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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외비만 1억, 연예인 콘서트장으로 전락한 대학 축제

  • 입력 2015.06.01 10:14
  • 기자명 아이엠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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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한 대학교에서 열린 축제 사진이 논란이 된 적이 있습니다. 사진에는 대학 축제 초청 가수 공연에 학생회 간부들이 일명 VIP석에 앉아 공연을 관람하고, 해병대 복장의 사람들이 일반 학생들을 통제하는 장면이 담겨 있었습니다.
해당 학교 학생회는 안전상의 이유로 통제했고, 어디서나 VIP석은 존재한다는 글을 남겼다가 오히려 더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학생회 간부라 맨 앞자리에서 공연을 봤고, 안전을 위해 통제를 했다.’ 학생회 입장에서는 이 황당한 변명을 나름 일리 있는 해명으로 생각한 모양입니다.

우리는 이 문제에 앞서 진짜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바로 대학 축제에 사람들이 몰리고, 맨 앞자리가 VIP석이 되는 연예인들의 공연이 필요하냐는 것입니다.





대학 축제, 출연 가수 섭외비만 무려 1억 원이 넘는다대학 축제에 출연하는 가수들은 1회 공연에 2~3곡의 노래를 부릅니다. 출연 가수들은 섭외비로 적게는 100만 원에서 많게는 4천만 원까지도 받습니다.



2013년 민주당 유은혜 의원실이 교육부에서 제출 받은 자료를 보면, 가수 카라는 수도권 대학에 출연하면서 섭외비로 3,200만 원을 받았습니다. 지방 대학에서 비스트를 초청하려면 최소 4,000만 원을 섭외비로 내야 했습니다.
2014년에는 '비스트', '2PM', '인피니트'와 같은 1순위 가수들은 4천만 원 내지는 5천만 원까지도 섭외비가 올랐습니다. 걸그룹도 최하 2천만 원부터 3천만 원이 훌쩍 넘는 섭외비를 줘야 출연했습니다. A급 가수는 아니지만, 인기가 급상승하는 아이돌 가수들은 처음에는 1천만 원 이하의 섭외비로도 출연했지만, 불과 한 달 만에 2천만 원이 넘는 섭외비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제주대학교 문준영 학생은 전국 국공립대학에 대학 축제 때 사용된 연예인 섭외비 내역을 요청했습니다. 확인 결과 2010년부터 2014년까지 국공립대학 28곳 중 무려 23개 대학의 연예인 섭외비가 1억 원이 넘었습니다.
한국교통대학의 경우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축제 때 사용된 연예인 섭외비가 총 4억 9천만 원이었습니다. 이어서 부산대학교 4억 6천만 원, 공주대학교 4억 2천만 원, 제주대학교 4억 965만 원 등, 각 대학이 축제를 치르는 데 수억 원이 넘는 비용을 연예인 섭외비로 지출했습니다.

연세대와 고려대학교 등 사립대학교 등은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 알 수 없지만, 국공립대학과 비슷한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대학 축제 예산의 30%~70%가 연예인 섭외비제주대학교는 2010년 축제 당시 가수 싸이, 크라잉넛, 은지원, 김병만 등 유명 연예인의 섭외비로만 총 6천 7백만 원을 지출했습니다. 2011년에는 7천 6백만 원, 2012년은 8천 8백만 원, 2013년은 1억 원이 넘었습니다.


제주대학교 총학생회는 한 해 평균 8천만 원 이상을 연예인 섭외비용으로 지출했습니다. 제주라는 특성 때문에 섭외비가 비싸다고 해도, 제주의 국립대학교가 1억 원에 가까운 돈을 매년 축제 때 연예인 섭외비로 지출하는 모습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 게 사실입니다.


서울 소재 대학의 축제 비용을 보면 국공립은 1억 원대, 연세대와 고려대 같은 사립대는 2억 원 정도입니다. 단과대 지원이나 개별 행사 진행비를 제외하면 전체 예산의 30%에서 70%까지가 연예인 섭외비로 나갑니다.
모 대학에서는 연예인 섭외비용으로 5,800만 원을 지출했지만, 학생 동아리 공연이나 전시회에는 고작 450만 원을 지원했습니다. 대학 축제에서 가장 많이 지출되는 비용이 ‘학생들을 위한 축제 환경 지원’이 아니라, ‘연예인을 모셔오기 위한’ 섭외비인 셈입니다.
이는 한 마디로 대학 축제가 아니라 유명 가수들의 콘서트장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오죽하면 대학 축제 공연장 표가 동이 나, 구하지 못한 사람을 위한 '암표'까지도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대학 축제가 학생들의 화합을 위한 공간인지, 그저 아이돌 가수를 보기 위한 콘서트장인지 아리송해집니다.




아이돌 가수를 부른 이유, 기업 후원을 받기 위해서?
그런데 대학 총학생회는 억 단위의 연예인 초청 비용을 어떻게 감당할까요? 보통 축제 비용의 50%~70%는 학생회비나 대학본부의 지원금으로 충당하고, 나머지는 ‘기업 후원금’으로 채웁니다. 총학생회는 몇 만 원짜리 광고비부터 수백만 원의 기업 부스 자릿세를 통해 축제 비용을 마련합니다.


대학 축제에서 기업 부스를 운영하는 곳은 화장품 회사나 통신사, 의류업체 등입니다. 보통 기업들이 내는 자릿세는 하루에 100만 원에서 많게는 300만 원이 넘습니다. 이틀 동안 600만 원의 자릿세를 낸 기업들은 단순 홍보로 만족하지 못합니다. 총학생회와 협의해 가장 좋은 목에 자리를 잡고 경품 이벤트로 사람을 끌어 모아, 통신사 변경이나 화장품 판매로 수익을 올리기도 합니다. 대학 축제가 기업들의 영업장소를 방불케 하는 현장으로 바뀐 것입니다.
대학 총학생회는 연예인을 섭외하기 위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기업들의 과도한 마케팅을 눈감아주기도 하고, 적극적으로 기업 홍보를 도와주기도 합니다.




서울여대 총학이 현수막을 철거한 진짜 이유
서울여대 총학생회는 축제 기간 중 학교 내에 걸려있던 청소노동자들의 현수막이 축제에 방해가 된다며 철거했다가 거센 비판을 받았습니다. 서울여대 학보사는 총학생회의 청소노동자 현수막 철거를 비판하는 졸업생들의 성명서를 게재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간 교수는 '성명서를 실을 경우 발행을 허가하지 않겠다'며 위협했고, 학보사는 1면 백지 발행으로 맞섰습니다.


서울여대 총학생회가 청소노동자의 현수막을 철거했던 가장 큰 이유는 대학 축제가 내부 행사가 아닌 외부인들이 오는 행사로 변했기 때문입니다. 대학 축제가 학생들의 순수한 축제가 아닌 상업성으로 물들어, 독재 시절에나 볼 수 있었던 대학 학보사의 백지 발행까지도 불러왔습니다.
유명 아이돌 가수가 출연해야 사람이 많이 몰리고, 기업 부스가 잘돼야 기업으로부터 돈을 더 많이 받아낼 수 있는 구조가 오늘날 대한민국 대학 축제의 현실입니다.
취업 준비와 아르바이트로 지친 대학생들이 마음껏 젊음을 발산하고 동아리나 학과 선후배 간의 친목을 나눌 수 있는 시간. 그런 대학 축제는 이제 볼 수 없는 걸까요? 대학 축제에 학생은 없고, 오로지 연예인과 상업성으로 무장한 총학생회와 기업만이 존재하고 있는 듯해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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