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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기>로 살펴보는 박근혜 정부의 메르스 대처

  • 입력 2015.06.17 19:14
  • 수정 2015.12.10 15:57
  • 기자명 임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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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영화 평점 사이트에서 평점 10점 폭격을 받고 있는 영화 ‘감기’





영화 <감기>가 돌아왔다
2013년 8월에 개봉해 평론가와 관객들에게 혹평을 받고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한 채 스크린에서 사라진 영화 <감기>. 최근 이 영화가 뜨거운 화제로 떠올랐다. 영화 평점 사이트와 커뮤니티에서는 개봉 당시엔 찾아볼 수 없었던 호평이 줄을 잇고 있다. 이 영화가 다시 주목 받고 있는 이유는 영화 속 정부의 전염병 대응 방식이 최근 메르스 사태에 대처하는 박근혜 정부의 무능함을 쏙 빼 닮았기 때문이다.



영화 <감기> 줄거리

사상 최악의 바이러스가 대한민국을 덮친다!

호흡기로 감염, 감염속도 초당 3.4명, 치사율 100%의 유례 없는 최악의 바이러스가 대한민국에 발병한다. 이에 정부는 전 세계적인 확산을 막기 위해 국가 재난사태를 발령, 급기야 도시 폐쇄라는 초유의 결정을 내린다. 피할 새도 없이 격리된 사람들은 일대혼란에 휩싸이고 대재난 속에서 살아 남기 위한 사람들의 목숨 건 사투가 시작된다.





바이러스가 한국에 들어오기까지
영화 <감기>는 코리아 드림을 품은 동남아시아인들이 밀입국 컨테이너에 몸을 싣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런데 이들 중 상태가 영 좋지 않은 사람이 하나 있다.


하나도 안 괜찮아 보인다


쉴 새 없이 기침을 하던 환자는 몸상태를 살피는 선원의 질문에 괜찮다고 답한다. 한국인들은 괜찮다는 말에 별 의심 없이 그를 한국으로 밀입국시킨다. 그리고 컨테이너는 무사히 한국에 도착해 바이러스를 마음껏 발산한다.
한국에서의 첫 감염자는 밀입국자들이 실린 컨테이너 문을 최초로 열어 젖힌 남자. 그는 온 동네에 기침을 해 대며 돌아다니다 결국 병원에 실려가고 만다.


“쿨럭”


이 환자의 등장으로 주인공 인해(수애)가 일하는 병원에는 비상이 걸린다. 환자의 상태를 살핀 의사들은 그가 ‘변이된 조류독감 바이러스’에 감였되었다는 사실을 즉시 질병관리본부에 알린다. 결과는?


“그렇게 진행속도가 이렇게 빠른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있어요?”


아직 그렇게 위험하다고 판단할 근거는 없으니 성급하게 단정짓지 말라는 무성의한 답변이 돌아온다. 괜히 오바하지 말라는 소리다. 현실은 어땠을까.


지난 5월 11일, 한 남자가 서울의 종합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중동 지역 바레인에 다녀온 후 기침, 발열이 심해져서였다. 담당의는 환자 상태를 지켜본 후 메르스를 의심, 18일 오전 보건 당국에 검사를 요청했으나 질병관리본부는 ‘바레인은 메르스 발생국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검사 자체를 거절한다.
이후 환자의 가족들이 ‘검사를 안 해 주면 정부 기관에 있는 친인척에게 알리겠다’고 협박에 가까운 요청을 하니 그제야 검사를 실시한다. 결과는 메르스 확진 판정. 5월 20일이었다. 최초 환자에게서 발열 증상이 나타난 지 9일, 환자가 머문 병원에서 메르스 확진 검사를 요청한 지 이틀만이었다.




바이러스 확진 판정 후 대책 수립 과정
영화에선 최초 감염자 사망 직후 감염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질병관리본부는 지자체와 함께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린다. 이 자리에서 최초 감염자 담당의는 ‘정황상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로 충분히 추정할 수 있다’며 관계 부처를 설득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역시나.


“오바하지 마!”



“조류인플루엔자는 사람한테 감염 안 된다면서요~”


의료진들이 온갖 의학적 지식을 총동원해 돌연변이 바이러스를 설명하고 있을 무렵, 손님 한 분이 비상대책위원회에 찾아온다. 무려 지역구 국.회.의.원. 이 높으신 인물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꾸준히 우리에게 깊은 빡침을 선사한다.


