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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는 정말 복지 때문에 망했을까

  • 입력 2015.05.12 13:57
  • 기자명 여강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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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지출이 많은 나라는 정부 부채가 많다."

"복지 국가는 효율이 낮다."

"복지 사회는 부자 나라에서만 가능하다."


복지 국가에 대한 이러한 문제 제기들이 과연 사실일까? 복지 국가는 현대 '위기 사회'가 지향해야 할 적절한 좌표인가?




복지를 반대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책 『복지 사회와 그 적들』은 바로 그러한 문제 제기에 대한 한 가지 답을 제시한다. 복지 국가에도 결함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복지 국가밖에 없다.'라는 것이다. 자본주의 종주국인 미국과 영국이 금융 위기나 유럽 부채 위기 등 초대형 경제 위기에 휘청거리는 사이, 복지 국가의 대명사인 북유럽 선진국들은 여전히 낮은 실업률과 높은 1인당 GDP, 상대적으로 좁은 빈부 격차를 실현하고 있다. 그런데 왜 복지 사회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일까?


『복지 사회와 그 적들』, 가오롄쿠이, 부키, 2005


강력한 복지 정책을 시행한 나라들이 이미 확실한 성공을 거뒀음에도 복지를 부정하고 반대하는 목소리는 끊이지 않는다. 복지에 대한 진실은 숨겨지고 사실과 다른 주장이 오히려 난무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고대 로마의 정치인이자 웅변가 키케로는 "퀴 보노(Cui Bono)?"라는 말을 즐겨 썼다고 한다. "누가 이득을 보는가?"라는 의미다. 이 책의 저자 또한 경제 칼럼니스트 스한빙(時寒氷)의 '이익 분석법'을 요긴하게 써 볼 것을 제안한다. 복지의 효용을 깎아내림으로써 이득을 얻는 '배후의 수익자'가 누구인지를 분석해 보라는 얘기다.
흔히 생각하듯 복지 사회가 저소득층이나 중산층에게만 좋은 것은 아니다. 복지 사회에서는 기업과 정부도 수익자가 된다. 복지 사회를 건설하면 세수를 바탕으로 재정 집행이 용이해지고 고용 문제가 상당수 해결돼 사회 화합 및 공직자의 청렴함이 구현된다. 기업에서는 뛰어난 자질을 갖춘 인재가 창조한 잉여 가치로 구현된다.
다국적 기업 보유 수로 세계 1위에 올라 있는 북유럽이나, 비스마르크가 사회 보장 제도를 법적으로 수립한 이후 근로 상황과 산업 환경의 개선으로 기업의 수익이 크게 증대한 것을 바탕으로 독일 경제가 도약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복지 사회를 건설할 경우 유일하게 손해를 입는 계층은 이른바 고위층이다. 기득권을 가지고 있으면서 복지 사회로부터 가시적인 이익을 얻을 수 없는 계층이기 때문이다. 이들이야말로 복지의 최대 반대자다.




감세 주장에 담긴 치밀한 전략
저자는 고위층이라는 '이익 집단'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 위해가 더 크다고 말한다. 겉으로 드러난 이익 집단들이 여론과 국민 의사의 제약을 받는 반면, 드러나지 않는 이익 집단은 자기 집단의 이익을 몰래 도모하면서 명목상 국민과 대중을 내세우기 때문에 오히려 국민의 지지를 받는 일까지 생긴다는 것이다.


