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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용석 씨, 저는 사회적 고자입니다

  • 입력 2015.07.05 18:24
  • 수정 2015.09.09 11:02
  • 기자명 백스프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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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강용석 씨는 JTBC 프로그램 <썰전>에서 미 대법원이 동성결혼에 합헌을 결정한 사건에 대해 그런 말을 하셨지요.

가족이란 국가적 산물이고 생산의 한 단위다. 가족의 중요한 역할은 재생산이다. 자식을 낳고 사회를 존속하고 이어 나가는 게 중요하다. 자식을 낳아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인데 동성 부부는 생물학적으로 재생산이 불가하다. 인구문제와 같은 심각한 위기에 처할 것이다.

이 사회의 고지식한 어른께서 하신 흔한 성 소수자 혐오발언은 이제 익숙할 만도 한데, 이번 발언은 조금 다른 의미로 속상했습니다. 어쩌면 저는 치사하게도 이번 이야기를 제 성 소수자 친구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제 이야기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당사자가 된 것이지요.


저는 사회적 고자입니다
저는 일찍이 결혼을 단념했습니다. 출산은 더더욱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혼자 사는 집이 외로워 고양이 한 마리와 같이 살까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고양이를 키울 생각을 하자마자 밀린 학자금 대출금, 매달 나가는 월세, 전기세, 공과금. 그리고 차비와 식비 등 생활비가 먼저 떠올랐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이 사회에서 제 몫 이상을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제가 생물학적으로 생식능력이 있는지 확인해 본 적은 없지만 저는 사회적으로는 생식능력을 상실했습니다.


시키는 대로 다 했습니다
. 불만은 많았지만 그래도 저는 시키는 대로 따르는 것 외에 달리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모자란 등록금을 채우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다 보니 졸업이 늦어졌습니다. 그 흔한 스펙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습니다. 취업이 제대로 될 리 없었습니다. 저 말고도 훌륭한 친구들은 많았으니까요.
저는 사회의 한구석에라도 속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너무 힘든 일이었습니다. 두려움과 걱정 속에 일 년을 살다 보니 저는 사람을 피하고 있었고 우울증약을 먹고 있었습니다. 매일 아침 나는 계속 살아가도 괜찮은 걸까?’ 생각했습니다.
눈높이도 낮췄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구한 첫 직장에서 저는 한 달에 백만 원을 받으며 일했습니다. 최저임금도 되지 않는 돈이었습니다. 그 돈을 받고 주말도 없이 하루에 열여섯 시간 정도 일했습니다. 초과근무수당 같은 건 없었습니다. 과로가 반복되니 자꾸 병에 걸렸습니다. 아침에 잠깐 시간을 내어 약을 먹고 하루를 버텼습니다. 그래도 저는 기뻤습니다. 일을 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죠. 강용석 씨의 말 대로 저는 '다 줄 생각'을 하고 일했습니다. 그리고 석 달 뒤 그 회사는 폐업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며 몇 년을 버티고 버텼습니다. 이제 저는 처음으로 친구들에게 이제 먹고살 수는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운이 좋았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아직도 제 주위 많은 친구들과 후배들은 제가 이전에 겪었던 일들을 겪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스스로 세상을 저버린 친구들도 여럿 있습니다. 우리에게 자살은 그리 낯선 풍경이 아닙니다. 제일 절망적인 것은 이 상황이 더 나아질 기미가 없다는 겁니다.


국가는 우리의 콘돔입니다
얼마 전 KBS에 그런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청년이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지속적인 경제성장이라고 답한 청년은 23%였습니다. 반면 다 무너뜨리고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고 답한 청년은 42%에 달했습니다. 우리는 경제 성장이라는 허울 좋은 구호가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아무것도 없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몇 해 전 일본 내각부(内閣府)에서 일본 국민 생활 만족도 조사를 실시했는데, '현재 생활에 만족한다'고 답한 20대 비율이 무려 70%를 넘었습니다. 일본의 황금기였던 1970년대에 20대 청년들의 만족도가 50%에 불과했던 것에 비하면 훨씬 높은 수치입니다.


일본은 이들을
사토리 세대(さとり世代)’라고 부릅니다. ‘사토리는 득도, 깨달음을 의미합니다. 일본의 장기불황 속에서 성장한 이들은 우리나라 청년들처럼 결혼과 양육에 큰 관심이 없습니다. 욕망을 억제하고 소비를 줄여가며 자급자족하는 세대입니다. 이들이 행복한 이유는 바로 아무런 희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사토리 세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족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이유는 일본의 사회안전망이 우리나라보다는 낫기 때문입니다. 직업을 구하지 못해도 아르바이트로 최소한의 생계는 꾸릴 수 있습니다. 먹고 사는 걱정이 덜 합니다.
우리나라는 며칠 전 최저임금위원회 협상 테이블에서 사용자 측이 30원 인상안을 제시했다고 합니다. 물가는 일본과 다를 게 없는데 최저 임금은 절반 수준입니다. 아르바이트 노동자가 힘들다고 이야기하면 편의점 사장은 더 힘들다고 반박합니다. 그리고 이 논의에서 프랜차이즈 본사는 빠져있습니다. 결국, 잇속을 챙기는 건 그들인데 말입니다.
취업도 힘들고 아르바이트를 해도 생계가 해결되지 않는 청년들에게 어른들은 또 하나의 과업을 내려줍니다. 새로운 노동자가 공급되어야 하니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라고요. 하지만 우린 당장 오른 버스비에 숨이 막힙니다. 무언가 오르면 무언가를 포기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린 각자의 옥탑방이나 지하방에서 섬처럼 지냅니다. 가장 먼저 정리할 수 있는 건 오늘 저녁밥이 아니라 친구와의 약속이니까요.


직장에서
임신한 여자가 어떤 취급을 받는지 알면서도, 본인들도 임신한 여자들에게 이기적이라며 따가운 눈총을 보내면서도 요즘 여자들 결혼하지 않고 애를 낳지 않는다고 혀를 찹니다. 도대체 이 지옥에서 우리는 어떤 위치를 잡아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습니다.
친구와의 술자리에서 저는 사회적 고자라고 이야기했더니 친구가 응수합니다. 그러면 국가는 우리의 콘돔이라고. 우린 이런 자조적인 농담을 던지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해일이 몰려오고 있는데 동성애나 반대하고 계시겠습니까
?강용석 씨가 전 국회의원으로서 방송인이자 정치인으로서 이 사회의 많은 문제에 관심 갖고 싶으신 것 제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정말 관심 가져야 할 부분은 이제 1에 수렴한 우리나라의 출산율이며 최근 15년 동안 1/3이나 줄어버린 초등학생 입학생 숫자이며 해마다 늘어가는 청년 학생 자살자입니다.
문제가 이렇게 많이 산적해 있는데 동성애 때문에 인구 위기가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건 너무 궁색한 변명 아닙니까? 그것도 이혼 전문 변호사께서 말입니다. 그리고 혼인을 허용하지 않으면 동성애자들이 이성과 살며 아이를 낳을 것이라는 상상력 또한 너무 빈곤한 것 아닙니까?


저는 강용석 씨가 방송에서 잘 숨기고 포장했음에도 불구하고 혹시 동성애자들은 뜯어고쳐야 할 존재며 치유가 가능하다고 믿는 호모포비아가 아닐까 걱정이 됩니다
.
아무쪼록 강용석 씨와 이 땅의 많은 어른들이 부디 동성애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대신 이 사회에 산적한 진짜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이길 부디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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