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섹스는 되고 키스는 안 돼? 방심위의 이상한 잣대

  • 입력 2015.03.26 10:17
  • 수정 2015.09.09 11:06
  • 기자명 백스프_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고생이 키스를 했다"

만약 당신이라면 저 문장에서 어떤 불편함을 느낄 수 있는가? 당신이 조금 고루하다면 ‘여고생’이 키스를 하기에는 조금 어리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혹은 ‘키스’가 조금 과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당신의 개인적인 취향을 제하고 물어보자. ‘여고생이 키스를 했다’면 이 장면은 방송되기에 부적절한가?



선례가 하나 있다. 바로 영화 ‘은교’다. 이 영화에서는 여고생이 ‘섹스’를 했다. 영화 내내 노인과 여고생 사이에 섹슈얼한 긴장이 흐른다. 이 영화는 케이블에 방영됐다. 그리고 큰 문제가 없었다. 그렇다면 아마도 우리에게 “여고생이 섹스를 했다”는 사실은 허용되는 범위 내 일 것이다.

조금 바꿔보자.

“여고생이 (여자와) 키스를 했다.”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다. 그저 여고생이 키스한 대상이 여자였을 뿐이다. 행위의 주체, 수위, 모두다 동일하다. 바뀐 것은 그저 행위의 객체다. 섹스를 해도 괜찮았던 여고생은 단지 여자와 키스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중징계를 받는다.
바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이야기다.



심의에서 쏟아진 각종 혐오발언

방심위는 JTBC에서 방영한 드라마 ‘선암여고 탐정단’에서 연인관계였던 두 여고생이 ‘키스’를 하고 ‘포옹’을 했다는 이유를 문제 삼아 이 드라마를 심의에 올렸다. 공개심의자리에서 심의의원 5명 중 4명이 법정제재 의견을, 나머지 한 명이 권고 의견을 내 현재 중징계가 유력한 상황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히 ‘이상한’ 그림이다. 그런데 그들이 이 방송이 왜 유해한가를 말하는 부분은 더욱더 납득이 가지 않는다.

장낙인 위원 - 계속 논란이 되고 있는 동성애 문제를 다뤘다는 건 드라마 소재가 제한을 둬선 안 되다는 이유로 문제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15세 청소년 시청이 가능한 시간대에 여고생의 성적 표현이 장시간 노출됐다는 점에서는 문제가 상당히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함귀용 위원 - 성 소수자의 인권을 침해할 생각은 없다. (이들은) 다수와는 다르게 정신적 장애를 앓고 있지만, 대한민국 국민의 권리는 보장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제는 방송이 어느 정도 수용할 수 있느냐이고, 이성 간의 사랑도 표현 수위가 지나치면 제재할 수 있는데 동성 여고생의 키스 장면을 줌인해 가면서 1분 넘게 방송한 것은 도저히 심의 기준에 저촉 안 된다고 볼 수 없다. 대다수 국민이 혐오감을 느낄 수 있다고 본다. 나도 대다수 국민과 마찬가지로 굉장한 혐오감을 느꼈다.

고대석 위원 - 표현의 자유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청소년 대상 드라마에 안 그래도 논란이 되고 있는 동성애를 굳이 소재로 써서 했어야 됐느냐는 것도 문제고, 표현도 심하다. 잘못하다가는 청소년들에게 (동성애를) 권장할 수도 있고 조장할 수도 있다고 본다. 당연히 법정제재 해야 한다고 보고, 정도도 심하다고 판단해서 경고 의견 내겠다.

김성묵 위원장 - 미성년자 동성애 키스신을 넣은 건 본인들(제작진)이다. 그런데 (여기 나와서) 이야기를 번복한 것이다. 다분히 제재수위를 낮추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고 본다. 처음부터 (동성애를 옹호하려는) 의도성이 있었다, 드라마에. 성에 대한 선정적 묘사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조항에 위반되기 때문에 저는 경고다.


각 의견의 핵심을 뽑자면 다음과 같다.

1. 여고생의 성적표현이 문제다.
2. 동성 간의 애정표현은 일반 대중이 혐오감을 느낄 수 있다.
3. 동성애는 부도덕하다.
4. 동성애를 청소년에게 조장할 수 있다.


