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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맥주가 변하고 있다

  • 입력 2015.05.23 19:28
  • 수정 2015.05.24 17:11
  • 기자명 고함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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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여름에는 맥주’하는 생각으로 들어간 편의점. 맥주 진열대에서 마주친 '라거','에일','몰트','홉'... 맥주에 관한 용어가 생소하다. 어떤 맥주에는 ‘물을 섞지 않았다’라는 문구가 쓰여있는데, 그렇다면 어떤 맥주는 물을 섞은 것인가? 어렵다... 당신은 생각한다. ‘맥주는 생맥주, 캔맥주, 병맥주 세 종류만이 존재하는 게 아니었던가? (하이트, 카스, 오비 세 종류였던가...)’ 올여름도 역시 진열대에 수많은 맥주들이 있다. 그중 당신이 선택할 맥주에 몇 가지 합리성을 실어줄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클라우드의 등장, 국산 맥주 삼국시대


'물타지않았어요.' 클선생의 등장 ⓒ롯데칠성주류


최근 ‘하이트 아니면 오비’라는 국산 맥주 공식에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 양분된 맥주 업계에 ‘롯데’라는 무서운 후발주자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4월 롯데는 ‘물을 섞지 않은 맥주’ 클라우드를 출시했다. '물을 섞지 않았다'는 표현은 ‘발효된 맥주 원액에 물을 섞어 완성되는 기존 국산 맥주’와는 다르게 발효가 완료된 맥주 원액을 제품에 그대로 담는 ‘비가수 공법’(오리지널 오리지널 그래비티 공법)을 가리킨다. 엄밀히 말하면 물을 섞기는 섞는데 발효 전에 섞느냐 발효 후에 섞느냐의 차이이다. 하이트와 오비는 발효 후에 물을 섞고, 클라우드는 발효 전에 섞는다.
이 작은 차이가 만들어내는 맛의 차이는 얼마나 클까? 맥주량에 있어서 전체 시장의 3%를 차지하는 '클라우드'가 출시 1년 만에 대형마트 평균 10%의 점유율을 기록하는 것을 보면 많은 소비자가 '물이 섞이지 않은 맥주'라는 광고카피에 공감하는 것 같다. 필자도 역시 클라우드를 좋아한다. 끝 맛이 맹하지 않고, 쌉싸름함이 지속되는것은 좋은 홉과 훌륭한 공법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클라우드를 마실수록 경쟁사의 맥주와 닮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 맥주는 바로 'OB골든라거'. 둘의 맛이 비슷하다는 것은 필자의 주관이지만, '끝 맛까지 잡아주는 짙은 라거'를 표방하는 둘의 방향성은 같다. 클라우드의 선전과는 반대로 OB골든라거는 생산을 중단한 상태다. 같은 맛을 지향하는 두 맥주의 희비는 왜 극명하게 엇갈렸을까?
십수 년 맥주만을 바라보았으며 흑석동 모처의 세계맥주집을 경영하는 k사장님은 맥주 시장에서 클라우드 선전하는 원인에 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전지현, 그거 전지현이 광고에 나와서 그래." (전지현이라니...하이트 '드라이 피니쉬' 광고에는 원빈이, '오비 골든라거'의 광고에는 장혁이 등장했다. 지못미....) 전지현은 논 외로 하더라도 클라우드의 선전은 광고와 마케팅 덕분이라는 점에서는 동의한다. 무엇보다 '물을 타지 않은 맥주'라는 프레이즈가 성공적이었다.
기존 국산맥주는 '깔끔하고 청량한 라거'로 대표되었기 때문에, 가벼운 맛의 맥주를 지향하다 보니 자연스레 동반되는 '밍밍하다''물맛이 난다'라는 지적이 존재했다. 이 부분에 소비자들이 느끼는 갈증을 풀어준 것이 '물을 타지 않은 맥주'라는 표현이었다. 광고를 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그간 맹한 맥주맛의 원인이 '물을 섞어서'라는 것으로 귀결된다.
사실 물을 섞지 않는 맥주는 없고 위에 이야기했듯이 물을 언제 섞는가의 차이만 존재할 뿐이다. 맥주의 정체성의 문제를 '물을 섞는 당위성'의 문제로 풀어낸 것이 클라우드 성공의 가장 큰 요인이라는 필자의 추측. 여하튼 클라우드의 원활한 공급을 위해 제2공장을 건설하며 경쟁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롯데, 국산맥주 삼국지 시대의 서막이 시작되고 있다.


'라거'의 반도에 '에일'착륙하다.


