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귀농 그거 하지 마라

  • 입력 2015.06.02 12:16
  • 수정 2015.06.02 12:21
  • 기자명 20timeline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친구야, 농사 지으려고?
오늘날 도시는 매일 같은 경쟁에 몹시도 분주하다. 친한 친구가 하루아침에 낙오자가 되기도 하고 이름만 알던 사람이 크게 성공했다는 소식은 이제 익숙하고도 낯설다.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또래들의 어깨를 밟고 서는 일에도 끝은 있을까. 사회는 서로 겨루지 않으려는 젊은이들을 싫어하는 것 같다. 그래도 삶은 먼 옛날처럼 살거나 죽거나 두 가지 길만을 강요하진 않는다.
내 친구는 소위 고졸에 무직 백수지만 군대를 전역한 뒤에 새 삶을 잡았다. 성별과 나이를 불문하고 크게 화제가 되고 있는 ‘귀농’이 그것인데, 처음 그것을 들었을 때는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들렸다. 아마도 토익이나 자격증, 학점 등으로 고통 받는 주변인들과 달리 이 친구는 그러한 현실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자기 젊음의 본질을 되찾으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9주에 걸쳐 정부에서 지원하는 귀농 교육을 마친 지금, 적어도 내가 보기에 그는 헐크에 가까운 앵그리가이가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 귀농반대자가 되었다.


내가! 이딴 쓰레기 같은 작물들 뒤치다꺼리나 하려고! 농사 시작한 줄 알아!


