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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품평회인가? ‘언프리티 랩스타’의 이유 있는 찜찜함

  • 입력 2015.03.20 17:36
  • 수정 2015.03.20 17:45
  • 기자명 미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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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래퍼들은 아티스트인가? 래퍼 지망생인가?

여성 래퍼들의 서바이벌인 엠넷의 [언프리티 랩스타]가 본격적으로 찜찜하게 느껴진 것은 3회의 첫 경연 무대부터였다. 첫 팀의 무대에 대해 사회자인 래퍼 산이는 참가자들의 의욕 없음을 강하게 질타한다. 반면 두 번째 팀이 각자의 이상형을 말하며 무대 밑으로 내려와 남성 평가단을 일으켜 세우고 함께 춤추자, 산이는 “이런 것을 원했다”고 말한다. 물론 충분히 정당화될 수도 있는 발언이다. 첫 팀에게 주어진 통칭 ‘발라드 랩’으로 그들이 뭘 어떻게 하길 원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무대는 썰렁했고 그에 대한 지적도 가능하다. 그러나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언프리티 랩스타]가 이 여성 래퍼들을 무엇으로 규정하고 있는지 하는 것이다.



이 방송에서 참가자들은 아티스트인가, 지망생들인가? 방송이 이들을 소개하는 모습은 마치 독립된 아티스트들 같다. 검증된 실력자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프로듀서들이 콜라보의 상대로서 얼굴을 마주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이들의 실력을 논하는 사람들은 이 부분이 언짢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방송의 흥행을 위한 스탠스라고 한다면 이해해볼 수 있다. 그야, 누군지도 모를 아마추어들이라면 그 첨예한 디스전마저도 아무 재미가 없었을 테니 말이다.



래퍼와 프로듀서, 그 명확한 위계질서

하지만 정작 출연진과 제작진은 이들을 지망생 정도로 취급하는 것만 같다. 래퍼들에게는 MC 메타나 D.O. 같은 ‘존경하는 선배들’ 앞에서 자신을 증명할 것이 요구된다. 그야 서바이벌 경쟁이니 그럴 만도 하다. 이미 [쇼 미 더 머니]도 같은 이름들 앞에 지망생부터 실력파까지 한데 모아놓은 적이 있다. 여기까지는 이 방송의 특성에서 비롯된 구도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사회자인 산이는 이들을 명백히 ‘동생들’로 취급한다. 그가 상대의 경력과 무관하게 “오빠가”라고 말하며 시시때때로 래퍼로서의 기본적 자질을 훈계할 때, 그 관계를 아티스트 대 아티스트, 혹은 콜라보 관계로 볼 사람은 얼마 없을 것이다.

한편 졸리브이가 타이미에게 “나보다 잘났으면 나왔어야지 as a producer”라고 비아냥을 할 때, 이 방송 속에서 래퍼와 프로듀서 사이에 존재하는 위계가 드러난다. 프로듀서는 래퍼와는 별개의 직능이 아닌, 래퍼에게 위에서 지시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리고 강남, 임슬옹 등 콜라보 아티스트들과 사회자가 프로듀서들과 함께 참가자들을 평가할 때, 이들은 프로듀서와 같은 지위에 올라간다. 공교롭게도 이들은 모두 남성이고, 나머지에 해당하는 참가자들은 모두 여성이다. 앞에서 묘사한 장면이 ‘남자들의 여자 품평회’처럼 보였다면 이런 구도와 무관하지 않다. 화면 속에서는 분명 위계가 느껴지는데 그것의 정체가 불분명해지면서 성별에 의한 위계처럼 보이는 것이다.



자극적인 편집으로 만든 ‘지저분한 캣파이트’

물론 [언프리티 랩스타]는 여성 래퍼 컴피티션이고, 한국 힙합계에 두드러지는 여성 프로듀서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기획에는 리스크가 있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건이다. 이 방송은 여성 래퍼 서바이벌이란 기본 설정이 갖는 리스크를 해결하려 섬세하게 애썼다고 보기 어렵다. 얼마든지 피해갈 방법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참가자 모두를 철저히 아마추어 취급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제는 식상해진 “경력 따위 내려놓으라” 같은 말을 해가면서 말이다. 최연소 참가자인 육지담이 이 방송에서 가장 생생한 인물 중 하나인 것은 성격과 행동거지 덕분이기도 하겠으나, 그가 경력 없는 미성년자기 때문이기도 하다. 화면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그를 어린애 취급하는데, 사실 이 방송이 래퍼들 전체를 다루는 방식도 그러하기에 위화감을 만들지는 않는다. 그런 명쾌함이 그의 존재를 방송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도록 하고, 그의 자기증명과 성장을 모두 부각시킨다.