일단 여고생의 성적표현을 문제시하려면 앞서 언급했던 영화 ‘은교’는 더 큰 징계를 받아야 한다. 섹스보다 키스가 더 ‘유해’하다는 것은 납득이 안된다. 사실 핑계일 뿐 저 이야기는 ‘동성 간의 성적표현’에 대해 문제 삼은 거나 다를 바 없다.



그렇다면 결국 남는 것은 ‘동성 간의 성적표현’이 부도덕하고 일반 대중에게 ‘혐오감’을 줄 수 있는가? ‘동성애를 조장하는 것’이 가능한가 여부다. 그리고 이 문제의 가장 큰 핵심은 ‘정부조직’에서 행한 ‘제한’이라는 것이다.



'방심위'는 정부기관이다

우리 헌법에서 보장하는 자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다. 소극적 자유는 자신의 행위를 침해받지 않을 자유고 적극적 자유는 자신의 특정 행위가 적극적으로 보장될 자유다. 소극적 자유를 침해하기 위해서는 과잉금지의 원칙 같은 헌법의 강력한 규칙을 따라야 한다.

동성애를 할 자유는 소극적 자유다. 아니 사실 이건 법 영역에서 논의되기도 우습다. 누가 누굴 사랑하는데 어떠한 제한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동성애 장면을 내보내는 것’은 적극적 자유의 영역일까? 이것도 소극적 자유다. ‘동성애 장면’이 포함됐다는 이유만으로 방송에서 징계를 받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이 방송을 제재하기 위해서는 앞서의 원칙을 준수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요즘의 방송은 ‘살인, 강간, 폭력’ 등을 손쉽게 다룬다. 이런 행위는 우리가 ‘부도덕’을 문제 삼을 필요도 없는 범죄다. 방심위가 ‘부도덕’을 이유로 동성애 방송을 금지하려면 ‘범죄 장면’도 금지해야 한다. 그런데 ‘부도덕’한지의 여부조차 논란인 동성애를 금지한다는 것은 균형이 맞지 않는다.



혐오감을 주는 방송을 걸러내는 것도 물론 방심위가 할 일은 맞다. 하지만 혐오감은 사람의 내밀 영역으로 측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자신의 판단이 개인의 내밀한 감성에 경도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잘 유의해야 한다.

예를 들자면 내 친구는 ‘환 공포증’이라며 원이 많이 모여있는 것을 혐오한다. 나는 뱀을 혐오하기 때문에 동물의 왕국을 잘 볼 수 없다. 그러나 나는 방송에 뱀이 나오지 않길 바라지 않는다. 그것은 내 개인의 선호에 가깝기 때문이다. 반면 나는 공중방송에 ‘잔인한 살인 장면’이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누군가가 처참히 살해되는 장면을 보기 싫은 것은 보편적인 감성에 가까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동성애는 어떨까? 아직 동성애에 대한 인식이 보편적으로 부정적이기 때문에 혐오해도 되는 것일까?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바로 혐오의 객체 문제다.



당신들은 혐오를 멈출 '의무'가 있다

가령 과거 미국에서 ‘흑인’에 대한 혐오가 보편적이었다고 해서 당시에 ‘흑인에 대한 혐오행위’를 긍정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 이유는 하나다. 흑인은 ‘군집한 원’과도 다르고 ‘뱀’과도 다르며 ‘잔인한 살인행위’와도 명백히 다른 객체다. 바로 사람이다. 그의 피부가 검고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그 존재 자체를 혐오할 수 없다. 혹자는 그럴 수 있다고 쳐도 공공의 영역에서는 금지되어야 한다.

동성애도 같은 맥락이다. 그가 단순히 ‘동성애자’ 라고 해서 방송에서 정당하게 혐오할 수는 없다. 왜냐면 그는 인권을 가진 보통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앞의 질문은 모두 고쳐야 한다.

1. 사람의 성적표현이 문제다.
2. 사람의 애정표현은 일반 대중이 혐오감을 느낄 수 있다.
3. 사람이 사랑하는 것은 부도덕하다.
4. 사람이 사랑하는 것을 청소년에게 조장할 수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정부기관이다. 개인의 혐오감으로 누군가의 인권을 침해할 수 없음이 명백한 기관이다. 그걸 부정할 수 없다면 앞서의 질문으로 방송을 다시 심의하길 바란다. 그리고 동성애에 대한 혐오는 집에서 혼자 몰래 조용히 하길 바란다. 누군가를 혐오할 자유는 적절하게 보장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가 아니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