종원
왜 그렇게 화가 났냐. 정부에서 지원하는 교육 다 받으면 2억인가 지원 받는다며.
용헌
지자체마다 정해 주는 교육과정이 있는데 무슨 과정 수료하고 인턴제하고 사업계획서까지 다 써서 내 봤자 내가 들은 것 중에 제일 많이 땡긴 게 1억 2천이야. 1억 2천으로 농사 지을 수 있을 거 같냐?
종원
못 지어? 1억 2천이 적은 돈도 아닌데.
용헌
봐봐, 청양에서 농지가격이 평당 7만 8만이야. 그럼 가장 많이 하는 시설하우스 토양재배로 치고 보자. 하우스 어떤 작물이든 세 동 이하로는 힘들어. 네 동부터 얘기해야 하는데 네 동이면 뼈대하고 비닐만 해도 1중으로 1500~2000이야. 2중이었나. 하여튼 그러면 네 동 기준 싸게 잡아도 6천이지? 지원 땡긴 거 반 날아갔네?
그럼 하우스 네 동 해서 대략 800평에서 900평이에요? 그럼 청양 기준 평당 7만원 잡고 800평 땡기면 5600이니까 나머지 지원 받은 거 반 날아갔네? 그럼 그 다음부터 니 돈으로 해야 돼요? 자 보자. 1억 2천도 그냥 주는 게 아니라 대출이야, 저금리 대출. 그것도 특정 지원사업이라 해서 니가 자격요건만 갖추면 되는 게 아니라, 자격요건 갖춘 뒤에 선별을 해서 자격을 얻는 거야.
하여튼 어찌어찌 해서 선발이 돼서 지원받아 땅이랑 하우스를 샀어? 그럼 땅이랑 하우스 사면 끝이야? 전기는? 물은? 배수로는? 토질은 니가 하려는 작물에 적당하냐? 잠은 어디서 자게, 작물들이랑 같이 자려고? 물 같은 경우엔 여름에 농사지을 때 최소한 20톤, 겨울에는 10톤 가량의 물이 필요해, 수돗물 받아서 쓸 거야? 관정이라고 하는데, 땅 파서 지하수 끌어올려 써야지. 그 땅 파고 물 나오게 갖추는 데만 60이야, 어? 근데 땅을 팠더니 녹물이 나오네? 그러면 정화필터 갖춰야지. 그것도 돈이거든. 누구 돈이다? 니 돈이다.
전기시설은 보통 5K-15K정도 필요해, 비닐하우스에 전기시설이 왜 필요하냐고? 하우스에서 저녁에 안 움직일 거야? 밤엔 촛불 켜고 돌아다니게? 공포영화 찍냐? 어떤 시설이든 전기 끌어오는 건 필수야, 그럼 선을 한 개만 끌어오는 단선을 쓰든, 이중 삼중으로 된 삼선을 쓰든 그것도 돈이야. 돈.
토질 얘기는 하지도 마, 생각해봐, 작물마다 필요한 영양분은 비슷하지만 그 농도나, 좋아하는 토양이 산성이냐 염기성이냐가 전혀 다르다고. 만약에 땅 사고 시설 세웠는데 전에 있던 사람이 노지에서 농사한다고 비료 잔뜩 줬어봐, 그럼 땅이 비료에 오염되어있다고, 그거 그대로 심으면 작물이 죽어. 빼도 박도 못하고 죽는다고, 그거 중화하려면 볏짚을 땅에다 뿌린 다음 트랙터로 땅을 뒤엎던지 방책을 마련해야 돼. 농촌에선 볏짚 하나, 물 한 방울이 돈이고 노동이야.
배수로도 그래, 하우스에 비 오면 천장이 둥그러니까 알아서 물이 내려갈 것 같지? 당연히 배수로를 파놔야지, 폭 80cm 깊이 40cm가 최소야, 최소. 그걸 하우스 사이사이에 일일이 다 파야 한다고. 그럼 뭐 삽 하나 들고 열심히 파면 될 것 같아? 언젠간 되겠지. 니 동생 손주 볼 때쯤엔. 참 나, 당연히 작은 포크레인 불러야지. 하루에 40. 이틀이면 끝나, 다행이지? 80만원.
종원
여름에는 뭐 지어?
용헌
여름엔 다 지어. 다 나와. 싹 다 나와. 그럼 과일값이 떨이겠지. 자 그럼 차근차근 따져보자고. 니가 여름에 농사 지어. 일조량 조절 안 할 거야? 이불 설치해야지. 왜 식물은 햇볕 잘 받으면 광합성도 하고 쑥쑥 자라니까 한여름에 그 뜨거운 불볕을 내내 쬐어주려고? 이불이라고 있어. 하우스 위에 설치해서 온도 조절하고 일조량 조절하는 거. 어, 근데 이건 지원사업이 있네. 심지어 이건 보조사업이야. 2천인데 나라에서 50% 지원해줘, 이건 안 갚아도 돼. 다행이지? 너 근데 나머지 50% 있어?
