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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출 때문에 퀴어퍼레이드를 금지할 이유는 없다

  • 입력 2015.06.27 18:31
  • 기자명 영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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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화두는 인권도, 제도도 아닌 노출


6월 28일 일요일에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퀴어 퍼레이드가 예정되어 있다. 게이와 레즈비언, 바이섹슈얼와 트랜스젠더, 그 외 성적으로 억압받는 소수자가 한 곳에 모여 유희의 때를 보낼 것이다. 이날 이곳은 몸과 마음이 젊은 사람들의 해방구이며, 경계인들의 창조적 에너지가 새로운 모양으로 분출되는 곳이다. 한 편 차단막 바깥으로 보수 기독교인을 비롯한 여럿이 모여 유희를 비난할 것이다. 한편에서는 사랑과 해방, 다른 한편에서는 혐오와 억압. 정반대의 감정과 태도가 한 곳에서 엉키는 모습, 엉켜서 기이하게 굴러가는 모습은 어찌 보면 장관일 것이다. 다른 사회에서, 또는 다른 이슈에서는 이렇게 극렬한 대립을 찾기란 힘들다.


한편 작년 퀴어 퍼레이드의 가장 큰 화두는 억압받는 성소수자의 인권도, 동성결혼 등의 사회의 제도도 아닌, ‘노출’이었다. 퍼레이드 이후 언론은 노출이 심한 몇몇 참가자들이 사진을 보도했고, 이 모습은 인터넷 공간에 퍼졌다. ‘빤스 퍼레이드’라는 비아냥이 시작됐다. 공공장소에서의 노출은 처벌 받아야 한다, 어린 아이들이 보는 곳에서 추한 노출이다 등 다양한 비판이 등장했다. 심지어 퀴어를 자처하거나 퀴어 퍼레이드에 찬성하는 이들도 노출이 불편하며, 이성애 주류의 사회를 설득하는 방식이 아니라고 말했다. 퀴어 퍼레이드를 금지하자는 이들의 주장에는 노출의 문제가 반드시 포함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일부의 노출 때문에 집회를 금지할 수 있을까?


얼마 전 SNS에서 호주에서 촬영된 한 장의 사진이 화제가 됐다. 사진에는 한 성인이 알몸으로 자전거를 타고 있으며 경찰이 이를 단속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 사진 위에는 한 질문이 있었다. “이 사람은 무슨 죄목으로 단속됐을까?”, 재미있게도 정답은 “헬멧 미착용”이었다.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고 신체에 대한 터부를 극복한 사회에서는, 이처럼 노출은 처벌의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이는 우리에게 아직 당치 않은 이야기이다. 우리 사회는 노출에 대하여 경범죄처벌법의 과다노출 조항이나 형법 제245조에 따른 공연음란죄를 적용하여 처벌한다.
경범죄처벌법이 적용되면 1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가볍게 처벌되지만, 형법상 공연음란죄가 적용되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강력하게 처벌받는다. 대법원은 경범죄처벌법의 과다노출을 ‘단순히 다른 사람에게 부끄러운 느낌이나 불쾌감을 주는 정도’로 해석하는 반면 ‘일반인의 성욕을 자극해 성적 흥분을 유발하고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치는 경우’는 형법상 공연음란죄에 해당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만일 퀴어 퍼레이드 참가자가 성기까지 적극적으로 노출하지 않았다면 형법상 공연음란죄가 아닌 경범죄처벌법에 의해 처벌될 가능성이 높다.
경범죄처벌법상의 과다노출은 1990년대까지 여성의 배꼽티나 미니스커트를 처벌하는데 활용되었던 구시대적 조항이다. 처벌의 기준이 개별 사법경찰관의 도덕 관념에 의존하는 자의적 조항이기도 하다. 하지만 퍼레이드에서 노출한 참가자를 굳이 처벌하자면 현행법상 이 조항을 적용할 수 있다는 사실에는 논의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일부 참가자가 경범죄처벌법에 따라 처벌받는 범죄를 저지른다고 하여 집회 자체를 금지할 수 있느냐는 사실이다. 이에 관하여 헌법재판소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집회의 자유는 개인의 사회생활과 여론형성 및 민주정치의 토대를 이루고 소수자의 집단적 의사표현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기본권이기 때문에 단순히 위법행위의 개연성이 있다는 예상만으로 집회의 자유를 제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집회 과정에서 구체적인 위법행위가 현실적으로 발생하면 그 때에 현존하는 위법행위를 제재하면 되는 것이지, 그러한 위법행위가 발생하기도 전에 미리 위법상황을 예상하여 집회의 자유를 제한할 수는 없는 것이다.” (헌재 2009. 9. 24. 2008헌가25)

