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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썰인터뷰] 일베가 사랑한 좌익사범, 박정근

  • 입력 2015.03.30 16:48
  • 수정 2015.09.09 11:06
  • 기자명 백스프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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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고지전’에서 종전 당일 죽음을 앞둔 북한 장교는 이렇게 말한다.

“내래 (이 전쟁의 목적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고 있었어. 긴데 너무 오래돼서 잊어버렸어.”

전쟁은 끝났다. 하지만 이 전쟁은 공식적으로 ‘휴전’상태다. 그렇게 애매하기 전쟁을 끝낸지 60년이 지났다. 남과 북은 서로 총부리를 겨누며 각자 60년 넘게 잘 살아왔다. 그런데 너무 오래됐다.

그래서일지도 모르겠다. 주적이 왜 주적인지를 잊어버렸다. 대신 우리 안의 증오를 주적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우리는 정부에 반대하는 무리를 종북이라고 이름붙였으며 사회의 소수자를 종북이라고 이름붙였다. 그리고 급기야는 ‘내 의견에 토를 다는 사람’까지 종북이라고 이름붙이기 시작했다. 이 서슬 퍼런 마녀사냥이 진행되는 동안 국가는 손쉽게 누군가를 붙잡아 갔고 그가 ‘마녀’였다고 설명했다.

종북이 ‘증오의 단어’로 우리 생활 깊숙이 자리매김하는 동안 공권력은 쉽게 ‘종북’이란 말로 마녀사냥을 했다. 이 ‘종북’이라는 마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곳까지 손을 뻗는다. 이를테면 ‘북한을 조롱했던 한 사진기자가 국가보안법으로 잡혀가는 사건’ 같은 것 말이다.

박정근 씨는 2012년 자신의 트위터에 북한 계정인 ‘우리민족끼리’의 트윗을 리트윗했다는 이유로 구속됐다. 단지 ‘리트윗’만으로 구속된 세계 최초의 사건으로 외신에서도 이를 대서특필했다. 하지만 박정근 씨는 북한에 비판적인 ‘사회당’의 당원이었으며, 그가 올린 트윗들은 누가 봐도 북한을 고무찬양하는 내용이 아닌 장난끼 가득한 조롱들이었다.

북한을 조롱하던 사진작가는 왜 ‘국가보안법’으로 잡혀갔을까? 그가 주장한 ‘농담할 자유’라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박정근 씨를 만나 직접 들어보기로 했다.


인터뷰 : 백스프, 임영민



그는 왜 잡혀갔는가?

백스프 : 유명세 좀 타셨잖아요? 조금 다른 의미긴 하지만 ‘외신에도 보도된 한국 사진작가’시잖아요? 사건 이전과 이후 삶이 조금 바뀌었나요?

박정근 : 사실 크게 달라진 건 없어요. 똑같이 일하고 놀고 친구들도 그대로고. 다만 아는 사람이 조금 더 많아졌죠. 도와주셨던 분들도 많고 하니까. 새로운 거래처도 조금 생겼고.

백스프 : 아.. 감옥 다녀온 게 장사에도 좀 도움이 돼요?

박정근 : 뭐 그렇죠. 무죄 축하한다고 오시는 분들도 많고. 다른 방면으로 도와주시는 거죠. 그분들이 일거리를 주시니까.

백스프 : 워낙 잘 찍으시잖아요.

박정근 : 그렇게 말씀해주시면 감사합니다. 사실 좋게 끝나든 안 좋게 끝나든 일상으로 돌아가려고 많이 애를 썼어요. 달라진 거라면 제가 무죄판결을 받았으니까 말을 조심스럽게 안 하게 되는 정도?

백스프 : 조심스럽게 했다는 게 재판기간 동안을 말하는 거죠?

박정근 : 그렇죠. 아무래도 그게 크죠. 이제 우리민족끼리도 다시 리트윗 해요.

백스프 : 저는 SNS 상에서 정근씨가 던지는 농담스타일을 좋아하기는 한데 사실 이제 정근 씨가 던지는 농담의 카테고리가 하나 빠졌잖아요.

박정근 : 네 이제 북한 이야기는 안 하죠.

백스프 : 그건 다시 감옥 가기 싫어서 자제를 하시는 건가요? 아니면 반성하기 때문에 그러는 건가요?