“이건 판데믹의 전조입니다.” “판데믹이 모야?”




판데믹이란 생소한 단어에 화가 나신 어르신
“말 알아듣지도 못하게 어렵게 말하고 말이야!”

여기서 잠깐, 판데믹이란? [카드뉴스] 집단면역의 붕괴, 판데믹의 공포




말귀를 못 알아듣는 지도자와 못 알아들을 말을 하는 지도자, 누가 더 민폐일까?


말을 해도 알아먹질 못하니 이길 수 없는 건 당연하다. 핵심만 이야기하라는 윗분들의 연이은 질책에 의료진은 분명한 답을 내놓는다.


“당장 분당을 폐쇄해야 합니다.”


현장은 순식간에 웃음바다로 변한다. 분당이 무슨 시골 읍내냐는 비아냥부터 이달에 열리는 국제행사가 몇 개인 줄 아느냐, 그 뒷감당은 당신이 할 거냐 하는 황당한 질타들이 쏟아진다. 그리고 이어서 날아 오는 개드립.


“으헣헣헣. 신종플루 때도 그 난리를 치더니 말이야. 막상 사망자는 계절감기랑 비슷했대매? 응?”




암! 교통사고 사망자보다 적게 죽으면 별일 아닌 게지!


이 발언을 끝으로 그들은 일단 점심을 먹기로 합의한다.
여기까지가 영화 <감기>에서 보여 준 ‘바이러스 확진 판정 후 첫 대책 수립 회의’ 장면이다. 이제 현실을 이야기할 차례인데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이런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실제로야 저정도까지 했겠어? 저건 영환데~”




메르스 확진 환자가 발생한 뒤 체육행사를 개최한 질병관리본부


충격과 공포다. 확진 판정 이후 곧바로 감염자의 동선을 파악하고 방역 대책을 수립해도 모자를 판에 체육행사를 치렀다고 한다. 재미나게 족구도 했다고 한다..


마이볼~



“질병관리본부 족구하라 그래!”


이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질병관리본부는 메르스 대응과는 비교도 안 될 빠른 속도로 해명 자료를 내놓는다.


1. 본부장을 포함한 주요 관계자는 행사에 참여하지 않았다.
2. 작년에 세월호 때문에 행사를 못 치러서 이번에 제대로 하려고 했는데 딱 그날 환자가 나온 거다.


이 양반들 작년에 세월호 때문에 행사를 못 치른 것이 몹시도 아쉬웠나 보다. 영화에선 그래도 환자가 발생하자 대책위라도 열었지만, 현실의 우리 보건 당국은 그날 체육대회를 열었고 박근혜 대통령께선 ‘서울 디지털포럼 2015’ 개막식에 참석 중이셨다.




바이러스 진압 실패, 정부의 황당한 대처
다시 영화 <감기>로 돌아가 보자. 감염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며 정부는 대국민담화를 준비한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전염병 공식 발표를 먼저 할지, 도시 폐쇄 조치를 먼저 취할지 티격태격하기 바쁘다. 영화 속 국무총리 입장은 도시 폐쇄 조치를 먼저 취하자는 쪽이다. 정보를 공개하면 시민들의 혼란만 부추긴다는 이유에서다. 어딘가 귀에 익은 주장이다.


“우리 발표 때문에 시민들이 난치를 치면 그게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겁니다~”




괜히 정보 공개하면 혼란만 가중되거등여?


이 와중에 뒤늦게 도착한 한 의원의 질문.


“뭔 일이 터졌어요?”


이런 눈치 없는 의원님은 차라리 양반이다.


“모처럼 있는 보궐선거 뉴스가 다 묻히게 생겼어~”


현실은 더 시궁창..



‘표정관리가 잘 안되네ㅎㅎ’


