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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을 양떼로 본 대통령, 국회도 양떼 취급하나

  • 입력 2015.03.13 16:13
  • 기자명 오주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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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을 목자에, 국민들을 양떼에 비유했다. “양떼를 돌보는 목자의 마음으로 희망의 새 시대 열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조찬기도회에서 한 발언이라지만 듣기에 거북할 뿐이다.



목자와 양떼를 물리적 관계로 본 몰이해

목자와 양의 관계를 제대로 알고 말한 건지 의문이 생긴다. 성경에 등장하는 ‘목자’는 단지 양떼를 이끌거나 돌보는 그런 단순한 모습이 아니다. 양떼의 지도자 혹은 양들의 우두머리라는 의미로 해석하면 틀린 얘기가 된다. 그런데 박 대통령의 목자 비유엔 목자와 양떼를 물리적 관계로 보는 몰이해가 꿈틀댄다.




성경에서 말하는 ‘목자상’은 예수 그리스도다. 그런데 ‘목자’라는 말에는 이중적 의미가 부여된다. 목자이면서 동시에 양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인류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어린 양’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냈다고 말하고 있다. 인류를 구원할 ‘목자’이면서 동시에 ‘어린 양’, 이것이 예수다.

그래서 예수는 자신을 ‘선한 목자’(요한복음)라고 소개한다. 양떼를 이끌고 지배하는 그런 목자가 아니라, 자신의 목숨까지 바쳐 양들을 섬기는 목자가 바로 ‘선한 목자’다. 예수는 십자가에서 희생당함으로써 ‘목자’의 본분을 완성했다.



‘목자의 마음’은 소통, 희생, 헌신, 겸손인데...

“목자의 마음으로 노력하겠다.”고 말한 박 대통령. ‘목자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고 한 말일까. 양들을 구하기 위해 십자가에 자신의 생명을 던진 그 희생이 곧 ‘목자의 마음’이다. 성경 속 목자 예수는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친 ‘어린 양’의 모습으로 나온다. 스스로 ‘어린 양’이 돼 자신을 낮출 줄 모른다면 그건 ‘목자의 마음’이 아니다.

목자는 절대 양들 위에 군림하지 않는다. 양을 섬기는 게 자신의 소임이라고 생각한다. 양을 목자로 대접하는 마음이 곧 ‘목자의 마음’이기도 하다. 예수는 제자 베드로에게 목자가 되라며 ‘내 양을 먹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양이었던 제자를 목자로 대우한 것이다.

불통과 오만, 아집과 권위의식이 가득한 데다 국민보다는 국가를, 서민보다는 부자를, 중소기업보다는 대기업을 먼저 생각하는 박 대통령. 성경 속 목자의 이미지와는 흑과 백이 다른 것처럼 그렇게 달라 보인다. 그런데도 ‘목자의 마음’ 운운하다니. 목자를 양들의 통치자, 양떼의 우두머리, 양 무리의 제왕으로만 이해하고 있는 모양이다.



입법기관을 양떼 취급, 여당성향 국회의장까지 반발

한 발 더 나가 국회까지 ‘양떼’ 취급한다. 박 대통령은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을 자신의 보좌관으로 임명했다. 입법기관인 국회의원이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의 보좌관이 된 것이다. ‘국회의원도 내 사람’이라는 박 대통령의 전횡적 사고가 빚은 해프닝이다.

윤상현, 김재원, 주호영 의원 등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정무특보 역할을 맡겼다. 여당 의원쯤이야 대통령이 이리저리 끌고 다녀도 그뿐이라는 독재적 발상의 발로다. 뇌리 속에 ‘여당의원은 내 양떼’라는 생각이 없다면 결코 저지를 수 없는 일이다.




대통령이 여당 의원들을 ‘양떼’ 취급하자 엊그제까지 여당 소속이었던 정의화 국회의장이 국회법을 들고 나오며 발끈했다. 정 의장은 “의원들이 정무특보를 겸직하는 것이 적절한지 엄격하게 심사하겠다.”며 “국회 윤리심사자문위원회의 의견을 묻겠다.”고 목청을 높였다.

오죽하면 저럴까. 비록 자신이 여당 편이지만 입법부 수장 입장에서 보니 대통령의 처사가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국민여론과 정치권의 반발도 있어 그냥 넘기기엔 부담이 컸을 것이다. 대통령의 호각소리에 쪼르르 달려간 해당 의원들에 대해 응당한 처분을 내리지 않고는 입법부의 체면이 구겨질 수밖에 없다는 점도 정 의장을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목자는 언감생심, ‘국민의 대통령’ 모습부터 갖춰야

2013년 개정된 국회법은 1981년 전두환의 국가보위입법회의가 허용했던 의원 겸직을 대폭 제한했다. ‘원칙적 겸직 허용’에서 ‘원칙적 겸직 금지’로 바뀐 것이다. 현행 국회법에 의하면 국무총리, 국무위원, 정당법에 따른 정당의 직, 공익목적의 명예직(제29조 제1항1호), 법률에 의해 임명·위촉되도록 정한 직(동항 제2호)의 경우에는 겸직이 허용된다.

하지만 ‘공익목적의 명예직’과 ‘법률에 의해 임명·위촉되도록 정한 직’에 대해서는 윤리심사자문위원회의 심사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불명확성을 배제하기 위한 절차다. 의원 임기 중에 이에 해당하는 직을 갖게 된 경우 지체 없이 국회의장에게 서면 신고해야 하며, 의장은 신고한 직의 겸직 가능 여부를 묻기 위해 윤리심사자문위원회를 열어야 한다. ‘대통령 정무특보’도 여기에 해당하는 직이다.

그러자 개정 국회법을 무시한 채 특보 임명을 강행한 청와대가 크게 당황하는 눈치다. 지난달 27일 임명을 발표해 놓고도 보름이 지나도록 위촉장도 주지 못하고 상황만 주시하고 있다. 위촉장을 수여했다가는 윤리심사자문위가 열려 특보 임명이 부적절하다는 심사결과를 내놓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특보 임명은 했는데 특보가 없는 황당한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입법기관까지 ‘양떼’ 취급하는 그런 목자는 국민에게 해로울 뿐이다. ‘대통령다운 모습’조차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목자라니 언감생심도 유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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