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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선고는 의사가 하는 것이지 뉴스가 하는 게 아닙니다

  • 입력 2015.06.12 10:09
  • 기자명 아이엠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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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11일 저녁 8시 30분경 YTN은 '메르스 감염 삼성병원 의사 사망'이라는 속보를 내보냈습니다. 메르스 감염 사망자가 대부분 나이가 많은 노인이었기에 젊은 의사의 사망 소식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줬습니다. 그러나 YTN의 뉴스 속보는 오보였습니다.
YTN의 '메르스 감염 삼성병원 의사 사망'이라는 오보가 나오기 전, 한국일보는 오후 6시 33분에 <[단독] "메르스 감염 삼성서울병원 의사 뇌사">라는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삼성서울병원 관계자와 서울시 관계자의 말을 인용했다는 기사에는 'A씨는 뇌 활동이 모두 정지돼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판단, 가족들이 장례 절차를 준비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한국일보의 기사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현재 호흡 곤란이 있어 적절한 치료를 받고 있고, 생명이 위독한 상황은 아님을 주치의를 통해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결국, 한국일보는 '단독 메르스 감염 삼성서울병원 의사 뇌사'라는 제목의 기사를 '메르스 감염 삼성병원 의사 뇌손상 위중'이라고 바꾸었습니다.


한국일보는 수정된 기사 말미에 '본지는 앞서 박 씨의 상황에 대한 취재를 종합해 '뇌사 상태'로 드러났다고 보도했으나 의료팀이 뇌사를 공식 확인하지 않은 만큼 표현을 수정했습니다. '뇌사'라는 표현으로 가족과 독자 여러분께 걱정을 끼친 데 대해 진심으로 사과 드립니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현재까지 삼성서울병원 의사의 상태가 정확히 어떤지는 그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의 보도자료에는 생명이 위독하지 않다고 하고 있기에 그 어떤 판단도 섣불리 내려서는 안 될 것입니다.




YTN의 오보는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상태가 안 좋다는 말과 '뇌사', '사망'이라는 표현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특히 YTN의 '메르스 감염 삼성서울병원 의사 사망'은 단순한 오보로 보기에는 너무나 허술했습니다.


한국일보가 단독으로 삼성서울병원 의사 뇌사라는 기사를 내보낸 시간이 6월 11일 오후 6시 33분이었습니다. 보건복지부는 약 1시간 40여 분 뒤에 한국일보의 기사가 사실이 아니라는 '보도 해명 자료'를 배포합니다. 오후 8시 32분 YTN은 '메르스 감염 삼성병원 의사 사망'이라는 뉴스 속보를 내보냅니다.
YTN이 보건복지부가 8시 10분에 발표한 '보도 해명 자료'만 봤어도 '삼성병원 의사 사망'이라는 오보를 내보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YTN은 충분한 검증 없이 '사망'이라고 보도했습니다. 보건복지부에 정확한 사실 파악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저널리즘의 가장 기본적인 팩트 체크를 아예 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사람의 생명조차 이들에게는 한낱 뉴스거리에 불과했습니다.




언론의 베껴쓰기 관행, 대량 오보를 불러일으켰다
메르스 감염 삼성서울병원 의사의 '뇌사', '사망' 오보는 많은 언론에서 벌어졌습니다. 이유는 마구잡이식으로 베껴 쓰는 언론의 관행이 그대로 적용됐기 때문입니다.


포털 뉴스에는 한국일보의 기사를 인용한 '메르스 의사 뇌사'라는 속보 등이 수십 건씩 올라왔습니다. '장례 절차 준비'라는 자극적인 제목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한국일보 기사를 확인조차 하지 않고 그냥 베껴서 비슷한 기사를 수십 건씩 올렸습니다.
마치 진실인양 보도했던 기사들이 오보로 밝혀지자, 이번에는 '오보'를 가지고 뉴스를 만들어 올립니다. 자신들이 오보를 냈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 또다시 포털에서 클릭률을 높이기 위한 기사를 만들어냈습니다.
다른 매체를 인용한 기사였지만, 자신들의 이름을 걸고 보도한 기사가 오보라고 밝혀졌다면, 최소한 이에 대한 사과가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언론사 중에서 정확한 오보 경위를 밝힌 곳은 없다시피 했습니다.




속보보다 사실관계 확인이 더 중요한 저널리즘
이번 사태를 보면서 지난 2009년에 벌어졌던 마이클 잭슨의 사망 보도가 떠올랐습니다. 당시 TMZ.com이라는 연예 전문 매체는 마이클 잭슨의 사망 소식을 가장 먼저 보도했습니다.
AFP통신은 물론이고 전 세계 언론들은 TMZ.com이 보도한 마이클 잭슨의 사망 소식을 인용해서 속보로 내보냈습니다. 한국의 YTN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CNN은 마이클 잭슨의 상황을 보도하면서도 '사망'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서울 글로벌 뉴스 포럼에서 닉 렌 CNN 부사장은 '마이클 잭슨 사망설이 돌았을 때 우리는 출처를 확인할 수 없어서 이를 믿지 않았고 결국 사망 소식을 가장 늦게 보도한 언론사가 됐다'고 말했습니다.
CNN은 추가 검증을 하면서 100% 확실하다고 할 때까지 확인했고, 결국 사망 진단서가 나왔을 때 보도했습니다. 닉 렌 CNN 부사장은 '저널리즘 원칙에 충실하고 팩트가 확실할 때만 보도하기 때문에 시청자에게 신뢰감을 준다'고 밝혔습니다.
물론 미국 언론사들도 속보 경쟁을 하다 보면 오보를 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최소한 영향력이 높은 언론사라면 최대한 팩트를 확인하려는 노력을 기울입니다.
보건복지부의 보도 해명 자료만 봤어도 YTN의 어처구니없는 오보는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YTN의 사망 오보는 저널리즘을 깡그리 무시한, 언론사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찌라시라고 봐야 할 정도였습니다.


미드 HBO의 드라마 '뉴스룸'은 가상의 방송국 ACN을 통해 뉴스의 제작 과정과 속내를 보여줍니다. 시즌1의 4화에서 여성 하원 의원이 총격 사건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ACN 뉴스는 '총격 사건'만 보도하지 '사망 소식'을 내보내지 않습니다. 스태프가 앵커에게 다른 방송국이 속보로 '사망'을 보도하지 않으니 '매 초마다 1000명이 채널을 변경해'라며 다그칩니다. 갑자기 다른 스태프가 소리칩니다. '아직 살아 있대요. 마취 의사가 수술 준비 중이라고 확인해줬어요'
미드 뉴스룸의 ACN방송국이 진짜 방송국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널리즘을 추구하는 언론사라면 어떻게 보도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합니다. 한국 언론은 불과 1년 전 세월호 참사에서 언론의 보도 행태가 엉망이라며 '재난보도준칙'을 만들어 지키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별로 달라진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사망 선고는 의사가 하는 것이지 뉴스가 하는 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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