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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을 잃었던 그 아빠는 1년 전 이미 한 번 죽었다

  • 입력 2015.04.22 16:06
  • 기자명 욕먹는 담벼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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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고 희생자 가족들이 416시간 집중 농성을 선포하고 다시 광화문에서 풍찬노숙을 시작한 지도 보름이 넘었다. 봄이 왔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추운 날씨, 노숙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을 터.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유민아빠 김영오씨의 행색도 초췌해져간다. 하지만 눈빛만은 힘을 잃지 않고 있다. “그렇게 힘은 들지 않다. 몸이 힘든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담담하게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비장함이 묻어있다.


유민아빠 김영오 씨가 광화문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

김영오씨는 지난해 일어난 세월호 사고로 딸 유민이를 잃었다. 평소 곁에 있어주지 못했던 아빠는 딸 유민이에게 미안해서 세월호 사고의 진상을, 유민이가 그 어두운 물 속에서 죽어야만 했던 이유를 밝히겠다고 다짐했다. 그것이 유민이를 위해 아빠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었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불행한 일이 벌어지지 않는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이못난 아빠에게 주어진 역사적 사명이라고 생각했다.

국가가 진상 조사를 할 줄 알았다
.
지난해 5 16일 청와대 면담에서 받은 박근혜 대통령의눈물의 약속을 믿었다. 하지만 하루하루 시간만 지나갈 뿐이었다. ‘세월호 특별법은 여야간의 정쟁에 발목을 잡혀 진척이 없었다.
유민아빠는 지난해 7 16, 단식 투쟁에 나섰다. 세월호 특별법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라는 요구였다. 유민 아빠는 당시엔 “3일 정도 단식하면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은 요지부동이었다.
하루하루 시간이 흐르면서 유민아빠는 눈에 띄게 수척해져갔고, 건강은 악화됐다. 치아가 약해졌다. 통증 때문에 양치질도 할 수 없게 됐다. 기억력도 상당히 나빠졌다. 또렷하던 기억들이 희미해졌다. 하지만 아빠는 왜 자신이 단식을 하고 있는지, 목적만은 잊지 않았다. 제대로 된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해 그 진실을 밝혀야 했다.
각계에서 유민아빠의 건강을 걱정했다. 대신 단식 할테니 건강을 돌보라는 분들도 많았다. 하지만 아빠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유민이가 사고를 당했을 때, 아빠는 이미 한 번 죽었기 때문이다.
살이 46킬로그램까지 빠졌다. 허리와 다리 관절이 아파 걷거나 서는 것이 힘들었다. 근육을 다 소진하다보니 앉아있으면 갈비뼈가 장기를 찔러 장기가 붓기도 했다. 그래서 지팡이를 짚고 허리를 펴고 있었다. 그런 몸으로 청와대로 향했다. 지팡이를 짚고 걷는 것마저도 힘겨운 유민아빠를 경찰은 막아섰다. 단식 40일 째, 결국 유민아빠는 쓰러졌다.

저들에게 국민은 세금 내는 기계일 뿐이다
병원에서도 링거만 투약할 뿐, 단식을 이어갔다. 그래도 정부와 여당은 꿈쩍하지 않았다. 이 때 아빠는 대한민국은 정부가 국민을 국민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그들에게 국민은 그저 세금을 내는 기계일 뿐이다. 사람이 죽어도 그저 기계가 망가졌네, 할 사람들이라고 유민아빠는 느꼈다. 자신이 아니라 천 명이 죽어도 눈 하나 깜짝 안 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생명의 존엄보다 돈의 가치가 우선인 사회, 이 사회를 바꾸기 전까지 아빠는 편히 죽을 수도 없었다. 46일 만에 유민아빠는 단식을 중단했다. 단식은 중단했지만, 진상규명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단식하던 때를 돌아보면 고마운 분들이 많았다. 동조단식에 나선 수많은 국민들, 서명을 하고 광화문에 나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국민들, SNS에 응원의 글을 올려주는 분들까지. 그 중에도 특별히 기억에 남는 분들도 있다.
나이 많은 분들 중에는 보수층이 많다고 한다.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에 앉아있으면, 들릴 정도로 비아냥거리며 가시는 어른들도 있다. 하지만 마음 따뜻한 어른들도 많았다. 단식을 하고 있는데, 팔순 다 되신 분들이 오시더니 큰 절 하고는 눈물을 쏟았다. “유민아빠 미안해. 내가 사회를 잘못 만들어서 유민아빠가 굶고 이 무슨 고생인가.” 그 한마디에 커다란 위로를 받았다. 그 말의 진정성과 따뜻한 마음이 전해져 눈시울을 붉혔다.
어린 학생과 젊은이들이 찾아올 때면 더 힘이 났다. 어린 학생들이 벌써 특별법이 왜 중요한지 내용을 다 알고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을 보면 기특했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에서 유민아빠는 희망을 봤다.
사회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왕따를 당하거나 우울증으로 자살하려던 아이들이 편지를 써서 오기도 했다. ‘다시 살겠다는 의지를 갖게 됐다’ ‘왜 살아야하는지 알겠다이런 편지를 많이 받았다. 그런 모든 성원이 유민아빠가 46일을 버티는 힘이 됐다. 유민아빠는그런 분들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46일이나 단식을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감사를 전했다.