혹은 모두를 아티스트 취급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실력이나 네임밸류가 부족할 순 있어도 각자 자아와 선택권을 가진 사람들로 말이다. 이를테면 버벌진트의 두 곡을 놓고 원하는 곡을 선택하도록 한 대목이 그럴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선택은 치졸할 정도로 반복하며 긴장을 주는 편집으로 오히려 흥미를 떨어뜨린 채 지나간다. 그리고 이후 참가자들에게 주어진 선택은 대인관계의 층위에만 존재한다. 팀원으로 누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삐치는 일만 남는다. 제시는 지속적으로 다른 래퍼들을 평가하며 주관과 시각을 보여주기도 했으나, 6화에서 평가단과 엇갈린 그의 발언은 참가자들 사이의 감정 싸움만 낳는 모습으로 편집되었다.



이 방송에서 래퍼들의 자아와 선택은 모두 한 가지로 수렴한다. 탈락자 없는 경쟁이란 이 방송의 특이한 진행방식을 통해 꾸준히 보장되는, ‘여자들의 지저분한 캣파이트’ 말이다. 덧붙여, 래퍼들의 과거 경력은 지민과 키썸, 육지담을 제외하면 대부분 ‘흑역사’로 취급된다. 그렇게 방송의 지저분함에 대한 소비는 부당하게 정당화된다. ‘갈 데까지 간 여자들’ 같은 식으로 말이다.

또한, 콜라보의 주체가 래퍼 출신 프로듀서가 아닌 비트메이커나 DJ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래퍼가 성장하면 프로듀서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간단한 사실이 외면되면서, 화면 속의 위계는 더욱 절대적인 것이 되었다. 그러니 래퍼들은 콜라보의 대상이 아니다. (남자) 프로듀서들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 되고 만 것이다. 혹은 산이의 스탠스가 달랐다면 어땠을까? 사회자가 프로듀서들과 참가자들 사이를 중재하는 입장이었거나, 래퍼들의 편에 서 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방송에 비친 모습처럼 그가 프로듀서진과 함께 래퍼들을 평가(하며 때론 훈계)할 때, 남자들이 여자들을 평가하는 구도는 더욱 강화되었다.



그들이 보여주고 싶은 것은 여성인가? 래퍼인가?

모든 것은 선택의 문제이다. [언프리티 랩스타]는 [힙합LE]에서 살피는 것과 같은 각 래퍼들의 음악적 성격이나 맥락을 드러내기보다, 울고 욕하는 감정싸움에 집중한다. 웹진 [아이즈]가 지적하듯 이 방송에서 참가자들은 여성 래퍼로서의 의의보다는 여성으로서 평가된다. 감정 싸움도, 음악적 얕음도 모두 방송이란 이유로 정당화될 수도 있다. 모든 방송이 품격을 지켜야만 하는 것은 아니리라. 그러나 결과적으로 우리가 [언프리티 랩스타]에서 보고 있는 것은 제작진이 내린 선택들의 결과이다. 그것이, 드잡이하는 ‘드센 여자들’을 남자들이 평가하고 선택하는 구도란 것이다.



[쇼 미 더 머니]는 경력파 참가자도 모두 아마추어와 동급으로 취급했다. [케이팝 스타]가 과장된 찬사를 쏟아내는 건 참가자들을 ‘숨겨진 보석’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가수다]는 감동한 관객을 지루하도록 비춤으로써 참가자들을 굉장한 아티스트로 위치시켰다. 다시 묻고 싶다. 그렇다면 [언프리티 랩스타]에게 참가자들은 무엇인가? ‘(산이보다 어린) 여자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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