웠고, 잉글랜드의 변경 지역을 쑥밭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니 이것도 반 정도는 사실인 셈입니다.


사실 이 영화가 범한 최악의 왜곡은, 잉글랜드의 태자비가 윌리엄 월레스에게 반하고 그 아이까지 가진다는 설정입니다. 실제로, 태자비는 윌리엄 월레스가 죽을 때 아홉 살의 어린아이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영화 말미에 이 태자비가 에드워드 왕의 귀에 “지금 내 뱃속에는 월레스의 아이가 자라고 있다.”고 속삭이는 장면까지 등장하니, 잉글랜드 인들의 입장에서는 역사를 왜곡했다고 화낼 수 있는 일입니다.
이외에도 스코틀랜드 귀족 브루스가 월레스를 배신했다는 설정 등, 사실과 다른 장면이 여러 가지 있습니다. 그래도, 이 영화의 명장면으로 기억되는 윌리엄 월레스의 최후만큼은 사실에 가깝게 묘사되었습니다. 실제로, 에드워드 1세는 월레스를 잡는 일에 매우 집착했다고 전해집니다. <브레이브 하트>에서처럼 로버트 브루스가 배신을 한 것은 아니지만, 월레스가 동지의 배신으로 잉글랜드에 잡혔다는 자체는 사실입니다. 그는 잉글랜드 국민들의 조롱이 가득한 재판정에서 이런 논고를 받습니다.

윌리엄 월레스는 에드워드 1세에 대한 충성 의무를 저버리고 그에 대항하여 중죄를 범하고 범죄자를 규합하여 국왕의 대리인들을 공격하고 살해했다. 그는 다수의 무장폭도를 규합하여 살인과 방화를 자행하고 교회를 황폐화시켰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대꾸합니다.

살인도, 방화도 다 맞다. 그러나 나는 반역자가 아니다. 에드워드에게 충성을 맹세한 적이 없고 그는 나의 왕이 아닌데 어떻게 반역이 성립한단 말인가

윌리엄 월레스는 사지절단 후 참수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실제로 그는 산 채로 내장을 꺼내 눈 앞에서 불태우는 형벌을 받은 뒤 목이 잘렸다고 전해집니다. 그의 토막 난 시신들은 잉글랜드 전역을 돌며 전시되었습니다. 당시 그는 아들에게 이렇게 유언했다고 합니다.

개처럼 묶여 있지 말고 자유롭게 살아라.

영화 <브레이브 하트>는 분명 여러 가지 오류를 갖고 있는 영화입니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윌리엄 월레스라는 인물이 던지는 자유의 메시지만큼은 흠잡을 것이 못 됩니다. 윌리엄 월레스라는 인물이 스코틀랜드의 독립 영웅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압도적인 군비로 쳐들어오는 잉글랜드 군을 몰아내며 스코틀랜드 인들을 격동시켰습니다.


수백년 뒤 그의 동상이 설 때는 15만 명의 인파가 그를 추념했고, 그의 처형지 인근에 세워진 추모비에는 아직도 수많은 스코틀랜드 인들이 꽃을 바칩니다. 영화 <브레이브 하트>에 몇 가지 잘못된 설정이 있다고는 해도, 자유를 추구했던 ‘스코틀랜드의 수호자’ 윌리엄 월레스의 용기는 분명한 사실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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