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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여자' 가 한자를 몰라 한 말이라고?

  • 입력 2015.07.31 18:31
  • 수정 2015.08.01 17:43
  • 기자명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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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낙 안하고 십엇는대 진짜 더이상은 한개다... 나는 아직도...니가 내인생의 발여자라고 생각하는대...ㅎ”

(연락 안 하고 싶었는데 진짜 더 이상은 한계다…. 나는 아직도…네가 내 인생의 반려자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위 트윗이 실제로 유통된 게 확실한가 여전히 의심스럽다. 맞춤법과 무관하게 글을 쓰는 아이들이 적지 않긴 하지만 위 트윗처럼 틀리는 게 가능할까, 부러 잘못 쓴 것은 아닐까 싶기 때문이다.

오래 전부터 인터넷에 떠돌던 ‘맞춤법 파괴 종결자’는 가히 전설적이다. 이것들은 가장 극단적인 경우이고, 일반화된 현상이 아니라 특별한(?) 개인의 예이긴 하다. 그러나 최근 사람들이 웹페이지나 SNS에 남긴 몇몇 글을 보면 아주 말도 안되는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정도의 문제일 뿐 대체로 요즘 사람들은 귀에 들리는 대로 적는 데 익숙하다. ‘우리의 소원’을 ‘우리에 소원’ 형식으로 쓰는 일은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에게서도 드물지 않게 보인다. 동요 ‘고향의 봄’의 노랫말 ‘나의 살던 고향(이 표현도 잘못이긴 하다)’을 ‘나에 살던 고향’으로 쓰는 건 거의 ‘기본’(?)일 정도로.

아들 녀석이 초등학교 저학년 때 일기에다 ‘난닝고’라고 적어 실소를 터뜨린 적이 있다. 아이는 ‘러닝셔츠’라는 표준말을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소리 나는 대로 그리 적은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것이 아직 말을 덜 배운 학생들에게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동료 교사들의 얘기다. 카페에서 대화하는 도중에 누군가가 ‘불란’이라고 썼다. 다른 동료는 ‘일사분란’이라고 썼다. 짐작했겠지만 ‘불란’은 ‘분란(紛亂)’을 잘못 썼고, ‘일사분란’은 ‘일사불란(一絲不亂)’의 오기(誤記)다.

대화의 주체가 명색이 교사들이다. 그런데도 이런 잘못된 표현이 그대로 쓰였다. 국어 교사가 없었던 건 맞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오류가 용납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게 잘못 쓰이고 있다는 걸 눈치 챈 사람은 나중에 대화에 끼어든 역사 교사였다.

그가 점잖게 잘못 썼다고 지적했는데도 불구하고 대화에 빠져 있던 교사들은 예의 낱말을 그대로 썼고, 결국 역사 교사가 심하게 나무라고 개탄하면서 분위기가 썰렁해졌다고 들었다.

이 해프닝은 해당 낱말을 글로 쓰지 않고 귀로만 듣다가 처음 표기하면서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한자어를 적지 않게 쓰지만, 그 낱말의 의미를 모두 한자의 새김과 이어 이해하지는 않는다.

한자교육의 부족? 쓰기 교육의 실패!

마치 우리말처럼 쓰지만 기실은 한자어에서 온 말이 좀 많은가. 아이들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다 보면 그런 사례가 적지 않다. ‘여차여차하다’나 ‘여전하다’ 같은 형용사나 ‘거지반’ 같은 부사, 명사도 한자어에서 온 말이다.

· 여차여차하다(如此如此-)

· 여전히(如前-)

· 거지반(居之半)

언뜻 심각한 맞춤법 파괴 현상은 사람들의 한자 감각이 모자라서 생긴 일처럼 보인다. 때문에 한자를 병기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에겐 원군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현상들이 단순히 한자 교육이 부족해서 일어난 것으로 보는 것은 단견이 아닐까 싶다.

거듭하는 얘기지만 이제 한자는 영어나 프랑스어처럼 외국어가 되어가고 있다. 빛깔을 가리키는 ‘연두’나 ‘초록’, ‘자주’, ‘고동’을 배우기 위해 ‘軟豆(연두)’, ‘草綠(초록)’, ‘紫朱(자주)’, ‘古銅(고동)’의 한자 풀이를 반드시 이해해야 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한글로 쓴 ‘화이트(white)’가 ‘하양’이고, ‘레드(red)’가 ‘빨강’인 걸 아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때문에 이 맞춤법의 파괴 현상은 그간 일상생활 속의 쓰기 교육이 부실했던 결과로 보는 게 더 타당할 듯하다. 30년 넘게 아이들에게 우리 말글을 가르쳐 오면서 가끔씩 책임을 절감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쓰기’ 능력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걸 확인할 때다. 아이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문제풀이 요령이 아니라 기본적인 글쓰기 교육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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