치사율 100% 전염병에 국민 수십만이 당장 죽게 생겼어도 의원님들껜 선거가 우선이다. 무튼, 이런 분들의 의견을 모아 정부는 ‘선 폐쇄 조치 후 입장 발표’를 하기로 결정한다. 그래도 최초 감염자가 확인된 당일 대통령이 직접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는 점은 초현실적이라 해야겠다.
현실로 돌아와 보자. 이번 메르스 사태 대국민 담화 발표는 지난 7일, 그러니까 최초 감염자 확인 후 18일 지나서였다. ‘그래도 뒤늦게나마 사태를 수습하려 해서 다행이다’ 하는 분이 계실 것 같아 그 과정이 얼마나 황당했는지 살펴본다.
박근혜 대통령이 메르스를 처음으로 언급한 건 최초 감염자 확인 후 13일이 지난 6월 1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였다. 이 자리에서 대통령은 “5월 20일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메르스 환자가 발견된 이후 지금까지 15명의 환자가 확인됐다.”고 발언했다. 그런데 저 환자 수는 틀린 수치였다. 당시 감염 환자는 18명으로 이미 그날 오전 보건 당국이 언론에 발표까지 한 뒤였다. 그리고 다음날 2일, 대통령은 전남창조경제혁신센터 개소식에 참석한다. 세계 최초로 3차 감염자가 발생한 상황이었지만 대통령은 묵묵히 예정된 일정을 수행했고, 대국민 담화문은 대통령이 아닌 최경환 총리 대행이 발표했다.
정부가 국민에게 전염병 관련 정보에 대한 공개를 극도로 꺼렸더는 점 역시 영화 <감기>와 현실의 공통점이다. 최경환 총리 대행뿐 아니라 보건 당국의 주요 인사들 모두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병원을 공개해선 안 된다는 입장을 취했고, 국민들에게는 정보공개 대신 유언비어 살포할 시 처벌하겠다는 엄포를 놓기에 바빴다. 그 단호박 같은 대처 능력을 메르스 차단에 쓰면 어땠을까.
그.런.데. 우리를 더 빡치게 하는 건 정부가 말한 ‘유언비어’ 살포 주체가 국민이 아닌 정부 기관이었다는 점이다. 당시 보건복지부가 배포한 자료를 보자.


보건복지부 산하 기관인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메르스 예방 홍보자료



질병관리본부가 배포한 메르스 관련 정보

님들이 말한 거 퍼다 날랐을 뿐인데 유언비어라며 처벌한다고 하면 우리가 빡이 칩니까 안 칩니까?


그러다 사단이 난다. 6월 4일 오후 10시 40분, 박원순 서울시장이 긴급 기자회견을 연다. ‘늦은 시간에 불러내 송구합니다. 저는 지금 매우 절박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라며 말문을 연 박원순 서울시장은 정부와 보건 당국의 무능함을 신랄하게 비난하며 서울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메르스 환자가 거쳐 간 병원명, 환자 동선을 전부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서울 시민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35번 환자(삼성서울병원 의사) 동선을 공개하겠다고 밝힌 박원순 서울시장.“앞으로 서울시는 모든 정보를 실시간으로 시민 여러분께 공개하겠습니다.
서울시의 모든 행정력을 총동원해서 메르스 확산을 방지하고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일에 집중해 나가겠습니다.
이 시간 이후부터는 제가 직접 대책본부장으로 진두지휘하겠습니다.”


박 시장의 행보에 대해 ‘정치쇼’라며 강하게 비난했던 청와대는 3일 뒤, 최경환 총리 대행의 대국민 담화를 통해 병원명을 공개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이미 4일 전 대통령께서 정보 공개를 지시했다.”


이렇게 구차한 정부를 본 일이 있는가.


심지어 이날 최경환 총리 대행은 엉뚱한 병원명, 지역명을 발표해 혼란을 가중시켰다. 대체 이 정부의 무능함의 끝은 어디인가라는 거센 비난을 들어야 했다. 감염자 수도 모르는 대통령과, 감염자 발생 병원도 모르는 총리 대행. 이나라 국민들은 누굴 믿어야 하는가.


영화 <감기>의 한 장면. 대부분의 시민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다. 지금 서울 광화문을 거니는 시민들처럼.


우리도 믿고 싶다. 정부가 하는 말 믿고 잘 따라서 사스 모범 방역국에 이어 메르스 모범 방역 국가라는 타이틀을 따는 데 일조하고 싶다. 그런데 돌아가는 꼴을 보면 도무지 그럴 수가 없다.


세계 최초 메르스 3차 감염자 발생 국가.

세계 2위 메르스 발병 국가.


지금 대한민국엔 두 가지 바이러스가 돌고 있다고 한다. 하나는 메르스 코로나바이러스(MERS-CoV). 그리고 또 하나는 무능 바이러스. 전자는 그래도 어찌어찌 퇴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후자는 퇴치가 가능하긴 할지 걱정이다. 영화 <감기>의 결말처럼 기적적인 항체가 발견된다면 모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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