박정근 : 법정까지 다녀왔는데 지쳤죠 저도.

백스프 : 또 공안사건에 연루되기 싫어서?

박정근 : 이제 연루될 건 없죠. 이미 대법에서 판례가 나왔잖아요. 무죄라는 게. 이제 또 (북한 이야기) 해도 상관은 없어요. 다만 제가 북한 캐릭터로만 고정되는 것도 싫고. 그래서 요새는 IS로 갈아 탔어요(웃음). 제가 민감해 보이는 거에 흥미가 많거든요. 그때 제일 재밌었던 게 북한이야기였는데 요새는 일베에서도 북한 이야기는 재미 없어서 안 하더라고요. 검찰 때문에 무서워서 안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재미가 없죠.

백스프 : 사실 정근 씨가 관심 있는 사람한테는 제법 유명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왜 감옥까지 갔다 왔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박정근 : 네 요새는 사진 찍는 사람이라고 알고 있다가 나중에 사건 이야기를 듣고 ‘그런 일이 있었냐’고 되묻는 경우가 많아요.

백스프 : 정근 씨 입장에서는 그게 더 낫죠.

박정근 : 네. 그게 더 낫죠.

백스프 : 뭐 어쨌든 재판 이야기 좀 해 주세요. 재판과정이 한편의 코미디 같았다면서요?

박정근 : 2011년 9월에 압수수색을 받았어요. 사실 그 과정부터 코미디였죠.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면서 압수수색영장을 들고 찾아 왔는데 이 친구들이 가져갈 게 너무 없는 거예요. 그래서 무슨 ‘사회자’라고 써있는 명패를 가져가면서 비밀 회동을 하는 거 아니냐고 물어보질 않나. 친구가 제 생일날 써준 ‘청년 장군 박정근에게 영광 있으라’ 생일 쪽지 보낸 거 가져가서 이거 수상한 거 아니냐고. 러시아 혁명사 같은 책 가져가고 조국이 쓴 ‘진보집권플랜’ 가져가고. 홍상수 영화 ‘북촌방향’ 포스터도 가져가고 사회당 입당원서도 가져가고 가져갈 게 너무 없었나 봐요.

백스프 : 재판과정에서 정근 씨가 쓴 트윗들을 낭독할 때 웃음바다가 됐잖아요? 그런데 그런 글을 보고도 박정근 씨가 북한을 찬양고무 했다고 이야기 한 거에요?

증거목록으로 제출된 박정근 씨 트윗 모음

박정근 : 이 사람들이 이런 건 안 본 거죠. 제가 우리민족끼리에 멘션을 보내기도 했으니까 제가 북한과 내통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 거에요. 게다가 제가 희망버스 같은 것도 다니고 했으니까 제가 조금 ‘불온하다’고 본 거죠. 영장 보니까 일단 나쁜 건 다 적었어요. 무서운 건 죄다 적혀 있더라고요. 우리민족끼리 리트윗 뿐 아니라 유튜브에 있는 북한 영상을 트위터에 올린 것도 혐의에 다 있었는데 이게 제 트위터 맥락을 보면 분명히 ‘조롱’이자 ‘장난’인 걸 아는데 얘네들이 그걸 다 빼고 본 거예요.

백스프 : 그럼 그 웃음바다가 된 트위터 글을 증거목록으로 제출한 건 ‘맥락을 좀 봐라’란 의미겠네요.

박정근 : ‘이런 농담도 있다. 봐라’ 라고 말 한 건데 이 사람들은 알아듣지 못하는 거죠.

백스프 :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주장은 ‘이 리트윗이 농담의 맥락이든 아니든 일단 리트윗을 했으면 사람들을 현혹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인 거죠?

박정근 : 네 그렇죠.

