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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정보공개, 박원순은 위험했고 이재명은 잘못했다

  • 입력 2015.06.15 16:10
  • 기자명 영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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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장 대응보다 나은 과잉 대응?
메르스 확진자가 100명을 훌쩍 넘어섰고, 그 중 14명이 사망했다. 메르스 사태 내내 박근혜 정부는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 했고 계속해서 이게 최선인지 의문이 들 정도로 혼란스럽고 무능한 모습만 보여줬다. 친박계 서청원 최고위원까지도 “내각에 위기관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무총리를 직무 대행하는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해외 출장을 이유로 자리를 비웠다. 보건복지부 문형표 장관은 첫 확진 환자가 발생한 지 6일 만에 박근혜 대통령에게 대면보고를 했다. 병이 확산되는 와중에도 “교훈은 얻었다”는 이해할 수 없는 발언을 했다. 정부의 무능력함에 국민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이재명 성남시장 SNS


정부가 무능한 태도로 일관하는 동안 각 지방자치단체장들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특히 정부가 골든타임을 놓치며 전염 정보를 무리하게 통제한 탓에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정보공개 문제로 각을 세웠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확진 판정을 받은 의사가 다양한 장소에서 시민들과 접촉했다며 긴급 기자회견을 진행했고, 이재명 성남시장은 개인 SNS에 환자의 직장, 주소지, 자녀의 학교 등의 개인정보를 공개했다. 박원순 시장은 청와대와 여당으로부터 “국가 위기를 이용한 정치 행보”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늦장 대응보다 과잉 대응이 낫다”면서 굽히지 않는 모습을 보였고, 이재명 시장 역시 자신의 행보를 “지방자치단체의 특수상황에 따른 독자적인 집행 영역”이라고 옹호하였다. 하지만 이들의 행보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 정부가 실패했기 때문에 이들의 행동을 무조건 옹호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기본권의 과잉 침해를 경계한다
이들은 실정법을 위반했을까? 의료법과 개인정보보호법의 위반 여부가 쟁점이 된다. 의료법 제19조는 “의료인은 이 법이나 다른 법령에 특별히 규정된 경우 외에는 의료·조산 또는 간호를 하면서 알게 된 다른 사람의 비밀을 누설하거나 발표하지 못한다”고 규정하여 비밀 누설을 금지한다.

하지만 이 조항의 적용 대상은 의료인이므로 두 시장의 정보 공개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또한 개인정보보호법 제2조 1호에 따르면 이 법에 의해 보호되는 개인정보는 “성명, 주민등록번호 및 영상 등을 통하여 개인을 알아볼 수 있는 정보(해당 정보만으로는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없더라도 다른 정보와 쉽게 결합하여 알아볼 수 있는 것을 포함한다)”를 말하므로, 박원순 시장이 단순히 “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의사”를 언급한 것은 이 법에 의해 보호되는 개인정보로 파악하기 힘들다. 하지만 이재명 시장이 밝힌 직장, 구체적인 주소와 자녀의 학교 등은 이보다 더욱 구체적이기 때문에 논의의 여지가 있다.
법률에 따라 이들의 행위가 처벌받지 않는다면 과연 아무 문제가 없을까? 그렇지 않다. 헌법은“개인 정보 자기 결정권”을 인정한다. 즉 헌법 제37조 1항에 따라 국민은 자기 정보를 통제할 권리를 헌법적으로 인정받는다. 헌법재판소는 이렇게 판시하였다.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은 자신에 관한 정보가 언제 누구에게 어느 범위까지 알려지고 또 이용되도록 할 것인지를 그 정보주체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로 국가기능의 확대와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따라서 초래된 위험으로부터 개인의 결정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하여 승인된 헌법에 명시되지 아니한 기본권이다.” (2005. 5. 26. 99헌마513)


따라서 박원순, 이재명 두 시장의 조치는 각 개인의 정보 자기 결정권을 침해한 조치였다. 하지만 헌법상 대부분의 기본권이 그러하듯 개인 정보의 자기 결정권도 공공의 이익을 위해 제한될 수 있다. 즉 헌법 제37조 2항에 따른 제한이 가능하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헌법 제37조 2항에 따라 기본권의 본질적인 부분을 과도하게 침해하면 안 된다. 국가 작용이 만일 국민의 기본권을 과잉 침해한다면 헌법에 위배된다. 과잉 침해는 다시 침해의 목적이 정당할 것, 침해 수단이 적합할 것, 기본권 침해는 최소한일 것, 침해 받아서 감소하는 개인 또는 집단의 이익보다 침해를 통해 지켜진 공익의 크기가 더 클 것 등 네 가지 요건으로 구체화된다.