자, 어찌어찌 설치했어. 어 근데 물은 어떻게 주지? 물줄 내야지, 바가지로 퍼다 주게? 구멍 줄줄이 뚫린 얇은 고무관을 땅 위에 깔아놓고 물을 주는 거야. 관주 네 동이면 네 줄씩 심을 때, 하우스 길이가 93미터 가량이니까 한 줄에 관주 두 개씩 그럼 동당 8줄이죠? 네 동이면 32줄이네? 32×93? 대략 삼백 잡읍시다. 삼백 미터 가로길이는 빼고 관주시설 뭘로 설치하나요? 니 돈과 니 노동력.
어, 이제 물 준비되고 하우스 준비됐으니 심으면 되지요잉? 어디 남의 밭에서 문익점처럼 씨 훔쳐와서 심으시려고? 육묘점에서 사야죠. 한 동에 다섯 고랑, 한 고랑에 천이백 주씩 심는다 치고 한 동에 육천 주니까 네 동이면 2만 4천 주네? 그거 육묘 한 개당 얼마? 백 원 단위. 어머 삼백 원 잡아도 720만원이네! 근데 2만 4천개 주문하면 2만 4천개 자로 잰 듯 싹 다 들어가나요? 불량품이 있어. 불량품이 열 주 당 한 개씩 나오면 2만 4천주 면 2400개. 넌 그럼 넌 2만 6천 주 가량을 주문해야죠? 그럼 칠십이만 원 추가요. 와 사서 심었어! 근데 이제 비료를 줘야죠. 비료는 어떻게 주냐고? 그냥 비료 흙으로 된 거 밭에다 풀풀 뿌리면 알아서 무럭무럭 자랄까? 되도 않는 소리를, 양액 만들어서 줘야지. 어떻게 만드는지는 말 길어지니까 생략.
종원
양액이 뭐야?
용헌
링겔 같은 개념이야. 영양액이지. 사실 만드는 데는 얼마 안 들어. 아 그래, 말 좀 길어지면 어때. 양액 만들려고? 그럼 영양액 만들어야 되는데 액 만들 줄 알아? 양액은 화학원소를 함유한 물이니까 그냥 질소 인산염 칼륨 들어있는 용액 쓰면 되나? 아니야, 그러려면 질산 만져야 하는데 너 질산이 뭔지는 알아? 폭발물이라서 택배도 안 돼, 니가 직접 가져와야지. 그렇게 만들긴 싫지? 양액을 만들 때는 비료를 물에 섞어야 돼. 비료값은… 계산하지 말자.
자 그럼 양액을 만들었어. 관주시설에 넣고 뿌렸더니 무럭무럭 자라서 와, 꽃이 폈어요! 근데 이거 꽃 놔두면 안 돼. 이쁘지? 다 니가 솎아낼 이쁜이들이야. 한 동에 6천 주니까 총 2만 4천 주, 한 마디에 여덟 송이씩 꽃이 달린다 치자, 어 그럼 한 마디만 키우시려고? 두 세 마디는 뽑아야 돈이 돼. 세 마디라고 치고 그럼 2만 4천 주에 3 곱하면 되네? 그럼 7만 2천 마디지? 그럼 꽃송이는 57만 송이. 그 중에 1/3을 솎아내야 한다고 치자고. 정확한 숫자는 알아서 계산해봐. 나도 몰라. 그냥 아무거나 따면 되는 건지 골라서 따는 건지. 넌 아니? 귀농 교육기관에서 가르쳐주디?
혼자 할 수는 없겠지? 아 할머니 고용하려고? 좋은 생각이야. 할머니들 고용하면 되지. 할머니 두 분이면 하루에 한 동 끝나니까 나흘이면 되네. 몸값 한 분에 얼마? 4만원. 얼마 안 들지? 그런데 밥값 아침 점심 5천원씩 하루에 2만원. 니가 차려드린다고? 할머니 픽업이 새벽 여섯 시인데 그럼 다섯 시 반에 일어나서 차려놓고 모시러 가려고? 효자네. 그럼 하루 6만원씩 나흘이네? 24만원. 아 넌 밥 안 먹어? 할머니 밥 사드리고 넌 집에서 먹게? 말 같은 소릴. 네 것까지 2만원 추가. 근데 진짜 할머니들 아침 점심만 드리고 일 시킬 건 아니지? 새참 값 음료수 값 막걸리 값은 별도다?
그럼 꽃 땄어? 이제 수정시켜야지. 니가 꽃 수십만 송이를 수술 암술 옮겨 다니면서 일일이 수정시켜줄 거야? 벌 사서 써야지. 한 동에 사 만원 씩 십육 만원. 수정 다 했네 이제. 와, 열매 맺혔어! 신기해. 너무 이뻐 내 새끼들. 자 이제 따야지. 그럼 니가 솎아낸 57만 꽃송이 중에 1/3 솎아냈다 치면 대략 40만 개 열렸네요? 근데 이거 한 번 따고 끝? 아니죠. 세 마디라고 했지? 위의 과정을 세 번 반복. 왜? 마디마다 꽃 피는 시기가 다르거든. 한번에 쑥 자라서 한번에 쑥 꽃피는 거 아니잖아. 40만 개 한번에 하는 것처럼 말했지만 일이 실제로 그렇게 쉽나. 꽃이 세 번에 걸쳐 피니까 열매도 세 번에 걸쳐 따겠지? 수확 시기가 일주일에 한 바퀴 다 치자. 와, 신난다. 근데 따서 어디다 납품할 거야? ×플러스? ×마트? 너 농약 쳤잖아. 공판장 가야지.


