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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사면인가?

  • 입력 2015.08.14 10:27
  • 수정 2015.08.14 10:39
  • 기자명 김순종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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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못 지킬 수도 있지.' 친구들과 한 가벼운 약속이 어그러질 때 가끔 농담처럼 건네는 말이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진심으로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다. 지난 대선 박 대통령의 공약은 대부분 지켜지지 않았고, 남은 것들도 하나씩 어겨지고 있는 까닭이다.
돌아보면 반값등록금, 경제민주화, 국민대통합, 검찰개혁 등 대통령의 핵심 공약 중 제대로 이행된 것은 하나도 없다. 이쯤 되면 대통령은 약속이라는 단어를 어떤 뜻으로 이해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그리고 어제인 13일, 박 대통령은 자신의 대선공약을 또 하나 파기했다. 깨진 약속은 대기업 지배주주 및 경영자의 중대범죄에 대한 사면권 제한이다. 정부는 오늘 횡령과 배임 혐의로 복역 중인 SK그룹 최태원 회장을 비롯해 6257명의 특별사면 대상자를 발표했다. 이 중 기업인은 14 명이었다. 특별사면에 일반사면까지 더하면 이번 광복절 사면의 대상은 220만 명에 달한다.
SK그룹 최태원 회장은 횡령과 배임 혐의로 지난해 초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대통령은 최 회장이 2년도 복역하지 않은 시점에서 그를 사면했다. 그에 대한 사면이 경제활성화를 불러올 것이란 이유다.
대통령은 대기업 지배주주에 대한 사면권 행사 제한을 지난 대선 당시에만 약속한 것이 아니다. 2013년 1월 26일 대통령직 인수위 대변인은 "부정부패나 비리에 연루된 사람들에 대한 사면은 국민을 분노케할 것"이라고 말한 일이 있다. 또 2015년 4월 성완종 리스트가 이슈로 떠오르며 성 전 회장이 참여정부 시절 사면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대통령이 직접 "경제인에 대한 특별사면은 납득할 만한 국민적 합의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부는 이외에도 기업인 사면에 관해 부정적인 입장을 수차례 표명해왔다.
그런데 광복절 70주년을 앞두고 대통령은 전격적으로 기업인 특별사면을 결정했다. 불과 몇 달 전 그녀 자신의 입을 통해 사면 이전에 필요하다던 납득할 만한 국민적 합의도 없이. 대통령이 말하는, 사면의 사유는 이랬다.

그동안 국민이 공감할 수 있도록 사면을 제한적으로 행사했는데, 광복 70주년을 맞아 국민 화합과 경제활성화를 이루고 또 국민 사기를 진작하기 위해 특별사면을 결정했다.

대통령의 말처럼 국민 화합, 경제활성화, 국민 사기 진작이 가능하다면 기업인 사면에 반대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대통령의 생각일 뿐이다. 국민의 생각은 달랐다.



광복 70주년 특사 대상자 명단이 밝혀진 뒤 대통령의 기대와 달리 여론은 좋지 않았다. "특별사면기사로 광복절의 진정한 의미가 묻혔다.", "광복 70주년 기념에 왜 범죄자들을 봐주나.", "광복절 특별사면 제도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냐."는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국민 화합과 사기 진작을 위해서라는 말과 다르게, 오히려 국민의 사기 저하와 분열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반응은 이미 예상된 것이었다. 지난달 한국갤럽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국민 중 54%가 기업인 사면에 반대했고 찬성은 35%에 불과했다. 기업인 사면이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되느냐는 물음에는 41%가 그렇다고 답했고, 52%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기업인 사면은 이처럼 대부분의 국민이 그 효과를 납득하지 못하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납득할 만한 국민적 합의 후에야 기업인 사면이 가능하다던 대통령은 오늘 기업인의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말에는 책임이 따른다. 대통령이라면 자신이 국민들에게 한 말과 약속을 지키는 것이 기본이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수시로 공약을 뒤집고, 입장의 유불리에 따라 자신이 했던 말들을 바꾸고 있다. 그런 행동에 대한 해명이나 사과도 없다. 박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원칙을 강조해왔다. 스스로 한 약속을 어겨가면서까지, 그 효과도 의심스러운 경제활성화라는 목적 아래 범죄를 저지른 기업인들을 사면하는 것이 박 대통령이 말해왔던 원칙과 부합하는 일인가?

게다가 광복절은 우리가 일제의 억압에서 벗어난 뜻 깊은 날이다. 70주년을 맞이한 이번 광복절은 더욱 상징성이 크다. 이처럼 자랑스러운 날과, 개인적인 욕심을 채우려 기업에 피해를 입힌 경제사범들을 사면하는 것 사이에 어떤 연결점이 있는지도 이해되지 않는다.

대체 누구를 위한 사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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