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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먼 망발에 분노할 수만은 없는 이유

  • 입력 2015.03.05 09:59
  • 기자명 오주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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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디 셔먼 미 국무부 동북아정책담당 차관의 과거사 발언을 놓고 말이 많다. 일본의 입장을 두둔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아예 일본을 적극 변호하는 망발이라며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다.



미국정부의 3.1절 메시지는 ‘과거사 운운, 입 다물라!’

지난 1일. 우리로 치면 삼일절이다. 셔먼 차관이 카네기 국제평화연구소 세미나에 기조연설자로 나와 한중일 과거사와 관련해 매우 민감한 발언을 했다. 한국을 향해 던진 3.1절 메시지인 셈이다. 국무차관 개인 발언인 양 위장된 ‘미국 정부의 3.1절 메시지’는 이런 내용이었다.

“한국과 중국이 소위 ‘위안부 문제’를 놓고 일본과 논쟁하고 있으며, 역사교과서 내용과 심지어는 다양한 바다의 명칭을 놓고 이견이 표출되고 있다... 민족감정은 여전히 악용되고 있고, 정치 지도자들이 과거의 적을 비난하면서 값싼 박수를 받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그런 도발적인 행동은 진전이 아니라 마비를 초래할 뿐이다.”

크게 두 가지를 지적한 발언이다. 하찮은 과거사 문제 가지고 왜 자꾸 티격태격하는 분위기를 연출하는 거냐며 핀잔을 주는 동시에, 과거사 문제를 정치용으로 활용하는 정치지도자의 치졸함을 꾸짖는 내용이다.



‘셔먼 발언’에 분노할 수만은 없는 이유는?

중국도 언급했지만 사실은 한국정부를 향한 메시지다. 골치 아픈 과거사 문제는 죄다 덮어야 한다는 채근이다. 한미일 3국이 공동전선을 형성해서 중국을 견제해야 하는 판에 한일 관계에 부정적인 ‘과거사 문제’를 꺼내는 건 용납할 수 없다는 투의 으름장이자, 과거사 문제를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해 온 게 아니냐는 비아냥이기도 하다.

한국 국민과 대통령을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저런 얘기를 할까. 국민의 정서와 입장, 자존감을 완전히 무시한 처사다. 미국식 국가 이기주의가 어느 정도인지 그 단면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국민들이 분노하고 비난하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비난을 하자니 목구멍에 생선 가시 걸린 것처럼 거북해진다. ‘셔먼 발언’이 정말 잘못된 걸까? 틀린 얘길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정치지도자들이 과거의 적을 비난해서 값싼 박수를 받는다.”라는 대목에서 비난이 멈춰진다. 상당부분 맞는 얘기를 한 것이다. 박 대통령을 떠올리면 ‘그의 말이 맞다’라는 생각이 더 또렷해진다.



정부의 일본 도발 대응은 ‘국내용’?

박 대통령은 취임 3년차가 되도록 일본의 도발에 대해 실효적이고 가시적인 대응을 단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다. 항상 말뿐이었다. 아베 정부의 우경화와 군국주의 부활, 평화헌법 폐기 시도, 일본정부가 방조하는 도에 넘은 혐한 시위, 일본 극우파의 역사 부정, 강제징용 문제, 역사 지우기, 교과서 문제, 독도 도발 등 계속된 일본의 도발에 원론적 수준의 성명 몇 줄 내놓는 게 고작이었다.

위안부 문제와 교과서 왜곡 등에 대해 한두 차례 선제적 태도를 취했지만 정도는 매우 약했다. 일본이 대포를 쏘고 화살을 날리는데도 박근혜 정부의 대응은 한두 차례 돌팔매질 한 게 전부다. 자발적이라기보다는 국민여론에 쫓겨서 그랬다. 여론이 안 좋아지면 ‘봐라 던진다!’고 소리쳐서 국민의 시선을 집중시킨 뒤 작은 돌멩이 하나 던지는 식이었다. 일본을 향해 던진 게 아니라 단지 국민에게 보여줄 목적이었다.

취임 후 세 차례 있었던 3.1절 기념사에서도 일본의 과거사 도발을 응징하겠다는 ‘결기’는 찾아볼 수 없다. ‘양국간 화해와 협력, 정치지도자들의 용기와 결단이 필요’(2013년), ‘역사 인식은 그 나라가 미래를 가리키는 나침반’(2014년), ‘위안부 인권문제, 교과서 왜곡은 이웃에게 상처 주는 일’(2015년) 등등 원론적 얘기뿐이었다. 외교적 수사 수준이다.



뒤로는 일본과 어깨동무, ‘정보공유약정’ 비밀리에 서명

그러면서 뒤로는 일본이 원하는 것들을 척척 들어준다. 대표적인 것이 한미일 군사정보공유 약정이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말 국민들 모르게 쉬쉬하며 기습적으로 ‘핵과 미사일 위협에 관한 한미일 3자 정보공유 약정서’에 서명했다.

한국정부가 일본에 군사적으로 종속될 수 있는 길을 자초한 셈이다. 미국이 열망하고 있는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시스템)의 한국 배치를 예고하는 조치이기 때문이다. 사드와 SM-3 요격미사일을 도입하도록 한국정부를 유도해 미국의 MD(미사일 방어)체계에 전면 참여하도록 함으로써 한미일 삼각MD 체계를 구축하려는 것이 미국의 목표다. 이것으로 중국을 군사적으로 견제하겠다는 게 미국정부가 추구하는 동북아 정책의 핵심이다. 삼각체계가 구축되면 한국의 MD는 주일 미군 방어와 일본의 집단자위권행사 지원에 투입될 공산이 크다.



미국이 삼각 MD를 효과적으로 통합 운영하려면 꼭 손에 넣어야 하는 게 있다. 한국군에 대한 전시작전통제권이 그것이다. 한일 양국의 입장과 갈등을 자신들의 이해에 맞게 조정하려면 콘트롤타워 기능이 필요한데 그게 바로 전작권이다. 미국이 전작권을 한국에 넘겨주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러니 삼일절날 망발 내뱉는 배짱 부렸던 것

셔먼 차관이 어떤 속내를 가지고 망발을 한 걸까? 과거사 얘기 그만하고 우리가 하는 대로 따라오라고 한국정부를 윽박지르는 미국정부의 자신감은 어디서 나온 걸까?

박근혜 정부를 바닥까지 파악하고 있다는 얘기다. 과거사 문제 거론이 일본을 향한 메시지가 아니라 국민을 다독이려는 ‘국내용’이라는 것과, 미국이 요구하면 어쨌든 따라 나서는 현정권의 종미성향, 그리고 일본과 살갑게 손잡고 싶어 하는 박 대통령의 속마음까지 철저히 분석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러니 삼일절날 망발을 내뱉는 배짱을 부릴 수 있었던 것이다.

‘셔먼 발언’을 재해석하면 대충 이렇지 않을까. 미국은 박 대통령의 과거사 제스처가 ‘국내정치용’이라는 것 충분히 알고 있다, 그러니 더 이상 내숭떨지 마라, 한국민들도 ‘국내용’이라는 것 눈치 챈 지 오래다, 그러니 그만 뭉그적거리고 본색을 드러내라. 어서 일본과 어깨동무하고 ‘반중(反中) 전선’ 구축에 나서자, 이게 형님으로서 아우에게 하는 명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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