농약 쳤어? 안 돼. 안 바꿔줘.


종원
농약 쳤으면 홈×러스, 이×트에서 안 받아줘?
용헌
무조건 최소 무농약. 그 인간들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들이라 농약 한 방울만 나와도 바로 빠꾸야. 어, 너 무농약으로 했다고? 근데 빠꾸 먹었어? 아 그거, 옆 논 세 마지기하는 김씨 아저씨가 논에 농약 뿌린 거 바람 타고 니네 하우스로 들어갔어. 그게 검출돼 버렸네. 어거지 같아? 실제로 흔히 있는 일이야. 그러니까 잔말 말고 공판장 가자. 자 그럼 딸기 40만 개 세 번에 걸쳐 따니까 한 바퀴에 십삼만 개 땄네? 혼자 따려고? 또 할머니 모셔야지… 할머니들이 위의 알고리즘으로 하루에 한 동씩 끝내실까? 이게 누굴 죽이려고. 한 분 더 모시고 너도 같이 해야지. 그래야 하루 한 동씩 나흘에 한 바퀴가 끝나.
어, 돈이 좀 될 것 같네? 지금이 근데 여름이네! 수박 자두 복숭아 메론 사과 바나나 키위 체리 블루베리 요즘 우리나라 재배 성공했다고 망고도 나오네! 아니 근데 딸기가 제일 많아! 왜? 작년에 딸기값 존나 높다고 개나 소나 밭 다 갈아엎고 딸기 심었거든! 그러면 가격이 어떻게 된다? 3키로 박스에 작년에 사만 원 받았는데 이만 원이라네? 공판장 출하에 트럭 이용료 하차료 빼면 값이 끝도 없이 떨어져나가는데? 근데 할머니들 허리 아프시대. 다음 주부터 못 나오신다네? 아직 이십육만 개 2주 동안 더 따야 되는데? 그럼 누가 죽어나간다?
종원
그렇게 해서 원금 회복 안 돼?
용헌
3년 정도는 거치기간이라서 이자만 갚으면 돼. 이야, 안심이야! 아직 안 갚아도 돼! 딸기 값으로 인건비 생활비 겨우 아슬아슬하게 뽑았지만 괜찮아, 아직 겨울이 있어! 승산 있어! 근데 보일러 설치해야 하네… 석유보일러만 때면 될 것 같아? 전기보일러 석유보일러 다 때야 돼. 생각해 봐. 너희 집 32평 아파트 데우는 기름값에도 벌벌벌 떠는데, 800평 땅에 석유보일러를 땐다? 그것도 24시간 내내? 딸기는 따뜻하게 재배해야 되는데, 아무리 농가용 기름이 싸다고 해도 1도, 2도에 백만 원 단위로 돈이 오고가. 너 그거 감당할 수 있냐?
자, 어떻게 감당했다고 하자. 근데 할머니들 무릎이 시리시대! 꽃도 니가 다 솎고 열매도 니가 다 따! 그래서 팔았는데… 어? 특급으로 나와서 3키로에 3만원은 받을 줄 알았는데 이만 원이래. 왜? 왜긴 왜야! 여름에 지었던 농가들 다 너처럼 포기 안 했거든!


꼭 그렇게.. 딸기 키워야만.. 속이 후련했냐?

