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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기한이 지난 마취제. 아이는 깨어나지 못했다

  • 입력 2015.03.24 12:31
  • 수정 2015.03.24 13:56
  • 기자명 누블롱 라베리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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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5월 충청 천안에 위치한 ㅂ정형외과. 의료진이 수술실로 우르르 몰려갔다. 의료진이라고 해봤자 정형외과 전문의와 마취의사가 전부다. 나머지는 간호조무사와 응급구조사. 심정지 상태의 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이 실시됐다 수술을 받은 환자는 전신마취를 한 터였다. 수술 후 약 9시간 후 환자는 사망했다.

사망 원인을 밝히는 과정에서 간호조무사가 마취주사를 놓았고, 유통기한이 지난 마취제가 사용됐음이 드러났다. 첫 번째 경찰 조사를 앞두고 마취과 의사는 해당 병원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망자는 모두 본인 잘못이라는 유서를 남겼다. 직접적인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박탈당한 환자의 권리

작년 5월 19일 순천향대학교천안병원 응급실에 곡소리가 났다.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던 의사가 사망선고를 내리자 곡소리는 더 커졌다. 당시 환자의 나이는 9세. 충남 천안 와촌초등학교 2학년 고 서지유양은 이 불행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새 학기가 시작된 지 불과 석 달이 채 안돼서 일어난 비극이었다. 아이는 왜 불의의 객이 된 것일까? 사망 3일전인 5월 16일 당시로 돌아가 보자.

5월 16일 오전. 2교시 중간 놀이 시간에 지유는 당시 운동장에 있던(현재는 폐기됨) 구름사다리에서 낙상했다. 당시 아이는 '척골 근위부 골절 및 탈구', 즉 왼쪽 팔꿈치뼈 일부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다. 담임교사는 아이를 데리고 승용차로 10분 거리의 ㅂ정형외과의원를 방문했다. 인근에서 유일하게 마취의가 있다고 알려진 ‘병원’이었다. ㅂ정형외과의원은 6층 건물 두 개가 붙어있고, 건물외부와 내부에는 ‘소아정형외과’라고 적혀있다.

지유의 아버지 서동균(37)씨는 수술 동의를 받는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말한다. 특히 지유양을 사망에 이르게 한 전신마취와 관련해, 대체할 수 있는 국소마취 등의 설명이 없었음을 지적한다.


“반드시 전신마취를 해야 하냐는 물음에 ‘(하지 않으면) 아이가 아파서 죽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병원 측은 설명이 충분히 이루어졌다는 입장이다. 총 3회에 걸쳐 담임교사와 보호자에게 환자의 상태와 수술일정 및 방법, 마취에 대해 알렸다고 한다. 서 씨는 의학적 지식이 전무한 보호자에게 선택권 없이 일방적인 통보를 한 주치의 김아무개 씨의 태도에 문제를 제기했다. 김 씨는 해당 병원장이자 지유의 수술 집도의이기도 하다.

관련 판례를 보면, 의사는 ‘환자의 선택권’을 존중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의사는 당시의 의료수준에 비추어 상당하다고 생각되는 사항을 설명하여 당해 환자가 그 필요성이나 위험성을 충분히 비교해 보고 그 의료행위를 받을 것인가의 여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할 의무가 있다.’ (대법원 1995. 1. 20. 선고 94다3421 판결, 대법원 1997. 7. 22. 선고 95다49608 판결)




묵인된 간호조무사의 진료행위

지유는 5월 16일 입원했다. 그 날은 금요일이었다. 주말인 17일과 18일 병동에 의사는 없었다. 당시 상주한 의료진은 간호조무사가 전부. 지유의 어머니는 아이가 입원 당시 부상 부위의 통증을 호소하고 미열과 함께 2~3차례 코피를 흘렸다고 진술했다. 이에 대한 병원 측의 처치를 살펴보자.

‘코피를 흘린 것은 실내가 건조한 탓. 가습기를 작동시키면 된다.’, ‘골절되면 열이 난다.’ 등은 의사가 아닌 간호조무사의 말이다. 지유의 증상이 수술에 문제가 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주치의의 답변은 없었다. 모든 처치는 간호조무사 선에서 정리됐다. 간호조무사의 조치가 사실상 진료행위에 가깝다는 것은 아래 증언에서 더욱 극명히 드러난다.


“아이가 아파해서 소아용 진통제를 요구했지만 갖고 있지 않다고 했습니다. ‘집에서 아이가 먹는 진통제가 따로 있느냐’고 되묻기에 해열진통제밖에 없다고 하자, ‘괜찮다. 가져다 먹여라’라고 대답했습니다.”


의료법 제27조 제1항에 따르면 의료인이 아니면 누구든지 의료행위를 할 수 없고 의료인도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 의료법 제2조 제1항은 의료인을 의사, 치과의사,한의사, 간호사, 조산사만으로 규정하고 있다.




평소 지유가 가장 좋아했다는 옷. 서동균씨가 지유의 옷을 만지고 있다.



결국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한 지유

다음은 수술 당일을 시간대별로 정리한 것이다. 이는 마취기록지와 당시 병원 CCTV, 경찰조사 결과와 지유 부모의 진술을 바탕으로 했다.




서동균 : “우리 애기가 왜 안 깨어나냐?”

마취의 김씨 : “애라서 좀 오래 걸리는 것 같다.”

서동균 : “애가 깨어나지 않으면 지금이라도 빨리 대학병원에 가야 되는 것 아니냐.”

마취의 : “아이의 의식이 점점 돌아오고 있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이은경(지유의 모친) : “애 얼굴 좀 보여 달라. 애가 의식이 있는 거냐.”

