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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세 시간 반이 필요합니다.

  • 입력 2015.04.16 15:32
  • 기자명 김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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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1년이 흘렀습니다. 긴 시간입니다. 웬만한 일이면 까맣게 잊을 시간이고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반문을 하고도 남을 시간입니다. 하지만 1년 전과 똑같이 세월호 유족들은 광화문 앞에서 울부짖고 있고, 아홉 명의 영혼은 바다 속에 갇혀 있으며, 죽은 아이들의 아비 어미는 머리를 깎고 뭔가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지겹다 하시는 분도 계실 겁니다. 도대체 그런다고 자식들이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 무엇을 바라는 거냐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 오늘 아침 만난 택시 기사님처럼요.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자식들이 살아 돌아오기를 바랄 수 없는 그 마음만큼 자식들이 왜 죽었는지를 궁금해하는 건 당연한 일 아니겠냐고 말입니다. 그리고 이유가 명명백백하게 밝혀진 위에서 그 책임자들이 드러나고 죄를 받게 하는 것이 부모로서의 마지막 소망 아니겠냐고 말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아이들이 타고 가던 버스가 사고가 나서 전복된 뒤 불이 나서 모두 타 죽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1시간씩이나 있었지만 출동한 경찰과 소방관들은 폭발 위험 운운하며 접근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버스가 불법 개조된 버스였고, 정비도 불량이었으며 도로 정비에 문제가 있었다고도 합니다.
그 상황에서 사고의 내역도 정확히 밝히지 않은 채 운전사만 구속시키고 “보험금이나 받아가세요.” 한다면 여러분이 가만히 있을 수 있습니까. 어느 못된 국회의원 말대로 “자식은 부모 가슴에 묻지” 하면서 두둑해진 주머니로 어디 동남아 투어라도 가실 수 있겠습니까. 저 같으면 못합니다. 죽어도 못합니다. 누가 내 머리를 둘로 쪼갠다고 망치를 들이밀어도 못합니다. 자식 앞에서는 미물들도 목숨을 건 투사가 되는데 그리 하지 않는다면 그게 인간이겠습니까.

잔인한 말이지만 뼛조각 찾자고 수천억 돈을 써가며 굳이 인양할 필요가 있느냐고 묻는 분도 계실 겁니다. 1주일 전 함께 술 마신 선배처럼요. 네. 인양에는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갈 겁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천문학적 비용보다 더 가치 있는 ‘신뢰’를 잃어버려 왔다고 말입니다.
생각할 때마다 울컥하고 고개 주억거리며 천정 바라보게 되는 것은 그날 세월호 안의 아이들입니다. 그들은 “가만히 있으라.”는 어른들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선실에 질서 있게 앉아 구명조끼 나눠 입으며 기다렸습니다. 교회 나가는 애들은 뭉쳐서 기도하고 해경이 왔다고 기뻐하고 엄마 아빠를 걱정하면서 그 아이들은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러던 아이들에게 바닷물이 쏟아지고 전기가 꺼지고 배 전체가 캄캄한 바다 속으로 곤두박질치던 순간을 생각하면 가슴이 뛰고 주먹이 쥐어지고 미안하다 미안하다 소리를 내뱉게 됩니다. 선장 이하 선원들은, 해경은, 그리고 대한민국은, 그리고 저와 여러분은 그들의 믿음을 배신했습니다. 그들의 충직한 신뢰를 죽였습니다. 그리고 육시를 했습니다.

모든 것을 총동원하여 구조에 힘쓰겠다는 요란한 보도,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옷을 벗기겠다.”는 대통령의 약속, “적폐를 해소”하겠다는 다짐 등등등 세월호 이후에도 철석 같은 말들은 많았습니다. 하지만 결국 우리 앞에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해양경찰이 간판을 갈아 끼운 것과 선원들이 징역 선고를 받고 세모그룹 회장 유병언이 죽고 자식들이 구속된 것 그 이후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정확한 침몰 원인과 구조 실패의 책임이 뼈저린 ‘징비록’으로 정리됐나요? 아닙니다. 하다못해 세월호의 쌍둥이배로서 진상 규명의 열쇠가 될 수도 있었을 오마하나호를 고철로 팔아 버리는 것 하나 막지 못한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인양은 그 신뢰를 회복하는 첫 작업입니다. 미국 정부가 돈이 넘쳐나서 65년 전 한국 땅에서 죽어간 미군 병사들의 뼛조각과 유품 하나 하나를 그네들이 ‘악의 축’이라 부르는 나라 북한에 돈을 떠안기면서 회수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한 국민에게 의무 이행을 요구한 국가가 응당 유지해야 할 믿음을 확인하는 일입니다. 뼛조각 하나에 수십만 달러를 뿌리는 건 결코 낭비가 아니라 우리는 당신을 저버리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전달하기 위함입니다.
돈 많이 들 수 있습니다. 정말 하다 하다 안 되면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세월호를 인양해야 하는 이유는 너무도 무능하게, 참혹할 만큼 무기력하게 자신의 국민들을 잃어버린 국가의 속죄의 시작이며, 잃어버린 신뢰를 다시 찾는 여정의 첫발이기 때문입니다. 돈 때문에 신뢰를 포기하는 나라라면, 비용 때문에 국민을 팽개치는 국가라면 그 나라가 무슨 경제성장을 할 수 있겠으며 얼어죽을 부국 강병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4월 16일입니다. 1주기 추모식이 곳곳에서 열립니다. 당신의 세 시간 반을 빌려 주세요. 거리에 서 주세요. 무슨 타도가 어쩌니 미국 잠수함이 어쩌니 어지러운 소리 듣기 싫으면 귀 막고 서 계셔도 됩니다. 동의하지 않을 구호에는 입 닫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속절없이 사라진 별 같은 아이들, 선량한 어른들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어떻게든 이런 일은 없어져야 한다는 마음으로 거리에 서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머리 수라도 채워 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국민적 참사가 일어난 1주기 되는 제삿날 굳이 지구 반대쪽 콜롬비아의 ‘내부 사정’ 때문에 오늘 꼭 비행기를 타셔야겠다는 저 요령부득의 대통령보다는 당신이 인정이 많음을, 그리고 공화국 시민으로서의 자격이 다대하다는 걸 보여 주시기 바랍니다.
왜 세 시간 반이냐구요. 대한민국 사람들 바쁜 사람들 아닙니까. 저도 그렇습니다. 누구처럼 근무 시간에 일곱 시간 동안 어디서 뭐 하는지도 모르면서 통화만으로 일했고 그 뒤에 나타나 뻘소리만 내뱉는 사람과는 질적으로 다른 분들 아닙니까. 그래서 딱 그 절반만 요청드립니다. 세 시간 반만 내 주십시오. 오늘, 그리고 특히 18일 광화문. 주인 없는 청와대와 경찰을 에워쌉시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음을 우리 스스로에게 알리고 남미에 간 대통령에게 알려 줍시다.

저 사람들에게 보여 주어야 합니다. 4.19 이후 이승만이 한 말을 기억합시다. "불의를 보고 일어서지 않는 국민은 죽은 국민이야." 최소한 이승만에게 부끄러운 국민은 아니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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