어 근데 생각해봐. 딸기 한 덩이에 25그램 잡고 사십만 개면 대략 10000kg니까 수확량이 무려 10톤이야? 돈은 많이 받네. 짭짤해요잉? 그 짭짤한 수익을 상환할 지원금과 시설유지비가 입 쩍 벌리고 기다리고 있는 거지. 참. 나 상자 값 일부러 안 셌다? 포장용 종이 상자 하나에 이천원대인 것만 기억해둬.
어 근데 너 집 있어? 지을 건 아니지? 하우스 안에 6평짜리 생활공간은 만들 수 있어. 법적으로, 근데 거기 샤워시설 갖춰놓고 살 거야? 언제까지? 화장실도 못 짓는다 거기? 세 들어야지. 근데 누가 세 내준대? 복덕방 김 영감님이 기다려보라는 게 여섯 달 전이야. 방이 안 났대. 저 집 2층에 사는 사람 세 번은 바뀐 거 같은데 방이 안 났다네. 그래서 김 영감님한테 막걸리 사 들고 가서 슬슬 물어봐, 방 있나. 실은 있대. 반지하 18평 월세. 쥐랑 같이 자야 됨. 근데 세가 얼마? 3천에 80. 아니 강남 땅이여? 시골 땅에 이게 말이 돼? 알고 보니 외지 사람이라서. 그게 말이 되냐고? 너 농촌 사회라는 게 어떤 구조인지는 알고서 물어보냐? 외지 사람 오면 시골 사람들이 아이고, 총각 반가워유~ 우리 마을에 사람이 없었는디… 이럴 거 같지? 안 그래.아니 총각 자네는 젊은 사람이 뭐 땀시 왔는가? 62세 청년회장이 물으시네.
종원
그래서 왜 하지 말라는 거야?
용헌
안 반겨. 돈은 많이 들고, 노동량은 압도적으로 많고, 무엇보다 지역 원주민들하고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이 너무 높아. 너처럼 귀농 뛰어들었다 1,2년 사이에 싹 말아먹고 도망치는 사람들이 허다하거든. 사정이 조금 나아져서 귀농한다고 하면 환영하는 분위기로 전환은 되고 있지만, 완전히 나아지려면 시간이 더 있어야 돼. 노하우? 얻으려면 얻을 수 있지. 교육과정에서 연을 맺을 길이 많으니까, 선배 귀농인들도 너처럼 젊은 사람이 온다고 하면 기꺼이 도와주실 거고, 그런 분들 도움 받아서 배우면 돼. 근데 너 실수 안 할 자신 있어? 평생 스마트폰으로 미니 팜이나 키우던 사람들이 교육 두 달 펜 끄적이며 배운 걸로 할 수 있을 거 같냐? 니가 인턴제로 농가에서 먹고 자면서 농사법 배운다고 해도, 그 농가에 있는 시설, 장비, 도구들의 스펙을 니 농장에, 1년차에 그대로 적용시킬 수 있을 것 같아? 넌 그 장비들 쓰면서 배웠는데? 절대 아니지. 그 사람들도 몇 년씩 걸려서 그런 스펙을 갖춘 거라고.
농사 만만한 거 아냐. 쉽게 할 수가 없어, 진짜 그래. 나처럼 운 좋은 사람 아니면 힘들어. 게다가 실수 한 번 하면 끝장 나. 이건 나도 마찬가지라고. 양액 비율 잘못 맞추거나, 물 줄 시기, 곁가지 제거, 꽃 수정, 성장 억제시기를 조금만 삐끗해도 진짜 그 해 수확할 게 없어져버려. 양액재배라고 있거든. 시설을 만들어 이건. 물로 키워. 영양액으로. 뿌리 담가서. 이게 수확량 많이 나오고 손도 많이 안 가고 돈도 더럽게 많이 들어. 최소 시스템 제대로 갖추는 데 1억에서 2억이야. 설령 지원 사업이 있다고 해도 쉽게 손대긴 힘들지. 그리고 내가 이건 말 안 했는데, ‘오천 원 줄 테니까 동네 슈퍼 가서 트랙터하고 트랙터 뒤에 애드온처럼 달아서 밭가는 거 사오고 사천 팔백 원 남겨와’ 이런 게 가능할 것 같아? 아니지, 트랙터만 해도 천만 원대인데.
과수? 사과나 배 키우려고? 과수는 괜찮아, 좋지. 그래. 근데 심고 삼, 사 년 기다려야 되는데? 그동안 나무껍질 벗겨먹고 살려고? 특용작물? 버섯? 버섯 특용작물 시설비용이 얼만 줄은 아냐? 하우스 사서 땅에 심으려고? 버섯을 땅에 심냐? 통나무 자른 걸 수십, 수백 개 사서 해야지. 하다못해 가짜 나무라도 사서 그거로 키워야 돼. 그게 시설비용에 쁘라스알파. 장류 가공? 된장 고추장 간장 막장? 이런 젠장, 너 장독 큰 거 하나에 수백만 원 인건 알고 하는 소리지? 제일 만만한 게 노지야? 노지에서 뭐 할 수 있는지 알아? 콩, 옥수수, 가지, 호박, 배추 등등의 야채류인데. 너 매해 김장철이니 무슨 철 올 때마다 채소값 널뛰기하는 꼴 감당할 수 있냐? 오죽하면 ‘태풍이 아래쪽을 휩쓸면 위쪽이 웃는다’는 말이 나오겠어? 그래야 채소값이 오르거든, 전체적으로 수확량이 확 줄어드니까. 방울토마토. 그래, 방울토마토도 노지에서, 그냥 땅에서 키울 수 있지. 가격도 괜찮고. 근데 겨울엔 농사 안 지을 거야? 겨울에 값이 제일 좋은데?
이러다 보니 제일 만만한 게 시설 하우스고 제일 만만한 게 지역 특산 시설 과채류야. 내년에 귀농자 10만 명 예상이다? 그 사람들이 다 뭐 할 거 같아? 조막만한 밭 한 뙈기에 콩 심은 다음 한 달에 오십만 원씩 벌면서 ‘어휴, 콩 심으면 콩 나고 팥 심으면 팥 나지’ 이럴 거 같냐? 다 시설재배야. 그 10만 명 중에 최소 5만 명은 시설하우스로 간다고. 그 사람들이 다 너랑 똑같은 작물 심고, 다 너랑 경쟁선상의 작물 키워 팔고, 다 너보다 독했으면 독했지 덜하진 않은 사람들이야. 왜? 너보다 자금력 좋지, 지원은 덜 받더라도 충분히 재산이 뒤에서 받쳐주지. 대개는 아내, 남편이 있으니까 재배할 수 있는 면적 수도 넓어. 농담 같아? 사람 한 명이 있고 없고가 얼마나 큰 차이인 줄 알아? 그리고 사회생활로 인한 판로 개척, 예를 들어 지인을 통한 직판이라든가 하는 대체판매가 충분히 가능한 게 지금 어른들이거든. 너처럼 머리에 피도 안 마르고 아는 사람이라곤 담배값 없어서 쩔쩔 매는 친구들밖에 없는 놈이, 잘 키워 팔 곳이라고 해봐야 공판장 말고 더 있어? 게다가 넌 테크닉이 없어서 약 없으면 못 키워. 당연한 거지. 누가 약 먹은 작물을 값 얹어서 사가겠어? 공판장 가서 팔아야지. 그리고 공판장에는 너랑 똑같은, 아니면 너보다 훨씬 우월한 사람들 수백 수천 명이 자기 것 던져 놓고 가고 있거든.


