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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밤 우리를 위로하는 '그것'의 역사

  • 입력 2015.07.02 12:11
  • 수정 2019.07.30 09:55
  • 기자명 임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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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이미지를 보는 순간 당신 머릿속에 어떤 멜로디가 물 흐르듯 재생되었다면 너, 나, 우리, 같아, 생각. 바로 시작하자.



포르노의 치명적인 매력 - 감출수록 드러난다
대영제국 빅토리아 시대(1837년~1901년), 전설로만 존재하던 거대 문명이 발견된다. 하늘이 문화 전성기를 누리던 인류를 시기해 천벌을 내렸다는 전설의 도시. 폼페이다.


영화 <폼페이> 포스터


고고학자들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드디어 고대 로마인들의 찬란한 문화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 온 것이다. 그.러.나. 고고학자들의 기대는 첫 폼페이의 유물이 발견되면서부터 산산조각이 난다. 당시 폼페이 유물 중 처음으로 발굴된 대리석상은 로마의 목신 ‘판’과 염소가 사랑을 나누는(?) 작품. 신과 동물이 섹스라니, 고고학자들은 신성모독과 다를 바 없는 이 작품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이후 발견되는 유물들 역시 죄다 이런 것들이었다. 아예 다시 덮어버려야 한다는 의견이 나올 정도였으니 당시의 분위기가 어떠했는지 짐작이 간다.

폼페이에서 발굴된 평범한 대리석상. 크기가 남다르다. 물론 유물 크기.


폼페이의 벽화. 크기가 남다르다. 물론 그림 크기.


아니, 그걸 예술로 받아들여야지 왜 그렇게 오바를 떠는 건데? 하는 독자분이 계실 것 같아 설명 드린다. 당시 시대상을 들여다보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빅토리아 시대에 ‘성’은 매우 신성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때문에 섹스는 오로지 종의 번식을 목적으로만 ‘허용’되었는데, 심지어 남성의 정자 수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정해져 있다는 인식이 있어 함부로 낭비하지 못하도록 자위행위도 엄격히 금지했을 정도였다. 여성은 말할 것도 없다. 당시의 여성들은 너무 에로틱하다는 이유로 발목을 노출하는 것조차 제한되어 있었다. 뭐 이거는 지금도 이런 나라들이 있으니 기이할 것까진 없다 하겠다.


와 저 여자 아킬레스건 봐. 완전 내 스타일이야.


무튼, 고고학자들은 고심 끝에 이 유물들을 숨기기로 한다. 그들은 나폴리 근처에 비밀박물관을 세운 뒤 유물들을 몽땅 모아두고 자물쇠로 단단히 걸어 잠근다. 그리고 일부 상위 계층의 남성들만 볼 수 있도록 허용했는데 이게 바로 포르노의 시초다. 입구에 휴지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전해지는 기록이 없다.


너 어제 혼자 벽화딸 치고 왔지?!


아이러니하게도 포르노는 인류가 성욕을 해소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금기시 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개념이다. 실제로 고대 이집트 유물을 보면 폼페이는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노골적인’ 작품들이 상당수 존재한다. 그럼에도 그 시대 작품들을 포르노라 부르지 않는 이유는 당시엔 이런 것들이 은밀히 즐겨야 할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포르노라는 말 자체가 1857년 영국 의학사전에 처음으로 등재되며 생겨난 개념이었던 만큼, 이 이전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몰래 보는’ 포르노의 개념은 없었다고 한다.

메소포타미아 유물. 보아라 코를 파면서 즐기는 저 여유로움을.



신라시대 토우. 우리는 왜 선조들의 저 훌륭한 DNA를 물려받지 못하였는가.



찬델라 왕조(950~1050)에 지어진 카주라호 사원 조각상.



