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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아니면 다 망한 거라고?

  • 입력 2015.07.30 11:47
  • 수정 2015.07.30 13:45
  • 기자명 뉴스페퍼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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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오로지 명문 대학에 입학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한 채 부모가 정해놓은 길을 따라 걸어오기만 한 아이들은 대학에 입학한 뒤 별것 아닌 변화에도 큰 좌절과 시련을 맛봅니다. 부모가 늘 모든 문제를 해결해줬던 아이들에게 홀로서기란 너무나 힘겨운 과제입니다.

늘 완벽하기만을 요구받아온 아이들이 작은 실패에도 크게 낙심해 존재론적 회의마저 느끼며 목숨을 끊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때, 그 책임은 학생 자신에게보다도 부모의 과잉 보호와 대학 시스템, 끊임없이 완벽하기만을 요구하는 문화에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뉴욕타임즈가 미국 대학 캠퍼스에서도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학생들의 자살 문제를 다루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캐서린 드윗(Kathryn DeWitt)은 고등학교 때까지 어디 하나 빠지는 게 없는 우수한 학생이었습니다. 운동을 곧잘 해 육상 선수로 활약했고, 학교를 대표해 주 교육청에서 주관한 리더십 프로그램에 줄곧 참가한 것은 물론, 공부도 잘해서 대학 심화과정 과목(Advanced Placement test: 고등학생들이 대학교 입학 전에 대학 학점을 인정받을 수 있는 수업을 미리 듣는 것)을 여덟 개나 이수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사기 캐릭’쯤 됐다고 보면 되겠죠.

캐서린을 향한 부모님의 기대는 상당히 높았습니다. 심화과정 수업의 중간 시험 성적과 순위가 매일 업데이트되는 오후 5시가 되면, 캐서린보다 먼저 성적을 확인하는 건 늘 엄마였습니다.

육상 연습을 마치고 집에 오면 엄마가 가끔 “성적이 떨어졌더라, 어떻게 된거니?” 하고 묻곤 하셨어요. 제가 그럴 리가 없다, 어딘가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고 하면 “그렇지? 엄마도 그런 것 같았어.”라고 말씀하시곤 했죠.

캐서린은 여덟 과목에서 모두 A학점을 받고 심화과정을 이수합니다. 그리고 꿈에 그리던 명문 대학 중 한 곳인 펜실배니아대학(University of Pennsylvania)에 입학합니다. 추가 합격으로 입학했지만, 캐서린은 뛸 듯이 기뻤습니다.

입학 후 첫 2주 동안 캐서린은 누구보다도 바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여학생 사교 클럽에 가입하고, 초등학생들에게 방과 후 학습을 지도하는 활동에 참가하기로 했으며, 기독교 동아리에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명문 대학에 와 보니, 정말 완벽한 친구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실력도 열정도 자기보다 월등한 것 같은 친구들을 보며, 캐서린은 처음으로 자기가 평범하거나 평균 이하의 학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친구 한 명은 국가대표급 피켜 스케이팅 선수였어요. 과학 경시대회에 나갔다 하면 우승을 차지했던 친구도 있었고, 그냥 전부 다 엄청난 친구들이었어요. 저도 친구들에게 뒤지지 않고 싶다, 친구들 만큼 뛰어난 무언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매일 아침마다 학교 소식을 알려오는 이메일에는 교수, 학생들이 상을 받거나 장학금을 탔다는 소식이 가득했습니다. 어떤 친구는 매일 풀메이크업에 예쁜 옷을 입고 수업에 들으러 왔습니다. 벌써 방학 때 인턴십을 어디서 할지 이야기하는 친구들을 보면, 캐서린은 이번주 수업 과제도 다 못 끝내고 있는 자신이 초라하게 보였습니다.

소셜미디어의 사진을 보면, 친구들은 멋진 파티에 다니며 진짜 대학 생활을 즐기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모두 나보다 공부도 잘 하는데, 언제 시간이 나서 저렇게 노는지 캐서린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심지어 인스타그램에 올린 친구의 음식도 지금 내가 먹는 저녁보다 맛있어 보였습니다. 캐서린은 점점 자존감을 잃어갔습니다.

그러던 2014년 1월 17일, 펜실배니아대학의 1학년 학생 매디슨 홀러란(Madison Holleran)이 주차타워 꼭대기에서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매디슨은 신입생들 중에서도 재능이 뛰어나고 사교성도 좋아 인기가 많았습니다. 그녀의 죽음은 펜실배니아대학에서 13개월 동안 일어난 여섯 건의 자살 가운데 세 번째 사건이었습니다. 그녀와 친하지는 않아도 그 이름을 익히 들어왔던 캐서린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그날 캐서린은 블로그에 이런 일기를 썼습니다.