백스프 : 제가 알기로는 박정근 씨가 최초에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라고 반성의 제스쳐를 보냈다면 기소유예나 뭐 그렇게 쉽게 끝날 수 있었잖아요. 그런데 정근 씨가 ‘농담할 자유’를 주장하기 위해 검찰에 적극적으로 덤비신 감도 있는 것 같은데…

박정근 : 이상하고 억울하잖아요. 제가 경찰조사 받으면서 했던 말이 “이거 하면 안 되는 거냐”는 거였어요. 북한이야기라고 해 봤자 뉴스에서 다 했던 이야기 올린 거고. 유튜브에서 퍼온 북한 노래 중국 가면 시디로 다 파는 것들이고 영상이라고 해봐야 북한에서 피자 만든다고 자랑하는 게 웃겨서 퍼온 거고. 이게 왜 문제가 되냐고 하니까 경찰은 ‘이게 북한 정보전사들이 하는 일이고 지금 당신은 현혹 돼 있다’고 이야기 하는 거예요. 되게 진지하게요. 아니 억울하잖아요. 애들 다 하는데 왜 나만 갖고 그래. 내 친구들 다 해요.

백스프 : 맞아요 TV조선도 맨날 해요.

박정근 : 북한 가지고 장난 치는 거 제가 제일 먼저 한 것도 아니에요. 제 주위 친구들이 먼저 우리민족끼리 리트윗 하면서 놀았어요. 근데 제가 팔로워도 많고 이러니까 저만 잡아간 거 같아요. 그리고 이 사람들 저를 너무 과대평가 해요. 저 대학도 다니다가 때려 쳤는데 압수수색 영장 보니까 제가 지식인이라고 나와있더라고요.

임영민 : 지식인이요?

(지식인처럼 안보임)

박정근 : 제가 지식인이라니까 웃기죠. 그리고 난 사진 찍는 사람이라 소비에트 사진사 이런 거 정리 해놓은 노트가 있는데 그런 것 가져가서 너 이런 거 애들 학습시켜서 빨갱이 만드는 거 아니냐고 하는 거예요. 아니 이거 교양인데 가르치면 안 되는 거냐고요.

백스프 : 대면하셨으니까 느낌을 아실 거잖아요. 경찰들이 혐의 하나 씌우려고 작정하는 분위기였나요? 아니면 정근 씨가 진짜 위험한 사람이라고 진지하게 믿고 있는 분위기였어요?

박정근 : 처음에 압수수색 했을 때는 굉장히 진지하게 했어요. 압수수색이 여섯 시간 정도 걸렸는데 압수수색이 다 끝나니까 나올 것도 없고 가게 컴퓨터엔 북한 관련 자료는 커녕 ‘야동’조차 없고 뭐 아버지가 북한에 한 번 다녀오기는 했어요.

백스프 : 그것도 걸고 넘어지지 않았나요?

박정근 : 걸렸죠. 가져갔죠. 그런데 열어보니까 뭐 불국사 같은 절 사진만 잔뜩 있는데 뭐 볼게 있겠어요. 다시 돌려 받았죠. 경찰이 압수수색 받은 사실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제가 몰래 나와서 SNS에 썼거든요. 이게 다 알려지니까 경찰들은 더 피곤해진 거죠. 건드리지 말아야 할 애를 건드린 거죠. 반면에 저는 진짜 아무것도 죄가 될게 없는데 잘 걸렸다고 생각한 거죠.

백스프 : 처음에는 재판이 이렇게 길어질 거라고 생각하진 못했고 이거는 어느 정도 문제제기를 하고 공론화를 시켜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거예요?

박정근 : 너무 억을하니까 안 할 수가 없겠더라고요. 저도 사실 굉장히 겁을 먹었어요 그때. 엄마아빠한테 이걸 들키면 어쩌지 집 밖에서 했던 행동이 다 드러나는 건데. 밖에서 데모하고 다니는 거 다 알게 될 텐데.

백스프 : 아. 집에서는 그러고 다니는 거 잘 몰랐어요?

박정근 : 저희 집이 딱히 정치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집이 아니에요.

백스프 : 그런데 그런 집 아들래미가 보안사범으로 감옥까지 갔잖아요. 부모님이 뭐라 하시던가요?

박정근 : 조심하래요.

백스프 : 아 억울한 상황이란 건 아셨던 거네요?

박정근 : 네. 잡혀가자 마자 친구들이 와서 부모님께 설명 다 해줬어요. 그래도 ‘국가보안법’이라고 하니까 겁은 나죠. 이건 벌금형도 없는 죄인데

임영민 : 부모님 세대는 더더욱 무서워하죠. (공안정국의) 트라우마도 있으니까.