c JTBC


대표적인 것이 '감세' 주장이다. '세금을 줄여야 한다'라는 주장은 사회적인 공감을 끌어내기 쉽다. 중산층과 저소득층은 당장의 수입이 조금이라도 는다. 부자와 기업은 줄어든 세금만큼 투자와 소비가 늘어, 궁극적으로 사회 하층에까지 부가 흘러드는 낙수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하니 누가 반대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감세로 이득을 보는 것은 언제나 부유층일 뿐이라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이미 증명됐다. 전례 없이 큰 폭의 감세를 단행한 1980년대 미국 레이건 정부 사례가 대표적이다. 단기적인 경제 지표만 호전됐을 뿐 낙수 효과는 없었으며, 의도했던 재정 적자 축소는 재정 적자에 무역 적자까지 얹혀진 '쌍둥이 적자'라는 반전으로 막을 내렸다.
쌍둥이 적자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그때부터 미국 사회의 빈부 격차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됐다는 사실이다. 복지 예산 감소로 저소득층은 더욱 주변화됐고 중산층은 해체되기 시작했다. 이는 레이건과 같은 시기에 대처 정부가 들어선 영국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영국과 미국은 각각 대처와 레이건의 '탈복지화' 드라이브로 복지 노선에서 이탈하게 되자, 이후의 제3의 길과 같은 대안적인 정책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한 번 벌어진 사회의 간극을 다시 좁히지 못하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익 집단이 여론을 통제하고 움직일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그들에게 복지 반대 논리를 제공한 전문가 집단과 그 논리를 확산시킬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한 언론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저자는 이러한 전문가로 '경제학자'를 꼽는다. 바로 신고전주의 경제학자들이다.
그들은 시장은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스스로 찾는다면서 인위적인 개입이나 간섭을 반대한다. 정부가 커지면 시장에 손해라고 생각해 '작은 정부'를 선호한다. 그들에게는 북유럽 국가와 같은 공공 서비스형 정부나 고세수 정책은 타도해야 할 대상이다. "국가가 개입하면 경제가 성장할 수 없다."라는 것이 그들이 자주 하는 협박이다.




복지 국가를 가로막는 무식한 경제학자들
저자는 이러한 맹목적인 시장주의 경제학 이론도 문제지만, 학문적 깊이는 결여한 채 사회적 명성이나 지위만을 좇는 속물적인 경제학자가 많은 현실을 더욱더 개탄한다. 경제학자가 필요로 하는 연구 자금이 대부분 재단이나 기업, 다국적 투자 은행 등에서 직접 제공되는 경우가 많다 보니, 경제학자가 이익 집단의 대변인 노릇을 하게 되는 인센티브가 작용하는 것이다.
이들과 접촉하는 언론 역시 마찬가지다. 언론사의 경제부 기자 상당수가 체계적인 경제학 수업을 받은 경험이 거의 없다. 경제 전문 지식이 부족한 기자가 전문 지식이 깊지 않은 경제학자를 상대로 인터뷰를 하고 자문하는 상황인 것이다. 게다가 언론은 대중의 눈치를 보거나 선정적인 효과를 노려 가며 교묘하게 뉴스를 고르거나 배제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진정한 경제학자들은 말을 아끼고 침묵하는 반면, 극단적이고 편협한 주장만이 여론의 주목을 받게 된다.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Friedrich von Hayek).
정부의 역할을 최소화하고 모든 것을 자유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저자는 대중의 지지를 얻으려는 대중 추수주의뿐 아니라 문수주의(문자 추수주의), 즉 글로 먹고사는 학자들도 경계한다. 전문적인 지식 없이 감성적인 인식에 의거해 현실과 동떨어진 주장을 하는 '문예강(文藝腔)형' 학자들, 언론에 기고하는 경제 평론가나 오피니언 리더 중에 진정한 학문적 배경 없이 단견과 편견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인기를 과시하는 이들이 대표적인 문수주의자들이다.
철학자 카를 포퍼(Karl Popper)는 『열린사회와 그 적들(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1945)이라는 책에서 인류를 '닫힌 사회'로 이끈 원흉으로 플라톤과 헤겔, 마르크스를 지목해 신랄하게 비판한 바 있다. 이 책 『복지 사회와 그 적들』은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야말로 복지 사회로의 이행을 가로막는 장본인이라고 지목한다.
저자는 엘리트 지식인과 여론 주도층에는 이 하이에크를 교조처럼 받드는 '하이에크주의'가 만연해 있다고 지적한다. 하이에크는 일찍이 ‘자유를 잃고 노예가 되는 길’이라는 말로 사회 복지 제도를 갖추려는 정부를 비판한 인물이다. 사유제를 보장하고 자유방임의 시장경제를 보장한다면 독재도 나쁘지 않다고 여길 정도로 극단적인 자유주의를 추구했다.
저자는 하이에크가 복지 사회, 민주주의, 노동 인권에 반대하는 등 반민주적, 반인권적 인물이며, 하이에크의 학문은 경제학이라기보다 사회학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한다. 따라서 사회 고위층과 그들의 대변인 역할을 하는 삼류 경제학자, 삼류 언론, 문수주의자의 긴밀한 이익 관계를 끊고 하이에크주의를 타파하지 않는 한, 소득 분배 개혁이나 복지 사회로의 이행은 요원할 것이라는 게 저자의 경고다.




