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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본 청년이 직면한 현실, 그들은 왜 일하지 않는가

  • 입력 2015.03.02 14:14
  • 기자명 고함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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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민중의소리


1990년대 일본 청년들의 노동 문제는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는 세대인 ‘프리터’로 대변되었다. 그리고 2000년대에 들어서는 프리터에서 진화한 일하지 않는 세대, ‘니트족’이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다. 프리터와 니트. 그리고 여기에 '프레카리아트'라는 개념을 더해 일본 청년 노동의 현실과 우리의 청년 노동의 모습이 어떻게 닿아있는지 살펴보자. 장봄·천주희의 「안녕! 청년 프레카리아트」와 아마미야 가린의 「프레카리아트, 21세기 불안정한 청춘의 노동」을 참고했음을 미리 밝힌다.



프레카리아트, 그 생소함을 넘어서

프레카리아트란 말은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구석이 있다. 프레카리아트(Precariat)는 이탈리아어 '불안정한(Precari 또는 Precario)'과 '노동자(Proletariat)'의 합성어로, 불안정한 노동자를 뜻한다. 가끔 메이데이 행사 등에서 사용되는 것 이외에는 일상적으로 접하기 어려운 단어다. 프레카리아트는 논문이나 언론을 통해 종종 소개되지만, 그 개념이 다소 생소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프레카리아트의 정체성이 직접적으로 와 닿지 않기 때문이다.

프레카리아트의 정체성이 보통 사람들에게 쉽게 와 닿지 않는 것은 그 범위가 넓기 때문이다. 이는 어떤 세대를 하나의 특성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한 세대 안에는 다양한 층위의 사람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 세대를 하나의 특징으로 묶어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프레카리아트 역시 마찬가지다. 비교적 범위가 한정적인 개별 노동 형태에 대해서는 그들의 정체성을 인지하기가 훨씬 수월하다. 하지만 프레카리아트는 비정규직 및 단기 계약 노동자, 아르바이트생, 프리랜서, 대학생 인턴, 이주 노동자 등 다양한 형태로 불안정함을 영위하는 노동자들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c 민중의소리


범위가 넓다는 것은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하고,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은 이해시키기 어렵다는 것을 뜻한다. 프레카리아트가 종종 언론에 노출되어도 많은 이들에게 잘 기억되지 않는 이유다. 같은 이유로 우리는 설명 상의 편의를 위해 사실 '프레카리아트'의 문제인 것을 '알바생' 또는 '비정규직'의 문제로 한정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아르바이트생이나 비정규직의 문제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불안정한 노동형태가 청년들의 삶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프레카리아트는 불안정한 노동형태를 영위하는 모든 노동자를 포괄하기 때문에 이를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장봄·천주희는 논문에서 ‘프레카리아트는 불안정한 삶을 유발하고, 구성하는 삶의 총체성 속에서 구성되는 용어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비슷한 의미에서 아마미야 가린은 프레카리아트를 '불안정함을 강요받는 사람들'로 정의한다. 이러한 정의는 단순히 '불안정한 노동자'로 정의하는 것과는 다르다. 가린의 정의에는 불안정함을 강요하는 주체가 포함되어 있다. 두 저자 모두 프레카리아트 현상을 개인의 차원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차원으로 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비정규직이나 알바생이라는 말이 더 익숙하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프레카리아트’를 소개하고 의미화하려는 이유는 이 개념이 개인의 불안정한 삶 혹은 노동을 ‘사회적인 것’으로 상상하는 데 밑절미가 되기 때문이다.
장봄·천주희, <안녕! 청년 프레카리아트>