인도의 국부 간디는 이 조각상을 보고 ‘부숴버리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포르노, 우리도 좀 같이 보자!
하지만 포르노가 언제까지고 그들만의 보물일 수는 없었다. 금지된 것에 대한 욕망은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포르노가 일파만파 퍼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비밀박물관이 터졌냐고? 아니다. 1857년, 영국에서 제정된 ‘외설출판물 금지법령’이 바로 포르노 대중화의 시발점이 되었다. 외설출판물 촉진법도 아니고 금지법이다. 대중으로부터 포르노를 ‘격리’시키겠다던 이 순진한 법안은 오히려 대중의 욕망을 부채질하게 된다. 이름부터 ‘야릇한’ 외설출판물 금지법령이 생겨나자 사람들은 대체 저게 뭔데 저렇게 막는 거야? 하면서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법안의 반향은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사람들이 ‘야 이 놈들아 나도 같이 보자!’ 하며 개떼 같이 달려드니 그 결과는 뻔한 것이었다.
그렇다. 포르노를 금지하기 위해선 그에 맞는 명분이 있어야 했고, 명분을 만들기 위해선 토론을 해야 했고, 토론을 하기 위해선 포르노가 무엇인지 사람들에게 알려야 했다. 포르노를 사회로부터 격리시키기 위한 움직임이 오히려 대중화에 힘을 실어준 셈이다. 억압하면 할수록 그 영향력을 폭발적으로 키워온 것이 바로 포르노라는 장르였다.
이후 20세기를 맞이한 포르노는 사진 기술, 영상 기술에 힘입어 그 퀼리티가 한층 진일보하게 된다. 특히, 1900년대 초반 사진 포르노가 유행하던 시기엔 처녀가 순결을 잃는 스토리의 포르노 콘텐츠가 상당한 인기를 끌었는데 이 수요가 급증하다 보니 이 콘텐츠만을 다루는 포르노 전문 판매업자가 생겨나기도 했다.


하앍하앍. 사진으로 가버렷!!



1915년에 촬영된 영화 <프리라이드>. 무려 야외에서의 후배위 섹스신이다.


외설출판물 금지법령이 ‘1차 포르노혁명’의 신호탄이었다면, 1970년대 비디오 기술의 등장은 ‘2차 포르노혁명’을 불러왔다. 집집마다 비디오 플레이어가 보급되면서 미국의 성인용 극장 900여 곳 중 약 80%가 문을 닫았고, 포르노 유통시장의 판도는 완전히 뒤바뀐다. 생각해 보라. 집에서도 충분히 내 몸과 마음을 위로할 수 있는데 무엇하러 극장에 가겠는가.


참으로 정직한 제목


1980년대엔 캠코더가 등장했는데 이 시기에 1년에 제작되는 포르노가 미국에서만 수만 편에 달했다. 영화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제작이 용이하다 보니 일반인들의 자작 포르노가 무수히 쏟아져 나왔다. 당시 이를 두고 포르노 영화 제작자들이 ‘영상 지식이 없는 이들이 포르노를 마구잡이로 찍으면 산업의 질이 떨어질까 걱정된다’며 우려하기도 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대중은 엉성한 영상물에 담긴 리얼리티에 더 열렬히 반응했다. 지금도 아마추어 배우들로만 포르노를 제작하는 회사가 적지 않은 걸 보면 그 수요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듯하다.
1990년대 이르러 가정마다 컴퓨터가 보급됐는데 포르노의 대중화를 넘어 글로벌화를 알리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그때부터 우리는 컴퓨터 앞에 앉아 언제 어디서든 미국, 유럽, 일본, 동남아 등 세계의 미남 미녀들과 함께 한밤을 호흡할 수 있었다.
PC 보급 이후 포르노가 어떤 식으로 유통되고 또 진화해 왔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여러분들 모두 경험으로 잘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나 때는 흑백 500원, 칼라 1,000원이었다. CD는 700mb 기준 유모 2,000원, 노모 3,000원이었다. 굳이 공 들여 찾지 않아도 어느 반 몇 번째 줄에 앉은 학생이 어떤 스타일의 작품을 다루는지 하는 정보가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왔다.


8반 애미나이가 오늘부터 기획물도 취급한다고 합네다





포르노의 무덤이 된 대한민국
영상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며 포르노는 한 단계 더 진화하기에 이른다. 사실상 유모인지 노모인지가 의미 없을 정도로 화질이 떨어지던 2000년대 초반 리얼플레이(.real) 영상물 시대에서 지금의 720p, 1080p 고화질 영상(.avi), 블루레이 기술(.mkv)에 이르기까지 불과 십여 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으니 그 발전 속도는 실로 눈부셨다. 그리고 이에 발맞춰 포르노 제작 회사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기 시작했고 포르노 산업의 가치는 매년 최고치를 경신한다.


오늘날 미국과 일본의 포르노 산업 가치는 천문학적이다.