이럴 수가! (매디슨) 너는 살아야 할 이유가 수십 가지는 더 있는데 어떻게 이렇게 가버린 거야? 내가 너보다 먼저 갔어야 하는 건데!”

캐서린의 친구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지만, 사실 그 즈음 캐서린은 자살에 쓸 면도칼도 샀고, 가족, 친구들에게 보낼 유서도 대부분 써놓은 상태였습니다. 그녀는 완전히 실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 캐서린은 늘 자신을 '계획적인 사람'이라고 소개하곤 했습니다. 때문에 전공이나 직업에 관련된 큰 계획에 맞춰 다른 일도 예정대로 될 것이라고 생각했고, 모든 일이 잘 풀릴 거라고 믿었습니다.

“부모님의 바람에 따라 기독교 신앙을 가진 착실한 남자친구를 만날 거라고 믿었어요. 아니 꼭 그렇게 돼야만 했어요. 그래야만 계획대로, 목표대로 부모님이 사셨던 그런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을 테니까요.”

문제는 캐서린 스스로 미처 예견하지 못한 곳에서 터졌습니다. 이미 고등학교 때 여러 차례 남자가 아닌 여자에게 마음이 가는 자신을 발견한 적이 있었지만, 캐서린은 부모님과 교회가 동성애를 결코 용납하지 않을 거라는 두려움에 그런 감정을 억눌러왔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캐서린이 부모의 바람대로 자라온 것을 매우 기뻐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딸아, 아빠는 언젠가 있을 너의 결혼식과 너의 남편이 될 사람을 상상하며 기다리는 맛에 산단다. 그게 내 삶의 낙이란다.

그녀를 앉혀놓고 말하던 아버지의 모습을 생각하면 동성애라니, 당치도 않은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기숙사에서 알게 된 한 여자아이의 얼굴이 하루 종일 눈앞에 아른거리자, 캐서린은 결국 이 감정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습니다.

그럴수록 그녀는 더욱더 노력했습니다. 아침 7시 반에 눈 뜨는 순간부터 밤 10시까지 공부, 수업, 숙제, 운동, 클럽 활동을 했습니다. 여기에 근로장학생 신분으로 일주일에 10시을 일해야 했습니다. 어려운 과목에는 더 많은 시간을 투자했습니다. 지금 이게 최선인 걸까, 더 열심히 할 여지는 없는 걸까 회의가 가끔씩 들긴 했지만, 지금까지 열심히 해서 이루지 못한 게 없던 캐서린이기에 자신을 믿었습니다.

그러다 첫 번째 고비가 찾아옵니다. 미적분학 수업 중간고사에서 60점을 받고 만 겁니다. 성적은 상대 평가로 나오지만, 이런 점수로는 낙제할 수도 있었습니다. 수학을 전공하겠다는 계획에 근본적인 회의가 들면서, 실패의 두려움이 캐서린을 엄습했습니다.

미래에 대한 분명한 계획이 있었는데, 그 계획이 어그러지기 시작하는 순간 다른 방편을 찾을 엄두가 안 났어요.

당연히 자신의 자리라고 생각했던 곳은 저 위에 있고, 그에 한참 못 미치는 데서 허우적대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바라보는 건 참기 어려운 고통이었습니다. 고통과 우울증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목숨을 끊는 것이었습니다.

캐서린은 학생이 자살했을 경우, 부모님이 등록금을 환불받을 수 있는가에 관한 규정을 찾아본 뒤 손목에 칼날을 그었습니다.

완벽하지 않다면 포기한다

학생들이 연이어 목숨을 끊는 끔찍한 일을 겪은 건 펜실배니아대학 뿐만이 아닙니다. 올해 툴레인대학교 학생 네 명이, 애팔래치안대학에서 최소 세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2009-10학년도에 코넬대학에서는 여섯 명이 잇따라 목숨을 끊었고, 2003-04학년도에 뉴욕대학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대학 밖으로 눈을 돌려 15~24세 인구 전체의 자살율을 살펴봐도 2007년 10만 명당 9.6명에서 2013년 11.1명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절반 이상이 심각한 심리적, 정신적 문제를 갖고 있습니다. 2년만에 13%나 증가한 수치입니다. 펜실배니아 주립대학(Penn State University)의 대학 정신건강 센터의 자료를 보면 불안 증세와 우울증이 대학생들에게 나타나는 가장 흔한 정신 질환입니다.

