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삼성에선 '항상 명랑 활발'하지 않으면 징계 당한다

  • 입력 2015.05.19 10:42
  • 기자명 거다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만약 근무시간에 노동조합 조끼를 입었다는 이유로 해고된다면 어떨까? 말도 안 되는 해고사유인데 그런 회사가 정말 있다. 대략 짚이는 회사가 하나 있을 것이다. 그렇다 바로 삼성이다.

이상한 해고통보

지난 4월 5일 삼성테크윈 직원 한 명이 해고통보를 받았다. 사측은 근무시간 중 노조조끼 탈의 거부, 노조 유인물(노조 가입서) 회수 요청 거부, 반말 사용 등을 해고사유로 들었다. 해고라는 극단의 중징계에 대응시키기엔 너무 빈약한 사유들이다. 회사가 억지스런 해고를 정당화 시키려고 잡다한 것들을 모았다는 느낌도 든다.
욕설은 몰라도 반말까지 문제 삼는 것은 수긍하기 힘들다. 노조 유인물 회수 요청은 회사와 대등한 협상 대상인 노조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요청이다. 노조의 조끼도 분쟁사업장에선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이런 걸 문제 삼아 징계한다는 것은 회사가 노조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을 대놓고 밝힌 것과 다름없다.
지난 5월 13일 경남도민일보 강당에서 금속노조 삼성테크윈 지회의 블로거 간담회가 있었다. 지난 해 11월 26일 삼성테크윈 등 삼성 계열사 4개사가 한화에 매각된 후 계열사 노동자들은 노조를 설립하여 삼성을 상대로 매각철회 등의 투쟁을 펼치고 있다. 이날 조합원들이 들려준 내용들은 예상했던 삼성의 행태를 뛰어넘은 것이었다.
금속노조 삼성테크윈 지회가 밝힌 바에 의하면 회사는 지금까지 60명의 조합원을 징계했다. 아직 파업도 진행되지 않는 상황에서 60명 징계는 남발 중에 남발이다. 징계사유는 대부분 허가되지 않은 집회 참여와 노조조끼 착용인데 이에 대해 지회는 휴게시간에 이루어진 집회는 합법이며 노조조끼 탈의는 노조의 단결권 침해라고 반박하고 있다.


SNS활동도 징계사유?
1월 15일 발생한 건에 대한 징계사유는 다소 황당하다. 징계내역엔 "임직원이 가입한 SNS밴드에 저속하고 모욕적인 표현을 하며 타 사원을 비방하는 등 미풍양속을 해침"이라고 나와있다. 같은 날 또 다른 조합원은 "본사 ER팀장에게 고성을 질러 질서와 규율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았다. 회사가 아닌 온라인 커뮤니티 내에서의 대화에 회사의 규칙이 적용되고 사내에서 목소리를 높인 것까지도 징계 대상이 된다는 데에 황당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더 황당한 건 회사가 위 징계에 대해 근거로 들고 있는 취업규칙들이다. 그 중 57조 1항은 실소를 참기 힘들다. "항상 명랑 활발하게 직무를 수행하고 경영이념의 구현과 회사의 목적 및 경영 목적 달성에 적극 참여하여야 한다." 어떻게 하면 이 조항을 위반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런 너무나도 당위적인 조항으로 직원들을 제재하겠다는 생각을 한 삼성이 놀랍다.
삼성 사내망에선 민주노총 홈페이지를 볼 수 없다. 삼성에 비판적인 매체나 사이트를 차단시켰다. 삼성 조합원 수 천명이 집회를 해도 신문에 기사 한 줄 안 나온다. 오프라인 매체도 차단되었다. 내부에선 수많은 CCTV가 직원들을 지켜보고 있다. 이것도 모자라 회사는 직원들 메일까지 들여다 볼 권리를 가진다. 빅브라더가 통제하는 조지오웰의 소설 '1984'를 떠올릴 만 하다.


삼성은 이전에도 불법으로 복제한 휴대폰으로 위치추적을 한 적이 있다



진짜 노조를 쫓아내는 가짜 노조

현재 금속노조 소속의 삼성테크윈 지회는 협상권이 없다. 협상권은 조합원이 조금 더 많은 삼성테크윈 기업노조에 있다. 금속노조 삼성테크윈 지회는 이런 상황이 삼성의 작전 결과가 아닌가 의심한다. 금속노조로 가면 기업노조를 띄울 것이라는 삼성의 플랜B가 가동된 거 같다는 것이다.
금속노조 삼성테크윈 지회는 회사 간부들이 삼성테크윈 기업노조 가입을 독려했고 기업노조 집회 때는 회사 버스도 이용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삼성테크윈 기업노조가 위로금에만 매몰되어 한화에 매각된 계열사들이 공동교섭단을 꾸리자는 제안도 거부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급단체가 없다는 것과 노조회비는 없고 노무법인 자문료만 거뒀다는 점은 삼성테크윈 기업노조가 지속적 활동을 고민하는 노조가 아니라는 의심을 살만하다. 삼성테크윈 기업노조가 한시적 목적의 노조가 아니라면 노조의 체계를 갖추는 것에 보다 힘을 쏟아 다른 노조의 의심을 해소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금속노조 삼성테크윈 지회는 징계가 생길 수록 오히려 더 단결이 잘 된다고 한다. 1,000명 약간 넘는 수준에서 시작한 조합원은 점점 늘어 이제 1,300명에 육박하고 있다. 지회는 기업노조에 실망한 조합원들이 넘어와 곧 과반도 넘길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금속노조 삼성테크윈 지회는 매각철회를 목표로 투쟁하고 있다. 그렇게 된다면 삼성은 회사는 팔지 못하고 금속노조만 생기는 결과가 된다. 무노조 삼성 역사에 상상도 못한 일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정말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만약 금속노조 삼성테크윈 지회가 더욱 강력하게 투쟁한다면 한화는 회사 인수를 꺼릴 가능성도 있다. 노동조합이 강력하면 강력할수록 삼성에 잔류하게 되는 아이러니가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금속노조 삼성테크윈 지회의 투쟁이 삼성을 바꿀지도 모르겠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