백스프 : 어쨌든 1심에서는 유죄판결을 받았고, ‘북한을 찬양고무를 한 건 맞다’고 판결이 내려진 거죠. 그런데 본인은 ‘농담’을 한 거라고 주장한 거고. 판결만 놓고 보면 어떤 사람은 검찰 논리대로 ‘아무리 농담이라도 당신의 행위에 영향을 받을 수 있지 않냐?’라고 물어보잖아요. 실제로도 그런 위험이 있을 수 있고요.

박정근 : 음… 방금 같은 질문을 검찰이랑 경찰이 제일 많이 물어봤어요. “네가 만일 농담이라고 해도 나이 어리고 판단력 흐린 애들이 보고 따라 할 수 있지 않느냐. 물론 우리는 일이 늘어서 좋지만…” 저는 그 질문 나올 때마다 항상 했던 말이 “아니 그럴 수도 있는데 그래서 이게 잡아서 고생시킬 일이냐?”고 답했죠. 그럴 수는 있어요. 저보다 더 이상한 사람 많아요. 얼마 전에 남한 상공에 UFO가 떠다니는데 그걸 북한에서 만든 비밀무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요. 10월 10일날 김정은이 백마 타고 와서 서울을 정복한다고 말하는 미친놈들도 많아요. 그런데 그렇게 심한 망상을 하는 이상한 사람들을 많이 보잖아요? 그런 분들을 안타깝게 보지, 감옥에 넣을 생각을 하지는 않잖아요.

백스프 : 그러니까 이런 거잖아요. 사실 아까 말한 김정은이 백마타고 쳐들어온다는 허황된 주장에 현혹될 미친놈들도 있을 수는 있는데 그 만에 하나의 가능성 때문에 내 농담할 자유를 당신들이 구속하는 건 납득할 수 없다.

박정근 : 아니 사실 ‘박근혜보다 김정은이 술도 잘 마시고 멋있다’고 말할 수 있잖아요. 저는 실제로도 박근혜보다 김정은이 술도 잘 마시고 말도 잘한다고.

임영민 : 검찰이 유도신문은 안하던가요?

박정근 : 하죠. 미필적 고의라고. 제가 이렇게 리트윗을 하고 어그로를 끄는 행동이 ‘국가보안법’위반이 될까? 생각을 하지 않았냐고 물어보는 거죠. 그리고 그렇게 생각했다면 그게 너의 내심의 목적이다. 그러니까 국가보안법 위반이다라고 하는 거죠.

백스프 : 법적으로 따지면 찬양고무죄는 구체적 위험범이란 거고 거기에다가 목적범이에요. 이게 예전에 헌재에 한번 올라왔는데 아무나 막 잡아 넣지 말고 진짜 위험하고 나쁜 놈을 잡아 넣으라고 헌재에서 한정합헌을 때린 건데도 실제 적용은 그렇게 안되고 있는 거네요.

그는 정말 위험한 ‘빨갱이’일까?

백스프 : 박정근 씨 국가관은 원래부터 애국보수들이 좋아하는 국가관은 아니었잖아요? 사건 이후엔 어때요? 국가관이 바뀐 게 있나요 뭐 더 염증을 느낀다거나 아니면 자기도 모르던 애국의 세계를 발견했다거나.

박정근 : 뭐 딱히 바뀐 건 없어요. 조금 더 싫어지긴 하죠. 저 이후에 비슷한 케이스가 몇 개 있었는데 제 대법 판결 이후 다 혐의를 벗긴 했어요. 그런데도 또 잡아가고 있어요. 그런 측면이 신경 쓰이긴 한데 사실 국가보안법 문제 보다는 수형자에 대한 국가의 태도를 보고 싫어진 게 있었죠. 제가 직접 살다 왔잖아요. 직접 보고 오니까 수형자의 처우 문제나 이런 데에 오히려 더 관심이 많이 가더라고요. 한국 감옥 참 안 좋더라고요(웃음).

백스프 : 이게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잖아요. 어떤 사람들은 정근 씨를 싫어하고 정근씨의 농담을 불쾌하게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북한 계정을 리트윗 했다는 자체가 혐오스러울 수도 있고요. 정근씨는 농담이라지만 정근 씨보다 조금 더 위험한 사람들은 체제에 위협을 가할 수도 있고요. 그렇다면 이런 사람들에 대해서는 제재가 필요한 거 아닌가요?

