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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태극기' 1면에 게재한 조선일보의 속내

  • 입력 2015.04.21 18:42
  • 수정 2015.04.21 19:09
  • 기자명 김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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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0일자 1면 기사 '태극기 불태운 시위대'

지난 20일자 <조선일보>(아래 <조선>) 1면에 지난 주말 있었던 세월호 집회 참가자의 사진이 등장했다. 기사 제목은 짧고도 간결했다. '태극기 불태운 시위대'라는 단어의 조합은 그 의미가 극명했고, 기사의 내용을 굵직하게 압축하고 있었다.
본문을 읽어보면 <조선>이 세월호 추모 집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드러난다. 기사의 첫 문장을 보자.

"세월호 추모 집회에 참가한 시위대 수천 명이 서울 광화문 일대 도로를 불법 점거하고 시위를 벌여 도심 교통이 극심한 정체를 빚었다."

<조선>은 전날 오후부터 경찰버스를 집결하고 차벽을 쌓아 도로를 막은 공권력의 모습은 생략한 채, 추모 집회가 교통체증을 야기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파손된 차량'은 주목, '다친 유가족'은 외면
'도로 불법 점거'를 언급한 <조선> 2011년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이 난 경찰 차벽의 문제점은 말하지 않았다. 18일 아침부터 광화문 일대의 통행을 어렵게 만든 원인이자, 경찰의 도로 폐쇄 도구였던 경찰버스의 모습은 그렇게 <조선> 지면에서 증발했다.
경찰에 연행된 100여 명의 시위대와 경찰관 폭행 등의 혐의를 서두에 언급한 <조선> 기사는 이어서 부상 당한 의경, 파손된 차량을 나열했다. 반면 부상 당한 유가족과 시민의 숫자는 짧게 스치듯 적는 선에서 그쳤다. 또 과잉진압으로 비판 받은 경찰의 물대포 사격과 최루액 분사는 '과격한 시위대' 묘사 이후에 덧붙이면서 마치 불가피한 진압의 과정으로 보이게 했다. <조선> 기사는 당시 일어난 일의 순서를 슬쩍 섞고 재배치함으로써, 집회 참가자 측의 폭력성이 부각되게 했다.
이런 기사는 집회 현장을 직간접적으로 접하지 못한 독자에게, 당시 상황을 '광분한 시위대와 피해를 입은 경찰 병력'의 구도로 인식하게 한다. SNS로 공유된 현장 사진이나 다른 언론의 기사를 본 사람이라면 분명 답답할 노릇이다. 한 쪽을 ''으로 규정해 정당성을 얻는 방식이 옳지 않을 뿐더러, 사실관계가 왜곡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무장한 경찰 병력이 추모 행렬의 과격한 행동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는 식의 내용은, 자칫 '시위대가 먼저 위험한 행동을 자초했다'는 오해를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더군다나 '불타는 태극기' 사진을 기사와 함께 배치한 것은 '오해' '확신'으로 만들 수 있다. 보수뿐만 아니라, '국기에 대한 경례'가 일상이던 시대를 겪은 일부 한국 사회 구성원들에게 여전히 '국기'는 곧 '국가'를 의미하는 상징물이다. 이러한 '국기'를 불로 태우는 모습은 누구에게서나 쉽게 감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다.
20일 광화문에서 벌어진 많은 상황 중에서 <조선> '태극기 불태운 시위대'를 기사의 제목이자 글의 요지로 정했다. 또 사진을 싣기 위해 다른 언론사인 <뉴스1>이 촬영하고 종편 <채널A>가 방송한 장면을 캡처하여 인용하기까지 했다. 자사 기자들이 촬영한 집회 사진을 제쳐두고 굳이 복잡한 과정을 거치면서 얻은 사진을 1면 기사를 위해 고른 것이다. 광장을 고립된 섬으로 만든 차벽 대신, 화염으로 휘감긴 태극기를 선택한 <조선>의 속내를 유추해볼 필요가 있다.

'시위꾼', '선동' 등 자극적인 단어로 여론몰이



20일자 <조선일보> 사설. '단골 시위꾼들' '선동'이라는 단어로 '폭력 시위대' 프레임을 조성한다.

