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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13. 석사 수료, 그리고 대학원생의 몸

  • 입력 2015.03.24 17:07
  • 기자명 309동12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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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봄, 나는 석사 학위 논문을 인준 받고, 박사 과정에 진입했다. 4학기, 총 2년간의 분투였다. 내 모습은 대학원에 발을 디뎠던 2008년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거울을 보면 그간 무슨 일이 있었지 싶을 만큼 낯선 인간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앳된 외모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책갈피를 대신한 내 머리카락들

우선 탈모. 학위 논문을 쓰며 머리를 쥐어뜯었더니 눈에 띄게 머리숱이 줄어들었다.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으면 머리카락을 움켜 뜯는 오랜 버릇이 있었는데, 밤새 논문을 쓰고 일어나면 책상 여기저기에 머리카락이 수북했다. 지금도 내가 많이 참조한 논문이나 책들의 여러 페이지에서 내 머리카락이 책갈피를 대신하고 있다. 머리숱이 많은 편이어서 아직 그닥 티가 나지는 않지만 박사 학위 논문을 쓸 때쯤엔 어떤 모습이 될지, 두렵다.




연구실을 청소하다 보면 논문을 쓰는 사람들의 자리에서는 예외 없이 쓰레받기를 가득 채울 만큼의 머리카락이 나온다. 학회에 가보면 삼십대 젊은 연구자들 중 대머리인 사람들이 더러 있는데, 처음에 나는 그들을 안쓰럽게 바라보았으나 이제는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기에 저렇게 머리가 다 빠졌지, 하고 존경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비만. 라면이나 샌드위치 같은 것을 먹고 정신없이 쓰러져 자고 일어나는 일상이 반복되니 점점 살이 붙었다. 간짬뽕 두 개를 끓여 계란과 참치를 풀고 찬밥을 한 공기 양껏 덜어 쓱쓱 비벼 먹는 것이 내가 가장 좋아한 야식이었다. 자주 밤을 새니 얼굴은 핼쑥해져 가고 배가 나왔다. 나중에는 맞는 바지가 없어서 아예 추리닝을 입고 다녔다. 지금은 만성이 된 과민성대장염이 이때 시작됐고 역류성식도염이 심해졌다. 심할 때는 하루에 10번 이상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연구소에서 밤을 새다 보면 화장실에 가는 일이 가장 신경 쓰였다. 새벽 4시에 불꺼진 복도를 더듬어 지나며 홀로 화장실에 가는 길은 매일이 여고괴담이었다. 생리 현상을 해가 뜰 때까지 꾹 참았더니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부끄러운 증상이 나타났다. 검색해 보니 중년 남성들에게 나타나는 어떤 기능 감퇴라고 했다. 화장실 딸린 연구실을 갖는 것이 소원이라고 노트 한 귀퉁이에 적기도 했는데, 그때는 정말이지 진지했다.



이 정도면 군대도 보충역 4급으로 빠지겠다

어느 날은 허리가 너무 아팠다. 허벅지부터 발끝까지가 심하게 저려 왔다. 정형외과에 갔더니 추간판이 두 개쯤 죽었다고 했다. 엑스레이 사진을 보니 정말 디스크 두 부분이 까맣게 변색되어 있었다. 의자에 너무 오래 앉아 있어 걸린 허리디스크라고 했다. 의사가 혼잣말로 이 정도면 군대 4급으로 빠질 텐데, 해서 몹시 얄미웠다. 불과 몇 년 전에 현역 1급으로 군대에 다녀온 몸이 대학원 4학기만에 보충역 4급으로 바뀌었다. 내가 운동선수도 아니고 공부하며 이렇게 몸이 망가질 수도 있을 줄, 상상하지 못했다.




석사 과정생 때는 밤을 새는 일이 그다지 어렵지 않았는데, 박사 과정생 때는 그것이 조금 어려워졌다. 그리고 지금은 웬만해서는 밤 새는 일을 만들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만큼 체력이 떨어진 것이다. 몸이 망가진 만큼 좋은 성과를 많이 내었는가 생각해 보면, 내 몸에게 그저 미안하다.

학위논문을 인준 받을 때쯤, 많은 대학원생들이 망가진 자신의 몸을 돌아보기 시작한다. 등산이나 헬스를 시작하기도 하고, 드물게는 유도나 권투 같은 것을 배우기도 한다. 처음에는 모두 즐겁게 시작하지만, 반 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대개 그만둔다. 그것을 온전히 즐길만한 금전적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건강을 위한 취미조차 즐기지 못하는 많은 연구자들, 힘내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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