우리나라도 IT 강국답게 인터넷 라이브섹스 성인사이트가 유행한 적이 있다. 때는 2006년, 아기자기한 닉네임을 단 포르노 자키들이 나와 시청자들과 대화를 나누며(무려 쌍방향커뮤니케이션!) 섹스를 하는 콘텐츠였는데, 안타깝게도 사법 당국의 단호박 같은 대처에 먼지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인사드리자. 이것 때문에 사법처리까지 받으신 분이다.




이제는 흔적만 남은 용산 굴다리. 그분들은 늘 저 어둠 속 어딘가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미국, 일본, 독일 등 대부분의 선진국이 포르노의 저작권을 인정하고 있는데 반해 한국은 그렇지 않다. 한국의 경우 저작권 인정은 커녕 포르노물의 제작과 배포 자체가 법적으로 엄격히 금지돼 있다.


- 형법 제243조(음화반포 등에 관한 법률)

- 형법 제244조(음화제조 등에 관한 법률)


물론 선진국이라 해서 모든 포르노물을 인정하는 건 아니다. 아동 포르노물의 경우가 그러한데, 미국은 아동 포르노물을 제작, 배포, 소장하는 이에게 무지막지한 징역을 때리는 걸로 유명하다. 실제로 2013년 미국의 한 방송사 사장이 아동 포르노를 소장하다 적발된 사례가 있는데, 법원이 이에 징역 1,000년을 선고했다. 오타 아니다. 징역 1,000년이다.



안녕, 다음 생에 만나요.


한편, 일본은 아동 포르노물에 대해서도 느슨한 정책을 펼쳐 왔는데 그 결과 1980년대 아동 포르노물이 폭발적으로 생산되기도 했다. 그러다 1996년 ‘제1회 아동·청소년 성착취 근절 세계대회’에서 국제사회 및 세계 청소년 인권 단체로부터 맹비난을 받고 그제야 관련 규제를 강화했다.
이즈음 우리나라도 아동 청소년을 보호하자는 취지에서 관련 법률이 제정된다. 이것이 바로 2000년 7월에 제정된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이른바 아청법이다. 다른 나라에 비해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환영할 만한 일이다. 문제는 2011년 9월에 개정된 제2조 5항의 ‘아동·청소년으로 명백하게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이나 ‘표현물’이 등장한 음란물도 처벌한다’는 문구인데 이게 2015년 6월 25일 헌재에서 합헌 판결을 받으며 뭇 성인들의 분노를 샀다. 일본을 포함한 여러 선진국에서 기획물, 코스프레물 등을 쏟아내고 있을 때 한국에선 그걸 보는 것마저 불법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동·청소년으로 명백하게 인식될 수 있는 표현물을 입은 사람이 활짝 웃고 있다


그렇게, 미국과 일본의 포르노 산업이 법 테두리 안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동안 한국 포르노 산업은 서서히 죽어 갔다. 인간은 점점 큰 자극을 원하기 마련이고 그건 한국인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국산 포르노 산업이 죽었으니 이를 어찌할 것인가.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주 예수께서 가난한 자를 구휼하기 위해 우리 앞에 강림하셨듯이 대체제를 찾던 우리에게 한 줄기 빛이 될 그분이 등장한다. 존경하는 마음으로 다 같이 그분의 존함을 소리 내어 불러보자.


우리의 하체를 친일파로 만들어 주신 그분, . . .


2006년 당시 한국 P2P 웹사이트에 유통되는 일본 포르노의 70%를 홀로 유통시킨 전설 중의 전설이다. 우리에게 뿌린 자료만 경찰 기록상 1만 4천여 편에 이른다 하니 가히 본좌라 칭송 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여담으로 김본좌 구속 이후 한국 휴지 회사 10곳의 주식이 뚝 떨어졌다는 이야기가 돌 정도로 그분이 우리에게 끼친 영향력은 실로 어마무시했다. 이 자리를 빌려 그분이 남긴 귀한 말씀을 전해 본다.


김본좌께서 경찰에 끌려가시매 사람들에게 이르길

"너희들 중 하드에 야동 한 편 없는 자, 내게 돌을 던져라."

그러자 경찰도, 형사도, 구경하던 동네 주민도, 고개만 숙일 뿐 말이 없더라.