대한민국, 카스...아니 라거의 반도

‘다른 모든 술들이 그렇듯 맥주 또한 발효통 속에서 발효과정을 거친다. 이때 사용하는 효모의 종류에 따라서 어떤 효모는 발효통 위로 떠오르고 어떤 효모는 발효통 아래로 가라앉는다. 이때 위로 떠오르는 효모를 사용한 맥주를 에일(상면발효), 아래로 가라 앉는 효모를 사용한 맥주를 라거(하면발효)라고 한다.
에일 맥주는 고온에서 짧은 기간 숙성 되는데 반해, 라거 맥주는 저온에서 장기간 숙성된다. 온도와 사용하는 효모의 차이로 인해 숙성을 거치며 에일은 향이 깊고 진한 맥주가 라거는 잔 맛이 없는 깔끔한 맥주가 된다.
진로의 ‘퀸즈에일’과 오비의 ‘에일스톤’의 출시 전 까지 국산 맥주는 ‘라거’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깔끔하고 시원하다’하며 한 모금 마신 뒤 ‘캬~’소리가 절로나는 청량감 등 기존에 소비자가 가 지고 있는 맥주에 관한 인상은 하이트, 카스, 맥스 등 모든 국산 맥주가 ‘라거’에 속했기 때문이다. 물론 새로운 제품의 개발을 위한 노력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이트의 '드라이 피니쉬', 오비의 '오비 골든라거'와 같은 신제품들이 계속 출시되었다. 하지만 모두 '청량함과 깔끔함'이라는 라거'의 범주 안에 국한된 것이었다.
라거 일변도의 국산 맥주 제품군이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세계 맥주의 본격적인 유통 때문이다. 대형마트의 세계 맥주 유통과 세계 맥주 전문점의 등장으로 국내 맥주 소비자들의 다양화된 취향을 맞추기 위해 양대 맥주 회사는 '라거'가 아닌 새로운 제품군을 개발해야 했고 그리하여 13년 9월 하이트 진로에서 ‘퀸즈 에일’이, 이듬해 3월 오비에서는 ‘에일 스톤’이 출시되었다.
퀸즈 에일은 '엑스트라 비터'와 '블론드', 에일스톤은 '브라운'과 '블랙' 각각 두 개의 라인으로 이루어져 있다. '블론드'와 '브라운'은 에일맥주의 '향'측면에 초점을, '엑스트라 비터'와 '블랙'은 쌉싸름함 측면에 초점을 맞추었다. 넷을 모두 마셔본 필자의 개인적인 소감은... 정체성이 애매하다.
기존 '라거'맥주에 익숙한 국내 소비자들을 염두에 두어서인지 에일의 특징인 '향'약하다. 에일은 '향'이 절반이라고 생각하는데, 현재 출시된 국산 에일의 향은 '은은하다'보다는 '미미하다'가 알맞은 표현같다. 그러나 필자도 에일맥주를 처음 먹었을 때 이를 '화장품 맛''감기약맛'으로 느꼈다. 이 점에서 정체성이 애매하다는 국산 에일의 약점은 라거 맥주에 익숙한 소비자를 고려, '한국형 에일'이라는 말로도 치환할 수 있다. 그렇다. 이제 처음으로 에일 맥주가 나왔을 뿐이다.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말자. '다양한 국산맥주'의 측면에서 언젠가 인디카의 '감기약 맛'을 오비나 하이트에서 느끼는 날이 올 것이다.

*더 맛있는 에일맥주를 위한 tip
헤퍼바이젠, 벨지안처럼 효모 맛이 핵심인 맥주는 병 아랫부분에 가라앉은 효모가 섞일 수 있도록 살짝 흔들어주세요. 잔에 따라서 드실 때는 절반가량을 따른 후 병을 흔들어주신 다음에 다시 맥주를 따라주세요. 빙글.또 빙글.


내일의 국산 맥주를 기대하며


지난 4월 중국 주류박람회에서 공개된 세븐 브로이 홍삼라거(홍삼...ㄷㄷㄷ) ⓒ세븐브로이


크래프트비어(수제맥주) 시장의 성장도 눈에 띈다. 홍대와 경리단길 펍에서 입지를 다져온 국내 중소맥주회사 세븐브로이는 지난 4월 국내 최초 수제맥주 병맥주 ‘m,w’, ‘라쿤’ 시리즈를 내놓았다. 현재 홈플러스나 롯데마트 등 대형 마트를 통해 만나 볼 수 있고, 앞으로 백화점, 편의점 등으로 유통망을 넓혀갈 것이라고 한다. 수제 병맥주 뿐 아니라 봉구비어, 춘자비어 등의 스몰펍과 대기업 자본의 대형펍 '데블스어' 등 맥주를 즐길 수 있는 환경도 다양해지고 있는 추세다. 이쯤되니 대한민국이 불과 3년 전만해도 '카스'와'하이트'의 반도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덧붙이며
‘카스’, ‘하이트’ 등 기존의 맥주를 평가 절하하는 것은 아니다. 카스의 ‘청량감’과 하이트의 ‘깔끔함’은 각각 나름의 가치가 있다. 하지만 양분화된 맥주업계의 ‘라거’ 일변도였던 국내 맥주 시장에는 분명 변화가 필요했다. 세계맥주의 본격적인 유통, 이어진 새로운 국산 맥주에 대한 갈증 그 후 3년, 맥주시장은 괄목할 만한 변화를 보여줬다. 무서운 후발 주자와 국산 수제 병맥주의 등장은 국내 맥주 시장에 계속해서 고민 점을 던져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맥주 애호가로서 오가든(OB에서 만든 호가든)이 아닌, 국산 헤페 밀맥주의 등장을 염원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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