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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장기 걸린 사진은 다 친일이라구요?

  • 입력 2015.08.14 14:30
  • 수정 2015.08.14 14:44
  • 기자명 아이엠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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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터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일본 군복을 입고 일장기를 든 채 야스쿠니 신사에 서 있는 사진이 실려 있으니
무조건 친일 성향의 전시회라는 생각이 드시나요?
이 작품을 찍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권철씨는 20여 년간 일본에서 활동하면서 무려 40여 차례나 야스쿠니 신사를 찾았습니다. 특히 지난 10년 간, 일본 극우세력들이 전쟁을 추억하는 행사를 벌이는 8월 15일이면 매 해 야스쿠니를 찾아가 취재활동을 벌였습니다. 군복을 입고 욱일승천기를 앞세운 참전 군인들과 극우세력들의 모습,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등 일본 정치인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모습을 꾸준히 취재한 한국인은 권철씨가 유일했습니다.
권철 작가는 “대륙 진출 야욕의 DNA를 가진 일본 우익들은 패전을 인정하지 않고 주변국과 영토분쟁을 일으키며 역사를 부정하고 있고, 그 배경의 중심엔 세뇌의 상징인 야스쿠니가 자리한다”는 소개글과 함께 10년 넘게 취재해 온 사진을 모아 '야스쿠니. 군국주의 망령'이라는 이름의 다큐멘터리 에세이를 출간했습니다.
그래서 제주 관덕정에서는 광복절을 맞아, 8월 15일부터 8월 16일까지 권철 작가의 '야스쿠니' 사진전이 열릴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제주시는 8월 13일 돌연 허가를 취소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일장기와 야스쿠니 신사 사진이 있으면 무조건 친일인가?
제주시가 권철 작가의 '야스쿠니, 군국주의 망령' 사진전을 취소하게 된 직접적 원인은 광복회 제주지부가 시 측에 항의를 한 데 있습니다. <제주의 소리> 보도에 따르면 강혜선 광복회 제주도지부 사무국장은 "광복절 날 관덕정에서 일장기와 야스쿠니 사진을 내건다는 것은 국민 정서에 맞지 않는 일이다. 차라리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 사진을 전시해라. 사진작가가 일본을 옹호하기 위해 이런 짓을 하는 것이 아니냐”며 사진전 취소를 강하게 요구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야스쿠니, 군국주의 망령' 사진전은 역사를 우롱하는 전시가 아니라, 오히려 일본이 어떻게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지 알려주는 귀중한 사진전입니다.
광복회 제주도지부는 "항일을 외쳤던 장소에서 어떻게 일본군을 숭배하는 야스쿠니 풍경과 일장기를 걸 수 있느냐"고 주장하지만, 사진의 본질은 아직도 침략 전쟁을 숭배하는 일본 극우세력이 실재하고 그로 인해 일본에서 군국주의 망령이 부활하고 있다는 현실을 깨우쳐주는 데 있습니다.
관덕정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야스쿠니, 군국주의 망령' 전시 취소는 주최측이 전시장소와 일자를 제대로 택하지 못한 탓이 아닙니다. 오랜 시간 일본의 실상을 취재해온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보지 않은 무지에서 비롯된 사건입니다.

무지한 보도가 불러온 결과

오해는 <제민일보>의 보도로부터 시작됐습니다. <제민일보>의 이소진 기자는 8월 12일 오후 3시 24분 '권철 작가, 15~16일 목관아서 사진전 '야스쿠니'개최'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권철 작가의 사진전을 안내합니다. 그러나 불과 한 시간 뒤인 오후 4시 25분, '관덕정에 야스쿠니 사진?'이라는 기사에서는 도민 사회가 전시를 두고 술렁인다며 이를 향한 부정적인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보도합니다.

불과 한 시간 만에 같은 기자가 전혀 다른 방향의 기사를 쓴 것입니다. 한 시간 만에 기사 내용이 바뀐다면 기사 보강을 통해 내용을 추가해야 옳았습니다. 그러나 해당 기자는 오히려 다음날 일본의 군국주의 망령을 고발한 권철 사진작가를 마치 친일 성향의 작가인 듯 보이게 하는 기사를 썼습니다.
<제민일보> 이소진 기자가 작성한 '관덕정에 '야스쿠니' 전시회, 도민들 반발로 '무산'이라는 기사는 온라인으로 퍼지기 시작했고, 사진전의 의미도 제대로 모르고 누가 반발을 하는 것이냐는 반응이 쏟아졌습니다. 이에 <제주의 소리>는 '무지한 제주시...야스쿠니 망령 고발한 사진전 불허'라는 기사를 통해 사진전 취소의 부당함을 지적했습니다.
현재 문제가 된 <제민일보> 이소진 기자의 기사는 삭제된 상태입니다. <제민일보>는 이 기사를 삭제한 이유는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권철 작가는 "일본과 한반도를 둘러싼 모든 과거사는 미해결의 현재 진행형 상태"라며 "광복 70주년임은 확실하지만 무언가 불안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요즘, 더욱 눈을 크게 뜨고 귀를 기울이면서 하나씩 알아갔으면 좋겠다"는 전시의도를 밝힌 바 있습니다. <제민일보>는 전시의도와 상반되는 기사를 작성하게 된 경위를 명확히 밝혀야 할 것입니다.

