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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진지빨고 세상을 보는 이유

  • 입력 2015.07.08 14:30
  • 기자명 BIG 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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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진지를 빠는가


전에 활동하던 연구소에서 10여 편의 칼럼을 썼다. 가진 것도 없으면서 가진 자들의 기득권에 자발적으로 추종하는 일부 20대의 '기득권 코스프레'를 우려하였고, 싸가지와 버르장머리를 들먹이면서 자신의 논리적 결함, 천박한 지적 수준을 만회하려는 사람들이 줄었으면 좋겠다는 취지에서 ‘싸가지 없는 민주주의’를 주장하였다.
또한, 복지수혜의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해 아직 농경시대에 머물고 있는 가족의 개념을 재정립할 것을 외쳤으며 취업이나 공무원 채용에서 역차별 받는 서울 젊은이들을 위해 수도권 역차별을 역설하였고, 이 시대 마지막 남은 '공정한 사다리'인 행정고시를 지키기 위해 펜을 들었다. 세계평화를 위한 비핵화를 주장한다지만 실상은 핵 헤게모니를 틀어쥐고 있으면서 자신들의 패권체제를 유지하려는 핵 강대국들의 기만행위를 비난하기도 했다. 그리고 정치적 논리가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는 미명하에 국제 스포츠계의 부당한 권력관계와 지구촌의 인권침해와 인종차별에 침묵하는 올림픽의 위선을 꼬집었다.
이외에도 여성, 대학, 법, 언어 문제 등 다방면에 걸쳐 최대한 객관적인 프레임을 유지하면서 문제를 비판하고 바람직한 대안을 제시하려 했다. 그러다보니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나는 무엇을 위해 비판적인 시각에서 문제를 바라보려는가? 지나치게 부정적이고 심각하게 판단하는 것은 아닌가?




어차피 재미있으면 장땡이니 진지빨지 마라?
'국제시장'이나 '엑소더스'같이 민족 간의 과거사 문제, 한 국가 안에서 세대와 이념 갈등을 촉발시킬 수도 있는 소재가 영화에 표현되어 각 집단 간의 대립이 심화되어가는 요즘이다. 갈등과 대립에 신물이 난 누군가는 '영화는 영화로만 보자고 한다. 하지만 그 말에는 왜 사람들이 ‘한낱 영화’를 가지고 다양한 집단이 치열하게 대립하는지, 대립의 원인을 제공한 영화 속 역사적 사건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깊이 알고 싶어 하지 않는 무관심이 깔려 있다.


영화 <연평해전과>과 <소수의견> 포스터


객관적 조망자를 빙자한 무관심, 냉소주의는 이성을 통해 문제의 원인을 좀 더 깊이 보고자 하는 사람들을 웃음거리로 전락시킨다. 만들어진 과잉합의는 더 깊은 갈등만을 예고할 뿐이다. 스포츠도 스포츠로만 즐기자는 의견이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잉글랜드 프로축구 1부 리그 ‘EPL’(England Premier League)은 외국의 자본과 용병의 과도한 유입으로 인해 자국 유망주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또한, 지역 사회의 뿌리 깊은 연고의식과 순수한 팬심으로 유지되던 구단들은 팀의 전통과 정체성이 외국인 갑부 구단주의 입맛대로 순식간에 바뀌었다. 해당 지역 골수팬들은 시장논리에 어느덧 이전보다 더 높은 비용을 지불해야만 고장 팀의 경기관람을 소비할 수 있다.
이렇듯 그럴싸해 보이는 외적인 성장의 이면에는 어두운 면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그 이면을 들추어 내는 데는 적지 않은 비아냥거림을 감수해야 한다. 스포츠를 이렇게 정치경제학적인 시각으로 분석한 기사에는 으레 “어쨌든 EPL이 제일 재미있으니 장땡이다.” 따위의 댓글이 수두룩하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이면을 들추는 데는 귀찮으니 진지하게 생각하지를 않는다.
지적한 문제에 대해 갈등과 반론을 부담스러워하는 풍토 속에 정상적인 비판과 대화의 순기능은 상실된다. 그 자리를 엔터테인먼트적 요소,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떠하냐?” 식의 문화상대주의를 빙자한 방관, “그런다고 어쩔 건데?”류의 냉소주의가 메운다. 그저 "그냥 나에게 이득이면 그만인 거고, 내가 볼 때 재미있으면 장땡"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재미와 흥미라는 쾌락적 요소에 결국 진리에 도달하는 방법과 우리가 조만간 직면해야 할 사회문제는 등한시된다. 사실에 기반을 둔 정교한 논리와 날카로운 비판으로 옳고 그름, 정의와 부당함을 치밀하게 가려야 할 문제들이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대세 앞에 그러한 행위는 “정치적이다, 혹은 아는 체한다.”라는 욕을 먹기 십상이다. 한마디로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소위 진지빠는 사람은 ‘성가신 존재’, ‘가까이하기 싫은 사람’으로 취급받고, 심지어 ‘X선비'라는 저급한 표현도 감수해야 한다.
문제의 어두운 이면을 애써 외면한다고 해서 장차 우리가 당면할 잠재적 사회 문제들이 당장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마치 이것은 사자가 눈앞에 있는데 도망가거나 맞서기는커녕, 그러한 현실을 회피하고 싶어서 머리만 땅 속에 처박고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부정하려는 타조의 습성과 같다. 눈을 감고 위기를 애써 부정한다고 해서 눈앞의 사자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럴 때일수록 나는 더욱 ‘진지빨고’ 세상을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지빨길 거부하는 집단, “우리는 너무나 안녕하다.”
이성이 통하는 보통 시민사회에서 사람들은 논리나 팩트를 충족하는 주장으로 상대방을 설득한다면 언젠가는 내 주장의 반대자들도 수긍할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미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성과 논리의 잣대로 누군가를 그럴듯하게 설득하기는 몹시 어렵다. 세상이 어찌 돌아가든, 예를 들어 우리 사회에서는 언제부턴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 때문에 정부의 복지 지출이 축소되고 최저임금이 동결되거나 누군가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쓰고 우리 모두가 매스 미디어의 횡포에 맞서 궐기해야 한다고 외쳐도 눈 하나 깜짝하기는커녕 그런 자들을 염세주의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영화 <브이 포 벤데타> 中


