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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을 향한 대통령의 짝사랑

  • 입력 2015.06.16 10:16
  • 기자명 아이엠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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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2일 금요일 저녁, 청와대 출입 기자들은 본사 데스크에서 걸려 온 전화 때문에 난리가 났습니다. 외신에 박근혜 대통령의 '위안부 문제'와 '사드 배치' 등의 언급이 보도됐는데,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6월 11일 (현지시각) 워싱턴포스트에는 ‘Eventually we will face a situation that will be beyond our control.’이라는 제목의 박근혜 대통령 인터뷰 기사가 실렸습니다.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한 인터뷰 기사에는 '일본과의 위안부 협상에 상당한 진전이 있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한-일 관계가 국제 정세에서 중요한 이슈이기에 워싱턴포스트의 기사는 한국 언론사들이 인용해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이날 청와대의 태도는 상당히 이상했습니다. 평소 외신과의 인터뷰 한국어 원문을 제공하던 청와대가 이번에는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청와대가 일부러 한국어 인터뷰 원문을 제공하지 않으니 언론들은 자신들의 독해력 수준에 맞춰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위안부 문제나 사스 배치, 대북 관계 등의 중요한 얘기가 언론사마다 뉘앙스가 달리 보도된 것입니다.




외신 편애 박근혜, 돌아온 것은?
박근혜 대통령은 국내 언론과는 인터뷰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CBS>와 <워싱턴포스트>, <월스트리트 저널>, 중국의 <CCTV>, 러시아의 <이타르타스통신>,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포스트>와 <KOMPAS>, 프랑스의 <르 피가로>, 영국의 <BBC>와는 인터뷰를 했습니다. 외신을 편애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외신과 인터뷰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해외 순방을 앞두고 외신을 통한 홍보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입니다. 외신 인터뷰를 통해 해외 순방 국가에 자신의 방문을 널리 알리겠다는 취지입니다.
문제는 외신과 독점 인터뷰를 해도 그 나라 언론에서는 별로 관심도 없다는 점입니다. 뉴스타파는 지난 2013년 유럽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의 유럽순방 보도 100% 국내용'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BBC> 홈페이지에서 박근혜 대통령 영국 방문을 다룬 기사는 세 건에 불과했고, 프랑스 최대 공영방송사도 박근혜 대통령의 방불 소식을 거의 보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르 몽드>는 박근혜 대통령이 공공시장 개방을 다뤘는데, 결국 프랑스 경제인들에게 좋은 뉴스였기에 보도했을 뿐입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독재자 아버지의 딸', '섹스 스캔들로 얼룩진 임기', '선거부정에 대한 의혹' 등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외신들이 박근혜 대통령을 보도하는 모습은 긍정보다는 부정적 이미지가 더 많았습니다.


이번 <워싱턴포스트> 인터뷰도 비슷합니다. 인터뷰 후 박근혜라는 이름으로 검색해보니 올라온 기사는 단 2건, 하나는 오바마 대통령이 박근혜 대통령 방미 연기에 동의했다는 내용과 한국의 메르스 관련 보도뿐이었습니다.
메르스 보도에서도 2002년 중국이 사스에 대응하던 엉터리 모습을 말함으로 오히려 사스 대응 우수 국가였던 우리의 모습이 온데간데없어진 사실만 떠올리게 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을 제외한 한국 관련 기사는 여자 월드컵 기사와 메르스로 인한 사망자가 늘었다는 소식뿐이었습니다.
메르스 사태 때문에 방미를 연기했지만, 외신의 보도는 박근혜 대통령이 타격을 받았고, 한국 정부가 공공 보건 시스템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국내 언론과는 단 한 번도 인터뷰하지 않으면서 외신 인터뷰만 한 박근혜 대통령의 노력치고는 너무 비참한 결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국민에게 말하지 않는 대통령
물론 결과가 항상 좋을 수는 없습니다. 해외 언론이 한국 언론처럼 받아쓰기나 정부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핵심은 왜 국민에게는 말을 하지 않느냐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방미 연기의 이유를 <워싱턴포스트> 기자에게는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은 청와대 홍보수석이 브리핑한 내용을 인용한 언론 기사에서밖에 보지 못했습니다. 방미 연기를 굳이 국민에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여전합니다. 메르스 사태에 대해서 대통령이 직접 국민에게 담화 발표를 한 적이 있던가요?
5월 20일 이후 박근혜 대통령이 메르스 사태와 관련해 발언한 내용은 모두 국무회의나 대책회의에서 말한 것뿐입니다. 국민이 국무회의에 참석한 것도 아니고 직접 국민에게 말하거나 지시한 내용이 아닙니다. 이런 발언을 국민에게 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줄어들 줄 알았던 메르스 확진자는 계속 늘어만 갑니다. 사망자도 이미 16명이나 됩니다. 이런 엄청난 상황에서 대통령이 긴급 대국민담화문이나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을 안심시키는 일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을 향해 단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냥 언론에서 보여주는 모습만 보고 믿으라고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2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주최 포럼에서 소통에 대해서 '굳이 말보다는 국민이 성원하는 지지로 충분히 알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가진 소통에 대한 사고방식이라면 메르스 사태로 많은 국민이 고통받고 있지만, 지지율이 높으면 소통이 되고 있다는 이상한 논리입니다.
혹자는 말합니다. 지금 동대문도 방문하고, 거점 병원도 찾아가서 열심히 노력하지 않고 있느냐라고. 대통령은 단순히 보여주는 정치인이 아닙니다. 국민에게 정확히 지금의 사태를 보고하고, 대응책을 알려줘야 합니다. 웃으면서 사진 찍고 전화하는 모습만으로는 수습할 수 없는, 사태가 심각한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동대문 시장을 방문해 시민들과 웃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전북 순창에 사는 70대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환자가 12일 사망한 가운데
방역관계자들이 화장을 위해 전주 승화원으로 시신을 옮기고 있다.
마스크와 보호장비를 착용한 유가족들이 멀찍이 바라만 보고 있다. ⓒ뉴스1, 청와대


메르스 사태가 심각하지 않다고 합니다. 그러나 벌써 19명의 국민이 죽었습니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동대문 시장에 가서 웃었다면, 이제는 정부의 안일한 대응 때문에 사망한 국민을 위해 앞에 나서야 할 때입니다.
외신에만 등장하는 대통령. 국민에게 말하지 않는 대통령.

도대체 국민은 대통령의 말을 어떻게 어디서 들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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