제주시청은 광복절을 기념하는 의미를 알고 있는가
<제주의 소리>에 따르면 제주시 문화예술과 문석부 목관아 담당은 “전시 내용을 두고 광복회 제주지부에서 강하게 항의했고, 논란의 소지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뒤늦게 취소했다”고 말했습니다. 김영훈 문화예술과장도 “행사 내용이 광복 70주년과 부합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지적이 있다"고 밝혔습니다.그러나 권철 작가의 '야스쿠니, 군국주의 망령'은 주류 언론에서 광복절을 기념할만한 사진이며, 우리가 왜 일본을 경계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작품이라는 극찬을 받은 바 있습니다.

1945년 8월 15일은 우리에게는 광복의 날이지만, 일본에게는 그저 종전의 날입니다. 그날 일본은 아시아·태평양전쟁에서 패전했지만, 차마 이를 인정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그래서 일본은 그저 전쟁을 끝낸 날로 기억하고, 이를 기념합니다. 전쟁을 부르는 명칭도 다릅니다.

일본은 아시아·태평양전쟁을 대동아전쟁이라고 부릅니다. 대동아전쟁이란 일본의 극우파들이 '대동아공영'을 실현하기 위해 일으켰던 전쟁입니다. 대동아공영이란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이 서양의 지배에서 벗어나 평화와 번영을 이루는 것을 말하고, 이를 일본이 주도한다는 논리입니다. 그래서 일본의 극우 세력들은 서양을 상대로 성전聖戰을 일으켰다는 궤변을 펼칩니다. 어불성설입니다. 일본은 아시아 여러 나라들을 침략해 학살과 약탈을 자행했을 뿐입니다.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권철 '야스쿠니. 군국주의 망령'

대동아공영이란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이 서양의 지배에서 벗어나 평화와 번영을 이루는 것을 말하고, 이를 일본이 주도한다는 논리입니다. 대동아전쟁이라는 단어 자체가 당시 일본의 극우성을 담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 단어는 일본에서 여전히 통용되고 있습니다. 권철 작가는 현대 일본이 여전히 가지고 있는 이런 시각이 역사 왜곡과 자위대 강화, 영토 분쟁들을 일으키는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지적합니다.

권철 작가가 찍은 사진은 오늘날의 일본에서 보이는 군국주의의 잔재를 포착함으로써 그의 주장을 뒷받침합니다. 그런데 전시 내용이 광복 70주년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제주시청을 보면, 광복 70주년 기념 행사를 하는 본질적인 이유를 알고는 있는지 반문하고 싶습니다.

야스쿠니는 군국주의의 망령과 두 얼굴의 신사이다. 전반부의 전쟁에 대한 추억과 미화, 맹목적 애국주의가 군국주의의 망령이라면, 후반부의 야스쿠니의 일상은 두 얼굴의 신사이다. 군국주의의 망령은 빤히 드러나지만, 야스쿠니의 일상은 오히려 평화롭게 보인다. 그런데 내 눈에는 그 평화가 불안해 보였다. 기억의 뒷편으로 잊혀져 가고 있는 역사적 진실들이 안타깝게 보였다. 올해는 광복 70주년이다. 이 사진집이 그런 역사적 진실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권철 '야스쿠니. 군국주의 망령'

태극기를 거리마다 게양하고 각종 현수막을 내걸며 '광복 70주년'을 기념하는 모습과, 잊혀져 가는 역사적 진실을 일깨우고 불안한 평화를 경계하는 모습 중 지금의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말로만 기념한다고 외세의 침략을 막지는 못합니다. 아픈 경험에서 배우고, 현실을 직시하고 미래를 준비해야만 제2의 태평양 전쟁을 막을 수 있습니다. 광복 70주년을 기념하는 목소리는 드높지만, 전쟁이 준 교훈을 되새기는 일은 아직도 멀기만 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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