나를 조롱하는 저들도 안전한 나라에서 살아야 한다
그런가 하면 마음 상하게 하는 일들도 벌어졌다. 일간베스트(일베) 회원들이 단식하는 유민아빠를 조롱하기 위해 광화문으로 왔다. 이른바 폭식투쟁이었다. 부아가 치밀고 속이 뒤집어졌다. 하지만 단상도 설치해주고, 체하지 않게 물도 갖다 주라고 민우아빠한테 부탁했다. “광화문 광장에서 편히 식사할 수 있게 하자. 싸우지 말자. 저 사람들도 같은 나라에서 안전하게 살아야 할 사람들이니까.”
당시 유민아빠를 더 힘들게 했던 것은 출처 없는 루머들과 그걸 퍼나르는 언론이었다. 유민아빠의 단식이 길어지고, 언론의 관심을 받자 인터넷에는 온갖 루머들이 나돌았다. 아픈 가족사를 들춰냈다. 마치 보상금을 많이 받아내려고 환장한 사람처럼 몰아갔다. 유민아빠는 스트레스로 머리가 한주먹씩 빠졌다.
언론은 사실을 확인하지도 않고, 루머를 사실인 것처럼 보도했다. 그 보도로 루머는 확대재생산 되어갔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유민아빠는 언론을 믿지 않게 됐다. “기자들이 정보를 정확하게 알아보고 방송을 내보내든 기사를 쓰든 해야 하는데, 알아보지 않는다며 언론사의 보도 행태를 지적했다. 또한일부러 왜곡된 기사를 쓰지 않는 기자라 하더라도, 정곡을 찌르는 기사를 쓰는 기자가 없다. 겉으로 보이는 면만 보도한다. 그 속을 파헤치고, 물고 늘어지는 기자가 없는 것 같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유민아빠 김영오씨

지난해 11, 결국 세월호 특별법은 수사권과 기소권이 빠진 반쪽짜리로 만들어졌다. 아빠는 반쪽짜리 특별법이라도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특별조사위원회가 출범되면, 제대로 진상조사를 할 수 있을 것이라 바랐다. 세월호 사고의 진상을, 왜 딸 유민이가 죽어갔는지, 사회 구조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밝혀지길 기도했다. 하지만 기대는 산산조각이 났다. 해양수산부가 세월호 특별법을 무력화시키는 시행령안을 입법 예고한 것.

아빠는 다시 광화문 농성장에 나올 수밖에 없었다.
세월호 희생자가족들은 지난달 30일부터 ‘416시간 집중 촛불 농성을 선언했다. 이번에도 유민아빠 자신의 건강은 생각하지 않는다. “건강을 신경 쓸 때가 아니다. 몸 망가지더라도 시행령 폐기하고, 특별법이 제대로 시행되도록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지난 1, 정부는 배보상 기준을 발표했다. 언론이 정부의 발표를 그대로 받아썼다. 4억이니 8억이니 떠들어 댔다. ‘왜 세월호 가족들이 다시 광화문으로 나왔는지’, ‘정부시행령안의 문제점은 무엇인지광화문 광장에서 외치는 유가족들의 목소리는 언론에서 사라졌다. 그러다보니 국민들은 유가족들이 돈을 더 받으려 생떼 쓰는 줄로만 안다. 그래서 임원진 11명이 삭발 결의했다. 임원진의 결단에 희생자 가족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참여하기로 마음을 모았다. 현재 70여명의 희생자 가족들이 삭발을 한 상황, 유민이 아빠도 당연히 앞장섰다.
유민 아빠는 정부시행령안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 시행령은 모법인 세월호 특별법의 입법취지를 완전히 무력화 시킨다. 쓰레기 같은 시행령이다. 이 시행령대로라면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를 출범시키지 않는게 낫다. 기획조정실에서 실장과 총괄담당, 조사1과장이 상임위원의 업무를 조정하게 되어있다. 결국은 파견공무원들을 통해 정부가 특조위를 조종하겠다는 말이다.”
해경에서 8, 해수부에서 9명의 공무원이 파견되는 것도 말이 안된다. 해경과 해수부는 수사를 받아야 할 대상이다. 해경과 해수부에 대해 갖가지 의혹들이 풀리지 않고 있다. 이들이 특조위에 참여하겠다는 것은 내가 죄를 지었는데, 스스로 수사를 하겠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이들의 수사를 믿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진상조사 소위원회의 조사 범위를 정부가 조사해온 것을 검토하는 수준으로 축소 한 것도 문제다. 이렇게 할 것이면 왜 특별 조사를 하는가. 형식적으로 대충 덮고 가자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수많은 의혹이 산적해있다. 이 의혹들을 제대로 해결하려면 직접적인 재조사를 실시해야 하는데, 시행령이 그것을 방해하고 있다
.”

세월호 특별법에서는 포괄적인 재해와 재난에 대한 안전을 점검, 안전사회 건설을 추진하게 돼있다. 하지만 시행령에서는 선박과 해상으로만 축소했다. 재해 재난이 해상에서만 일어나는가, 말이 되지 않는 시행령이다라며 정부 시행령안의 폐기를 요구했다. 또한수정이나 협상으로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1년이 지났는데, 변한 것이 하나도 없다.
유민이를 추모할 면목이 없다. 1주일 내에 진상을 밝힐 수는 없어도, 최소한 정부가 내놓은 쓰레기 시행령안을 폐기하고, 특조위의 원안대로 시행하겠다는 약속, 세월호 선체 인양을 하겠다는 약속 정도는 받아내야 유민이 볼 낯이 생긴다상징적으로 416시간이라고 이름을 붙였지만, 시행령안이 폐기될 때까지 사실상 무기한 농성에 돌입한 것이라며 끝까지 싸우겠다고 다짐했다.
유민아빠는 마지막으로더 이상 가족들 가슴에 상처 주지 말라. 돈 받으려 여기 앉아 있는 것 아니다. 왜 내 자식이 죽었는지 밝혀달라고, 안전사회 건설하자고 앉아있는 거다. 그러지 않아도 충분히 아프니까 두 번 죽이지 말아 달라. 광화문으로 모여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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