마취의 : “의식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 아이들 수술을 많이 해봤는데 이렇게 안 깨어나는 경우가 처음이라 협진병원에 자문을 구하고 있다.”

서동균 : “지금 어떤 상황인지 파악하고 있느냐, 속 시원히 얘기를 해 달라.”

주치의 : “마취의사와 수시로 얘기하고 있다. 지금은 늦게 깰 뿐이지 혈압 같은 것은 정상이다.”

서동균 : “너무 늦게 깨면 후유증이나 이런 것이 있는 것은 아니냐.”

주치의 : “천천히 깨고 있는 것 같다.”




늦게 깨는 것뿐이고 환자의 혈압은 정상이라는 주치의의 설명은 사실과 달랐다. 마취기록지에는 환자의 상태가 ‘정상’으로 기재되어 있었지만, 경찰은 15시 40분에 이미 심폐소생술이 실시됐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16시 50분에 주치의와의 면담이 한차례 더 이뤄졌다.

서동균씨의 증언이다.

“(주치의는 제게) 혈압과 맥박을 계속 마취과 선생과 통신하고 있는데 문제가 없으니 1시간 정도 더 기다리자고 했습니다. 그래도 차도가 없으면 어떡할 것이냐고 묻자, 대학병원에 가서 뇌파 검사 등을 실시하자고 했습니다.”


부작용 등 잘못될 가능성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는 주치의의 호언장담은, 그러나 30분 만에 뒤집어졌다. 당일 진료기록은 16시 이후의 마취기록이 없었고 아이가 후송되기까지의 기록은 사건 후에야 제출된다. 이는 16시 이후 응급 상황이 지속됐고, 마취기록을 작성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을 방증한다.

서 씨의 증언이다.

“17시 30분에 의료진이 갑자기 수술실 안으로 몰려 들어갔고, 간호사들이 수액 및 무언가를 수술실 안으로 가져다 주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의 혈압은 정상이 아니었고, 인공호흡기를 통해 겨우 호흡을 하고 있었습니다.”

심정지가 발생한 지유의 심폐소생술은 마취의사가 전담하고 있었다. 심정지가 반복되자 전기 충격기가 동원됐다. 그제서야 서 씨의 요구로 지유는 순천향천안병원으로 이송됐다. 이송 이후, 2시간여의 심폐소생술이 이어졌다. 20시 48분 지유의 사망선고가 내려졌다.

(c)서동균



마취제, 간호조무사, 그리고 마취의의 자살

마취제를 주입한 수술실장 조아무개 씨는 간호조무사로 밝혀졌다. '간호조무사 및 의료유사업자에 관한 규칙' 제2조 제1항을 보면 간호조무사에게 간호 보조 및 진료 보조 업무를 허용하고 있다. ‘진료 보조 업무’는 간호사의 고유한 업무다.

다시 말하면 간호보조사 역시 간호사의 업무를 할 수 있다는 얘기다. 보건복지부의 유권해석 역시 간호조무사가 근육주사와 정맥주사를 놓거나 수술준비 등의 의사 진료를 보조할 수 있도록 했다. 물론 조건이 붙는다. 의사의 지시·감독 하에서만 이 같은 진료 보조 업무가 가능하다.

과거 간호조무사가 마취제를 주사하면서 주사약이 누출되어 근육괴사가 발생한 사건의 경우, 법원은 간호조무사에게 정맥주사를 놓게 하는 것 자체는 위법행위가 아니라고 판결했다. 다만, 법원은 누출 시 조직괴사를 일으키는 위험한 주사약의 경우 의사가 직접 주사를 하거나 간호사나 간호조무사에게 시킬 경우에는 구체적으로 지시, 감독을 했어야 했음을 지적했다. 지유의 경우는 어땠을까? 당시 상황을 목격한 서지유양의 모친은 의사의 입회나, 지시, 감독 등은 전무했다고 증언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결과 고 서지유양에게서 저산소성 뇌손상이 관찰됐다. 국과수는 ▲마취과정의 문제 ▲자발호흡이 회복되지 않는 상태 지속 등이 저산소성 뇌손상을 유발시켰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기관삽관에 쓰인 내경 4.0mm의 기관튜브는 9세 아동의 경우 내경이 5.5~6.0mm여야 한다. 내경이 좁은 기관튜브는 기도 저항을 증가시킨다. 이는 환기부전을 발생시킬 수 있다. 환기부전은 자발호흡 회복에 방해로 작용될 수 있다.

당시 사용된 마취제 역시 유효기간이 3개월 지난 것이었다. 병원 측은 과의 인터뷰를 통해 같은 마취제를 사용한 타 환자들에게는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지유 뿐만 아니라, 다른 환자들에게도 유효기간이 지난 마취제를 사용했다고 스스로 시인한 셈이다.

보호자와 병원 간에 법적 공방이 시작됐다. 서동균씨는 자신의 딸이 왜 죽어야 했는지 알고 싶다고 했다. 마취의사 김씨는 병원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유서로 보이는 A4 두 장 분량의 글도 함께 발견됐다. 컴퓨터로 작성된 글은 마취과정에서 일어난 일은 마취의사의 전적인 책임이며, 속죄를 위해 자살을 선택한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아이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은 결국 법원에서 가려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마취의사 김씨의 유서 중 일부. 김씨는 모든 잘못이 자신에게 있으며 병원에 '관대한 처분'을 부탁한다는 내용의 글을 남겼다.



그날 수술실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던걸까. 핵심 증인이 책임을 떠안고 사라진 상태에서 병원측은 어떤 책임을 물게 될까? 이 모든 의문을 지닌 병원은 침묵으로 일관한다. 병원은 현재도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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