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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콴유의 성공이 권위주의에 대한 변명이 될 수는 없습니다

  • 입력 2015.03.26 14:56
  • 기자명 뉴스페퍼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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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권위주의자' 리콴유 前싱가포르 총리


지난 23일 타계한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의 유산은 싱가포르 그 자체입니다. 그는 부유하고, 깨끗하며, 질서가 잡혀있고, 효율적으로 돌아가는 도시 국가를 남겼습니다. 리콴유를 비난하는 사람들도 부정할 수 없는 성과죠. 그는 1959년 싱가포르가 영국의 지배를 벗어나 자치 정부를 꾸리기 전부터 싱가포르의 지도자였고, 1990년까지 총리를 지냈으며, 단계적으로 권력을 내려놓으며 2011년까지 내각에 머물렀고, 죽는 순간까지 의회의 일원이었습니다.

리콴유는 국제 정치에 대한 탁월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특유의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중국이 부상하고 미국이 이에 대응하는 시대에, 둘 사이에서 미국의 아시아에 대한 지속적인 관여와 이에 대한 중국의 수용을 이끌어내면서, 고유한 역할을 해냈습니다. 반대로 국내에서 거둔 성공도 국제적인 지위 유지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는 경제 관료를 제대로 기용하고 작은 정부, 규제 완화, 개방화를 추구하여, 원래부터 천혜의 항구를 갖고 있던 싱가포르를 세계에서 기업하기 가장 좋은 곳으로 만들었고 엄청난 외국인 투자를 이끌어냈습니다.

싱가포르를 매력적인 투자지로 만든 요소 가운데는 정치적 안정과 사회 질서가 있었습니다. 다수의 화교와 소수 말레이 및 인도계 주민으로 이루어진 싱가포르는 60년대만 해도 인종 갈등의 온상이었습니다. 그러나 리콴유는 통합을 목표로 한 주거 지역 계획, 선동적 발언에 대한 엄격한 제한, 태형과 사형 등 가혹한 처벌 등을 통해 사회 갈등을 철저하게 관리했습니다. 파업을 비롯한 저항 행위는 있을 수 없었고, 동성애가 여전히 불법일만큼 보수적인 사회 정책이 그대로 유지되었습니다. 싱가포르의 정치 제도는 웨스트민스터 모델에 기반하고 있지만, 변변한 야당이 뿌리내리지 못하도록 교묘하게 변형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2011년 총선에서 리콴유가 이끄는 여당은 60%만을 득표하고도 의석의 90% 이상을 차지했죠. 주류 언론은 잘 길들여져 있고, 여당 지도자들은 명예훼손죄를 활용해 명성을 지켜낼 수 있습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리?


어떤 이들은 싱가포르를 북한과 비교하거나 “사형 제도가 있는 디즈니랜드”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반면, 싱가포르의 정치, 사회적 문제를 번영과 안정을 위해 지불해야 할 조그만 대가로 보는 사람들도 있죠. 분명한 것은 싱가포르가 “성장, 번영과 자유는 함께 가야 한다”는 자유주의적 신념에 실질적인 반문을 제기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싱가포르식의 일당지배에 매혹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중국의 지도자들이죠. 이들은 싱가포르와 리콴유를 추켜세우며 “서구식 민주주의”의 결함을 지적합니다. 너무나 단기적이고, 어린이와 외국인 같은 비유권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며,제대로 된 리더를 길러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싱가포르는 아주 작은 도시 국가이고, 탄생 배경에서 비롯된 응집력을 갖고 있는데다, 동남아시아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면서도 지역과 거리를 두었기 때문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다른 여러 나라와 나란히 놓고 비교하기는 어려운 구석이 많습니다.

중국의 지도자들은 리콴유를 추켜세우며 “서구식 민주주의”의 결함을 지적한다.
사진: 시진핑 중국 주석


중국 정부가 스스로의 권위주의를 옹호하기 위해 리콴유를 끌어들일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리콴유가 아주 특이한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스스로도 돈에 매수당하지 않는 인물이었고, 정부 관료들에게 큰 월급을 주어 부정부패를 막았습니다. 싱가포르 정부는 스스로 선거라는 시험대를 여러 번 통과했다고 주장하지만, 선거제도 자체가 정권 교체를 허용하지 았았습니다. 그런 토양 위에서 리콴유는 포퓰리즘에 영향받지 않고 장기적인 국익을 염두에 둔 의사 결정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나라에서 견제와 균형, 때로는 애국적이지 않은 존재로 보이는 야당의 존재 없이 정부의 정직성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당장 시진핑 주석이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한지 2년이 지난 지금에도, 중국의 부정부패 문제는 해결 될 기미가 없죠. 싱가포르에서조차 현재와 같은 체제가 오래 지속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출산율은 낮아지고 인구 고령화는 진행되는 가운데, 복지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으며 이민에 기대지 않고는 고성장을 유지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이민자들이 유입되면서, 오르지 않는 임금과 붐비는 지하철에 분노하는 원주민들과의 갈등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실질적인 경쟁이 이루어지지 않는 선거제도에 대한 문제도 서서히 제기되고 있죠. 싱가포르 모델이 싱가포르에서조차 지속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는 이유입니다.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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