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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고스톱 사건

  • 입력 2015.06.17 15:25
  • 수정 2015.06.17 16:49
  • 기자명 김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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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6월 17일, 일본 제2의 도시 오사카의 어느 거리에서 일본군 졸병 하나가 보행신호를 무시하고 무단횡단을 감행했다. 나까무라 마사까스 일병이었다. 이를 본 경관 도다 다다오의 입에서 "서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그 이름도 살천스러운 ‘일본 순사’의 벼락같은 호통이었다. 그런데 이 무단횡단자의 대응이 만만치 않았다.
나까무라 마사까스 일병은 어림도 없다는 듯이 순사의 스톱 명령에 저항했다. "나는 공무 수행 중이다. 그리고 나는 군인이다. 헌병이면 몰라도 순사 말은 들을 수 없다."고 ‘배를 째고’ 나온 것이다. ‘오사카 고(Go) 스톱(Stop)’ 사건의 시작이다.
산천초목을 울리는 대일본제국 순사 체면이 있지 경관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군인이면 다냐? 법을 지켜야지!”라고 윽박질렀을 것이고 “니가 헌병이냐? 난 군인이니까 군법을 따른다고 정 꼬우면 헌병 데리고 와.” 정도로 맞받는 말싸움이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여기까지는 아무 일도 아닌 해프닝이었고, 몇 차례의 대거리 후 “다음부터 조심해. 이번은 한 번 봐 준다.”와 “너나 조심해. 재수가 없으려니까 원.” 정도로 충분히 마무리 될 수 있는 사안이었다.
그런데 이 단순한 시비의 시공간적 배경이 1930년대의 일본이라는 것이 문제가 된다. 이 시비의 바로 전 해인 1932년에는 ‘5.15’라고 불리는 쿠데타가 발생한 적이 있었다. 일단의 육군과 해군 장교들이 군부의 전횡에 제동을 걸던 수상 이누카이 쓰요시 등을 공격하여 살해한 사건이었다. 이 장교들이 어느 정도의 미치광이였는지는 ‘외국문화의 상징이자 퇴폐 문화를 전파한 원흉’으로서 당시 일본을 방문 중이던 찰리 채플린을 죽일 계획까지 갖고 있었다고 하면 짐작이 갈 것이다. 쿠데타는 실패했지만 그 후임으로 사이토 해군 대장이 취임하고 여야의 구분이 없는 ‘거국 내각’이 들어서는 등 일본은 바야흐로 군국주의를 향하여 일로매진하고 있었다.


이런 배경 속에서 나까무라 일병 사건은 천황 폐하의 군대라는 자긍심이 하늘을 꿰뚫어 버리는 군과, 대일본 제국의 질서는 내가 지킨다는 경찰의 명예를 건 일대 회전으로 번져 나갔다. 나까무라 일병의 이야기를 들은 나까무라 소속 연대가 "건방진 짭새들!”이라며 흥분했고 그를 말려야 할 상급부대 사단의 참모장은 한 수 더 떠 오사카 경찰부에 사과를 요구하고 나섰다.


군은 천황 폐하의 군대야! 거리에 나와도 치외법권적인 존재라고!


만주 사변 이후 군국주의에 미쳐 돌아가던 군부는 그야말로 무소불위였다. 박정희나 전두환 정권 때에도 공수부대 옷 입은 군상들이 도심에서 깽판을 쳐도 경찰이 손을 못 댈 때가 있었거늘, 하물며 이때의 일본에서야… 하지만 이에 맞선 사람이 경찰 간부 아와야 센키치였다.


군인도 거리에 나오면 시민의 한 사람으로 법을 지켜야 한다.


아야와 센키치는 ‘천황의 군대’를 거듭 들먹이는 육군 앞에서 "시정해 주기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공무집행을 할 수 없다."라고 대들었다. 기가 막혔던지 아니면 말문이 막혔던지 사단 참모장은 정말로 후지산 정상에서 봉창 두드리는 소리를 내뱉는다.


황군의 명예를 위해 담담하게 싸울 것이며 최악의 경우 명예롭고 깨끗하게 죽겠다!


이런 경우 부하들의 오버를 제어하고 그 오류를 전범으로 삼아야 할 육군 대신 아라키는 그 망발을 제어하기는커녕, 오사카 경찰에 사과를 강요한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우스우나 웃기엔 너무 심각해진 이 사건은 천황의 개입이 있고서야 얼버무려진다. 천황이 육군 대신에게 “오사카 사건은 어떻게 되어 가는가?”라고 묻자 아라키가 한 발 물러선 것이다.
사건은 처음의 시비 당사자였던 경찰과 나까무라가 악수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지만, 아와야 센키치도 곧 경찰을 떠나야 했다. 일본에서 보기 드문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 군부의 눈엣가시였던 그는 후일 원자폭탄이 히로시마에 떨어질 때 하필이면 그곳의 시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그는 군부가 일으킨 참혹한 전쟁의 희생자로 가족과 함께 일생을 마감하게 된다.


당시의 일본에서 천황이란 신성하고 지엄한 존재였고, 그 이름을 빌린 군부는 스스로 무소불위라고 생각했다. 법 따위는 지킬 것이 없었고, 자신들은 당연히 특권을 누려야 하는 대상으로 인식했다.
언제 어느 나라에서나 유사한 특권을 대놓고 주장하거나 암암리에 누리는 집단은 있다. 그리고 '천황 폐하'나 '황군'에 필적하는 위엄을 견지하는 단어들도 존재한다. 이를테면 한국에서 '회장님'들이 그러하고, '국가 경제에 이바지한 공로'가 그렇고, '국가 경제에 미치는 손실' 등이라는 '숙어'들이 그러하겠다.
천황폐하라는 소리만 나와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부동자세를 취해야 했고, 군부 대신까지 나서서 경찰의 사과를 받아야겠다고 으르렁대는 상황에서, 시민이든 군인이든 법 앞에 평등하며, 그를 포기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공무집행을 할 수 있겠는가, 하며 군부에 맞섰던 아야와 센키치 같은 사람들은 그렇게 흔하지 않다. 바다 건너 한국에서는 그 존재란 더더욱 희귀해질 따름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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