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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정샷'을 찍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 입력 2015.06.25 18:48
  • 수정 2015.06.26 10:20
  • 기자명 김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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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확산에 대한 공포가 전국으로 퍼져나갈 때, 대통령은 국립의료원을 방문하여 방호복을 입은 간호사들을 만나서 격려했다. 메르스의 여파로 지역 경제가 침체된다는 우려가 나돌자 동대문 쇼핑센터에 들러서 핀을 구매하고 지역민과 사진을 촬영했다. 지독한 가뭄으로 농민들이 고생한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살수차를 동원해서 논에 물대포를 쏘았다.


ⓒ청와대 사진 기자단


앞서 언급한 행동들은 지난 한 달간 박근혜 대통령이 보여준 소위
'민심 행보'의 일환이었다. 언뜻 보면 현실 정치인이 아니라 상징적 국가 원수와 비슷한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직접 해결방안을 제시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뒤로 물러나서 국민들을 달래고 어르려는 태도가 그렇다.
오죽하면 누리꾼 사이에서는 "우리나라 대통령은 실무가 없는 단순 명예직이 된 모양이다"라는 자조가 나온다. "무슨 일만 생기면 가서 사진 찍고 자랑하듯이 올린다. 그러지 말고 대책을 세우고 해결을 하자"는 비판도 이어진다.


'
설정샷' 찍는 대통령을 향한 비판
앞서 언급한 박 대통령의 민생 행보는 하나같이 '설정' 의혹에 부딪혔다. 지난 5, 방호복을 입은 간호사를 굳이 기계실로 불러내서 만난 사진은 그 의도를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메르스 감염으로 사망자가 나왔던 14일에 동대문 쇼핑센터를 방문한 일도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확진자가 나온 지 14일이 지나서야 민관합동 긴급점검회의를 열어 늑장대응이 문제로 지적된 이후였기에 더욱 어색한 장면이었다.
같은 날 다른 사진도 대중의 입방아에 올랐다. 14일 서울대병원 메르스 격리병동에 방문한 박 대통령의 모습이었다. 박 대통령은 화면으로 의료진을 보면서 전화로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이 장면을 촬영한 사진에서 벽에는 '살려야 한다'가 적힌 종이가 인상적이었다.


굳이 평소 병원에서 붙여놓지 않을 법한 문구였기에 미리 준비해서 찍은
'연출'이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서울대병원 측은 격리병동 의료진이 자발적으로 붙인 것이라 해명했지만, 설득력을 얻지는 못했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가뭄으로 갈라진 강화도 농지에 대통령이 물대포를 쏘는 장면이었다. 뒤늦은 대응이라도 비상급수가 가뭄 극복에 도움이 되나 했는데, 여기서도 문제가 발생했다. 물대포를 직접 쏘아본 적은 없었던 탓인지, 박근혜 대통령이 잡은 호스가 아래쪽을 겨냥하면서 물줄기가 논바닥을 강타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미디어 몽구>를 비롯한 매체가 촬영한 현장 영상을 통해 시민들에게 공개됐다. 영상을 접한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저러다가 모가 다 상한다"거나 "집회 인원도 (물대포를) 맞으면 밀려나가는데 농작물이 버티겠나"하는 걱정 섞인 반응이 흘러나왔다.
지난 23 SBS뉴스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물을 준 논을 다시 찾아가 취재했는데 그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해당 농지를 다시 찾은 취재진에게 한 농민은 "이 정도는 80% 죽은 거야"라고 말한 것이다. 바꿔서 말하자면 이미 말라서 죽은 거나 다름없는 논에 물을 뿌리는 '퍼포먼스'가 이뤄진 셈이다. 결국 이번에도 "'설정샷' 찍는 대통령"이라는 비판은 피해갈 수 없게 됐다.


통치 하지 않고 군림하는 대통령
일각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을 두고 "통치는 하지 않고 군림 하는 듯 하다"라며 냉소적인 평가를 내놓기도 한다. 정부가 직접적인 해결책을 마련하는 노력은 좀처럼 보이지 않고, 책임을 회피하면서 '질책'하는 대통령의 모습만 눈에 띄기 때문이다. 거기다 해외 순방을 부지런히 다니면서 '패션외교'를 내세우는 모습에 "(대통령직의) 영광만 누리려는 것이냐"는 지적도 나온다.
'유체이탈 책임회피'라는 조롱 섞인 비판은 메르스 사태에서 극에 달했다. 감염자가 급격히 늘어나던 지난 17, 충북 청주시 국립보건연구원을 방문한 박 대통령은 송재훈 삼성서울병원장을 질책했고 이 장면은 언론에 보도됐다. 송 원장은 90도로 허리를 숙여 대통령에게 정중히 인사하고, 메르스 감염의 진원지가 된 병원 상황에 대해 사과했다. 대통령이 "더 확실하게 방역이 되도록 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한 직후였다.