ⓒ무적핑크 <경운기를 탄 왕자님>

내가 하려는 말은 이거야. 귀농 괜찮아. 특히 2030세대는 지원이 정말 빵빵해. 기반만 잘 닦아놓으면 충분히 가능성 있어. 근데 중요한 건, 한 번 실수로 미끄러지면 니가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 뚫어야 하는 구멍이 너무나도 크기 때문에 다시 올라오기 너무 힘들어. 귀농은 편도행 티켓이야. 한두 달 해보고 ‘아, 나랑 안 맞는 것 같다’ 싶으면 그냥 다 팔아버리고 되돌아올 수도 없다고.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거? 너 지금 시내 가면 너랑 최소 동갑, 많아야 니랑 다섯 살 프라스마이나스인 사람들 많지? 그런데 니가 가려는 데는 사람이 없어. 너처럼 심심하면 날 잡아서 놀러 다니던 애가, 하루에 한 시간 동네버스 터덜터덜 다니는, 차 타고 돌아다니면 띄엄띄엄 눈에 뵈는 사람이라곤 다 니 할아버지 할머니뻘들인 곳에서 지낼 수 있어? 너 내가 아까 마을 ‘청년회장’이 62살이라고 했지? 그거 진짜다? 시내? 차 타고 한 시간 거리. 참 너 면허는 있냐? 차는? 경차 산다고? 귀농한다는 애가? 최소 중고 1톤 트럭 한 대는 있어야 숨쉬고 살지.

엄마, 나 그냥 공부나 할게!
이후에도 많은 대화를 나눴지만 대화를 통해 얻은 결론은 결국 젊은이의 귀농이 그렇게 낭만적이고 쉬운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내 친구는 다행히 주변에 농사에 밝은 아저씨를 지인으로 두고 있고 곧 퇴직을 앞두신 아버지와 함께 귀농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무자본 청년 귀농가는 분명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생각하는 ‘귀농’과 현실의 차이에 대해서는 무자본 청년 귀농가 만큼이나 실망하고 분을 내고 있다는 게 대화를 나누면서 느껴졌다.
이처럼 현대사회에서 소비되고 있는 이미지들과 그 실제 사이의 괴리는 얼마나 가혹한가. 귀농뿐만 아니라 소위 트렌드세터라며 추앙 받는 유명인들의 상징인 제주도라든지 채식 같은 자연친화적인 행위에서 오는 ‘쿨’함은 우리를 멋지게 만들어줄 수는 있지만, 우리의 미래가 되어선 안 된다. 현실이 경쟁과 상심으로 들끓고 있다고 해서 우리의 진로가 낭만에 기반해 설계되어서는 안 된다. 이미지를 좇고 따라 하는 건 어디까지나 자유지만, 그것을 업으로 선택했을 때 우리는 이미지의 본질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귀농이나 제주도에서의 삶 같은 것이 마치 아름다운 청춘의 표상인 양 이야기하는 이야기꾼들의 이름을 잘 기억하기 바란다. 때가 되어 이미지와 실제 사이의 괴리감을 깨닫게 되는 날, 단언하건대 그들은 우리를 그 배신감으로부터 구원해 주지 않을테니.


이 글은 20timeline에 게재되었습니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