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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주민센터만도 못한 '사회보장위원회'

  • 입력 2015.02.27 15:17
  • 기자명 오주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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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는 사회보장기본법을 전면에 내세웠다. 서민에게 민감한 ‘복지 아이템’으로 표심을 공략할 심산이었다. 2012년 12월 대선후보자 2차 TV토론회에 나와 이렇게 말한다.

“저는 한국형 복지모델로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를 추진하겠다는 생각으로 사회보장기본법 전부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일관성 있는 복지정책을 위해 설계를 잘해야 합니다.”



2010년 12월 등장한 박근혜의 대선 무기

자신이 주장하는 복지정책과 공약이 모두 ‘사회보장기본법 전부개정안’에 담겨 있다는 얘기다. 이 개정안은 2011년 2월 박근혜 의원의 발의로 2012년 1월 국회를 통과했으며, 발의자가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인 2013년 1월에 전면 시행됐다. 당시엔 ‘박근혜법’으로 불리기도 했다.

박근혜 의원은 법안 발의 두 달 전 국회에서 공청회를 개최했다. 여야 국회의원 등 800여 명이 운집한 가운데 박 의원은 평생사회안전망으로의 복지, 예산 낭비 없는 복지, 선제적이고 예방적인 복지, 맞춤형 복지, 사각지대 없는 복지 등을 강조하며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줄 마법이 자신이 발의할 법안에 들어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박희태 국회의장은 축사에서 “존경하는 유력한 미래권력인 박근혜 전 대표가 한국형 복지의 기수로 오늘 취임하는 날”이라고 거들었다.



공청회가 끝나자마자 법안 개정 취지를 설명하는 홍보동영상이 인터넷 공간에 대거 살포된다. 공청회 직후 배포하기 위해 미리 만들어놓은 것으로 보이는 이 동영상은 ‘박근혜의 미소 띤 얼굴’이 전체 배경화면으로 등장한다. 공청회가 사실상 대선 출정식이었고, 대권 고지에 오르기 위해 준비한 비장의 무기가 이 법안이었던 것이다.



사회보장위원회는 ‘박근혜표 복지’의 핵심

사회보장기본법 개정안의 핵심은 ‘사회보장위원회’(사보위) 설치다. 사보위의 기능과 역할이 ‘박근혜 사회보장법’의 근간을 이룬다. 개정안이 추구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계획하고 유관 부처 간 업무를 통할·조정하는 기능뿐 아니라, 현행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하는 역할을 사보위가 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재원조달과 사회보장 전달체계 및 운영까지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돼 있다. 이쯤이면 사보위는 복지정책을 진두지휘하는 콘트롤타워다. 적어도 법적으로는 그렇다.



관련법은 사보위가 ‘복지의 모든 것’을 다 담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위원 구성만 봐도 알 수 있다.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복지부장관, 기획재정부장관, 행정자치부장관, 교육부장관 등 14개 정부부처의 장과 다수의 민간 전문인들이 위원으로 참여한다. 이 정도면 부처 간 칸막이를 허물어 복지정책과 제도를 효과적으로 조정하는 데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전문가들은 사보위에 주목했다. 일각에서는 사보위를 영국의 베버리지위원회에 견주기도 했다. 방식과 제도, 관리와 조직이 통일돼 있지 않아 크게 비효율적인 사회보장제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통합·조정·운영을 진두지휘할 콘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베버리지 교수의 보고서는 영국을 복지국가로 변신시켰다. 1948년 완성된 영국의 복지제도를 주도한 곳이 베버리지위원회다.






“대통령 되면 다 하겠다”던 박근혜, 사보위는 지금껏 무엇을 했을까

‘한국판 베버리지위원회’라고 불렸던 사보위는 박근혜 대통령 취임 3개월 뒤인 2013년 5월 정식 출범한다. 박 대통령은 대선후보 당시 야당후보의 복지관련 질문에 답변이 군색해지면 “대통령 되면 다 하겠다. 그러니까 대통령 하려는 것 아니냐.”며 큰소리친 바 있다. 그런 사람이 대통령 자리에 앉은 뒤 만들어진 게 사보위다. 출범한지 2년이 다 돼 간다. 그동안 사보위는 무엇을 했을까.