정부의 방역 실패가 화두로 떠오를 즈음에
, 대통령은 민간 병원의 병원장을 불러내서 끝내 사과를 받아낸 것이다. 이는 지난해 세월호 정국에서 보았던 모습과도 닮았다. 정부의 선령 규제 완화가 배경으로 꼽히던 세월호 참사 당시에도 정부는 '책임자 처벌' '해경 해체'를 거론한 바 있다. 이후 또 반복되는 비슷한 풍경에 사람들이 기시감을 느낀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언뜻 보기에도 대통령이 본인에 대한 비판을 권위주의로 방어하려는 자세가 눈에 띈다. 지난해 9월에는 온라인에서 대통령을 비판하는 분위기가 점점 짙어지자 박 대통령이 "대통령 모독이 도를 넘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당시 발언은 온라인 메신저 검열 논란으로 확산되면서 해외에 서버를 둔 메신저로 '사이버 망명' 열풍도 낳았다.
국민이 받아야 할 사과를 본인이 대신 받고, 책임을 통감해야 할 상황에서는 다른 기관을 질타하는 태도. 대통령의 이런 모습은 문제의 핵심을 간과하고 자기방어에 치중하는 모양새로 보일 수 밖에 없다. 국민의 지도자가 '국민의 위에' 존재한다는 사고방식이 아니라면 이제는 그만 부끄러운 자세를 고쳐야 하지 않을까. 대통령이 먼저 지켜야 할 것은 정부의 자존심이 아니라 국민의 안전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바닥을 드러낸 위기관리능력
, 사과마저도 민영화?
지난해 국민은 세월호 참사를 그저 무기력하게 지켜봐야만 했다. 당시 사고로 가라앉은 선박과 함께 정부와 시스템의 무능까지도 고스란히 민낯을 드러냈다. 그때나 지금이나 '세월호' '메르스'로 바뀌었을 뿐, 정부는 뚜렷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로 "국민들은 일상으로 돌아가 경제 활동에 복귀하기 바란다"는 주문을 하고 있다.
이런 말은 분명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온 것일 듯하다. '위기로부터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 위에 건설된 사회에서, 그 신뢰의 붕괴를 겪고서 다시 돌아갈 일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국민의 신뢰를 재건하는 일을 생략하고서 '일상으로의 복귀'를 말하는 것은 애초에 순서가 맞지 않는 일이다. 그리고 그 과정은 책임의 인정과 진심 어린 사과부터 시작되어야 마땅하다.


지난
23일 삼성전자 이재용 부사장의 기자회견 이후 메르스 국면에서 정부로서 보여줄 최소한의 책임감마저도 선수를 빼앗겼다는 '(기면서도 슬)' 비평이 나오고 있다. "정부가 민간기업에 대국민 사과를 민영화했다"는 신랄한 비유도 이어진다. 진정 정부가 행동하는 모습을 담은 '한 컷'을 보여주고 싶었다면, 대통령을 포함한 정부의 자책과 함께 재발방지를 약속하며 국민에게 사과하는 장면이 아니었을까?
국민이 직접 보고 확인할 수 있는 '이미지 정치'도 물론 필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정부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어떤 장면도 결국에는 '설정샷' '대국민 쇼'로 그칠 따름이다. 단순히 보여주기식 정치를 넘어서, 대통령이 책임을 지고 대책을 마련하려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마땅하다.
국민의 신뢰를 다시 쌓아가는 과정을 위해 박근혜 정부가 '권위주의'를 내려놓고 냉철한 현실 인식에 집중해야 한다. 이는 바닥을 드러낸 위기관리능력을 복구와 더불어 상처 입은 정부의 신뢰도를 만회하려는 일에서도 필요한 과정이다. 부디 불통과 무능력으로 인한 '이른 레임덕' 현상의 지속에 청와대가 무감각해지지 않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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