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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님, 지금 물 뿌릴 때가 아닙니다

  • 입력 2015.06.22 09:57
  • 기자명 아이엠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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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1일 일요일, 사진 한 장이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사진에는 인천시 강화군 화도면 흥왕리 가뭄 피해 지역을 방문해 마른 논에 물을 뿌리는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날 박근혜 대통령은 소방차를 동원한 비상급수 차량에 연결된 소방호스로 논에 물을 뿌렸는데, 직사로 물을 뿌리는 모습이 많은 국민에게 답답함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물줄기가 강한 소방호스로 논에 물을 뿌릴 경우 대부분 공중으로 물을 뿌립니다. 워낙 물줄기가 강하기 때문에 논에 있는 벼가 쓰러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평생 청와대와 삼성동 자택, 국회에 있던 사람이 논에 물을 뿌리는 방법을 알 리 없습니다. 다만 농사에 대한 짤막한 지식을 갖춘 청와대 참모진이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씁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박근혜 대통령께 올리는 논에 물을 뿌리는 방법흔히 논에 물을 공급하는 것을 뿌린다고 하지 않고, 물을 댄다고 말합니다. 보통 '물대기'는 논의 가장자리에 물 호스를 연결해 자연스럽게 물이 흐르도록 합니다. 소방차나 급수차를 이용할 경우, 수압이 낮으면 가장자리에 물을 공급하고, 수압이 높은 경우 허공에 물을 뿌려 벼가 상하지 않도록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수압이 센 소방호스를 허공으로 향해 물을 뿌리기도 했지만, 좌우로 흔들면서 논으로 소방호스를 향하는 모습도 몇 번씩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 방법은 대단히 잘못된 방법입니다. 모내기한 지 오래되지 않은 벼의 경우 조그마한 충격에도 쓰러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박 대통령이 물을 제대로 뿌리지 못했다고, 무조건 잘못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청와대 참모진들이 사진을 연출할 때, 가뭄을 막아내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강한 의지를 너무 과하게 보여주려다 발생한 일로 보입니다.





2015년 1월, 예고됐던 가뭄농사 경험이 없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럴 수 있습니다.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논에 물을 뿌리는 것이 아니라, 가뭄을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일입니다.



불과 3년 전인 2012년, 전국적으로 가뭄이 들었습니다. '104년 만의 극심한 가뭄'이라는 당시 기록을 보면, 비는 평년의 10%밖에 내리지 않았고, 서울의 낮 기온은 12년 만의 최고 기온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1973년 이후 5~6월 강수량이 가장 적었습니다.
날씨는 덥고 건조하면서 비는 내리지 않아 전국적으로 물 부족 현상을 나타냈고, 당시에도 지금처럼 소방차와 급수차를 이용해 논과 밭에 물을 대느라 난리가 났습니다.



2015년 1월, 환경전문가와 기상학자, 언론들은 2015년에 대가뭄이 온다고 예측했습니다. 이유는 지난해 강우량이 예년의 절반도 안 됐기 때문입니다. 전국적으로 저수지들의 수위가 낮아져 슬슬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변희룡 부경대 환경대기학과 교수는 "38년짜리 가뭄주기의 정점에 해당이 되고요, 124년짜리 가뭄 주기의 시작점에 해당되기 때문에 가뭄이 심할 것으로 예측됩니다."라고 예측했으며, 전문가들의 예측대로 한반도는 강우량 부족 등으로 가뭄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습니다.





예측된 가뭄, 왜 막지 못했나?삼국사기 등 고전 문헌을 봐도 한반도는 항상 주기적으로 가뭄에 시달렸습니다. 그래서 MB는 4대강 사업으로 가뭄을 해결할 수 있다고 큰소리를 쳤습니다. 4대강 사업으로 물그릇이 커진 것은 맞습니다. 다만, 그 물그릇이 정작 필요한 곳이 아닌 엉뚱한 곳에 만들어졌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새정치연합 이미경 의원에 따르면 "4대강 사업으로 건설된 보 16개 중 11개가 물 부족 지역과 무관한 곳에 위치해 있다'고 밝혔습니다. 국무조정실 4대강사업조사평가위 보고서를 봐도 4대강 사업으로 만들어진 보의 위치 선정이 기준조차 확인할 수 없었고, 4대강 사업으로 가뭄대응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용수공급계획과 용수공급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평가했습니다.
이 말은 4대강 사업으로 16개의 보를 만들어 물그릇을 크게 만들었지만, 이 물을 가뭄으로 물이 필요한 곳에 공급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물 공급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이 시스템이 없기 때문에 여전히 급수차와 살수차를 동원해 물을 날라서 논에 물을 뿌리고 있는 것입니다.



동아일보는 '4대강 사업 이후에도 가뭄비상 왜'라는 기사에서 정치논쟁에 휘말려 농업용수 공급시설을 못 만들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4대강으로 만든 물그릇이 커졌으니 이 물을 농업용수로 공급하기 위한 '4대강 살리기 사업 마스터 플랜'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국회 예산 삭감 등으로 후속 조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었습니다.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한 계획으로 '하천수(4대강) 활용 농촌용수 공급 사업' 또는 '4대강 연계 농업용수 확보 마스터플랜 수립'이 있습니다. 이 계획은 4대강 사업으로 만들어진 물그릇을 농업용수로 공급하기 위한 별도의 사업입니다. 어쨌든 물그릇이 만들어졌으니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면 이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사업비 1조 913억 원'이 든다는 얘기는 쏙 빼놓고 말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4대강 사업으로 22조 원을 투자했는데, 별도로 1조 913억 원이 드는 사업을 해야만 농업용수 공급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1조 913억 원만 든다고 아무도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4대강 사업으로 가뭄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수조 원의 돈이 더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가뭄이 비상상황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민, 관, 군이 협력하여 가뭄 극복에 총력대응해 줄 것을 당부하면서 '준설 적기인 본격 장마 시작 전까지 물그릇을 키울 수 있도록 준설작업을 최대한 실시하고, 근본적인 가뭄 대책을 마련할 것'을 주문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항상 사고나 재난이 닥쳐야 준비하라는 얘기를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말하는 물그릇을 키운다는 의미가 도대체 어떤 의미인지 자세히 나와 있지 않습니다. 4대강 사업으로 만들어진 보라면 이미 충분합니다. 그러나 저수지 준설이라면 필요합니다. 4대강 준설과 저수지 준설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어떤 물그릇을 키우느냐와 4대강 사업으로 만들어진 물그릇을 어떻게 농업용수로 공급하느냐입니다. 그러나 4대강 사업을 찬성했던 박근혜 대통령은 MB의 4대강사업 연계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지금 국민에게 진짜 필요한 것MB정권이나 박근혜 정권이나 대통령만 바뀌었을 뿐, 그 구성원은 동일합니다. 박근혜 대통령 입장에서는 똑같은 정권인 상황에서 전직 대통령의 4대강 사업을 비판하면서 다시 수조 원의 돈을 들여야 하는 하천용수(4대강) 사업을 진행하기가 껄끄러울 것입니다.


지금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가뭄을 해결할 수 있는 대통령의 대책입니다. 4대강 사업으로 만든 물그릇을 공급하는 방식이든, 저수지를 준설하는 방식이든 정확한 대책을 마련하는 일이 박근혜 대통령의 몫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소방호스로 벼를 향해 직사로 물을 뿌리는 일은 물대기를 잘하는 사람에게 맡겨놓고, 이미 예견됐던 가뭄을 막지 못한 실패의 책임과 함께 장기적인 가뭄 대책을 국민에게 설명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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