한마디로 개점 휴업상태다. 관련 부처 간 정보교류도 안 되고 부처 간 복지사업을 공유하기 어려운 상황인데도 제 역할을 안 한다. 그러니 유사·중복 복지사업으로 비효율이 크게 문제가 돼도 통제와 조정이 이뤄지지 않는다. 보건복지부와 여성가족부가 여성장애인 지원사업을 동시에 벌이며 혼선을 빚어도, 고용노동부와 보건복지부가 직업훈련지원 사업을 각자 따로 벌이며 충돌해도, 나서야 할 사보위는 조용하다.

월세 낼 돈이 없는 부녀가 동반 자살을 하고, 거주할 곳이 없어 환자 흉내를 내며 요양병원에 갇혀 있는 노인들이 갈수록 늘어난다. 그런데도 정부가 지어놓은 수도권 임대주택 주차장엔 외제차가 가득하다. 이렇게 복지제도 설계와 기획, 전달 체계가 뒤틀린 톱니바퀴처럼 삐걱거려도 '한국판 베버리지위원회'는 구경만 한다.






전문가들 “복지 콘트롤타워 필요하다.” 사보위는 뭐 하기에?

전문가들은 복지정책의 효율성을 높이려면 부처 간 칸막이를 없앨 수 있는 콘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이구동성으로 주장한다. 그런데 청와대와 정부의 대응이 황당하다. 새로운 협의체를 구성하겠다고 나섰다. ‘청와대와 정부가 복지정책을 발표하기 전에 경제부총리, 사회부총리, 복지부장관 등이 참석하는 정책조정협의회를 통해 사전 조율하겠다’고 말한다. 사보위는 있으나마나 한 조직이라는 걸 실토한 셈이다.

‘박근혜 복지의 야심작’이라던 그 사보위는 2년 동안 대체 무엇을 했을까. 9차례 전체회의를 한 게 눈에 들어온다. 그나마 현안을 논의하고 정책을 토론한 게 아니었다. 보건복지부가 회의 전 미리 결정된 내용을 안건으로 올리면 원안대로 통과시키는 거수기 역할을 수행해 왔다. 복지부가 올린 안건(28건) 모두가 원안대로 의결된 게 그 증거다.

형식적인 회의다 보니 위원들도 참석할 의욕을 느끼지 못하는지 부위원장인 경제부총리는 9번 회의 중 5번이나 불참했다. 사회보장 급여와 비용 부담, 재정조달 방안, 사회보장 전달체계 개선 등 정작 중요한 논의는 전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2년 동안 회의 몇 번 한 게 전부, 간판만 있는 유령회사 같아

사보위의 ‘위원회 운영일정’을 살펴보았다. 이번 달(2015년 2월)에 잡혀 있는 일정은 2월 5일과 6일, 13일에 잡힌 3건의 회의가 고작이다. 출범 2년 동안 만들어 배포한 보도자료는 단 10건. 석 달에 한 번 전체회의를 하고, 한 달에 서너 건 회의 위주의 일정을 소화하고, 두 달에 한 번 꼴로 보도자료 만든 게 대한민국 복지 콘트롤타워가 한 일의 전부인 셈이다.



사보위의 실무기능을 담당하는 사무국은 어떨까. 국장을 포함한 이사관급 3명, 서기관 2명, 사무관 6명, 주무관 3명, 전문위원 4명 등 총 17명으로 구성돼 있다. 동네 주민센터 직원 수도 이보다는 많다.

‘박근혜표 복지’의 ‘심벌 마크’였던 사회보장기본법 전면개정안과 사복위. 당선 2년이 지난 지금 ‘전면개정안’은 ‘전면포기안’으로 불러야 마땅한 상황이 됐고, 개정안의 노른자위였던 사보위는 간판만 있는 유령회사와 흡사한 꼴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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