박정근 : 그런데 제 표현을 싫어하시는 분들이 보수적이거나 그런 분들이 아니에요. 통일운동 몇십 년 하신 분들 소위 말하는 NL에서 활동 많이 하신 분들 있잖아요?

백스프 : 아 북한 좋아하시는 분들.

박정근 : 변호사님도 법정에서 그런 말 했어요. “박정근이 북한 좋아한다고 하는데 제가 북한 좋아하는 사람들 재판 많이 하거든요. 그 사람들 정근씨 다 싫어해요.” 진짜 진지하게 이렇게 말했어요. 진짜 이적행위를 할 사람이 저처럼 표현 하겠냐고요. 그 사람들 진짜 무섭게 하려면 국회를 폭파하든지 서버를 공격하든지 이렇게 하시겠죠. 그렇게 구체적인 위험이 있을 때는 당연히 처벌 해야죠. 그런데 그 분들이 ‘나 오늘 국회를 털 거다’ 이렇게 말하겠냐고요.

그런데 구체적 위험 없이 진지하게 북한을 찬양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국가가 찬양고무죄로 집어넣는게 마이너스라고 생각 해요. 이 사람들 처벌받으면 “야! 나 탄압받는다”라며 더 신날 거 아니에요.

백스프 : 그렇죠. 그 사람들은 처벌이 일종의 훈장이 되죠.

박정근 : 저는 항상 그래요. 제가 트위터 하는 건 술 취해서 주정하는 거랑 비슷하거든요.

백스프 : 네 주정 수준이죠.

박정근 : 사람들이 아무리 트위터에 ‘대한민국을 엎어버리자’라고 아무리 외쳐봐야 술주정밖에 안되거든요. 그런데 진짜 구체적인 음모를 꾸미는 사람들은 트위터에 주정하지 않잖아요. 진짜 큰일 해야 하는데 조용히 하겠죠.

백스프 : 정리를 하자면 이런 거죠. ‘방어적 민주주의’라는 말도 있듯이 대한민국 체제를 본질적으로 위협하는 행위는 막아야 하는 게 맞는 거고. 그런 원칙은 우리가 분명히 갖고 있는 게 맞는 건데, 광화문 한복판에서 ‘김정은 만세’라고 외쳐봐야 이 말 한마디 가지고는 체제에 위협이 될 게 하나도 없다는 거잖아요. 만약 이 사람이 폭탄을 하나 들고 ‘김정은 만세’를 외친다면 이건 정말 구체적 위험이 되는 거지만 그저 말 몇 마디 한 걸 가지고 위험하다고 하는 건 굉장히 자의적인 해석이 될 수 있는 거고 억울한 사람이 생기는 거잖아요. 그래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성숙도로는 이 정도는 용인해도 되지 않는가 뭐 그런 의미잖아요.

박정근 : 네 그런 이야기죠.

임영민 : 뭐 검찰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도 않았을까요? 박정근 씨가 그냥 찬양고무를 하면 걸리니까 장난처럼 농담을 하고 리트윗을 하면 사람들이 재밌어서 따라서 리트윗을 하고 이게 고도의 ‘찬양고무’ 전략이다.

백스프 : 아 북한을 약올리는 게 결국에 북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박정근 : 사실 제가 안 잡혀갔다면 이거 (북한 조롱과 리트윗) 하다가 말았을 거예요. 제가 트위터로 북한 이야기만 할건 아니잖아요. 그런데 사실은 검찰의 기소가 이야기를 더 길게 만든 거죠.

백스프 : 이 논리로 치자면 검경이 찬양고무죄로 기소돼야죠.

박정근 : 차라리 친구가 재미없다고 놀렸으면 자존심 상해서 말았겠죠. 그런데 국가기관에서 잡아버리니까 나는 이게 죄가 안 된다고 증명할 수 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리트윗을 더 열심히 했죠. 그래서 괘씸죄에 걸려서 감옥에 다녀 온 거고요. 재판 받고 이제 내가 당사자니까 북한에 대한 이야기를 더 길게 하게 되고. 덕분에 국가보안법에 대해 공부까지 해버렸잖아요. 그러니까 국가보안법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하게 되고. 전 그전에 국가보안법에 대해서 큰 관심 없었어요. 북한에 관심 있었지.