펜실배니아대학은 즉각 대책위원회를 꾸려 학생들의 정신 건강 문제를 살폈습니다. 위원회가 제출한 최종 보고서에는 교내 상담 센터 운영 시간을 늘리고, 고민거리가 있는 학생들이 전화 한 통으로 쉽게 상담사와 연결될 수 있도록 번호를 적극적으로 알리는 등의 개선책이 담겨 있었습니다.

보고서는 “펜실배니아 학우의 표정(Penn Face)”도 잠재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언급했습니다.”펜실배니아 학우의 표정(Penn Face)”이란 아무리 지치고 힘들고 슬퍼도, 찡그리지 않고 긍정적인 마음가짐과 밝은 표정을 잃지 않는다는 일종의 생활 지침입니다. 모두가 다 웃고 좋은 일만 말하는데, 나만 찡그린 얼굴로 힘들다고 털어놓기란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뭔가 나만 뒤쳐진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사실 힘이 들 때는 때론 누군가에게 힘들다는 사실을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한결 후련하고 위로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펜실배니아 학우의 표정(Penn Face)”과 같은 학내 문화는 학생들로 하여금 힘든 일을 주변에 털어놓기를 주저하게 하고 있습니다.

펜실배니아대학 말고도 여러 명문대학들이 비슷한 문제를 겪었습니다. 지난 2003년 듀크대학은 특히 여학생들이 모든 면에서 완벽하기를 요구받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하다는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학교 성적, 외모는 물론 재능과 성격까지 완벽해야 한다는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학생들을 더욱 옥죄는 건,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그 목표를 위해 열심히 무언가를 하는 티가 나면, 소위 쿨하지 않은 것처럼 비춰질지 모른다는 걱정입니다.

스탠퍼드대학에서는 이런 상황을 오리 신드롬(Duck Syndrome)이라고 부릅니다. 수면 위에 유유히 떠 있는 오리가 물 속에서 쉴 새 없이 물갈퀴질을 하는 데 빗대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끝없이 노력해야 하는 학생들, 잠깐이라도 노력을 게을리하면 뒤쳐질지 몰라 불안해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표현한 겁니다.

펜실배니아대학 학생들의 상담을 총괄하고 있는 윌리암 알렉산더(William Alexander)는 요즘 학생들이 예전과 확실히 다르다고 말합니다.

아주 작은, 분명 대단치 않은 실패나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잖아요. (예전 학생들이라면) 아이고, 이번에는 미끄러졌네, 다음 번에 더 잘해야지, 하고 말 일들 말이죠. 요즘의 몇몇 학생들은 그런 흔한 실수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여요. 마치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말이죠.

SNS, 헬리콥터 부모…나의 행복을 판단하는 타인

‘내가 왜 여기 있는가?’라는 존재론적 물음에 늘 뒤따르는 것이 ‘나는 얼마나 잘 하고 있나?’라는 질문입니다. 1954년 사회심리학자 페스팅거(Leon Festinger)는 우리가 남들과의 비교를 통해 우리의 가치를 가늠한다는 사회비교이론(social comparison theory)을 내놓았습니다.

오늘날 소셜미디어는 이 사회비교이론을 적용할 만한 상황을 말 그대로 극대화시켰습니다. 우선 소셜미디어에 올라오는 사진, 글들은 일상을 그대로 담아낸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가공을 거친 것들입니다. 더 예쁘게, 더 밝게 꾸며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여기에 스마트폰을 비롯해 모바일 기기로 소셜미디어에 늘 접속해 있는 우리는 친구들의 근황을 분 단위, 초 단위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나와 비교할 거리가 끝없이 제공되는 셈이죠.

코넬대학에서 학생 상담센터를 운영하는 일스(Gregory T. Eells)는 “다른 친구들은 나처럼 고생하지 않고 힘들지도 않다”는 잘못된 생각을 키우는 데 제일 큰 영향을 미치는 게 소셜미디어라고 생각합니다. 상담 중에 자기 말고 다른 모든 학우들은 행복해보인다는 말을 하는 학생들에게 일스는 언제나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교정을 걸을 때마다 학생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 저 친구는 병원에 갔다 오는 길일지 모르고, 저 친구는 식이 장애로 고생했을지 모르고, 또 저 친구는 항우울제 처방을 받고 약을 먹고 있을지 모른다고 말야. 내 직업이 상담을 해주고 마음을 치료하는 사람이잖니? 내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사람들은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한없이 행복하고 성숙하거나 심리적으로 단단하지 않아.