같은 날인 20일자 <조선> 사설은 한층 노골적인 '폭력 시위대' 프레임을 선보인다. 칼럼란에 실린 '단골 시위꾼들 폭력 투쟁, 국민들 세월호에 더 고개 돌린다'라는 제목의 글이다. 18일 집회를 주도한 4·16 가족협의회 위원장이 말한 "24일과 25일에 다시 모일 것" 발언을 인용하면서, "매주 주말 도심 폭력 시위를 되풀이 하겠다는 기세다"라고 적었다. 이어서 "세월호 집회·시위가 뉴스에 나오면 채널을 돌려 버린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지겨운 세월호' 담론을 꺼내기도 했다.
그 배경으로 '변질'된 시위 내용, 짙어지는 정치색과 폭력성을 언급하면서 집회 성격에 덧칠을 시도한다. 또 추모 집회 주도단체에 소속된 인물의 과거까지 파헤쳐 '국가보안법 폐지국민연대 집행위원장 경력'까지 설명한 것도 모자라 광우병 사태, 용산 참사 등의 정국 집회 때도 모습을 보인 민변 소속 변호사도 엮었다. 하나같이 보수진영에서 '배후세력'을 의심했던 사건들이다.
아니나 다를까, 사설의 마지막은 "세월호 관련 집회·시위가 정권 타도 투쟁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은 동기가 순수하지 못한 전문 데모꾼들의 기획·선동 때문이다"라는 문장으로 끝난다. 이른바 '불순한 세력'이 세월호 유가족을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이용하고 있다는 가설인 셈이다.
제목과 더불어 사설의 내용은 자극적인 단어로 여론몰이를 시도한다. '시위꾼'이나 '선동'이라는 단어는 '폭력 시위'라는 말과 조합되면서 오히려 독자를 '선동'한다. 세월호 유가족과 집회 참가자들이 '전문 데모꾼들'에게 현혹 당해 문제를 일으킨다는 발상이다.
국가를 상징하는 '태극기'를 불태운 시위대가 비판의 도마에 오르면, 정부 비판론과 '참사로 304명이 사망할 동안 국가는 어디에 있었는가'라는 물음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다. 집회를 '불순한 행동'으로 설정한 보수언론은 '배후세력의 의도'에 쉽게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고 독자를 설득한다. 그러면서 해결책으로 '폭력 시위대'를 향한 질타를 제시한다. 결국 유가족과 추모행렬을 향한 마녀사냥이 자연스럽게 완성되는 것이다.

성조기 불태운 미국인 관용... 한국사회는?
<조선>을 비롯한 보수언론들이 본질을 외면한 보도를 이어가고 있을 때, 집회를 겨냥한 보수진영의 집요한 물타기도 계속됐다. 20일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조선> 기사를 인용하며 "'성완종 리스트'에 정신 파는 동안 태극기 불타고 있다"는 주장을 폈다. 이어서 김 의원은 황교안 법무부장관에게 태극기 훼손 관련자 검거를 주문했고, 새누리당은 일부 집회 참가자들의 엄정한 처벌을 요구하기도 했다.
여당 정치인 다수의 정치자금 수수 의혹이 정쟁으로 포장되고, 세월호 집회는 공권력에 의해 폭력 시위로 낙인 찍히고 있는 형국이다. 뒤집어서 보자면, 보수진영이 위기 탈출의 방법으로 세월호 추모 집회를 끌어내리는 것으로 보인다.
논란이 이어지자, 한 누리꾼은 국가상징물 훼손과 관련한 사례로 과거 미국 연방대법원 판결(Texas vs. Johnson, 1989)을 언급했다. 1984 8월에 텍사스주 댈러스시에서 시위 도중 성조기를 찢고 불태운 혐의로 그레고리 존슨이 기소된 사건이었는데, 당시 대법관 브레난이 작성한 판결문은 이러했다.
"성조기가 상징하는 미국의 힘은 경직성이 아니라 융통성에 있다. 대법원의 결정은 성조기가 상징하는 자유와 관용의 정신을 반영하는 것이고, 존슨 같은 사람도 관용하는 것이 미국 사회의 힘이다."
재판부는 존슨을 처벌하는 것이 국기의 신성함을 지키는 길이 아니라, 오히려 '표현의 자유'와 성조기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것이라 본 것이다. "성조기는 성조기를 모욕할 자유마저 포함한다"는 이 판결은,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으로 국기를 손상하면 5년 이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한다"는 국내 형법 105조의 내용과 사뭇 대비된다. 우리는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지 못하는 것을 지금껏 지켜봤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국기가 어떤 존엄을 나타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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