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사랑의 매'는 없다

  • 입력 2015.05.11 13:37
  • 기자명 잡곡밥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훈육을 위한 체벌 그리고 폭력

불과 몇 달 전만해도 어린이 인권과 아동학대 문제가 우리 사회 최대 이슈였습니다. 하지만 CCTV 설치가 의무화된 것을 빼고는 용두사미가 되어가고 있는 모양입니다.


최근 <한겨레>에서는 부모의 아동학대와 폭력에 대한 기획기사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내가 하는 훈육과 양육은 아동학대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지만, <한겨레> 기사를 보면 '훈육을 가장한 부모의 폭력'이 도를 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사랑의 매’입니다. 이를 둘러 싼 오랜 논쟁은 끝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랑의 매'. 이른바 ‘다 너 잘되라고 때리는 매’가 바로 사랑의 매입니다. 이것이 훈육 혹은 교육의 일환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것이죠. 게다가 부모의 체벌은 아예 문제 삼지도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언론에 보도되거나 경찰에 신고되는 경우는 그야말로 잔혹한 폭력과 구타로 인하여 폭행사건이 성립되는 심각한 경우일 때뿐입니다. 교사나 부모의 ‘훈육을 위한’ 체벌은 폭력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지요.




사랑이 담긴 '매'는 없다
『사랑의 매는 없다』를 쓴 앨리스 밀러는 세상의 모든 매에는 사랑이 담겨 있지 않다고 말합니다. 설령 사랑이 담겨있다고 하더라도 행동을 바꾸려고 매를 드는 것은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일이라고 단언합니다.


『사랑의 매는 없다』, Alice Miller, 양철북, 2005.


저자는 "교육을 위해서 또는 자식을 위한다는 구실 아래 이루어지는 체벌을 예외 없이 폭력으로 규정"합니다. 이 책을 번역한 신흥민은 앨리서 밀러의 주장을 다음과 같이 요약합니다.


"정도를 불문하고 어른에게 받은 물리적 폭력과 정신적 학대는 감성적 기억이라는 형태로 빠짐없이 어린이 몸 속에 저장되며, 경우에 따라서는 성인이 되었을 때 그것이 우울증을 비롯한 모든 정신질환의 원인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게다가 학대와 폭력을 경험한 어린이가 성인이 되면, 자기도 모르게 어린 시절에 경험한 것을 다른 사람에게 그대로 전가하려고 하는 충동에 사로잡힌다."

『사랑의 매는 없다』 본문 中


현대 의학은 살면서 겪은 모든 경험 정보가 우리 몸에 저장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주장합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같은 것들도 여기에 해당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만난 세월호 유가족들도 1주기가 다가오니 마음만 힘든 것이 아니라 "몸이 아프기 시작한다."는 말을 많이 하더군요.


"최근에 신경생물학은 정신적 외상을 입고 심하게 방치된 아이들의 뇌를 관찰하여, 감성조절 영역에서 손상 흔적이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사랑의 매는 없다』 본문 中


어린 시절에 경험한 학대와 폭력은 '약물로는 치료가 불가능한 마음의 병'으로 남는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입니다. 약물보다는 힘들었던 어린 시절에 대하여 마음을 열어 놓고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있어야 치유가 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지요.
부모에게 학대와 폭력을 경험하였다면 곁에 있어야 하는 사람은 "부모를 비난하면서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거나, 이러한 두려움에 익숙하여 개의치 않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런 사람을 간접보호자와 전문가 증인이라고 부르더군요.


관심과 이해를 보여주는 사람들에게 고통스러웠던 경험을 털어 놓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전국을 다니며 그들 편에 선 국민들에게 고통스러웠던 기억과 경험을 증언하는 것도 비슷한 치유의 과정일 수 있겠습니다.




아이를 학대하면서 교육이라고 착각하는 부모들
한편 폭력의 대물림에 관한 저자의 이야기는 특별히 새겨들어야 할 대목입니다.


"다 너 잘되라는 뜻에서 모욕과 고통을 준다는 말을 되풀이하면, 경우에 따라서 아이는 평생 그 말을 믿게 된다. 또 그 아이가 어른이 되면 똑같이 아이들을 학대하면서도 자식을 훌륭하게 잘 키우고 있다고 굳게 믿는다."

“아이가 자기에게 가해진 고통을 자기를 위한 희생으로 간주하고, 훗날 최소한의 가책도 없이 다른 사람에게 그 고통을 전가할 위험이 매우 크다."