ⓒmunhwa.com


개인정보는 절대불가침의 성역이 아니다. 하지만 공익을 위해 간편하게 공개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질병의 정보라도 기본적으로는 공개되지 않는 것이 원칙이고, 공개될 필요가 있다고 하더라도 개인과의 합의를 거치는 것이 우선이다. 공개된 정보를 통해 당사자가 누군지 쉽게 추론되지 않도록 충분히 배려해야 하며, 정보공개를 받는 이들은 반드시 그 정보가 필요한 이들로 한정해야 한다. 공개되는 정보의 양이 공익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이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두 시장의 경우 당사자와 협의를 거치거나 먼저 양해를 구하지 않았다. 전국민이 그 정보를 제공받아야 했는지, 그 영역을 한정할 수 없었는지 의문이다.
이재명 시장의 경우 역시 개인의 신원이 밝혀질 우려가 있음에도 아파트와 직업까지 구체적으로 공개할 필요가 있었는지, 자녀가 확진 판정을 받지 않았으며 이미 자녀의 학교에는 휴교령이 내려졌는데 자녀의 학교를 공개할 이유가 있었는지, 그것이 전염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필요한 정보였는지 의심된다. 이는 위 요건에 따라 기본권의 과잉 침해도 평가될 수 있다.


두 시장은 비판을 통해 성장할 때이다
박원순 시장은 위험했고, 특히 이재명 시장의 행동은 헌법상 비판의 여지가 있다. 이재명 시장의 정보공개는 헌법이 설정한 한계선을 고려하지 않았다. 정부가 계속해서 실패하더러도, 이들 시장은 국가의 모든 체제가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헌법의 선언 아래 조심해야 한다. 특히 개인정보는 개인의 정체성과 존재 기반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세밀하게 보호받아야 한다. 새누리당은 두 시장이 개인 정보를 공개했으니 감청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록 맹랑한 주장이지만, 개인정보를 소홀히 대할 경우 일어날 수 있는 부작용을 여실히 보여준다. 지지자들은 실수를 마냥 옹호해서는 안 된다. 성찰하도록 매섭게 비판해야 한다. 두 시장은 늘 ‘인권’을 앞세우던 사람들이기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앞뒤를 재지 않고 이들을 불안을 조장하는 포퓰리스트로 비판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불안을 조장한 건 정권이지 이들 시장이 아니다. 박근혜 정권이 바르게 대처했다면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별스럽게 나설 이유가 없었다. 정보공개만 포퓰리즘이 아니다. 지지율 걱정에 정보를 비정상적으로 통제한 것 역시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을 받아야 한다. 박원순 시장의 기자회견 이후 정부는 재빨리 메르스 환자 방문 병원을 공개했다. 정부의 하염없는 비공개 원칙을 선회시킨 데 박원순 시장의 공로가 컸다. 불안과 포풀리즘의 문제는 반드시 정부의 과오를 우선 짚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박원순, 이재명 시장에게만 책임을 묻는다면, 이는 번지를 잘못 찾은 생각이다.
여론조사 결과 55%의 국민은 지방자치단체장이 정보를 선제적으로 공개한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국가의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중에 지방자치단체가 그 대안으로 등장하는 일, 절망적이지만 이제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국가적인 컨트롤타워도 없는 와중에 고군분투하는 지방자치단체장을 응원한다. 하지만 무작정 실수를 옹호해서는 안 된다. 대의를 위해서 개인의 기본권을 절차 없이 무시하는 나라, 이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가득한 곳은 헌법이 바라는 풍경이 아니다. 한 사람의 사소한 기본권이라도 소중히 여기며 실수에는 과감하게 비판하는 모습, 두 시장은 이제 비판을 통해 성숙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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