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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독 치료제는 605번의 실패 끝에 만들어졌다

  • 입력 2015.08.23 20:06
  • 수정 2015.09.03 14:53
  • 기자명 김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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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콜롬버스, 에이브러햄 링컨, 빈센트 반 고흐, 폴 고갱, 모파상, 슈베르트, 니체.

우리가 위인전이나 세계 문학전집에서 자주 보았을 이름들이다.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한 가지 있다. 그들의 명예와 큰 관계가 없는 공통점이긴 하지만. 그들은 매독 환자들이었다. 매독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건너왔다는 설도 있고, 유럽 등 구대륙의 소산이라는 설도 있어 근원지가 확실치는 않다. 매독은 콜롬버스의 항해 이후 이탈리아에서 처음으로 대유행했고, 이후 수백 년간 수천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오랫동안, 이 질병에는 뚜렷한 치료법이 없었다. 더러는 항균 효과가 있는 수은을 바르고 먹기도 했지만 수은은 세균 뿐 아니라 인간에게도 치명적인 물질이었다. 때문에 수은 중독 증상으로 죽어간 매독 환자도 적지 않았다. 이 질병은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을 매개로 하고 있기에, 완전히 근절하기도 어려웠다. 대단한 호색한으로, 때로는 하루에 스무 번이 넘도록 섹스를 했다는 정력가 모파상의 절규는 매독의 참혹함을 여실히 증명한다.

내 뇌는 지금 점점 물렁물렁해지고 있습니다. 밤이면 뇌가 끈적끈적한 액체 상태로 변해서 제 입과 코를 통해 밖으로 흘러나옵니다. 제 말은, 죽음이 목전에 다가왔다는 말씀입니다. 저는 미쳐 가고 있습니다! 제 머릿속은 뒤죽박죽 혼란스레 뒤엉켜 있습니다.

그의 뇌는 매독균에 의해 망가져 가고 있었다. 그는 착란 속에서 총을 난사하거나 칼로 자기 목을 자르려고 시도하는 등 비참한 말년을 보내야 했다.



무방비의 인류를 잔혹하게 공격해 온 매독은 20세기의 문턱에 이르러서야 가까스로 정체를 드러내게 되었다. 현재의 일본 지폐에도 등장하는, 의학자 노구치 히데요가 매독균을 발견했던 것이다. 노구치 히데요는 전신마비로 고생하는 환자의 뇌에서 매독을 일으키는 병원체인 '트레포네마 팔리둠'을 처음으로 찾아냈다.
다른 병과 달리, 매독 연구가들에게는 또 하나의 적이 있었다. 매독 치료법 개발 자체에 반대하는 이들이 존재했던 것이다. 그들은 매독은 도덕적 타락에 대한 신의 징벌이기에, 이를 치료하려는 것은 일종의 불경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에 대해 생물학자 메치니코프는 이렇게 반박했다.

매독의 확산을 막는 것이 부도덕하다는 주장이 있지만, 이제껏 할 수 있는 모든 도덕적인 방법을 동원했어도 매독의 창궐을 막지 못했다. 오히려 결백한 사람들이 병에 걸리는 일도 있었다. 전염병을 물리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야말로 부도덕한 일이다.

파울 에를리히도 매독을 물리치고자 한 의사 중 하나였다. 에를리히는 학창시절 문학 교사가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냈을 때 "인생은 산화(酸化)작용이다. 꿈이란 뇌의 활동이고 뇌의 활동이란 단지 산화작용이다."라는 답을 써 내 야단을 맞던 괴짜였다.

그는 의과대학에 진학한 이후에도 의학 용어를 외우는 일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또한 의사라면 당연히 익숙해져야 할, 환자들의 비명과 신음 등을 마주하는 일도 질색했다. 대신 그는 탄저병균을 발견한 코흐의 연구에 흠뻑 빠졌고, 코흐의 제자가 되어 병의 원인이 되는 미생물을 찾아내는 일에 인생을 걸었다.
그는 일 외의 다른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연구에 푹 빠졌다. 오죽하면 자신의 집에서 열리는 파티를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스스로에게 초대장을 발송할 정도였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옷이고 커튼이고를 가리지 않고 메모를 해댔다.


그러던 어느 날, 에를리히는 동물에게 염료를 주사했을 때 특정 부위만 색깔이 변하는 현상을 목격했다. 그는 이를 보고, 동물의 특정 부위만을 염색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사람의 조직 내 세균만을 가려 죽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품는다. 정상세포는 죽이지 않고, 문제가 되는 미생물만 죽이는 화학적 약물의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그는 곧바로 이 '마법의 탄환'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다.
그는 수많은 실패를 거듭했고, 결국 비소 화합물로 이루어진 606호 약물을 생산해냈다. 토끼에 매독균을 주사한 뒤 실행한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매독에 걸려 더 이상 손 쓸 수 없이 죽어가던 사람도 주사 한 번으로 살아났다. 페니실린의 등장 이전까지 가장 효율적인 매독 치료제로 꼽혔던, '실바르산 606'이 역사에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그는 이 공으로 1908년 노벨상을 수상했다. 독일의 의학 대회에서는 이 사실을 보고한 순간 연설을 이을 수 없을 정도의 환호와 박수를 받았다. 그러나 명성이나 금전적 보상을 취하는 데 큰 관심이 없었던 그는, 아직 임상 실험이 부족하고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약을 더 천천히 공개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사업가들에 의해 약은 그대로 세계에 퍼져나갔다. 결국 부작용이 발생했을 때 가장 혹독한 비난을 받아야 했고 법정 투쟁까지 벌여야 했던 것은 다름아닌 에를리히였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이 괴짜 연구벌레가 발명해 낸 약은 지난 500년 간 천만 명이 넘는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던 악질적인 병 하나를 수그러뜨렸다. 에를리히는 1915년 8월 20일 그 영광을 안은 채 세상을 떠났고, 영국의 타임즈는 “전 세계가 그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기사로 그의 죽음을 기렸다.
에를리히가 발명한 '실바르산 606'의 의미를 알고 나면, 누구나 그의 끈질긴 노력에 기가 질린다. 606이란 일련 번호는, 이 약이 605번의 실패 끝에 만들어졌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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