백스프 : 박정근 씨 잡혀가고 친구들이 대한문 앞에 모여서 ‘김정일 만세’를 외쳤잖아요. 그리고 설명했잖아요. ‘이 김정일은 동명이인의 우리나라 기업인 김정일이다’라고. 이렇게 말하면 상황이 우스워지는 거죠. “아니 그 김정일 말고 우리 아버지 친구 김정일 있는데 내가 존경한다.” 라고 말하면 잡아갈 수가 있는가. 바로 여기서부터 ‘김정일 만세’를 외치면 잡아가야 한다는 이야기가 웃겨지는 거죠.

박정근 : 그러면 그들은 ‘아니 그렇게 안 보이는데?’ 라고 우겨요.

임영민 : 하긴 그쪽에서 그렇게 말하면 또 할 말이 없어지네요.

박정근 : 그렇죠. 그쪽은 기소권 있지 수사권 있지. 다 있잖아요. 우기면 소용 없어요.

백스프 : 법의 해석이 아니라 개인의 취향이나 해석으로 범죄를 선별하게 되는 거네요.


(박정근이 구속된 사건은 외신에서도 큰 관심이었다.)

백스프 : 아 그런데 지금 혹시 예비역이신가요?

박정근 : 아녀 전 면제예요.

백스프 : 예비군도 면제에요?

박정근 : 네.

백스프 : 아 그러면 북한군 쳐들어와도 전쟁할 일이 없겠네요.

박정근 : 네 그렇죠.

백스프 : 그럼 전쟁 나면 도망가실 건가요?

박정근 : 뭐 전쟁 기미가 보이면 망명하려고요. 프랑스나 이런 데로. 저 한번 잡혀갔던 사람이잖아요.

백스프 : 아. 건은 되네요. 아 군대 다녀오셨으면 ‘북한이랑 전쟁 나면 총을 들고 조국을 위해 싸울 거냐’ 라고 물어보려고 했는데.

박정근 : 아… 솔직히 싸우긴 해야죠? 그래도 예비군이었으면. 뭐 지금 면제라고 해도 전쟁 나면. 북한... 싫잖아요 사실.

백스프 : 아. 체제를 부수고 싶어하는 그런 과격한 사람은 아니네요? 그냥 흔히 볼 수 있는 어느정도 왼쪽에 있는 정도?

박정근 : 뭐 전쟁이 무서우니까 도망갈 수 있으면 도망가지만, 싸워야 하는 상황이면 내가 살아야 하니까 싸워야죠.


무죄’ 이후

백스프 : 박정근 씨 잡혀갔을 때 사람들이 SNS에서 캠페인 같은 걸 벌였어요. 이를테면 ‘우리 모두 박정근이다’라면서 모두 박정근씨와 같은 사진을 걸고 우리민족끼리 트윗을 리트윗하고. 사실 제가 봤을 때 이건 박정근 씨가 SNS 셀럽이라서 ‘도와주자’라고 했다기보다는 모두다 위협을 느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다음은 내 차례가 될 수 있다’라는 생각이요. 정 근씨 이후에 가만히 음악 하던 뮤지션 안티고고도 잡혀가고 . 정말 어이가 없잖아요. 사실 이런 일연의 흐름 때문에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행동했다고 생각해요. 어쨌든 박정근 씨는 일종의 ‘상징’이잖아요? 국가보안법의 억울한 사례 같은. 박정근 후원회가 이 상징을 이어가고 있는 거고요. 그 상징으로서 국가보안법과 관련한 행동을 계속 하실 생각이 있나요?

박정근 : 저는 일단 이 움직임에 살짝 빠져있어요. 박정근 후원회도 제 이름을 가지고 활동하는 건 맞는데 활동가들이 대부분의 일을 진행하고 있어서. 그런데 제가 이 분야에 영향력이 없지는 않죠. 제가 SNS로 잡혀간 최초 사례잖아요.

백스프 : 독보적이죠. 세계 최초잖아요.