왜 프레카리아트를 이야기하나

일본의 청년 니트 중 비자발적인 니트가 늘어나고 있다. 니트가 비자발적이라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된다. 하나는 더 나은 일자리를 위해 자신의 능력을 향상하려는 경우이다. 김기헌은 논문에서 이를 ‘미래를 위한 유예’의 측면이라고 말한다. 다른 하나는 일자리로 돌아갈 의지마저도 상실한 경우다. 가정 형편이 어렵다고 응답한 청년 니트는 전체의 39.4%에 달했다. 그렇다면 일본의 청년들이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은 형편에서도 노동을 포기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 단어로 답을 내리자면 ‘소외’다. 노동으로부터, 노동 현장으로부터, 그리고 사람으로부터 소외된 사람들. 그들의 상처는 노동 현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자각도, 새로운 일터를 찾고자 하는 의지도 없애버렸다. 소외된 사람들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라는 이름으로 세상과 단절된 채 자신만의 공간에 자신을 가두어버리는 사람도 있다. 자신이 경험했던 노동 현장으로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지만, 일을 해야겠기에 능력을 더 쌓으려고 안간힘을 쓰기도 한다. 또 상처받을 새도 없이 취업과 실업의 경계, 그 어딘가에 놓인 채로 불안정한 삶을 영위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 모두가 프레카리아트다. 프레카리아트는 꼭 '일을 하고 있는 상태'의 노동자만 지칭하는 게 아니다. 21세기의 불안정한 노동 현장에 던져진 사람이든, 불안정한 노동 현장에서조차 소외된 사람이든 모두 프레카리아트가 될 수 있다.

2012년 5월 1일 '총파업'이라는 기치 아래 노동조합에 가입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이 한국은행 본점 앞 광장에 모인 것이다. 이들은 스스로를 '프레카리아트'로 명명하며, 춤판을 벌이거나 행진했다. 그리고 그동안 노동자 범주에 포함되지 않았던 예술 노동, 가사 노동, 성노동 종사자들, 심지어 백수들까지도 메이데이의 주체로 참여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장봄·천주희, <안녕! 청년 프레카리아트>




일하기 싫게 만드는 일터, 일본 청년의 노동현실

앞서 프레카리아트가 노동으로부터, 노동 현장으로부터, 사람으로부터 소외된 사람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프레카리아트가 왜 사회문제로 인식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독자가 있을 것이다. '소외'라는 단어는 나와는 먼 이야기로 느껴지기 쉽다.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일이고, 그들 개인의 잘못이므로 사회 문제가 아니라고 인식하기 쉽다. 하지만 <프레카리아트, 21세기 불안정한 청춘의 노동>에 소개된 사례는 프레카리아트의 문제가 결코 '특정한'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프레카리아트, 21세기 불안정한 청춘의 노동>에는 저자인 아마미야 가린이 프리터 생활을 하던 시절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 취급'도 받지 못하는 프리터의 현실을 엿볼 수 있다.

그러지 않아도 가난한 판국인데 말도 안 되는 지출도 있었다. 예를 들어 웨이트리스 일을 할 때였는데, 컵을 하나 깰 때마다 벌금으로 100엔을 낸다는 규칙이 있었다. 게다가 유니폼 세탁비라든지, 나와는 전현 관계없는 사원 여행을 위한 적립금 등 영문 모를 지출도 있었다. 적은 월급에서 돈을 갈취당하는 것도 싫었지만, 더 싫었던 것은 프리터라는 이유만으로 ‘신용할 수 없다’는 분위기였다. 내가 일한 어떤 찻집에는 ‘아르바이트생에게 돈을 못 만지게 한다’는 규칙이 있었고, 계산대 접촉은 물론이고 가까이만 가도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등 위험인물 취급을 했다.
아마미야 가린, <프레카리아트, 21세기 불안정한 청춘의 노동>

인격적으로 모독을 당하는 것뿐만 아니라 생명의 위협을 느끼기도 한다. 요시다 군(23세, 가명)은 캐논 공장에서 일한다. 하지만 자신이 파견 사원인지 청부 사원인지 정확히 모른다. 공장 쪽 사람에게 청부 사원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그는 확신하지 않는다. 최근 일본의 제조업 공장 중 '위장 청부'를 하지 않는 곳이 거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위장 청부는 사실상 청부 업체의 직원이어서 자사(청부회사)의 지시를 받는 것이 아니라, 파견 사원처럼 파견 처의 업무 지시를 받게 되는 것을 말한다. 실제로는 청부 사원이지만 파견 사원처럼 일하기 때문에 자신을 파견 사원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위장 청부는 '산재 은폐'가 발생하기 쉽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청부 회사는 기업의 눈치를 보기 때문에 청부 직원의 산재 처리를 꺼린다. 이런 현장에서는 사망 사고가 발생해도 누구 하나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다. 청부 노동자는 자신이 '청부'라는 이유로 목숨을 내놓고 일해야 한다.