펜실배니아대학에서 학생 정신건강 위원회를 이끌었던 소아정신과 전문의 로스타인(Anthony L. Rostain) 박사는 학생이 이미 수치심을 느끼고 있을 때 섣불리 비교의 잣대를 들이대는 경우가 가장 나쁘다고 말합니다. 울고 싶은데 뺨 때리는 격으로 안 그래도 불안한 학생에게는 “너는 그것밖에 안 돼”라는 잔혹한 선고처럼 들릴 수 있다는 겁니다.

“여기서 수치심이란 스스로 큰 결함이 있다고 느끼거나 완벽에는 한참 모자라다고 느끼는 감정을 말합니다. 수치심에 시달리는 학생들은 더 잘 할 수 있는데 아직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대신, 난 원래 실력이 부족해서 해봤자 안 된다고 좌절합니다. 이번 일은 잘 안 풀렸지만 다음 번엔 더 잘 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격려하는 대신, 내 인생은 완전 꼬여버린 실패한 인생이라고 단정해 버립니다.

미국에서 부유한 계층의 지나친 교육열과 성적에 대한 과도한 집착, 그로 인해 나타난 부작용들은 여러 차례 논란이 됐습니다. 하지만 최근 학생들의 잇단 자살은 논쟁에 새로운 불을 지폈습니다. 지난 3월 허핑턴포스트는 머리기사의 제목을 다음과 같이 달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대학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 아이들에게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걸까?

미국의 영어 표현 가운데 헬리콥터 부모, 혹은 헬리콥터 양육이란 말이 있습니다. 우리말로는 극성 부모로 번역되기도 하는데, 마치 헬리콥터처럼 자식 곁을 늘 맴돌며 아이에게 문제가 생길 때마다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주는 부모를 말합니다. 헬리콥터 부모 아래서 자란 아이들은 당연히 자립심이 없고 소위 맷집도 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혼자서 낯선 상황에 부딪혀보고 문제를 해결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죠.

완벽주의에 사로잡혀 자식에게 지나친 기대를 갖고, 아이가 다 클 때까지 응석받이처럼 키우는 잘못된 양육법은 성공에 과도하게 집착하면서 작은 실패도 용납하지 못하는 청소년 세대를 만들어냈습니다.

2002년부터 스탠퍼드대학에서 10년 동안 신입생 생활처장을 맡아 온 리스콧하임스(Julie Lythcott-Haims) 교수는 오랫동안 이 새로운 세대의 청년들을 바로 곁에서 관찰해 왔습니다. 아주 간단한 질문에도 답을 찾지 못하면 크게 당황하는 학생, 자기가 정말 무얼 하고 싶은지 모르는 학생들을 수도 없이 만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학생들이 자기가 무슨 일을 했다, 어떤 상을 받았다, 공부를 얼만큼 잘했다고는 말 잘 해요. 정말 다들 대단하죠. 그런데 너는 어떤 사람이었냐는 질문에는 잘 대답을 못해요.

리스콧하임스 교수를 더욱 놀라게 한 건 학부모였습니다. 자식을 대학교까지 보내놓고도 늘 전화로 하루 일과를 다 들어야만 마음을 놓는 부모들이 늘어났고, 아예 전화로는 마음이 안 놓이는지 캠퍼스에 나타나서 수강신청하는 걸 도와주고 지도교수를 만나러 다니는 부모들도 더러 봤습니다.

이런 도가 지나친 부모의 간섭을 두고 이제는 헬리콥터 부모 대신 잔디깎기 부모라는 신조어가 생겨났을 정도입니다. 헬리콥터처럼 자식을 따라다니는 데 그치지 않고, 아예 잡초도 다 뽑주며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주려는 부모를 일컫는 말입니다.

어린이들은 부모의 사랑으로 튼튼하게 자라나야 합니다. 부모의 사랑에 숨 막힐 듯한 부담을 느껴 오히려 나약해진다면 그건 큰 문제입니다. 우리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도 스스로를 지키지 못할 만큼 나약하다면 이건 우리 모두가 고민해야 할 문제 아닐까요?”

