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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혁당 40주기, 역사는 진실을 비켜가지 않는다

  • 입력 2015.04.14 11:00
  • 기자명 정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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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저녁, 서울 인사동 조계사 내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추모제가 하나 열렸다. (재)4·9통일평화재단 주최로 열린 ‘4·9 통일열사 40주기 추모제’가 그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1975년 4월 9일 소위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당한 ‘인혁당 사형수’ 8명의 40주기 추모행사를 연 것이다. 이날 추모행사에는 희생자 8인의 유가족을 비롯해 4·9통일평화재단 문정현 신부, 재야 원로 및 종교계 인사, 일반시민 등 경향 각지에서 온 300여 명이 행사장을 가득 채웠다.
‘1차 인혁당 사건’ 연루자인 성대경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추모사를 통해 “여덟 명 열사의 살해 최종 책임자인 대통령 박정희와 확실한 증거도 없는 사건에 사형판결을 내린 대법원장 민복기, 사건을 조작한 정보부장 신직수, 고문을 자행한 6국장 이용택에 대해서는 지금부터라도 사건 진상을 재조사하여 그 책임을 엄중하게 물어야 마땅하다.”며 “(사형수 8인) 님들이야말로 내가 평생 살아오면서 어려운 일을 만날 때마다 의지해 온 어둠 속의 등불 같은 분들이셨다.”고 고인들을 추억했다.

지난 9일 저녁, 서울 조계사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4·9통일열사 40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4월은 피끓는 학생들이 이승만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4월 혁명’의 달이자, 박정희 독재정권에 맞섰던 혁신계 인사들이 소위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몰려 떼죽음을 당한 비극의 달이기도 하다. 서도원, 도예종 등 박정희 독재 권력에 저항하던 혁신계 인사 여덟 명이 대법원 판결 18시간 만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동서고금을 통 털어도 유례없는 일이다. 이들에 대한 사형이 집행되던 날,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둔 국제법학자협회는 대법원 판결일인 4월 8일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규정했다.
비극은 비단 이들 여덟 명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의 가족들은 한 세대가 지나도록 ‘빨갱이 가족’으로 몰려 갖은 수모와 고생을 감내해야만 했다. 일거수일투족을 경찰이 감시하였으며, 직장에서 쫓겨나기도 하고 더러는 하던 사업도 접어야만 했다. 심지어 여정남의 동생은 그 충격으로 출가하여 스님이 되었으며, 우홍선의 아내 강순희는 남편 산소에 갈 때마다 ‘박정희 살인마! 천벌을 받으라!’고 3번씩 외쳤다고 한다. 오죽하면 서도원의 아들 서동훈은 “그날 이후로 내 삶은 늘 절뚝거렸다.”고 토로했을까.
그들이 세상을 떠난 지 30년도 넘은 지난 2007년, 법원은 재심에서 이들 8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로써 이들의 누명은 일단 벗겨졌다. 또 가족들은 국가로부터 적잖은 배상금도 받았다. 그러나 이걸로 만사가 원래대로 회복된 건 아니었다. 한 번 죽은 사람은 영영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또 가족들이 겪은 상처 또한 제대로 싸매지지 않았다. 억울한 건 또 있다. 40년 세월이 지나도록 그들은 고향(대구)에서조차 반독재 민주투사라기보다는 빨갱이로 기억하는 이가 적지 않다.

추모제에서 인삿말을 하는 문정현 신부

역대 독재정권 하에서는 이들에 대한 추모행사 자체가 금기였다. 당국의 탄압을 두려워한 나머지 추모행사를 갖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다가 87년 민주항쟁의 결과로 민주화가 진전됨에 따라 90년대 들어서야 비로소 이들에 대한 추모행사를 가질 수 있게 됐다. 경북대 학생운동의 상징이자 ‘인혁당 사형수’ 8인의 막내인 여정남(당시 31세)을 기려 그의 모교 경북대에 추모비와 ‘여정남 공원’이 마련된 것이 그 한 예다. 법원의 재심 판결로 무죄가 확정됨에 따라 명예회복과 함께 국가배상, 그리고 ‘민주화운동 관련자’ 지정은 늦었지만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라고 하겠다.
‘인혁열사’들의 뜻을 기리고 그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지난 2008년 ‘4·9통일평화재단’이 발족됐다. 유가족들의 기금 출연으로 출범한 이 재단은 문정현 신부가 이사장은 맡고 있다. 재단에서는 추모기념사업을 비롯해 자료수집 및 출판 작업도 진행하고 있는데 올해 인혁당 재건위 사건 40주년을 맞아 <재심 백서>를 펴내기도 했다.
역사의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지는 법이다. 권력으로 당장은 입과 귀를 막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영원히 진실을 창고 속에 가둬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난 18대 대선에서 국정원의 불법대선개입 사건이나 작년 4월 세월호 참사의 진실 역시 언젠가는 밝혀지고 말 것이다. 역사는 더디 가더라도 진실을 비켜가지는 않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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