살인적인 노동 현실은 비단 아르바이트나 파견사원 등 불안정 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사원의 과로 자살도 문제가 되고 있다. 1999년, 기계 건설 분야의 대기업에서 일하던 스와 다쓰노리 씨는 자택에서 자살을 시도했다. 다쓰노리 씨는 일명 '프리타임제'라 불리는 재량 노동제 하에서 일하고 있었다. 재량 노동제에서는 일이 일찍 끝나면 언제든지 퇴근할 수 있지만, 일이 끝나지 않는다면 몇 시간이고 잔업을 해야 한다.

성과주의가 도입됨에 따라서 아무리 일해도 성과를 내지 않으면 급료도 오르지 않고 평가도 받지 못하게 되었다. 따라서 노동 시간은 늘어갔다. 유족 조사에 의하면 어떤 달의 다쓰노리 씨의 추정 노동 시간은 293시간에 이르렀다. 30일간,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해도 연일 9시간 이상 일하지 않으면 이 숫자가 나올 수 없다.
아마미야 가린, <프레카리아트, 21세기 불안정한 청춘의 노동>

다쓰노리 씨는 지인에게 자신이 하는 일이 세 사람의 몫이라고 털어놓았다. 프리타임제에서 이런 업무량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거의 매일 밤 야근을 해야 했다. 게다가 계속되는 상사의 윽박도 참기 어려웠다. 다쓰노리 씨는 열악한 근무환경을 버티지 못하고 결국 자신이 살던 맨션에서 몸을 내던지고 만다. 그가 다른 사람들보다 정신력이 약해서 자살을 택했을까? 다쓰노리 씨가 죽은 지 반년쯤 지나자, 다쓰노리 씨의 동료였던 직원 한 명이 또 희생된다. 다쓰노리 씨와 그의 동료를 죽음으로 내몬 것이 '과중한 업무량'이었음이 분명해 보인다.



<파견의 품격>과 <직장의 신>, 현실의 리메이크

2007년, 일본에서 드라마 <파견의 품격>이 방영됐다. <파견의 품격>은 별다른 스펙이 없어서 정규직으로 채용되지 못하고 파견직으로 일하는 모리 미유키를 통해 일본 파견 노동의 모습을 그려낸다. 그리고 2013년, 한국에서 <파견의 품격>의 리메이크작인 <직장의 신>이 방영됐다. <파견의 품격>의 '파견직'인 모리 미유키는, <직장의 신>에서 '계약직 언니' 정주리로 탈바꿈하여 한국 비정규직의 현실을 보여준다.




아무리 원작과 리메이크작 사이라고 하지만, 두 드라마는 들어맞아도 너무 잘 들어맞는다. 캐릭터와 상황 설정만 닮은 게 아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일하면서 받는 설움과 그들을 서럽게 만드는 두 나라의 노동 현실까지도 닮았다. 드라마 리메이크를 성공적으로 이끈 비결이 '현실'의 리메이크였던 셈이다.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이라는 긴 불황기를 겪으면서 파견 노동이 확대되었다. 우리나라도 IMF 이후 불경기가 계속되어 비정규직이 늘어났다. 2007년 비정규직 보호법 시행으로 2년 이상 비정규직으로 일한 노동자에게 정규직 전환의 길이 열렸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법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한 회사에서 일할 수 있는 최대 기간을 '2년'으로 제한시키는 기능을 했다.

