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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를 피하기 위한 대통령의 네 가지 노림수

  • 입력 2015.05.07 12:12
  • 수정 2015.05.07 12:15
  • 기자명 오주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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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날한시에 세상에 알려진 ‘불법정치자금 의혹 리스트’. 그런데 검찰은 민감한 부분은 피하고 만만한 것들만 골라 수사한다. 홍준표 지사와 이완구 전 총리에 대한 수사는 진행되는데 홍문종 의원, 유정복 시장, 서병수 시장에 대한 수사는 시작될 조짐조차 보이지 않는다.

민감한 부분 피하고 만만한 것만 수사
이들에 대한 수사가 시작된다 해도 이미 증거를 인멸할 시간이 충분히 주어진 셈이어서 뭔가 나올 가능성은 희박해졌다. 2011년 한나라당 대표경선(홍준표)과 2013년 재보선(이완구) 관련 의혹에 대해서는 수사를 하면서도 이름 옆에 금액까지 표시된 ‘3인방’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지 않는 이유가 뭘까. 이젠 삼척동자도 안다. ‘박근혜 대선자금’ 의혹과 연결돼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3인방’과 관련해 상당 수준의 진술이 나왔는데도 뭉기적대는 걸 보니 ‘2012년 박근혜 대선자금’을 건드리는 게 검찰로서는 엄두가 나지 않는 모양이다. 한모 전 경남기업 재무담당 부사장이 성 전 회장의 부탁으로 2억 원을 만들어 박근혜 대선캠프 부대변인으로 있던 김모 씨에게 전달했다고 진술한 바 있다. 돈을 전달한 시기는 성 전 회장이 홍문종 의원에게 돈을 건넸다고 주장한 시점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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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한 정황 진술을 확보해놓고도 머뭇거린다. 살아있는 권력에 칼을 대는 것이 큰 부담이라서 그러는 걸까. 물론 이것도 이유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검찰의 속사정은 따로 있는 듯하다. 박 대통령의 발언에서 그 속사정이 뭔지 읽힌다. 최근 박 대통령이 한 말이다.

(성완종 리스트와 관련해) 정경유착이 본질이다...정치인과 정치가 국민 염원을 거스르는 것이자 개인 영달과 이익을 추구하는 것...과거부터 지속돼온 부정과 비리, 부패를 척결하는 정치개혁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검찰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사건(성완종 파문)에 대해 부정부패를 도려내겠다는 각오로 전력을 다해야 한다.

박근혜의 ‘성완종 발언’, 네 가지 노림수
박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에는 네 가지 노림수가 깔려 있다. 검찰에게 이에 걸맞게 움직여 달라고 지시한 거나 다름없다.

첫째, 범위 확대로 희석효과를 노렸다.
리스트에는 실명이 등장하고, 녹취록에는 돈이 건네진 시점이 특정돼 있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이번 사건을 정치권 전반에 걸친 고질적 비리이자 오랫동안 있어왔던 ‘적폐’의 한 부분이라고 규정했다. 비특정화를 시도한 것이다. 여당과 대통령 측근으로 국한된 사건을 모든 정당, 모든 정치인으로 확대함으로써 희석 효과를 노린 꼼수다.

둘째, 파문을 최소화하기 위해 수사 방향을 제시했다.
박 대통령은 이번 파문을 성완종이라는 비리 정치인이 자신과 자신의 기업을 구명하기 위해 벌인 개인적 비리이자, 정치권 부정부패의 한 형태라고 주장한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이번 사건은 이런 것’이라고 예단한 것이다. 수사의 방향까지 제시한 셈이다. ‘성완종 개인비리와 경남기업 정경유착 비리’ 쪽으로 사건을 몰아가라는 지침이나 마찬가지다.

셋째, 본질을 흐리는 수법으로 국면 탈출을 시도했다.
‘리스트 파문’의 본질은 박근혜 캠프 핵심 3인방과 대통령 비서실장, 그리고 국무총리 등이 ‘불법선거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이다. 그런데 이것을 ‘정치개혁’과 ‘부정부패 척결’이라는 말로 두루뭉술 넘기려 한다. 도드라진 부분을 감추기 위해 주변에 뭔가를 잔뜩 늘어놓는 수법이다. 또 자신을 ‘정치개혁의 주체’로 규정함으로써 국면에서 벗어날 ‘출구’까지 확보하려는 포석이기도 하다.

넷째, 자신과의 관련성을 부인했다.
‘박근혜 캠프 핵심들’에게 돈이 건너갔다면 이 돈은 대선에 사용된 것으로 봐야 한다. 그렇다면 돈의 최종 종착지는 당시 후보였단 박 대통령이다. 사건의 진상을 밝히려면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불가피하다.
하지만 자신이 연루된 의혹인데도 적폐와 비리정치인 탓 만하며 마치 남 얘기하듯 한다. 모르고 그 돈을 썼다 해도 도의적 책임을 져야 한다. 따지고 들면 ‘성완종 파문’의 주체가 사실상 박 대통령인 것이다. 그런데도 자신과의 관련성을 아주 쉽고 간편한 방법으로 부인한다.


사건이 있는데도 관련성을 부인하는 대통령. 이 대목에서 떠오르는 게 있다. 카뮈의 소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다.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커피를 마시고, 장례식 다음날 코미디 영화를 보며 여자와 즐긴다. 해변에서 아랍인 패거리와 싸움을 한 뒤 더위를 피해 산책을 하다가 태양 빛이 너무 강렬해 아랍인을 향해 총을 쏜다.

불리하면 튀어나오는 유체이탈 화법
살인의 이유를 햇빛 탓으로 돌리는 뫼르소. 그의 행동은 얽힌 부조리처럼 알쏭달쏭하다. 살인은 있는데 살인한 자신은 없다. 살인을 유도한 햇빛만 있을 뿐이다. 박 대통령도 이런 식이다. ‘검은돈’은 있는데 ‘검은돈’과 관련된 자신은 없다. 단지 ‘검은돈’을 주고받은 저들만 있을 뿐이다.
인간의 내면엔 ‘이방인’이 도사리고 있다. 도덕과 이성, 규범과 관례 등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본심이 숨겨져 있다는 얘기다. 실존이라는 야성이 극대화되면 뫼르소같은 사이코패스가 될 수 있다. 뫼르소는 ‘실존’에 충실했을 뿐 도덕적 가치와 정체성의 지배를 받는 ‘본질’에는 관심이 없었다.


박 대통령은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에서 ‘유체이탈 화법’을 즐겨 구사한다. 위기에 처하거나 불안할 때 그의 내면에 있는 ‘실존적 성향’이 강하게 표출되나 보다. ‘실존’과 ‘본질’을 조화시키지 못하는 철부지들에게 이런 ‘실존적 성향’이 자주 나타난다. 철부지와 독선은 멀리 떨어진 의미의 단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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