북유럽 모델 vs 미국 모델, 우열은 이미 가려졌다
미국은 사회 보장은 있으나 복지는 적은 나라다. 미국의 복지는 대부분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전 국민이 보편적으로 누릴 수 있는 것은 매우 적다. 의료보험이나 푸드 스탬프 제도 등 복지 혜택들은 저소득층과 노년층에게만 한정적으로 적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미국의 빈부격차는 해를 거듭할수록 심화되고 있다.
최근 발생한 볼티모어 사태도 미국의 극심한 빈부격차가 만들어 낸 비극이다.


현대 복지 국가의 초석을 이룬 「베버리지 보고서」(1942)에서 말한 "인종과 피부색, 민족, 성별, 언어, 종교, 정치적 관점, 출신, 경제적 조건, 집안 배경 등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기본적인 복지를 누릴 수 있는 동일한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라는 균등성 원칙이 관철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충분히 가난하지도 못하고 충분히 나이 들지도 못해 불행하다."라고 푸념하는 미국인들이 많다.

이는 미국이 헌법적으로 독일과 같은 '사회 국가'를 천명한 나라가 아닌 '자유 국가'이기 때문에 발생한 한계다. 미국은 중대 정책에 대한 의견 차이가 있을 때마다 결국에는 자유의 원칙에 따라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행되지 못하고 있는 복지 정책들이 많다. 의료 보장 혜택을 받는 계층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오바마케어'가 공화당 등의 반대로 아직도 제 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있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 저자의 결론은 확고하다. 북유럽 모델과 미국 모델은 지난 30여 년의 경쟁을 통해 이미 그 우열이 분명히 가려졌다는 것이다.




인간답게 살고자 한다면.. 길은 하나뿐이다
"능력 있는 자가 먼저 부자가 돼 나머지 사람들을 이끌라."라는, 흡사 낙수 효과와도 비슷한 덩샤오핑(鄧小平)의 선부론(先富論)은 중국 개혁개방의 기본 이념이었다. 중국은 현재 세계 경제 규모 2위, 수출 무역 규모 1위, GDP 규모 세계 2위인 경제 대국이 됐고, 세계적인 갑부도 여럿 배출하고 부유층이 어마어마한 사치품 구매력을 과시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나 1인당 GDP는 세계 80위에 그칠 정도로 대부분의 국민이 소득 수준이 낮다. 극심한 빈부 격차가 큰 사회 문제로 대두하는 시점이다. 중국이 가야 할 방향은 명확해 보인다. 저자는 복지가 국민에 대한 시혜가 아니라, 국가가 국민에게 의무적으로 보장해야 하는, 국민이 누려야 할 기본권(사회권)이라는 점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이 사회권은 곧 진정한 의미의 '적극적 자유'를 실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중국보다 앞서 자본주의 발전을 구가한 한국은 중국보다는 복지 상황이 낫다. 그러나 한국 역시 1인당 GDP는 3만 달러에 근접해 선진국 지위를 넘보고 있는 반면, 복지 수준은 OECD 최하위권에 그친다. 한국과 중국 모두 그야말로 '복지 도상국'인 셈이다. 책에 묘사된 중국의 현황들은 국내 상황과도 상당 부분 포개진다. 그래서 중국에 필요한 복지 국가 모델을 모색하고 중국 사회와 학계를 향한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저자의 노력은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시사한다.
"우리가 인간으로 남고자 한다면, 오직 하나의 길, 열린 사회로의 길이 있을 뿐"이라는 포퍼의 말처럼 "우리가 인간답게 살고자 한다면, 오직 하나의 길, 복지 사회로의 길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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