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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중독 관심병사? 개인 탓만 하는 대한민국

  • 입력 2015.05.16 20:50
  • 기자명 김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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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에서 또 총기사고가 벌어졌다. 이번에는 현역이 아닌 예비군이다. 지난 13일 서울 내곡동 예비군 훈련장에서 사격 훈련을 받던 도중, 최아무개(24)씨가 총기를 난사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최씨가 K-2 소총으로 영점사격을 하던 과정에서 한 발을 쏘고 돌아서서 다른 사람을 향해 총을 쐈다는 것이다.

이 사건으로 현재까지 최씨를 포함해서 3명이 사망했고 2명이 부상을 당해 인근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상대적으로 안전하리라 믿었던 예비군 훈련에서 사고가 발생했기에 충격은 더욱 크다.



다시 거론되는 단어들, '게임중독'과 '관심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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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편 <채널 A>의 프로그램 '쾌도난마' 중 한 장면. 총기 난사 가해자 최씨를 두고 '게임중독 심각'과 '중증 우울증' 등의 단어로 묘사하고 있다.


사고소식이 속보로 전해진 후, 일부 언론들은 총기난사자로 밝혀진 최씨에 관한 관련 정보를 쏟아냈다. MBN은 '단독' 보도로 최씨의 중증 우울증 병력을 소개했다. <채널 A> 등을 비롯한 뉴스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뒤따랐다. 그를 수식하는 단어들은 하나같이 일목요연했다.

'게임중독 심각', '중증 우울증', '관심병사'

총기를 난사한 이유가 심각하게 게임에 몰입한 상태와 우울증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현역시절 '관심병사'로 분류되었다는 과거도 덧붙였다. 말하자면 개인의 불안정한 정신상태가 사태의 원인이라고 지적하는 분위기다.

군 부대 내 총기사고는 끊이지 않고 계속 되풀이 됐다. 지난해에도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22사단 총기 난사사건이 발생했고, 2005년에도 김 일병 사건이 있었다. 예비군 훈련장에서 벌어진 일을 추려 봐도 1993년 19명이 사망한 경기도 연천 폭발사고 등 비슷한 전례는 더 있다. 당시 예비군들이 포사격을 하던 중 폭발사고가 나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최근 10년 사이에 군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사건의 경우를 살펴보자. 당시 언론과 군 당국은 범행 요인을 거론할 때 주로 '관심병사'나 '게임중독'을 먼저 꺼냈다. 지난해 있었던 GOP 총기 사건의 임 병장과 2005년 사건의 김 일병도 "임 병장이 평소 게임을 즐겨했다"거나 "김 일병의 평소 행실이 소심했다"고 묘사하는 식이었다.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비슷한 단어가 거론된다. 공통적인 배경이라면 개인의 책임에 더욱 무게를 두는 관점이라는 것이다. '개인의 광기'라는 자극적인 화두로 시선이 쏠리고, 군이라는 집단의 특성이나 관리 소홀 여부는 쉽게 지워진다. '군이야 원래 늘 그랬던 곳'이라는 석연치 않은 논리가 깔리면서 말이다.



총기사고 대응, 미국은 달랐다


특정 개인의 인격을 해부하여 대중 앞에 진열하는 과정이 과연 필요할까? 이런 방법이 사고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 어떤 도움이 될지 의문스럽기도 하다. 비록 총기 난사사건의 가해자라고 할지라도, 별개의 사안을 모두 끌어와서 '결국 이런 짓을 벌일 만한 사람이었다'고 비난받아야 마땅할까?


joinsmediacanada.com


이런 질문을 떠올렸을 때, 미국에서는 '아니'라고 답을 내렸던 것 같다. 2012년 미국 코네티컷주 뉴타운 샌디훅 초등학교에서 총기 난사로 학생 20여 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 발생 후 총기소지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높아지자 위기감을 느낀 미국총기협회(NRA)는 해당 사건이 발생한 이유가 폭력적인 게임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를 지켜보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런 주장에 즉각 동의하지 않았다.

무지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으며, 유행하는 폭력 사건의 과학적 근거에 관해 제대로 알지 못하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의회는 폭력적인 게임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연구하기 위한 기금을 마련할 것이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을 통해 게임이 사건의 원인이라고 단정 짓기 전에, 근거를 확실히 알아야 한다고 발언했다. 이후 미국 정부는 미국 질병통제센터(Centers for Disease Control, CDC)에 1000만 달러, 한화로 약 105억 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섣부른 판단에 앞서 제대로 된 진단을 위해서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정부가 나서서 여론을 진정시킨 셈이다.



사고 발생의 원인, 언제까지 개인 탓만 할 건가

예비군 훈련장 총기사건 뉴스가 방송된 이후, 단톡방(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서는 지인들의 한탄이 이어졌다. 아직 훈련 대상인 사람들은 "곧 훈련에 가야하는데 어찌해야 하느냐"며 걱정했고, 예비군 6년 차를 넘긴 사람은 "아무튼 얼른 끝내고 옷을 벗는 것이 답"이라며 안도했다. 얼른 군을 전역하고 예비군 훈련 일정을 끝마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벗어났다고 생각하면서 관심을 끊는 것이, 사안을 잊는 가장 손쉬운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론과 군이 이런 분위기에 편승하려는 태도를 보인다면 그건 상황을 더 악화시킬 것이다.

'관심병사' 제도가 '문제를 일으키는 사병'을 낙인찍는 도구로 쓰이는 현실은 군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다. 작가 김보통씨의 웹툰 <D.P>에서 언급되는 것처럼, "관심병사란, 취지와 다르게 일종의 저주 비슷한 것"처럼 악용되기도 한다.

또한 개인의 '게임 중독' 여부가 관리 소홀의 책임을 희석시키는 것을 그저 두고 봐서도 안 된다. 이런 결론은 똑같은 사고를 다시 일으키지 않도록 막는 일에는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비슷한 유형으로 참사가 반복된다면, 이는 단순히 개인 탓이라고 보기 힘들다. 한 번의 사고는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공통 요인을 바탕으로 거듭되는 사고를 누군가의 인격 문제로 치환하고 덮을 수는 없다.

더욱이 이번 총기 난사사건과 같은 경우, 원인을 가리고자 가장 앞서 따져야 할 의문들이 있지 않나. '바닥에 묶여있어야 할 총기'가 어떻게 간단하게 아군을 겨냥할 수 있었는지, 예비군 훈련장을 조사하는 일부터 이뤄져야 마땅하다. 또 사고 재발을 막기 위해선 사회의 노력도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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