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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을 사면하면 경제가 살아난다는 착각

  • 입력 2015.08.20 13:31
  • 수정 2015.08.20 13:33
  • 기자명 아이엠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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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4일, 박근혜 정부는 광복 70주년을 맞이해 특별 사면을 했습니다. 광복절 특별 사면은 매년 진행되어 왔기에 사면 자체는 별다른 일이 아닙니다. 문제는 이 조치가 경제범죄를 저지른 재벌들의 사면 기회로 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번 광복절 특별사면에도, SK그룹 최태원 회장을 포함한 경제인 14명이 사면되었습니다.

법무부는 보도자료에서 사면 받은 거물 경제인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고 '중소·영세 상공인을 포함한 경제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재벌보다는 중소·영세 상공인의 사면이 더 많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사실 사면 대상자 선정을 시작할 즈음에는 사면되는 재벌의 수가 더 많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습니다. 대통령이 특별 사면의 목적으로 경제 활성화를 들었던 까닭입니다. 거센 반발이 일자 경제인 사면을 최소화하겠다고 입장을 바꾸긴 했지만, 어쨌든 이번에도 재벌 총수는 사면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연일 쏟아지는 SK 최태원 회장 소식
이번에 사면된 SK그룹 최태원 회장에게 쏟아지는 가장 큰 관심은 과연 그가 경제를 부양시킬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사면된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음에도, 신문과 방송에서는 연일 최태원 회장의 행보를 쏟아내듯 보도하고 있습니다.


모든 신문이 최태원 회장의 일거수일투족을 취재하고 있습니다. 그 기사들에는 '투자', '기부', '기여', '성장', '연일 경제 활성화' 등의 표현이 빠짐없이 등장합니다. 이 기사들만 보면 재벌 한 명의 사면이 경제활성화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사실 이런 기대는 처음이 아닙니다. 2008년 MB정부는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이유로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과 SK 최태원 회장 등의 재벌들을 특별사면 조치했습니다. 2008년의 경제성장률은 2.3%로, 참여정부의 5%대 경제성장률에서 반토막이 난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많은 국민들은 재벌의 사면하면 경제가 살아난다는 정부의 말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 해인 2009년, 대한민국의 경제성장률은 0.3%로 하락했습니다. 간신히 마이너스 성장은 면했지만 청년 실업 등이 더 심각해진 상황이었습니다. 물론 재벌 몇 명이 국가 경제를 그렇게 급격히 성장시키지는 못한다는 반박이 들어올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재벌을 풀어주어도 즉각적인 경제 부양 효과가 없다면 대체 재벌을 사면해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정부가 재벌의 특별 사면과 경제 활성화를 연결 짓고자 한다면, 보다 구체적인 자료를 통해 효과를 입증해야 할 것입니다.

옥중에서 재산이 늘어난 최태원 SK그룹 회장
재벌 총수가 풀려나도 경제는 나아지지 않았다지만, 옥중에 있을 때 자산을 더 늘린 재벌 총수는 있습니다. 이번에 특별사면을 받은 SK그룹 최태원 회장도 그 중 하나입니다. 2014년 1월 29일 최태원 회장이 보유한 SK C&C등의 지분 평가액은 2조 3783억 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출소하기 전인 2015년 7월 30일 기준 최태원 회장이 보유한 주식 가치는 5조 412억 원으로 불어나 있었습니다.


<헤럴드경제 슈퍼리치>에 따르면 2013년 10만원이었던 현재 SK 주식은 31만 원대까지 올랐습니다. 그가 감옥에 있어도 SK라는 기업 자체는 별다른 문제 없이 잘 굴러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SK그룹은 늘 총수가 없어 회사가 무너질 수 있다며 우는 소리를 해 왔습니다. 만약 곧 무너질 정도로 위태한 기업이었다면 그들의 주식이 두 배, 세 배 오르지는 않았을 겁니다.
재벌의 사면이 경제를 살렸는가를 증명할 정확한 데이터는 없지만, 재벌 총수가 감옥에 있어도 회사 경영이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어느 정도 증명된 셈입니다.

재판부의 '재범 우려' 경고를 무시한 박근혜 정부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 2008년 8월 15일에도 특별 사면으로 풀려난 전력이 있습니다. 10년간 광복절 특사를 두 번이나 받은 것입니다. 2008년 5월 당시, 최태원 회장은 1조5천억 원의 분식 회계 및 부당거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불과 3개월 만에 '8.15 특별사면'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겨우 두 달만인 2008년 10월, 최태원 회장은 다시 회삿돈 450억 원을 횡령했습니다. 때문에 재판부는 2013년 1월 그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하면서 재범의 우려가 높다고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박근혜 대통령은 2015년 8월 최태원 SK회장을 다시 사면했습니다.
최태원 회장은 사면 직후 '대한민국의 성장과 발전을 이뤄온 선배 세대와 국가유공자,사회적 약자 등을 위해 SK가 기여해야 하는 것이 광복 70년의 의미'라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언론은 연일 그의 ‘경제 살리기’ 행보를 보도합니다.


대한민국 경제가 일부 재벌 총수의 역할에 좌지우지된다는 정부의 논리는 빈약합니다. 설령 정말 그렇다고 해도, 한 나라의 경제가 기업인 몇 명의 행보에 좌우된다면 정부는 그 상황을 개혁하기 위해 나서야 할 입장입니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오히려 재벌을 키워 경제를 살리겠다고 국민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번 광복절 특별사면이 청와대의 말처럼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절제된 사면'이자 '국가발전과 국민대통합을 이룰 계기'인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최태원 회장을 두고 재범의 우려가 높다고 말한 재판부의 예측이 맞을지, 그를 사면하면 경제 활성화 효과가 발생한다는 박근혜 정부의 주장이 맞을지도 아직 두고 볼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효과를 불러오는가와 별개로, 몇 번이나 공금을 횡령한 경제사범을 단지 재벌이라는 이유로 용서해 주는 것이 국가로서 추구할 정의와 일치하는지는 여전히 의심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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