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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옥 사건으로 드러난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민낯

  • 입력 2015.03.09 14:43
  • 기자명 버락킴너의길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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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1일 양승태 대법원장은 신영철 대법관의 후임으로 박상옥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58·사법연수원 11기)을 임명제청했다. 대법원은 즉각 "검사, 변호사, 국책연구기관장을 거치면서 축적한 다양한 경험과 넓은 안목을 바탕으로 대법원이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가치를 아우르며 최고법원으로서 본연의 헌법적 사명을 다하고 국민이 신뢰하는 사법부를 만들어 가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화답했다. 과연 그럴까?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에게는 세상을 들썩이게 할 만한 숨겨진 이력이 하나 있었다.


c YTN


바로 박 후보자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수사검사였다는 사실이었다. 이에 대해 전해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후보자가 박종철 고문사건의 수사검사였다는 사실이 대법원 추천과정에서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대법원도 이 추천을 할 때 부실검증을 했다는 책임에서 자유스럽지 못하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검찰의 입장은 다르다. 검찰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검찰 임무의 중요성을 보여준 사건이었다."고 자평한다. 1987년 1월 14일 오전 11시 박종철 씨가 물고문에 의해 사망한 사실을 경찰이 은폐했지만, 검찰이 이를 밝혀냈다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왼쪽이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가운데가 안상수 현 창원시장. c 동아일보 1994


당시의 상황을 잠시 짚어보도록 하자.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알려진 당시 안상수 검사는 자신의 회고록에 '당시 검찰의 외압이 있었고 검찰은 수사상 들러리였다'고 쓴 바 있다. 김학규 박종철열사 기념사업회 사무국장에 따르면, 진실을 밝히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은 최환 공안부장이었고, 검찰에서는 최 부장이 ‘진실을 더 밝힐까 봐 두려워서 검찰이 배제’를 했다고 한다.

새롭게 꾸려진 1차 수사팀(신창원 부장, 안상수 검사, 박상옥 검사)은 ‘두 명이 직무수행과정에서 과욕을 보이다가 발생한 불상사다’라는 경찰의 발표를 그대로 추인하는 역할을 맡았다.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덤터기를 쓰게 된 두 사람은 억울함을 호소했고,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보다가 안상수 검사에게 면회를 요청하게 된다.

안 검사는 2월 27일 면회를 통해 고문경관인 조한경을 통해 추가 기소해야 할 사람은 2명이 아니라 3명이 더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정상적이라면 나머지 3명에 대한 수사를 게시했어야 했다. 하지만 검찰에서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칫 묻힐 뻔했던 이 중요한 사실은 교도관들이 영등포 교도소에 복역하고 있던 이부영 전 의원에게 알리고, 이를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5월 18일 폭로를 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다급해진 검찰은 자신들도 5월 초에 그 사실을 인지하고 수사를 하고 있었다고 밝히고, 2차 수사팀(신창원 부장, 안상수 검사, 박상옥 검사)은 5월 21일 나머지 3명을 더 구속한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것처럼 안 검사가 조한경으로부터 3명이 더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2월 27일이었다. 검찰이 거짓말을 한 것이다. 이후에 검찰 측이 밝힌 입장은 다음과 같다.

수사계획서를 제출했지만 수사 게시 지시가 없어서 수사를 못했다.

이것이 바로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수사검사였다는 사실이 엄청난 논란이 되고 있는 이유의 출발점이다. 축소·은폐가 의혹 수준을 넘어 명백하다. 다만, 박 후보자의 경우에는 '막내 검사'였다는 것이 방패막이가 작용해 강도 높지 않은 수준의 비판이 제기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박종철 고문경관 말 맞추기' 덮었다 <경향신문>
대법관 후보 박상옥 검사는 '윗선' 추궁하지 않았다 <오마이뉴스>
박상옥, '박종철 고문' 부실수사 정황 더 뚜렷해져 <한겨레>
박상옥 후보자, 박종철 사건 부실수사 재판기록 나와 <한겨레>
"수사기록 속 박상옥, 5공 방침에 충실" <노컷뉴스>

위의 기사들은 박 후보자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축소‧은폐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는 정황들을 속속들이 보여주고 있다. 1차 수사기록(1987년 1월 20~23일)을 검토한 <오마이뉴스>는 박 후보자는 물고문 경찰관인 강진규 경사와 황정웅 경위, 반금곤 경장을 신문했지만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의 축소·은폐와 윗선 보고 등을 제대로 추궁하지는 않았던 점이 확인된다고 보도했다.

앞서 잠깐 언급했단 최환 공안부장이 고문치사의 가능성을 제기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박 후보자가 이를 몰랐을 리 없는데도, 박 후보자는 피의자(강진규 경사) 신문 과정에서 이 부분을 조사하지 않았다. 또, 박 후보자는 1·2차 수사에서 강진규 경사, 황정웅 경위, 반금곤 경정 등 물 고문에 가담했던 핵심 관련자들과 주변인 등을 모두 수사했던 만큼 ‘수사팀 막내검사라 사건을 잘 모른다’는 변명은 자연스럽게 무의미하게 됐다. '막내'라는 말에 현혹돼 '검사'를 너무 무시한 발언으로 오히려 '발끈'해야 할 판이다.

새누리당 측은 "책임을 진다면 그 검찰총장과 법무부에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외압을 막아내면서 검사들이 수사를 하도록 장려해야 되는데 수사를 하지 못하도록 했고 일선검사들로서는 물론 아쉬움이 많았던 상황"이라며 책임을 검찰총장과 법무부로 돌리고 있지만, 정황상 이 또한 방패로써 쓸모 있는 역할을 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c 민중의소리


<조선일보>는 박상옥을 문제 삼는 野의 자가당착이라며 새정치민주연합을 공격하고 있다. 무엇이 자가당착이라는 것일까? 참여정부는 지난 2003년 12월 박상옥 당시 서울고검 검사에게 홍조근정훈장을 수여한 바 있다. 그 이유가 흥미로운데, '확고한 국가관과 뚜렷한 사명감으로 검찰 업무 발전에 기여한 공이 현저한 자'라는 것이다. 참고로 당시의 민정수석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였고, 법무비서관은 박범계 의원이었다.

'이제 와서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의 자격을 따지는 것은 자가당착'이라는 새누리당과 보수 언론들의 논리가 마냥 억지로만 들리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박 후보자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수사검사였다는 사실이 대법원 추천과정에서 전혀 나타나지 않았던 것처럼, 짐작건대 참여 정부도 그 사실을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그것이 변명 거리가 될 수는 없다.

과거의 잘못들에 대해 분명하고 명확한 태도(처벌이나 청산이든)를 취하지 않고 어물쩍 넘어갈 경우, 이와 같은 촌극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광복 70주년이 되었지만, 친일파 청산은 결국 무산되어 우리 사회의 암 덩어리로 자리하고 있다. 결국 민주화를 이룩하면서 독재 정권들에 대한 엄정한 단죄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부메랑이 되어 대한민국 사회를 좀먹고 있는 셈이다. 누굴 탓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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