2007년 겨울, 영구불멸이라고 생각되었던 종신고용, 연공서열 등 일본의 고용형태는 빈사상태에 빠져들고 있었다. 오래된 불황으로 기업은 스스로를 슬림화하기 위해 노동력의 아웃소싱을 진행했고, 그 결과 비정규 고용자 특히 ‘파견’이라고 불리는 인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었다. 현재, 파견인구 300만 명. 그러나 급료는 시급제로 보너스 없음. 교통비는 원칙적으로 자가부담. 3개월마다 계약 재검토. 그 환경은 불안정하고 가혹하다.
드라마 <파견의 품격> 중

IMF 이후 16년, 대한민국은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하지만 1997년 버블경제의 참혹한 허상이 드러나고 결국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국가 위기를 맞게 된다. 이후 대기업들의 구조 조정과 아웃소싱으로 인해 ‘평생직장’, ‘안정고용’이라는 패러다임은 깨지고 한국의 노동시장에는 비정규직, 일명 ‘계약직’이라는 새로운 인류가 나타나게 된다. 똑같은 업무를 하더라도 월급은 정규직의 반, 2년 이내에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정한 고용형태.
드라마 <직장의 신> 중

이런 노동환경에서 '오오마에 하루코'와 '미스김'이라는 슈퍼 비정규직이 탄생한다. 이들은 엄청난 자격증으로 못 하는 일이 없고, 같은 일을 해도 정규직 사원들보다 일 처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월등히 짧다. 이들이 비정규직을 선택한 것은 능력의 부족 등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다. 스스로 비정규직의 길을 선택한다. 그 대신 어떤 상황에도 어기지 않는 절대 규칙이 존재한다. 회사 사람들과 개인적인 친분을 쌓지 않으며, 정해진 3개월 동안만 일하고 계약 연장은 하지 않는다.

오오마에 하루코와 미스김이 나타내는 것은 불안정 노동에 대한 공포다. 셀 수 없이 많은 자격증은 이들의 공포를 암시한다. 장봄·천주희는 논문에서 ‘사회적 안전망이 부재한 상태에서 불안정에 대한 공포는 자기 착취에 가까운 자기계발을 통해 끊임없이 게으르고, 나태하고, 잉여적인 존재라고 재현되는 사람들과 차별성을 두는 데 주력하게 한다’고 말한다. 또한, 이들이 3개월만 일하고 떠나는 것 역시 불안정한 삶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되는 자기방어적인 행동으로 볼 수 있다.


드라마 <직장의 신>의 한 장면


정주리 : 선배님은 왜 꼭 3개월만 일하고 떠나시는 거예요?

미스김 : 비겁해지기 싫어서. 한 번 계약이 연장되면 또 다음 계약을 기대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혹시라도 회사에서 내쳐지게 되지 않을까 불안해 하면서 언젠가는 비겁해져야 되는 순간이 오거든.
드라마 <직장의 신> 중에서

두 드라마는 주로 비정규직의 불안정한 노동을 다루고 있지만, 정규직도 예외는 아니다. <파견의 품격>의 쇼지 주임과 <직장의 신>의 장규직 팀장은 회사 안에서 촉망받는 정규직 사원이다. 하지만 중요한 업무에서 저지른 단 한 번의 실수로 인해 해고 위기에 처한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일본과 한국의 노동 현실에서 '고용 안정'은 이제 옛말이 되어가고 있다.



한국은 일본의 노동 현실을 답습하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나라의 비정규직 노동자는 2013년 기준으로 860만 명에 달한다. 프레카리아트의 불안정한 노동은 더 이상 남 얘기가 아니다. 불행히도 이미 우리 노동 현실은 일본과 많은 부분이 닮아 있다. '인간 취급'도 받지 못하는 프리터의 모습은 우리 사회에서 '감정 노동자'에 대응된다. 정규직 사원의 과도한 노동은 '저녁이 없는 삶'이라는 말로 우리 삶 속에 파고들어 있다.

한국이 아직 일본의 모습을 완전히 따라잡지는 않았다. 일본에선 이미 청년 니트가 큰 문제가 되었지만, 한국에서는 니트 문제보다는 청년 실업 문제가 더 비중 있게 다뤄지고 있다. 하지만 청년들이 마주하는 노동 현장의 모습에 변화가 없다면, 니트 문제 역시 일본의 전철을 밟게 될지 모른다. 앞선 이야기를 종합해 보자면 일본의 청년 니트는 그 현상 자체라기보다는 '어떤 현상의 결과'에 가깝다. 이제 막 노동현장에 뛰어든 청년들이 서로를 소외시키도록 만드는 환경이 계속된다면 청년 니트의 문제는 머지 않아 우리의 문제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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