박정근 : 네. 그래서 제가 뭐라도 한마디 하는 게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오히려 제가 ‘국가보안법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지 않나?’ 라는 생각도 들어요. 왜냐면 요 이게 어차피 무죄가 될 게 뻔한 사건이었는데 한바탕 시끌벅적했고 구속까지 됐잖아요. 그러면 이제 사람들이 국가보안법은 ‘얘 까지는 봐줄 수 있다’고 생각할 거 아니에요. 실제로도 봐줬고. 그래서 그 부분이 조금 조심스러운 입장이기는 해요. ‘나 같은 사람도 잡아간 게 국가보안법인데 국가보안법 철폐해야 하지 않냐’라고 말하면 ‘너는 무죄잖아’ 라고 말할 텐데 그러면 제가 ‘저처럼 해도 국가가 잡아가지 않아요’라고 할 것인가. 뭐 그런 고민이 들죠.

백스프 : 무죄가 오히려 아이러니한 상황을 만들었네요.

박정근 : 네.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무죄가 훨씬 좋아요.

백스프 : 그렇죠. 정근 씨가 무슨 예수님도 아니고.

임영민 : 소송 비용은 얼마나 나왔어요?

박정근 : 거의 한 1,500 정도 들었을 거예요.

임영민 : 그거 다 사비로?

박정근 : 뭐 도와주신 분들도 계시고. 일단 공익사건은 변호사 비용이 그렇게 비싸진 않아요.

임영민 : 그러면 해결은 다 되신 거예요?

박정근 : 뭐 해결 다 됐습니다.

임영민 : 결국 대법에서 무죄판결 받았잖아요. 국가배상 신청은 할 계획 없으신가요?

박정근 : 아 그 보상이란 게 살았던 거에 대한 보상이거든요.

임영민 : 살았던 거요?

백스프 : 옥살이요.

박정근 : 네 근데 제가 오래는 안 살았잖아요. 뭐 정신적인 손해배상 그런 것도 할 수는 있는데 엄청 길대요. 그리고 제가 1심에서는 유죄였기 때문에 제가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건다고 해도 승소할 확률이 그렇게 높지는 않대요. 그래서 고려만 하고 있어요.

임영민 : 1심부터 무죄 나와도 오래 걸리나요?

박정근 : 네 엄청 길죠. 미네르바도 엄청 길었잖아요.

임영민 : 사실 국가보안법이 기준이 정말 애매하고. 뭐 음모론일 수도 있겠지만 일단 잡아와서 입만 잘 맞추면 사람 하나 보내는 거 어렵진 않잖아요. 그렇게 해서 무죄판결이 난다고 해도 배상해 줄 수 있는 시스템도 안 되는 거고 문제가 많네요. 거기에다가 트위터라는 SNS에서 발생한 최초의 피해자잖아요.

백스프 : 전세계 최초에요. 리트윗 공안사범.

임영민 : 그러면 요새도 우리민족끼리 계정은 리트윗 계속 하세요?

박정근 : 네 계속해요.

임영민 : 겁나진 않으세요?

박정근 : 어유. 겁은 안나요.

백스프 : 아 저 어제 자료 좀 찾아보다가 봤는데 ‘우리민족끼리’ 남한 버전이 있더라고요. 패러디처럼 무슨 ‘김정은 뒈진 지 몇 일 째’ 이런 식으로.

박정근 : 아아. 알아요. 북한 놀린다고 보수단체에서 만든 계정이요.

임영민 : 같은 맥락이네요.

박정근 : 조금은 달라요. 저는 친북계열인 것처럼 패러디를 한 거고. 거기는 우리민족끼리 계정 자체를 패러디한 거고.

백스프 : 그런데 사실 한 끝 차이잖아요.

박정근 : 말 토씨 하나가 같고 다르고 이 차이인데. 제가 그래서 항상 하는 말이 있어요. 저 일베충이랑 똑같다고. 맨날 김정은 사진 가지고 합성하고 놀고 그랬거든요.

백스프 : 박정근 씨가 그렇게 윤리적인 사람은 아니죠.

박정근 : 네 제가 딱히 그런 사람은 아니죠.

백스프 : 성적 농담도 딱 욕먹기 직전까지만 하시잖아요.

박정근 : “너무 심하지 않냐?” 까지는 안 해요. 뭐 저보다 윗 세대들은 저보고 저속하다고 뭐라고 하기는 해요.

임영민 : 어쨌든 이제는 그렇게 북한계정으로 패러디를 하고 놀아도 잡혀갈 일은 없겠네요.