자신은 지금도 인생을 충분히 즐기고 있다고 생각하는 자칭 ‘너무나 안녕한 사람들’을 주위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안녕한 사람들’이 정말 풍족한 삶을 살고 있거나 이미 달관하여 분수에 맞게 안분지족하는 사람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반면, 시대의 변화가 가져오는 위기에 둔감하거나 거시적인 담론 혹은 사회 문제에는 전혀 관심이 없거나, 어떤 무한경쟁시대가 도래해도 자신의 노력과 재능만으로 자기는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는 ‘지나친 자조주의자’ 중 하나일 가능성도 있다. 이유가 어찌되었건 후자 유형의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사회가 이러이러하니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당위적 슬로건에 진저리를 친다.
작년 대학가를 중심으로 “여러분은 안녕하십니까?” 대자보 열풍에 맞서 “우리는 안녕하다.”로 응수하던 무리들이 전부 다 골수 보수주의자는 아니다. 그들 중 누군가가 정교한 논리와 만만치 않은 식견으로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의 주장을 일목요연하고 진지하게 반박한다면야 의견은 다를지언정 그 사람은 충분히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러한 반론은커녕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에서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의 하소연이 왜 분출되었을까에 대해 심도 있게 생각해 보지도 않고, 그들이 진지빨고 세상을 보는 행위를 그저 치기 어린 한 때의 철부지 행동으로 단정지어버린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일 것이다.
나의 이러한 주장이 누군가에게는 소위 잘난 체 하는 ‘깨시민 코스프레’를 하는 것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진지한 주장에 대해 저급한 비아냥거림으로 반응하는 것은 ‘하나의 주장이 누군가의 타당성 있는 반론으로 인해 더 나은 방향으로 수정되고 결국 사회는 진보하게 된다.’는 정반합적 사회의 발전경로를 무시하는 반이성적 행위다. 그것은 민주주의를 탄생시킨 인류 정신문명에 대한 모독이다. 물론 거만한 태도로 지나치게 아는 체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인간으로 태어나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 대해 생각을 안 하고 사는 것’ 역시 그다지 당당하게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니다.




진지빨며 끊임없이 따져라, 요구하라, 개겨라
스물아홉, 주변으로부터 번듯한 직장과 현실적인 인생관을 갖추길 기대받는 나이이다. 누군가는 이제 뻘소리 그만하고 철 좀 들라고도 한다. 철 들라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부당함에 대해 무감각해지는 것이 ‘철 든다’는 것이라면 정중히 거절하겠다.
사회의 때 묻은 관행들에 익숙해져 버려서 젊을 적 순수한 열정을 잊은 채 변절해버린 일부 386 선배들처럼 나도 어쩌다 출세의 동아줄을 잡을 기회를 얻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리하여 먼 훗날 잘 나가는 어른이 되어 시대의 요구에 둔감해 버린 흔하디 흔한 아저씨가 되어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현실이라는 명분으로 잘 포장해놓은 불의보다는 내 양심에 귀 기울이고 싶다. 현실이라는 날 선 사시미 앞에서 갓 내놓은 활어처럼 파닥파닥 거리며 보란 듯이 개기고 싶다.


원문 : 낙서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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