헌법재판소는 만일 집회에서 구체적인 위법행위가 현실적으로 발생한다면 그 개별 행위를 저지른 당사자를 처벌하면 되지, 위법행위가 예상되기 때문에 집회 자체를 제한할 수 없다고 밝힌다. 즉, 노출과 같은 경범죄가 발생할 것이라고 예상되기 때문에 퀴어 퍼레이드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집회의 자유를 국민의 기본권으로 보장하는 헌법의 태도와는 맞지 않는다. 이에 따라 서울행정법원은 "집회 금지는 집회의 자유를 보다 적게 제한하는 다른 수단을 모두 소진한 후에 비로소 고려될 수 있는 최종적인 수단"이라고 판시하며, 퀴어 퍼레이드에 대해 서울지방경찰청이 내린 집회금지처분의 효력을 정지시켰다.



노출이 문제일까, 퀴어의 노출이 문제일까?
앞선 논의가 무색하지만, 퀴어 퍼레이드 속의 노출은 경범죄로 처벌되면 안 된다. 노출을 처벌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를 무시하고 신체를 터부시하는 사회에서 자행되는 일이다. 이슬람 국가에서 수영복 노출을 감행한 여성들을 처벌하는 사례, 과거 권위주의 정권에서 여성들의 미니스커트와 배꼽티를 처벌했던 일은 이제 우리 관념과는 맞지 않는다. 퍼레이드 참가자의 노출을 처벌하는 일은 이런 상황과 일맥상통한다.

퍼레이드 속 ‘빤스’만 입은 사람을 처벌한다면 한 여름 해운대 바닷가에 모인 구릿빛 상체근육을 드러낸 남성, 비키니 차림의 여성은 모두 처벌을 면할 수 없다. 도심 한복판과 해변 모래사장이 법적으로 다른 장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과다노출이란 잣대 앞에서 주말 가요 프로그램의 여성 아이돌들은, 영화제 레드카펫 위의 여성 연기자들은 과연 무사할 수 있을까? 노출을 권장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퀴어의 노출만을 불편하게 바라보지 않는지, 그 시선이 과연 공정한지 생각해야 한다.
더욱이 1년에 단 하루,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퀴어의 과도한 노출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해야 한다. 이날, 이곳을 제외하고 퀴어가 퀴어임을 공공연히 드러낼 수 있는 시간과 장소가 있을까? 만일 이성애 주류의 사회와 아무런 갈등이 없이 퍼레이드가 마무리된다면 사회는 과연 퀴어의 존재를 알아챌까? 또는 노출이 없는 행사니까 바람직하다고 인정할까?

그럴 리 만무하다. 무시는 계속되며, 혐오는 같은 방식으로 존재할 것이다. 노출은 매몰된 퀴어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한 투쟁의 방편이며, 이성애 사회 구성원이 느끼는 불편함은 퀴어에 대한 인식을 변화하는 시발점이 된다. 사회는 퀴어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그 메시지를 전하는 방식을 이해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처벌로 일관한다면 변하지 않는 폐쇄적 사회만이 지속될 뿐이다. 노출에 대한 퀴어 문화 축제의 공식 입장을 덧붙인다.



“퀴어문화축제는 사회적으로 차별받는 한국 거주 성 소수자들이 1년에 한 번, 밖으로 나아가 ‘성 소수자인 자신을 긍정하는 행사’ 입니다. 다수의 이성애자의 눈요깃거리나 인정을 받기 위한 행사가 아니라 우리 ‘성 소수자’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 위한 행사입니다. 여기서 의복은 사회의 틀이나 약속, 혹은 관념을 상징합니다. 또한 노출이란 그 틀에 대한 거부와 저항, 대항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퀴어 퍼레이드에 등장하는 노출은 성소수자에 억압적인 사회의 틀을 저항하는, 퍼포먼스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때문에 퀴어문화축제 내 등장하는 노출 퍼포먼스는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노출’의 의미를 생각하기보다 현상 그대로를 바라보고 ‘문란’, ‘노출증 환자’로 연결짓는 것이 안타깝고, 유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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