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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밥, 부끄러움은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다

  • 입력 2015.04.13 13:46
  • 수정 2015.04.13 13:49
  • 기자명 깜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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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2년 동안 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았다. (지금은 아니다.) 평소에는 가난을 느낄 일이 없었지만 정부에서 지원을 받을 때가 되면 수많은 서류로 체험해야 했다. 알코중독자인 아버지가 제대로 서류를 작성할 리가 만무했으므로 그것들은 언제나 나의 몫이었다.


가난을 증명해야 할 때가 오면 읍사무소까지 걸어가 서류를 떼곤 했다. 수급자였기에 서류비는 무료였다. 가끔은 서류에 담긴 글들을 읽어 보곤 했다. ‘혼인관계증명서’와 그 뒤에 붙어있는 이혼증명, ‘기초생활수급자증명서’ 같은 것들을 맨 정신으로 읽었다.

‘X발 나라는 이딴 걸 애새끼한테 그냥 보라고 던져주는 건가? 이렇게까지 해서 서류를 내야 겨우 밥을 먹는 건가?’

대단히, 대단히 귀찮기는 했지만 가난은 생활 속에 있었고, 고달프기는 했으나 부끄럽지는 않았다.

가난 앞에서 당당하던 것은 나만 그랬던 것 같다


포기하면 편해!

나는 살면서 단 한 번도 가난을 나의 문제라 생각지 않았다. 가난은 아버지의 것이지 나의 것은 아니었다. 사회가 사람을 평등하게 대한다면 나 또한 평등한 대접을 받아야 하기에, 나에게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어야 했다. 그래서 난 더 당당해 했다.

사회는 가난을 부끄럽게 하더라

원칙상으로는 그렇다. 나는 충분히 당당하다. 하지만, 지금도 그 원칙은 유효한 건가.

경남에서 공짜밥을 안 주려고 난리다. 어떻게든 구분 지어 밥 먹을 돈을 못 내는 사람들을 찾아내겠다고 한다. 이 와중에 이성애 경남 도의원과 학부모 사이에 오고 간 문자는 왜 학교 급식이 공짜 밥이어야 하는지 보여준다.


누구는 공짜로 받고 싶어서 받나 돈이 없어서 받는 거지

‘공짜 좋아하는 아이’라는 표현은 천박하다 못해 구토를 유발한다. 공짜 밥 한번 먹어보겠다고 서류 더미들을 떼러 다니는 아이에게 그러한 수식어는 참 가혹하다.
이성애 의원의 외벌이로라도 어떻게든 밥을 사서 먹였다는 발언은 아이를 넘어 부모의 가슴에도 못질을 한다. 그의 자부심이 느껴지는 발언 속에서 밥을 사서 먹이지 못하는 부모는 ‘자식 밥값도 제대로 못 내는 천박한 것들’이라는 뉘앙스를 읽은 건 나만의 비약일까. 가난한 부모는 ‘공짜 좋아하는 부모’로 손쉽게 치환되고, 그 부모 밑에서 자란 자식은 ‘공짜 좋아하는 자식’이 된다. 어느 학부모가 ‘공짜 좋아한다는’ 가난한 아이 곁에 자기 자식을 두고 싶어할까.

부끄러움은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다


같은 단지 안, 임대아파트 차별같이

가난이 ‘치욕’이 되는 순간, 부끄러움은 그렇게 다가온다. 가난이라는 이유로 선을 긋고 차별을 일삼는 세상에서 밥에 선을 그었을 때, 그걸 아이들이 느끼지 못할 리 없다. 얼마 이상의 돈을 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밥을 공짜로 주겠다는 소리는 그 아이들에게 ‘너의 보호자는 밥 하나도 제대로 못 먹이는 가난한 보호자란다.’ 라고 재차 낙인을 찍는 것이나 다름 없다. ‘쟤는 밥 공짜로 먹는대!’ 라는 소문이 학교에 돌기라도 하는 순간, 또 그 아이가 감당해야 할 수많은 수치심은 또 어쩌란 말인가. 나는 수많은 시선을 견딜 정도로 뻔뻔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정당하다고 느껴 본 적은 없다.
공짜 밥을 모두에게 먹이겠다는 건 돈 많은 집 자제를 위한 게 아니라 가난한 사람을 위한 것이다. 밥을 모두에게 먹이면 밥 때문에 부끄러워 질 일은 없기 때문이다


윤서인씨 그래서 잘 돕고 계십니까?

이 나라에는 결식아동이 한 명도 없으니 무상급식이 필요 없다던 윤서인씨가 떠오른다. 그의 눈에는 지금도 편의점에서 끼니를 때우는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 것만 같다. 그들이 가난을 증명하고 재차 확인 받는 과정에서 견뎌야 할 수치심과 부끄러움의 무게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그가 살던 시대에는 돈이 없으면 굶어야 했지만 지금은 서류를 내면 밥을 공짜로 먹을 수 있으니 어서 ‘가난한 아이’라는 꼬리표와 밥을 맞바꾸라는 호통일까. 꼬리표와 밥을 맞바꾸는 일은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에 대한 고민이 그에게는 없는 것 같다.

모든 아이들에게 밥이 주어져야 하는 이유가난을 증명하여 부끄러움을 감수하게 하는 건, 결국 가난에 대한 사회의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겠다는 소리일 뿐이다. 게다가 ‘돈 없는 아이들에게만 밥을 공짜로 주겠다’는 발상과 ‘가난한 아이들은 공짜를 좋아해’라는 천박한 생각이 얽히는 순간 ‘공짜 밥 먹는 가난한 아이에 대한 차별’은 당연한 것이 되어 버린다. 그 논리, 사회적으로 주어진 가난함을 개인의 것으로 돌리고, 차별하고, 배제하는 그 논리를 깨기 위해서라도 모든 아이에게 밥이 주어져야만 한다.


위 글은 미스핏츠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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