박정근 : 원래 판례는 있어요. 구체적인 목적이 없으면 찬양고무라고 할 수 없다는 판례가 이미 2010년에 있었거든요. 저도 그걸 기준으로 한 거고. 그런데 제 나이또래에서 이런 방식으로 국가보안법으로 걸린 건 제가 처음이에요. 이제 제 판결로 인해서 제 또래 사람들이 이정도 농담 따먹기를 하는 걸로 잡혀갈 일은 없게 된 정도죠.

임영민 : 실제로 북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박정근 : 불쌍해요. 가난하고. 우리랑 생긴 것도 비슷한데.

임영민 : 김정은은요?

박정근 : 불쌍하죠. 살도 찌고. 게임도 하고싶을텐데 못하고.

백스프 : 김정은 맥북 가지고 다니던데요.

박정근 : 아이맥이에요.


(아이맥을 사용해 업무를 보고 있는 김정은)


임영민 : 돈 많나봐요.

박정근 : 많죠. 여기저기 돈 뜯어서 돈도 많고 좋긴 하겠는데. 근데 북한이잖아요. 남한에서 그랬으면 부러워 할텐데.

백스프 : 몰래 트위터 하는 거 아닐까요?

박정근 : 그럴 수도 있어요. 학교도 외국에서 다녔고.

백스프 : 맨날 욕 처먹고 조리돌림 당하고.

임영민 : 학교 다닐 때 거의 왕따였다고 하더라고요.

박정근 : 북한에서도 왕따잖아요. 그래서 좀 불쌍해요. 왕도 불쌍하고 사람들도 불쌍하고. 기껏 키워놨더니 고모부나 죽이고.

임영민 : 특별히 북한에 대한 정치적인 입장이 있거나 한 건 아니네요?

박정근 : 아녀 저 북한에 대해 정치적인 입장 있어요. 당적도 있고

백스프 : 원래 사회당이었어요. 북한 싫어하는 빨갱이 정당이요.

박정근 : 이념적으로도 주체사상이나 선군 정치라는 사상이 제 취향에 맞지도 않고.

임영민 : 트위터에서 욕 안 먹나요? 뭐 빨갱이라던가.

박정근 : 예전에 많이 먹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없어요. 지금은 오히려 가끔 일베 애들이 성지순례 와요. “형 저 일베 하는데요. 형 종북 아닌 거 같고 저랑 비슷한 거 같아요. 형 저도 북한 싫어하고요. 형 되게 억울하고 불쌍한 사람 같아요.” 뭐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임영민 : 예전(한참 북한을 조롱할 때)에는 빨갱이라고 욕 엄청 먹었겠네요?

박정근 : 예전엔 엄청났어요. 일베 전에 정사갤이라고 있었는데 여기서 죄다 몰려오는 거죠. 광주는 폭동이다 정근아. ‘김정은 만세' 해봐라. 뭐 이렇게 계속 오면 저도 짜증나죠. 그래서 그냥 옜다 만세 해주면 저 새끼 답이 없다고 하고 하죠. 그런데 그런 제가 막상 구속까지 되고 이야기가 진지하게 흘러가니까 얘들도 궁금해서 찾아보는 거죠. 일베 애들 워낙 찾아보는 거 좋아하니까. 그리고 보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거죠. 게다가 얘들이 말하는 방식이랑 제가 말하는 방식이랑 사실 따지고 보면 비슷한 거예요. 뭐 제가 홍어홍어 거리지만 않는 거지 사실 제가 말하는 방식이 일베랑 차이가 없거든요.

백스프 : 인터뷰 기사 나오면 일베에도 올려 볼게요. 반응 좀 보게.

박정근 씨는 아무것도 위협하지 않았다. 대신 누군가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을 수는 있겠다. 하지만 그게 ‘범죄’가 되지는 않는다. 박정근 씨는 그걸 증명하는 데 4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 동안 박정근 씨는 구속기소 돼 옥살이를 했고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한동안 사진 찍는 일을 하지 못했다.

박정근 씨의 농담이, 직썰의 농담이, 그리고 당신의 농담이 농담으로 남아있을 수 있길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가 지닌 보안법의 칼끝은 온전히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주적’에게만 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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