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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외면하는 그들만의 창조경제

  • 입력 2015.06.03 15:32
  • 기자명 오주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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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이 꼭 챙기는 게 있다. 창조경제혁신센터 개소식에는 만사를 제쳐놓고 참석한다. 지난 2일에도 전남창조경제혁신센터 개소식에 참석하기 위해 여수를 찾았다.


창조경제보다 사람이 먼저
대통령의 방문에 분통을 터뜨린 이들이 있다. 전남지역 노동계는 박 대통령을 향해 “사람이 살아야 창조경제든 혁신이든 할 것 아니냐”며 직격탄을 날렸다. 지난달 10일 박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씨가 회장으로 있는 이지그룹 계열사인 이지테크(포스코 하청회사) 노동자 고 양우권씨가 회사 측의 계속된 부당행위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자 지역 노동계가 강하게 규탄하고 나선 것이다.
고인을 죽음으로 몰고 간 건 회사였다. 노조 ㅈ탈퇴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회사는 고인을 두 차례나 해고했다. 소송 끝에 복직을 했지만 사측의 보복이 이어졌다. 현장직이었던 그를 제철소 밖에 있는 사무실에 1년 넘도록 대기 상태로 있게 하고 CCTV로 감시했다. 휴대전화로 감시 상황을 촬영하자 보안규칙을 위반했다며 또 징계를 내렸다. 사측에 시달리며 수면장애와 우울증으로 고통 받던 고인이 끝내 택한 것은 죽음이었다.
박 대통령은 억울한 죽음에 대해 항의하는 노동자들을 뒤로 하고 창조경제혁신센터 개소식에 참석했다. 전남까지 치면 전국적으로 열두 번째. 중소-중견기업의 성장과 글로벌 진출을 위한 지역 특화전략산업의 혁신거점이자, 창의적 아이디어를 사업화하는 창업허브로서 창조경제를 견인하는 전진기지가 될 거라고 호언장담하며 시작한 사업이다. 지금 어떤 상황일까.
너무 엉망이다. 시작한지 1년도 안 됐다는 점을 감안해도 그렇다. 전문가들의 지적과 일부 언론의 보도를 종합해 보면 벌써 애물단지가 돼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앞선다.


시작하자마자 벌써 애물단지
센터가 대통령에게 잘 보이려 하는 대기업들의 전시성 홍보관으로 변질되고 있다. 15개의 대기업이 1~2개 지역을 책임지는 방식이 도입되면서 중소-중견기업은 설 곳을 잃고 말았다. 그렇다고 참여한 대기업이 사업에 적극성을 띠는 것도 아니다. 대통령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한 ‘정치적 판단’에 따라 이름을 올린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지적이 설득력을 갖는다. 참여 의사를 타진하기보다 떠맡기는 식으로 진행됐다는 비판도 있다.
맨 먼저 참여를 결정한 삼성과 SK의 경우를 보자. 삼성은 경영권 승계에 직면한 상태다. 정권의 눈치를 봐야 할 삼성과 재계 1위 기업을 끌어들여 ‘전시용’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는 청와대.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이들을 매치시키는 좋은 구실이 됐다. 박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경북을 삼성에게 맡긴 것 또한 보수층을 의식한 정치적 노림수로 풀이된다.
SK의 경우 최태원 회장과 최재원 수석부회장이 구속된 상태다. 가석방 등을 생각한다면 청와대의 말 한마디에 귀를 기울여야 할 처지다. 조석래 효성 회장은 배임·횡령 등의 혐으로 기소돼 재판 중이며, 현대차 또한 경영권 승계를 목전에 두고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정권과 손잡아야 하는 대기업들. 청와대와의 관계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거라는 판단에서 사업에 참여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대통령에 의한 대통령을 위한 창조경제혁신센터
이렇다 보니 각 센터는 ‘대통령에게 잘 보이기’ 경쟁에 열심이다. 대통령이 참석하는 개소식을 의식해 센터 공간을 ‘의전행사용’으로 꾸몄다가, 식이 끝나면 ‘업무용’으로 바꾸기 위해 리모델링하는 경우도 있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강원과 전북 센터는 대통령 방문 이후 공간 전체 구조를 바꾸는 공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센터 운영도 획일적이다. 보고하고 지시하는 직선적 체계다. 민간 재단 형태로 설립된 센터지만 ‘창조경제추진단’의 통제를 받는다. 추진단을 장악하는 곳은 청와대 미래수석실. 정부 유관부처와 지자체, 대기업과 전경련 등은 지원기관 역할을 한다. 결국 센터의 우두머리는 대통령인 셈. 자율적 권한은 없다.
사업이 중복되거나 합리적 통제기능이 없어 우왕좌왕하기 일쑤다. 충분한 검토와 준비도 없이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의해 급조됐기 때문이다. 미래부의 기술확산지원, 통계청의 지역지식재산센터, 산업부의 글로벌전문기술개발·중소중견기업 수출경쟁력 강화사업, 중기청의 창조기업마케팅지원, 교육부의 학교기업지원, 지자체가 추진하는 16개 지역경제협의체 등과 사업영역이 중복된다. 교통정리가 안 되다보니 작은 일을 추진할 때도 이쪽저쪽 부딪히기 십상이다. 유일한 ‘업무가이드라인’은 ‘윗선의 눈치’다.
창업허브와 보육기업 육성. 이것도 구호뿐이다. 보육기업 400개를 육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지만 개점 휴업상태인 곳이 많다. 이미 100여개의 보육기업이 입주해있다고 말하지만 실상과는 크게 다르다. 창업한 지 이미 수년이 지난 유망 중소기업을 데려다 놓고 이를 스타트업(보육) 기업으로 둔갑시킨다. 대기업의 전유물로 전락한 센터도 있다. 대구·경북센터는 ‘삼성홍보관’처럼 활동되고 있고, 경남센터는 두산그룹 협력사 집합소 같은 분위기다.



임기 끝나면 자동 폐기될 사업?
부풀리기도 심하다. 각 센터마다 수백에서 수천억까지 펀드를 조성하겠다는 목표를 내걸었지만 다른 용도의 기존 펀드까지 포함시켜 부풀인 것에 불과하다. 중소기업 육성을 위한 성장사다리와 동반성장펀드, 지자체나 지역 테크노파크가 이미 조성해 놓은 펀드까지 합산했다. 펀드의 수요가 별반 없다. 실제 스타트업 기업 중에 펀드 투자를 받는 경우는 드물다. 초기부터 외부 지분 유입으로 경영권이 흔들리는 것을 꺼려하기 때문이다. 용도도 없는데 조성하겠다고 한다.
법률, 특허, 세무분야 상담 지원을 위한 ‘원스톱지원창구’가 있지만 이 또한 빛 좋은 개살구다. 입주 기업이 있어야 이런 상담이 필요할 텐데 텅 빈 곳이 많으니 개점휴업일 수밖에. 이런데도 국무총리에 지명된 황교안 장관은 변호사 자격 소지자 중 군법무관 소요인원을 제외하고 남는 인력인 공익법무관을 각 지역 창조경제혁신센터에 우선 배정했다.

‘박근혜표 경제브랜드’인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시작하자마자 한계를 드러내며 흉물이 돼 간다. 박 대통령의 동생이 회장으로 있는 이지그룹 계열사 노동자의 죽음을 두고 어느 노동자가 외친 한마디가 와 닿는다.

창조경제혁신 운운하기 전에 집안단속부터 먼저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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