리스콧하임스 교수가 2005년에 쓴 글의 일부입니다. 학생들은 자기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고 자존감이 낮았으며, 좀처럼 스스로 결정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작은 실패와 시련에도 특히나 힘들어했는데, 이는 겉으로 드러나는 성적, 성격에 지나치게 집착한 부모의 양육 탓에 스스로 무언가를 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을 인정하고 되찾은 삶

글 앞머리에서 자살을 시도했던 캐서린의 뒷 이야기를 잠깐 덧붙이자면, 그녀는 다행히도 살아남았습니다.

캐서린은 가까운 친구, 가족에게 마지막 편지를 쓰고 그 뭉치를 책상에 차곡차곡 쌓아놓았습니다. 캐서린의 룸메이트는 매디슨 홀러란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 캐서린이 밥도 잘 먹지 않고 이상한 편지를 자꾸 써놓는 것을 보며 이야기 좀 하자며 캐서린과 대화를 시도했습니다. 그녀는 자기도 자살을 생각했으나 지금은 다 털어냈다며 룸메이트가 보는 앞에서 써놓은 편지 다발을 휴지통에 버렸습니다.

하지만 몇 시간 뒤 캐서린과 휴지통의 편지는 사라져 있었고, 룸메이트는 이 사실을 기숙사와 학교에 알렸습니다. 신속한 조치로 목숨을 구한 캐서린은 즉시 입원 치료를 받게 됐습니다. 수많은 상담을 받고, 비영리단체 액티브 마인드(Active Minds)에서 인턴십을 한 이후에야 캐서린은 복학할 수 있었습니다.

캐서린의 부모는 이 취재를 했을 때 모든 것이 사실이라고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캐서린이 겪어야 했던 아픔과 지금의 캐서린에 대한 생각을 물었을 때 “우리는 캐서린을 정말 사랑하고 언제나 응원한다”는 짧은 답변만 남긴 채 나머지는 캐서린이 스스로 이야기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캐서린이 다시 찾은 자기 자신과 함께 설계하고 있는 삶은 기존의 모습과는 꽤 많이 달라 보입니다. 부모님의 뜻에 따라 들었던 보수적인 기독교 동아리는 탈퇴했습니다. 대신 자기의 성적 취향을 솔직히 마주하고 나서야 깨닫게 된 레즈비언으로서의 정체성을 인정 받고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동성애를 지지하는 기독교 동아리에 가입했습니다. 펜실배니아대학 학생들이 정신 건강 문제를 비롯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편하게 나눌 수 있는 블로그 펜시브(Pennsive)의 발기인으로도 참여했습니다.

펜실배니아대학 측에서도도 올 가을부터 동료 학생들끼리의 상담 프로그램을 개설하는 등 새로운 정책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그 가운데 “못생긴 셀카 올리기 캠페인(ugly selfies)”은 호응이 상당했습니다. 소셜미디어에 흠 잡을 데 없이 완벽한 모습만 올리는 세태를 풍자해 더 솔직하게 있는 모습 그대로를 드러내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캠페인입니다.

전국적으로도 10개 대학의 심리학자, 상담사들이 모여 총 90개 학교에 상담 센터 설립을 추진하는 등 학생들의 정신 건강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캐서린이 치료를 받은 뒤 인턴으로 일했던 액티브 마인드는 15년 만에 전국 400여 학교에 지부를 둔 조직으로 성장했습니다. 캐서린은 여전히 펜실배니아대학 지부의 인터넷 사이트 담당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캐서린의 손목에는 아직도 잘못된 결정으로 남은 상처가 있습니다. 캐서린의 손목시계는 그 상처를 가리는 용도이기도 하죠. 하지만 캐서린은 더 이상 진짜 자신의 모습을 숨기려는 노력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자신이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부모님께 말씀드렸고, 부모님도 천천히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중간고사에서 60점을 받아 캐서린을 곤혹스럽게 했던 미적분학 수업에서도 열심히 노력한 끝에 A- 학점을 받았습니다. A-, 예전 같으면 최고가 아니라 속상해하고 끙끙 앓았을지 모를 학점이지만, 이제 캐서린은 다릅니다. 성적과 미래에 대해 한결 여유를 갖게 됐죠. 수학 대신 캐서린은 심리학을 전공하는 게 어떨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직 정해진 게 없는 불확실한 상태를 예전의 캐서린이라면 아마 못 견뎠을 겁니다. 하지만 이제 캐서린은 훨씬 강해졌습니다.

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에 이리저리 부딪혀봐야죠. 아직 몰라도 되는 게 있고, 부딪혀보며 직접 익혀볼 수 있는 시간과 여유가 주어졌다는 건 감사할 일이에요.

원문 : New York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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