영상 말고 다른 건 없어?!
포르노는 날이 갈수록 자극적으로 변해 갔다. SM물과 같은 하드코어는 기본이고 근친상간, 강간, 아동물과 같은 반인륜적인 포르노가 성행하기에 이르렀다. 실제로 평범한 포르노보다 그런 변태물이 잘 팔리고 회사 브랜드를 홍보하는 데 효과적이었으므로 포르노 제작 업체들은 보다 열정적으로 자극적인 포르노물을 제작했다.
한편 포르노가 원초적인 욕망을 직접적으로 표현해 낼수록 사람들은 오히려 스토리가 있는 포르노를 찾아나서기 시작했다. 그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각양각색의 기획물(이를 테면, 선생님과 제자, 환자와 간호사 등)이 제작되기도 했으나 이 역시 스토리가 허술하다는 혹평을 면치 못했다.
이쯤 되자 사람들은 영상이 태생적으로 지닌 한계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 모든 것을 보여준다는 것, 이게 바로 영상 포르노물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배우들의 외모, 입고 있는 옷, 성행위를 하는 장소 등 그것이 내 취향이든 아니든 영상물을 보는 사람들은 그 테두리 안에서만 성적 유희를 즐길 수밖에 없었다. 즉, 영상으로 제작된 포르노는 인간에게 보이는 것 이상의 상상 여지를 주지 않았다.




이제 네 귀를 꼴릿하게 해 주마
한편 2010년, 일본에서 아주 흥미로운 콘텐츠가 유행하기 시작한다. 이름하야 ASMR(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 ‘자율 감각 활성화’ 정도로 번역이 되는데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다. 그냥 청각을 통해 우리 오감에 자극을 주는 콘텐츠라고 이해하면 된다. 실제로 들어보면 이상한 잡음의 향연인데, 이게 집중력을 끌어올려 준다고 한다. 독서실의 백색소음이나 공부 못하는 친구들이 애용하던 엠씨스퀘어를 떠올리면 되겠다.


집중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제품들이 우후죽순으로 쏟아져 나오던 시기였다.


실제로 ASMR은 불면증 환자들 사이에서 호평을 받았는데 수면제를 먹지 않아도 이걸 듣다 보면 스르륵 잠이 든다는 사용 후기가 줄을 이었다. 게다가 몇몇 사용자들 사이에서 알 수 없는 쾌감(?)을 느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했는데 청각으로 오르가즘을 느낀다는, 실로 놀라운 경험담이었다.


으잉? 그게 가능혀?


‘청각을 통한 오르가즘’이 의학적 근거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게 뭐 중요한가. 기분이 기모찌하다는데. 일본은 성진국답게 새로운 시장이 열렸음을 직감하고 실험적인 콘텐츠를 쏟아낸다. 귀를 핥는 소리, 볼에 뽀뽀를 해 주는 소리, 감미로운 목소리로 사랑한다고 읊조리는 소리 등이 인기를 끌었다. 이른바 소리 패티쉬, ‘귀르가즘’의 서막이었다.




귀르가즘이 온다

고품격(?) 오디오 포르노 서비스, 말캉


그게 뭔지 궁금하다고? 멀리서 찾을 필요 없다. 지난 5월 한국에서 런칭된 성인 오디오 서비스 ‘말캉’
(http://www.malkang.com/)이 우리나라에도 <귀르가즘시대>의 개막을 선언했다. 전문 배우(성우)들이 각양각색의 꼴릿한 상황에 맞춰 녹음한 서라운드 음향을 듣다 보면 내 몸과 마음이 함께 일어서는 기적을 체험할 수 있다.

오디오 포르노는 영상 콘텐츠의 한계로 지적돼 온 시청자의 상상력 제한과 시공간의 제약까지 해결했다. 심지어 아청법의 위험에서도 자유로우니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한국형 성인컨텐츠가 아닌가.

말캉 '치명적 쇼콜라' 중



한국은 건국 이후 단 한 순간도 포르노 제작, 유포에서 법적으로 자유롭지 못했다. 그렇다고 우리나라에서 포르노가 사라졌는가? 지금 당장 아무 P2P 사이트나 들어가 보라. 발에 채이는 게 포르노다.
포르노의 역사는 성적 유희를 금지한다 해서 그것을 즐기고픈 인간의 욕망이 수그러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인류는 늘 욕망에 순응하며 살아 왔고 기술은 언제나 인간의 욕망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발전돼 왔다. 어떤 시련이 찾아와도 우린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 본 기사는 말캉측의 아무런 지원 없이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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