『사랑의 매는 없다』 본문 中


예컨대 폭력을 대물림하면서도 조금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스스로 좋은 부모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겪었던 모든 고통을 자기 아이에게 앙갚음하고도 벌을 받지 않을 수 있고 교육과 훈육이라고 포장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따라서 그만큼 어려서 희생자였던 사람이 훗날 가해자가 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미국은 물론이고 많은 나라에서 학교에서 체벌이 허용되고 있는데, 체벌 없는 교육을 할 수 없다는 교사들의 주장은 그들이 폭력 속에서 성장하였고 체벌이라는 폭력에 익숙해져 있다는 것을 자백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겁니다.


저자는 폭력이 대물림 되는 것은 그들도 마찬가지로 어린 시절에 어린이의 고통을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심성을 키우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단기적으로 체벌이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할 때도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공격적인 행동을 강화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아이의 몸에 저장된 (체벌에 관한) 잘못된 가치들이 비뚤어진 세계관을 갖게 만들고, 자신이 보호받고 존중 받을 수 없는 존재라고 믿게 되며,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진다고 합니다.
저자는 대소변을 가리게 할 목적으로 아이에게 손찌검을 하는 엄마들의 행동을 딱 꼬집어 지적합니다. 손바닥으로 맞지 않으려고 조건반사적으로 반응함으로써 아주 일찍 대소변을 가리게 될지는 모르지만, 결국은 고분고분한 아이로 자라게 되면 이유를 모르는 억눌린 폭력성을 품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폭력은 아이의 내면에 차곡히 쌓인다
이 책에는 알코올 중독자였던 아버지를 둔 외동아들이었던 스탈린과 존중받는 가정에서 자란 고르바초프를 비교하는 설명이 나옵니다. 저자는 스탈린이 난폭한 공포정치를 펼친 것은 어린 시절에 매일같이 아버지에게 심하게 두들겨 맞은 경험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한편 폭력과 학대 혹은 어린 시절의 체벌이 늘 타인을 향해서만 과격하게 표출되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오히려 자살을 포함하여 자신을 파괴하는 양상으로 나타나는 일도 드물지 않다고 합니다. 몸 속에 있는 감정이 시한폭탄처럼 언제 어떻게 폭발할지 알 수 없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체벌이라는 아동학대가 결코 교육으로 포장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저자는 특히 교회와 성당 그리고 이슬람이 폭력과 학대 문제를 근절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것을 강하게 비판합니다. 바티칸에 있는 교황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기도 했지만, 그런 노력은 허사가 되었다고 밝힙니다.
그렇다면 폭력과 학대가 끝없이 대물림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과거에 자신이 인간적 존엄성을 파괴당하던 상황을 흉내 내면서도 그 점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굴욕을 당하던 어린 시절에 그것을 전혀 굴욕으로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합니다.
때문에 아이들을 때리는 것도 나쁜 일이지만 그보다 더 나쁜 것은 "너를 위해서 때렸다."고 말하는 것이랍니다. 왜냐하면 모욕당하고 매를 맞는 것도 "다 우리 잘되라고 하는 일"로 받아들이는 노예적인 삶에 길들여지기 때문입니다.
이 악순환의 고리는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요? 저자는 학대받은 어린 시절의 상처를 극복하는 것이 그 시작이라고 말합니다. 어린 시절의 학대 받은 경험의 결과를 잘 아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어린 시절의 진실과 대면하게 되면 사람을 사랑하는 능력을 새롭게 키울 수 있다는 겁니다.




폭력은 대물림된다
하지만 사소한 잘못으로도 부모에게 처벌 받는 아이들은 불안감이 커진다고 합니다. 부모에게, 교사에게 처벌 받은 후에 불안감이 커지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실수를 인정하면 위험하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그것이 부모의 사랑을 앗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은 우리에게 씻을 수 없는 죄의식과 불안감을 남긴다."

"체벌은 불안감을 낳기 때문이다. 체벌은 종종 아이를 무감각 상태, 곧 경직된 상태에 빠지게 한다. 공포가 온통 의식을 사로잡기 때문에 그런 상태에서는 차분하게 깊이 생각할 수가 없다."

『사랑의 매는 없다』 본문 中


결국 아동학대의 원인과 결과는 하나라는 것이 저자의 생각입니다. 자신이 어린 시절 경험한 상처를 부인할 경우, 같은 방법으로 다음 세대에 상처를 넘겨주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랑받은 아이가 사랑할 수 있다."는 진리를 마음에 새기고 체벌 상속을 중단하자고 이야기합니다.
자녀를 소유물로 여겨선 안 된다는 것이지요. 어떤 경우에도 체벌은 교육이 될 수 없다고 하는 것이 일관된 주장입니다. 아동학대와 체벌이 가져오는 치명적인 결과에 대해 성찰해 보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부모에게서 자식으로 폭력이 대물림되는 일, 우리 세대에서 끝내야지 않겠습니까.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